1807나폴레옹(Napoléon)이 이끈 프랑스군은 포르투갈을 점령한 후 곧바로 스페인으로 향한다. 당시 스페인의 내정은 불안정했고, 왕실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페르난도 7(Ferdinand VII)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폐위되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나폴레옹은 페르난도 7세를 쫓아냈고, 그 자리에 자신의 형 조제프 나폴레옹(Joseph Napoleon)을 임명했다. 동생 덕분에 조제프는 호세 1(Jos I)’가 된다. 그러자 스페인 민중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프랑스군은 무력을 동원한 강제 진압에 나섰다. 프랑스군은 이집트 원정 중에 데리고 온 이집트 용병 맘루크(Mamlūk) 기병대까지 동원하여 스페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 함순용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점령할 무렵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는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6년 동안 프랑스군이 스페인에서 자행한 사건들에 영감을 받아 최고의 걸작을 내놓게 된다. 82점으로 이루어진 판화집 전쟁의 참화. 이 판화집은 전쟁의 공포를 관람자의 눈앞에 바짝 들이댔다. 고야는 당시 상황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냄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현실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야의 하인이 전쟁의 참화에 포함될 판화를 그리고 있는 고야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이런 비참한 것을 그리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고야는 인간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잔혹한 것을 두 번 다시 용납해선 안 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 (이때 고야는 이미 청력을 잃은 상태다. 그런데 고야는 어떻게 하인의 질문을 듣고 대답했을까? 귀는 들리지 않아도 상대방의 말을 알 수 있는 고야만의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조제프 나폴레옹은 스페인의 구체제를 지탱하는 봉건 제도, 종교재판 등을 없애고, 개혁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에 깊은 인상을 받은 친불파 스페인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 고야 역시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지지했다. 프랑스군이 저지른 만행을 알면서도 고야는 생계를 위해 스페인을 지배하는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조제프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독립을 갈망하는 스페인 민중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고, 조제프는 왕위에 오른 지 6년 만에 폐위되었다. 쫓겨났던 페르난도 7세가 다시 왕위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고야는 부역자로 찍힐 뻔했으나 고야의 능력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페르난도 7세는 그를 궁정화가로 재임명한다. 그러나 페르난도 7세는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제정치 강화에 나섰다.

 

 

 

 

 

 

 

 

 

 

 

 

 

 

 

 

* 자닌 바티클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시공사, 1997)

 

 

 

조제프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보다 한 살 위인 이다. 그런데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시공사, 1997) 97에 보면 조제프를 나폴레옹의 동생으로 나와 있다. 최근에야 이 책의 오류를 발견했다. 이 책은 나온 지 20년이나 된 책이다. 지금까지 쇄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 사소한 오류를 바로잡았는지 모르겠다.

 

 

 

 

 

 

 

 

 

 

 

 

 

 

 

 

 

* 로제 마리 하겐, 라이너 하겐 고야(마로니에북스, 2010)

* 웬디 버드 디스 이즈 고야(어젠다, 2016)

 

 

 

 

오늘날까지도 고야의 생애 대부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고야 관련 책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고야의 행적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고야(마로니에북스, 2010)디스 이즈 고야(어젠다, 2016). 이 두 권의 책으로 종군 화가로서의 고야의 활동 여부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 대조해보면 흥미롭다.

 

 

전쟁의 참화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 혹은 고야의 영광스러운 국가 이름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량 학살, 그리고 종종 어느 편의 사람들이 죽이고 죽임을 당했는지 알기 힘든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서구 미술사에서 새로운 것이었다. 전투에 대한 기존 묘사는 승리에 대한 영광을 그려왔다. 고야는 혼돈과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평화롭던 시민들이 잔혹한 야수로 변하는지에 흥미를 갖는다. 고야가 전쟁 특파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했다.

 

(로제 마리 & 라이너 하겐, 고야55~56, 57, 글 작성자가 임의로 편집하고 인용함)

 

 

180810, 고야는 호세프 파라폭스 장군과 동행해 사라고사로 갔다. 사라고사는 6월에서 8월까지 포획된 상태였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들은 전쟁의 재앙연작에 사용된다. 11월에 고야는 도피했다. 12월에 두 번째 포위가 시작되자 고야는 자신이 그린 스케치 작품들 중 일부를 없애 버렸다. 이는 그 작품들이 프랑스 군들의 손에 들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웬디 버드, 디스 이즈 고야63)

 

 

※ 『전쟁의 재앙전쟁의 참화를 말함.

 

 

 

고야가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은 자신의 고향 사라고사에서 머무른 건 사실이다.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에서도 이 사실이 언급된다.

 

 

1808615, 프랑스군이 사라고사를 공략했다. 공략에 실패한 프랑스군이 마침내 8월에 퇴각하자 돈 호세 데 팔라폭스 장군는 고야에게 시민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그릴 수 있도록 도시의 참상을 돌아보고 조사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12월에 프랑스군이 다시 돌격해 오면서 이 계획은 중단된다.

 

(자닌 바티클,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100)

 

 

 

돈 호세 데 팔라폭스(José de Palafox) 장군의 요청으로 고야는 프랑스군에 짓밟힌 고향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팔라폭스는 프랑스군에 저항하는 스페인 민중들을 이끈 장군이다. 그러므로 고야는 비정규군 소속 종군 화가로 볼 수 있다

 

고야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전쟁의 참화』를 형상화했다. 하지만 판화에 나오는 일부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비록 고야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지만, 고야는 안전한 곳에서만 머무르면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따라서 “고야가 전쟁 특파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했다라는 구절이 독자들한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고야가 전쟁터에 직접 가보지 않고 오로지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전쟁 특파원종군 화가는 동일한 직업이 아니다. 전쟁 특파원은 전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직업이라면, 종군 화가는 전쟁 상황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전용 전쟁화를 그리기도 한다. 고야는 도시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고, 이성과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전쟁의 위력을 전달하려고 전쟁의 참화를 제작했다. 그는 전쟁 특파원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 다만 그는 전쟁의 선전에만 몰두하는 종군 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군에 맞서 싸우다가 희생한 스페인 민중들을 빛나는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민간인을 잔혹하게 죽이는 프랑스군을 살육 기계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고야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철저히 배제하여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광기 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고야를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필자도 포함된다)전쟁의 참화일부만 보고 있을 뿐이다. 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스페인 민중의 시체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벌거벗은 민간인의 성기를 절단하고, 여성을 강간하는 등 만용을 저지르는 프랑스군을 묘사한 그림들만 보게 되면 프랑스군의 광기만 각인된다. 그렇지만 고야가 목격한 전쟁은 서로 간에 피를 흘릴수록 프랑스군과 스페인 민중 모두 파멸하는 증오와 광기의 전쟁이었다. 고야는 이성을 잠재우는 전쟁의 광기를 판화로 기록하려고 했다. 전쟁의 참화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또 인간의 광기란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1] 함순용,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15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9-26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26 14:25   좋아요 0 | URL
전쟁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네이버 댓글창에 기웃거리죠.

2017-09-2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도서관에서 미술사강의 듣다가 재미없어서 나왔어요.
고야도 잠깐 나왔는데 cyrus님 강의로 보충하고 갑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cyrus 2017-09-26 17:24   좋아요 0 | URL
사실 미술은 재미없어요. 그림 하나를 알려면 그림과 관련된 열을 알아야 할 때가 있어요. 확실한 것은 미술을 주제로 쓴 제 글도 읽어 보면 재미없어요. 제가 핵노잼형 글을 쓰는 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