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글은 [가이아에서 팔척 귀신까지]라는 제목의 글에 포함될 내용이었다. [가이아에서 팔척 귀신까지]가 긴 분량의 글이 될 것 같아서 핵심에서 조금 벗어난 글감을 쳐냈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글감이 공개되지 못한 게 아쉬워서 따로 제목을 붙여서 한 편의 글로 정리했다.

 

 

 

 

 

 

 

 

 

 

 

 

 

 

 

 

 

 

 

 

 

 

 

 

 

 

 

 

 

 

 

 

 

 

 

 

      

* 루이스 캐럴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만나다(시공사, 2001)

* 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북폴리오, 2005)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열린책들, 2009)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월의봄, 2015)

 

    

 

앨리스 증후군(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는 게 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앨리스가 작품 속에서 겪었던 것처럼 신체 형상이 왜곡돼 보이는 증상이다.

 

 

 

 

 

 

 

 

 

 

 

앨리스는 나를 마셔요!’라는 문장이 적힌 라벨이 붙은 물약을 마시면서 생쥐만큼 작아진다. 작아진 앨리스는 조그만 문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자를 집어 먹고 커지게 된다. 그 이후로 앨리스는 몸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반복한다.

 

캐럴은 소설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앨리스 리들(Alice Liddell)을 무척 좋아했다. 캐럴과 앨리스 리들과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앨리스 리들에 향한 캐럴의 감정은 어른이 아이를 좋아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캐럴을 롤리타 증후군(Lolita syndrome)’이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어떤 이는 캐럴이 앨리스 증후군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 올리버 색스 편두통(알마, 2011)

* 이동귀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21세기북스, 2016)

* 김개미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문학동네, 2017)

    

 

 

앨리스 증후군을 겪으면 보통 편두통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캐럴도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앨리스 증후군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눈앞에 있는 대상의 형체가 변형 또는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시각적 환영을 겪는다. 편두통 증상은 무척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한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통증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거나 긴 시간 동안 지속한다. 발작이 한 번 일어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욕지기(nausea, 메스꺼운 느낌)를 느낀다. 편두통 환자는 시각적 환각도 경험하게 되는데 이 환각은 환자 스스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김개미 시인의 시는 삶을 황폐화하는 편두통의 강도(強度)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나는야 배고픈 딱따구리지

당신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지

당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지

상처투성이 당신을 쪼아먹고 있지

당신 머리통에 정 끝을 대고

망치를 두드리고 있지

나는야 부리가 무거워 고개를 들지 못하지

내 부리가 닿은 곳에 당신 눈동자가 있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당신

나는야 당신 눈동자를 파먹고 있지

당신 눈동자가 너무 굳어 한번에 삼킬 수 없지

나는야 날개가 굳은 딱따구리지

쪼아먹을 것도 없는 당신을 떠나지 못하지

당신의 퀭한 눈 어둠의 통로를 들여다보는

나는야 배고픈 딱따구리지

당산의 눈동자 하나로는 너무나 배고픈

나는야 당신의 딱따구리지

    

 

(김개미 편두통,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21)

 

 

 

캐럴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 그런데 유독 소녀들만 편애했다. 그의 일기에 보면 남자아이만 빼고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문장이 있다. 전기 작가들은 이 일기 구절을 근거로 캐럴의 롤리타 증후군을 의심한다. 하지만 캐럴의 소심한 성격은 다소 거칠고 활동적인 소년들과 맞지 않았고, 쉽게 다가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아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캐럴의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편두통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편두통의 고통에 벗어나고자 시작한 캐럴의 글쓰기는 병들고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치유의 글쓰기로 발전했다.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재미 붙인 캐럴은 앨리스 리들에 향한 내밀한 애정의 상징들을 동화 속에 꼭꼭 숨겨 놨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몸이 커진 앨리스. 고독과 어깨동무한 자는 시간의 무상함을 일찍이 깨닫고 있다. 캐럴은 앨리스 리들이 숙녀로 성장하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녀가 숙녀로 자라면서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들이 잊힐 거로 생각했다. 또 예전의 밝고 앳된 소녀의 모습을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캐럴의 편지에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낸 구절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커가면서 너무 보기 흉하게 변하기도 하죠.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나기 전에 부디 당신이 그런 식으로 변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Alice76)

    

 

캐럴은 얼굴은 그대로이고 몸만 커진 숙녀 앨리스를 만나길 원했고, 자신의 욕망을 몸이 커진 앨리스에 투영했다. 편두통을 동반한 환각 증상이 신체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설정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것이다. 몸이 커진 앨리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작아지는 설정은 캐럴의 일시적인 환각 증세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편두통(알마, 2011)을 집필한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편두통을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라고 표현했고, 책의 부제로 삼았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과 글쓰기를 통해 고독과 질병의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었던 편두통 환자캐럴의 삶과 제법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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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21:32   좋아요 1 | URL
일상생활에 지장이 줄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신체 일부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면 정말 움직일 힘이 나지 않아요. 답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