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국민 -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근대 국가의 법과 과학 RICH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총서 5
홍양희 엮음,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 기획 / 서해문집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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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소설 《주홍 글자》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은 간통을 했다는 벌로 가슴에 ‘A’ 낙인을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다. 헤스터와 딤스데일(Dimmesdale) 목사의 사랑은 청교도적 윤리관에서 보면 부도덕한 감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작품에서 청교도 사회 속 가부장제의 비정함을 읽을 수 있다. 헤스터가 처한 상황에 잘 나타난 것처럼 간통죄의 처벌은 원래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간통죄의 핵심은 간통한 기혼 여성을 처벌하는 것에 있다. 이는 가부장제의 잔재라고도 할 수 있다. 간통죄의 부활을 원하는 지지자들은 결혼의 정조와 가정의 건강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부부간의 외도를 법적으로 막는 간통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간통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그러나 간통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지 국가가 개입해 형벌로 다스려야 할 일이 아니다.

 

《‘성’스러운 국민》은 법이 공평무사한 이상적 세계 안에서 세워지고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 현실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필자들은 여성 또는 성 소수자(Queer)의 차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권력 분배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지를 근대 국가의 법적 · 제도적 장치에서 주목한다. 국가는 권력을 발휘하여 ‘개인’을 ‘국민’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국민으로 재편하기 위해 ‘모성’과 ‘현모양처’라는 기준에 제시된다. 이 두 가지 기준은 여성의 모성애를 미화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기혼 여성의 간통은 ‘모성’과 ‘현모양처’에 어긋나는 음란한 범죄 행위로 규정된다. 식민지 시기의 간통죄는 가부장적 권력관계 속에서 구성된 것이다.

 

국민국가 중심의 안보 체제는 한 국가 내 여성의 위치를 ‘보호받는 국민’으로 정의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방의 의무를 짊어져야 할 남성과 그들이 지켜주는 여성이라는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이 형성된다. 국가가 생산하는 젠더 이분법이 극우 논리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 국민은 병역 의무에 대해 매우 단호하다. 현행 병역법상 동성애자도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성적 지향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행법 체계에서 예외적으로 동성애자가 군 생활을 피할 수 있다. 신체검사에서 ’부적격자’로 인정되는 것뿐이다. 성전환 시술을 받아 일반 남성과 현저히 다른 신체를 갖거나 ‘성주체성 장애’로 판정받는 방법이 있다.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라는 병역 의무의 견고한 전제는 성 소수자의 차별을 제도화한다.

 

기득권의 유지 및 재생산 도구로서 법은 무수히 많은 불의와 억압을 낳았다. 이러한 법적 통제에는 성적 · 사회적 차별이 깔렸으며 여성과 성 소수자는 그 과정에서 가장 가차 없이 그 불명예를 그대로 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남북 분단의 혼란스런 한복판에 서 있는 바람에 가부장제가 고착된 식민지 법제 일부를 이식받았다. 그러므로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성찰할 기회가 마련되지 못했다. 그런 장이 되기 위해서 여성주의 접근으로 식민지 과거청산을 시도함으로써 보다 나은 젠더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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