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의 천재 바넘 - 대중은 속기 위해 태어났다 인물탐구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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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유행가 가사가 구구절절 심금을 울린다. 노래가 어쩌면 그리도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든지, 가사가 꼭 나의 이야기 같다. 마치 나를 모델로 하여 노래를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가사를 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알 리가 없다. 그런데도 노래 가사가 자신의 이야기인 양 느껴지는 것은 노래를 듣는 사람의 불안한 심리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들어맞을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정보만 들으면 그게 ‘꼭 내 이야기 같다’라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19세기 말 곡예단에서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 등을 알아내는 일을 하던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에서 유래했다. 바넘 효과는 유행가를 자신의 이야기인 양 착각하는 현상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사람들이 답답할 때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그의 신통력에 탄복하는 것도 바넘 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바넘의 흥행은 매사가 이런 식이었지만, 대중은 바넘에 의해 속아 넘어가는 것마저 즐겼다. 중요한 건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으며, 바넘의 성공 비결은 바로 그런 일을 잘하는 탁월한 홍보술이었다. (24쪽)

 

 

 

사실 바넘은 천재였다. 그는 스토리텔링의 원조였고, 입소문 마케팅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바넘은 대중이 논란을 사랑한다는 걸 간파해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흥행사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반면 그를 나쁘게 말하면 머리 좋은 사기꾼이었고, ‘야바위(ballyhoo)의 왕자’였다. 그는 항상 ‘여러분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을 보여드립니다’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해대며 대중의 입소문을 이끌어냈다. 그는 자신의 선전술과 관련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기만당하기 좋아한다”

 

바넘의 선전술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그의 속임수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넘은 영국 식민지 시절을 겪고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의 간호 노예로 일했던 조이스 헤스라는 여성을 언론에 소개했다. 그녀의 나이는 놀랍게도 161세였다. 그러나 얼마 후 조이스 헤스는 161세가 아닌 80세로 밝혀졌다. 이에 바넘은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렇지만 이미 그는 큰돈을 모은 상태였다. 이번에 바넘은 인어 미라를 전시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원숭이와 연어 뼈를 이어 붙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거짓으로 판명됐다. 또 그는 한 농장에서 발견됐다는 3m 크기의 거인 화석을 전시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사기였다. 미국인들은 바넘에게 속을 줄 알면서도 속았다. 그렇게 매번 속아 넘어가는 상황을 즐겼다. 바넘이 81세로 사망하자 미국과 유럽 각지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바넘은 “대중은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는다.”라는 대중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특히 바넘 효과는 정치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경제공화당 허경영 총재는 다소 황당해 보이는 공약들을 내세워 비주류 후보로는 이례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허경영 신드롬은 사기꾼의 쇼와 똑같다. 정치적 의미나 의사 표현이 아닌 재미를 좇는 사람들의 관심일 뿐이다. 마술사의 마술이 눈속임인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빠져드는 것과 똑같다. 정치에 대한 부동층과 무관심층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결국,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할수록 사회 전체가 ‘엔터테인먼트 민주주의’에 휘둘린다. 정치가 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하는 동안 정치 쇄신과 풀뿌리민주주의는 철 지난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미국은 더 심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수준 낮은 망언과 속임수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가 엔터테인먼트 민주주의를 극복하기는 현실상 어렵다. 언론은 엔터테인먼트 민주주의를 탄생하게 만든 공범자에 가깝다. 언론도 논란을 좋아한다. 인터넷상에서 논란을 부추기는 세력에게 언론이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대중은 구경꾼이 된다. 어쩌면 엔터테인먼트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의 불가피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닐 포스트먼은 자신의 책 《죽도록 즐기기》에서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정치와 사회 같은 진지한 영역마저 ‘쇼’가 되어가는 현상을 경계했다. 정치인들에게도 공약을 내세울 때 쇼맨십이 요구되고, 스펙터클한 사건이 중요한 사건보다 더 많은 카메라의 관심을 받는 시대다. 야망을 품고,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이 정치인으로 변신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환상적인 정치 쇼에 매번 속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always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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