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조명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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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5] 외제니 그랑데

 

 

* 위대한 속물 발자크를 추모하며...

 

** Eugénie Grandet (1833년,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 ‘지방생활 장면’)

 

 

 

“우리는 돈을 왜 벌어야 할까요?” 매우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마도 다양한 답변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집을 사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서, 여행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 대개들 이런 대답이 나온다. 그런데 자칫하면 평생 돈에 끌려다니며 사는 인생이 될 수 있다.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이 최고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노심초사하는 사이 그 밖의 가치는 뒷방 신세다. 돈에 상당한 집착을 보여 돈을 아끼는 정도가 심한 사람, 때로는 맹목적으로 돈을 수집하는 사람을 ‘수전노’라고 한다.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절약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상식에서 이탈될 정도로 과도하게 아끼려고 한다면 바람 잘 날이 없다.

 

서양 문학에서 ‘돈의 노예’라고 하면 샤일록(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스크루지(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가 먼저 떠오른다. 온정이라는 단어와 아주 거리가 먼 수전노 한 사람을 더 소개하자면, 그랑데 영감이 있다.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에 나오는 이 영감은 황금, 금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에게는 외동딸이 있다. 외제니 그랑데는 파리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시골 아가씨다. 그녀는 사촌 샤를 그랑데를 사랑한다. 샤를은 부유한 아버지(그랑데 영감의 친동생) 덕택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파리지앵이다. 시골 여자와 도시 남자의 사랑은 갑작스러운 불행으로 인해 살짝 어긋나게 된다. 샤를의 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은행의 파산 소식에 절망하여 자살하고 만다. 한순간에 무일푼이 된 샤를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 인도로 떠나서 돈을 벌기로 한다. 외제니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아버지가 준 금화 전부를 샤를에게 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감은 자신의 피와 같은 금화가 너무 아까워서 분노한다. 외제니는 영감의 명령으로 방에 감금되어, 물과 빵으로 연명한다. 가족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는 영감의 권위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랑데 영감은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새로운 사회지배층으로 급부상한 신흥 부르주아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폴레옹 실각 이후, 왕정복고 체제로 들어서는 즈음에 신흥 부르주아지는 파리에 진출하여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랑데 영감은 때를 잘 만나서 돈을 잘 벌 수 있었는데 그를 자수성가형 부자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내의 지참금을 사업 투기 자금으로 사용하여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감은 아내에게 고마워할 줄도 모르며 재산 소유하는 권리를 독단적으로 가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가부장제와의 환상적인 조합은 그랑데 영감의 권위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는 돈의 힘으로 가정을 군림한다. 외제니와 영감의 아내는 재산 소유에 간섭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영감은 딸에게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는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돈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가 저변에 깔렸다. 한편으로는 남성 위주의 경제권이 두꺼운 시대에 축소되었던 여성의 경제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정도면 그랑데 영감이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보다 더한 최악의 수전노다. 영감은 죽음의 신이 가까이 찾아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질적 탐욕을 쫓은 삶에 대한 반성하는 마음도 전혀 없다. 영감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신부의 은빛 십자가를 금붙이로 착각하고 욕심내면서 손을 뻗치다가 숨을 거둔다. 중국 속담에 ‘관 속에서도 손을 뻗친다’라는 말이 있다. 돈이라면 죽어서도 관 속에 든 사람까지도 관 밖으로 손을 내민다는 뜻이다. 영감의 최후는 중국 속담의 의미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그랑데 영감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마몬(Mammon)에게 손을 뻗쳤다. 특히 영감이 죽으면서 딸에게 남긴 유언은 돈 욕심의 끝을 보여준다. 영감은 자신의 보물을 끝까지 잘 지켜서, 저승에서 만나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당부한다. 발자크는 영감의 최후를 통해서 종교의 교화가 돈의 힘 앞에 무색하게 된 세태를 비꼰다.

 

“참말이지 돈은 살아 있는 것이야. 인간들처럼 우글우글 들끊기도 하지. 가는가 하면 오고, 땀 흘려 수고하고, 새끼를 치기도 하니까 말이야.”(《외제니 그랑데》 중에서, 116쪽)

 

 

그랑데 영감은 인간의 탐욕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자라는 돈의 번식력을 알고 있었다. 탐욕 유전자는 감염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며 마몬의 자식들을 양산한다. 7년간 인도에서 일하면서 돈의 맛을 알게 된 샤를 그랑데 역시 마몬의 족보에 포함된다. 그는 외제니와의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백작의 딸과 결혼하려고 한다. 영감의 탐욕 유전자는 친딸이 아닌 조카가 물려받는다. 돈의 메커니즘을 알아차린 샤를의 모습은 제2의 그랑데 영감의 등장을 암시한다. 돈이 넉넉하게 있다면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돈의 마력에 짓눌린 채 오직 돈만을 모으기 위해서 살아가는 돈(돼지, 豚)이 될 수 있다.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늙어 죽을 때가 되면, 한평생 누리던 부귀는 물론 명예마저도 짐이 되어 버려야 한다.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지독한 독선이며 광적인 집착이다.

 

 

 

 

※ 《외제니 그랑데》는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도 아직 완역본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번역본은 1977년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책을 참조했다고 한다. 삼중당문고 번역본이 완역인지 궁금하다. 사실 발췌 번역한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면 지루하지 않다. 지만지의 《외제니 그랑데》는 이야기 진행에 상관없는 장광설 같은 긴 문체가 일부 삭제되었다. 책 앞에 있는 역자의 줄거리 소개만 읽어도 이야기의 주요 사건과 결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편소설을 중편 수준의 분량으로 축약해버린 탓에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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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15: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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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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