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선집(『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2014년)에 ‘아이피오르니스 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화석 조류 아이피오르니스를 만난 남자의 경험담이다. 상상 속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아이피오르니스를 웰스는 상상력으로 복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이피오르니스가 살았던 섬에 거대한 화석 알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알에 아이피오르니스 새끼가 부화한다. 남자는 새끼를 정성스럽게 키운다. 새끼는 남자를 어미라고 생각하면서 졸졸 따라다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끼는 빨리 성장했다. 이제 남자의 몸집보다 클 정도로 자랐다. 그러나 다 자란 아이피오르니스는 점점 야생의 본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과 발톱으로 남자를 공격한다. 남자는 아이피오르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사투 끝에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이피오르니스의 공격에 남자는 흉터가 남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아이피오르니스(왼쪽), 화석이 된 아이피오르니스의 알(오른쪽)

 

 

아이피오르니스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했던 거대한 새이다. 학명은 Aepyornis maximus. 키는 약 3m 정도에, 무게는 450kg 이상 나갔다고 한다. 몸집이 큰 편이었는데 날개 뼈가 작고 퇴화하여 하늘을 날지 못했다. 생김새와 특성이 타조와 비슷하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아이피오르니스를 ‘Elephant Bird’라고 부르기도 했다. 웰스의 소설에서는 아이피오르니스는 인간을 공격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괴물 새’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실 몸집이 큰 것만 빼면 적으로부터 공격당하기 쉬운 존재였다. 특히 아이피오르니스의 알은 지름이 30cm 이상이나 될 정도로 컸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의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아이피오르니스가 매우 겁이 많은 편이라서 어두운 습지에 주로 살았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절멸되었는지 알 수 없다. 멸종 시기를 대략 추정하면 19세기 중반으로 잡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피오르니스를 ‘괴물’이라고 말한다. 새의 공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드바드의 로크 이야기까지 언급한다.

 

흉터 난 남자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놈은 정말로 괴물이었으니까요. 신드바드의 로크 이야기는 아이피오르니스에 대한 전설 가운데 하나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 뼈를 찾아낸 게 언제죠?” (웰스  ‘아이피오르니스 섬’ 중에서,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81쪽)

 

 

로크는 『천일야화』(앙투안 갈랑 판, 열린책들 / 2010년)에 나오는 전설상의 새이다. 신드바드는 두 번째 여행에서 로크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신드바드는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물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알을 품고 있는 로크였다. 신드바드는 터번으로 로크의 거대한 다리에 자신의 몸을 묶었다. 로크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함께 실려가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권, 353~355쪽)

 

 

 

 

 

 

 

 

 

 

 

신드바드는 다섯 번째 여행에서 또다시 로크를 만난다. 신드바드는 로크의 알이 있는 무인도에 정박했다. 그는 이미 로크의 존재와 알을 본 적이 있어서 동료 선원들에게 로크의 알을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선원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로크를 죽여 구워 먹는다. 마침 두 마리의 로크가 나타나 둥지를 침입한 선원들을 공격한다. 신드바드와 선원 일행은 배에 올라 로크의 섬을 탈출하게 되지만, 로크는 하늘 위에서 큰 바윗덩어리를 떨어뜨려 신드바드가 탄 배를 명중시켰다. 배가 침몰하여 선원들은 사망하고, 신드바드만 살아남는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권, 391~393쪽)

 

신드바드 일행이 로크의 섬에 도착해서 새끼 로크를 잡아 먹는 장면은 웰스의 ‘아이피오르니스의 섬’ 줄거리 일부와 흡사하다. 이 작품의 남자도 아이피오르니스 섬에 정착하고 난 뒤에 부화되지 않은 알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다가 마침 알에서 아이피오르니스 새끼가 깨어나 키우게 된다. 남자와 아이피오르니스의 첫 만남은 이렇다.   

 

로크는 신드바드의 이야기 이전인『천일야화』 1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로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흰색 새로, 그 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들판에 있는 코끼리를 들어 올려 산꼭대기에 잡아다 놓고 쪼아 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1권, 276쪽)

 

앙투안 갈랑은 주석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로크가 언급되어 있다고 적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상상동물 이야기』(까치, 1994년-절판)『동방 견문록』에서 묘사된 로크에 관한 내용을 인용했다.

 

 

 

 

 

 

 

 

 

마다가스카르 섬 주민들은 1년 중 특정 기간이 되면 남쪽에서 굉장히 몸집이 큰 새가 날아온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새의 이름이 로크라는 것이다. 새의 생김새는 독수리와 비슷한데 크기는 독수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로크는 대단히 힘이 좋기 때문에 발톱으로 코끼리를 낚아채서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서 잡아먹는다. 로크를 본 사람에 따르면 날개 길이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가 열여섯 걸음이나 된다고 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 로크 편, 140~141쪽)

 

폴로는 중국으로 간 황제의 사절들이 로크의 깃털을 가져온 적이 있다고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로크가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새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새가 바로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서식했던 아이피오르니스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이피오르니스는 날 수가 없는 새이다. 이러한 오류는 『동방견문록』이 무용담 전문 작가였던 루스티첼로의 덧칠을 거치면서 당시 유럽인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과장에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폴로는 처음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유럽에 널리 알렸지만, 직접 그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원나라에서 귀국 도중 만난 아랍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썼다. 당시 아랍상인들은 이미 마다가스카르에 무역 기지를 설치면서 교역을 하고 있었다.

 

아이피오르니스는 17세기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아이피오르니스를 로크와 같은 전설의 새와 비슷한 동물로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피오르니스 같은 거대한 몸집의 새를 본 적이 없어서 ‘괴물’로 오해하기 쉬웠다. 특히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인간을 공격하고, 코끼리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둔갑했다. 원래 아이피오르니스는 낯선 적을 몹시 두려워하고, 날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인간은 한때 그를 괴물로 여기면서 두려워했지만, 상상력이 주는 방어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피오르니스에게 인간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었다. 그리고 근대의 ‘괴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힘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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