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라는 기업 광고의 슬로건이 큰 호응을 받은 적이 있었다. 광고 내용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옛날에는 과학자가 꿈인 어린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과학자보다는 아이돌 가수가 더 많은 장래 희망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선택한 장래 희망이라는 것이 어른들이 한 번에 들어도 기분 좋을 만한, 소위 돈을 잘 벌고 안정되어 보이는 직업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곧 좋은 진로’라 배우며 자란 2030 세대는 성인이 돼 지독한 꿈의 부재를 겪고 있다. 단군 이래 최악의 세대 방황은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어질 듯하다. 초등학생 10명 중 3명은 공무원이 되길 희망한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대답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새내기 대학생이나 전공 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취업 준비생의 대답과 꼭 같다.

 

부모가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꿈이 없다고 미리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직업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내가 미혼이라서 아이의 장래희망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의 심정을 느끼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결국 직업은 연봉을 많이 받거나 사회적으로 인기가 높은 것도 좋지만, 적성에 맞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 과거와 같이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일자리가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부모의 기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직업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소설 『멍키스패너』에 나오는 주인공 파우소네는 직업의 참된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파우소네는 떠돌이 조립공이다. 철탑, 다리, 석유시추설비 등등 한 번도 손대지 않은 구조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노동 경험이 많다. 그는 안정적인 집과 아내도 없다. 항상 작업할 때 사용하는 ‘멍키스패너’와 함께 전 세계를 떠돌면서 지낸다. 건장한 사내도 하기 꺼리는 조립공 작업을 파우소네는 즐거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다. 파우소네는 기계 구조물을 다루는 노동에서도 예술가처럼 창조해내는 순수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는 진정한 ‘호모 파베르(Homo Faber)다.

 

파우소네는 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기계를 조립하고, 3D에 가까운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선호하게 될 걸까? ‘꿈’에 대해서 자신의 정의를 내리는 파우소네의 답변은 안정적인 직업의 꿈을 좇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듯이 온 세상의 조선소, 공장, 항구를 돌아다니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에 관한 꿈은 자신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일수록 좋다고 한다.

 

“나로서는 꿈이 진짜로 실현되는 것이 좋아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꿈이란 사람이 평생 동안 옆에 가지고 다니는 질병이나, 아니면 습기가 찰 때마다 고통을 주는 수술의 상처로 남아 있게 되지요.”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중에서, 10쪽)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꿈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회하기도 한다. ‘아, 내가 공부만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때 부모님의 설득에 귀담아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꾸준히 준비했더라면 일하는 것이 즐거웠을 텐데...’ 안정적인 생활과 연봉에만 초점을 맞춘 직업을 선택해서 생활할수록 어린 시절 순수했고 꿈은 어느새 아쉬움이 가득한 그리움으로만 남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꿈꾸던 장래희망이 평생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다.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사랑해서 직업으로 삼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운명이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제외하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은(불행히도 그건 소수의 특권이다) 지상의 행복에 구체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다가가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만이 알고 있는 진리다. 그 무한한 영역, 직업의 영역, 간단히 말해 일상적인 일의 영역은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121쪽)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운명인데 우리는 너무 무심코 직업을 단정적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그것도 돈 벌기 쉽고, 해고 위험의 부담이 없는 안정적인 직업 말이다. 그러나 파우소네의 표현처럼 직업의 영역은 광활한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직업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몇 십 년 후에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선호하고 원하는 직업 중에는 언젠가는 미래에 사라질 수 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면 힘든 노동이라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고용주의 노예일 뿐이다. 파우소네는 일과 노동의 즐거움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진정한 노동(직업)은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노동이 아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 즐거운 것이다.

 

레비는 파우소네를 ‘또 다른 자아’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예술가적 자아를 뜻한다. 두 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파우소네에게 예술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레비는 파우소네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대화를 유도하는데 바로 글쓰기 작업으로 파우소네의 삶을 소설로 새롭게 창조시킨다.

 

 

 

 

 

 

 

 

 

 

 

 

 

 

 

 

 

레비의 삶에 있어서 글쓰기와 화학 연구는 인간적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노동이다.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서 수용소 안에 갇힌 인간과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고통스럽고도 극적인 수용소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글로 기록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눈물겨운 기억 투쟁이다.

 

1986년 레비와 대담한 필립 로스는 그를 ‘화학자-작가’라기 보다는 ‘예술가-화학자’에 가깝다고 했다. 『주기율표』에서 레비는 화학이 ‘파시즘의 해독제’라고 말했다. 화학 실험이 인간적인 노동인 것이다. 그래서 『주기율표』를 읽어보면 화학 실험을 한 편의 그림처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 위로 아래로 두 겹의 여행을 하는 사이 마침내 순수한 것이 도달한다. 이것은 모호하면서도 매혹적인 조건이다.”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에서, 89쪽)

 

레비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직업이 우리 삶의 치유제가 되고, 파우소네처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찌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에 불과할 수 있겠다. 오히려 자식이 파우소네처럼 떠돌이 기계 조립공처럼 산다면, 부모는 당장 자식의 호적을 팠을 것이다.

 

레비는 자신의 삶에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 것의 어려움과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직업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어린 시절 꿈을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멋진 삶이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레비는 운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직업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관과 증오를 갖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해롭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직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직업의 결실이 일하는 사람의 손에 남아 있도록, 직업 자체가 형벌이 아닌 것이 되도록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중에서, 121~122쪽)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프리모 레비의 『멍키스패너』 을 읽어봤으면 한다. <타임> 지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은 이 책의 서평에서 ‘독자들 가운데 공무원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라고 썼다. 자식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멍키스패너』를 읽고나서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자식의 꿈과 장래희망을 부모의 마음대로 정하고 간섭한다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또한 증오하게 된다. 부모의 그늘이 이제 막 성장하려는 자식의 미래를 가리지 말고, 아이들의 순수한 꿈을 뺏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꿈을 돌려줘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직업을 선택할 때 앞으로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삶을 가꾸어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을 더하여 ‘진정한 자아실현’에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제 삶과 직업을 통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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