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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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가라앉힌
밀물 위로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가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기억해다오.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개념이요 가장 잔혹한 행태이다. 전쟁은 막대한 물자가 소모되고 수없이 많은 인명의 살상과 살아남은 자의 생활고통이 뒤따른다. 이러한 전쟁을 인간은 어쩌자고 자꾸 되풀이 하는 것일까. 전쟁은 언제나 강자의 교만과 악의에 의하여 도발되고 패자는 굴종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승자의 교만은 자멸을 재촉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이 우리 심리에 끼친 상처의 자각을 검증하지 않고 단지 내면의 그림자로 가만히 두는 것을 일상화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종종 전파를 타고 '내전'이라는 국제뉴스를 접하게 된다. 우리 사회와는 무관한 그래서 단지 미디어나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이제는 뉴스나 게임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문명의 잔혹성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어떠한 체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반성도, 성찰도 없는 사회의식 속에서 성장해 왔다. 전쟁을 정확히 바라보아야 할 것은 '심리적 상처'와 '정신의 황폐함'이다. 전쟁의 공포와 고통을 그냥 놔두면 저절로 치유될 수 있을까?

 

“자유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 누구도 전염병처럼 퍼지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없애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처는 마르지 않는 악의 샘이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겨놓고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의 빛을 꺼뜨린다. 상처는 압제자들에게는 익명으로 되돌아가고 생존자들 속에서는 증오로 연속한다.” (20쪽)

 

홀로코스트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서장애에 걸리는 자가 많았고 여전히 불안, 불면증과  같은 '홀로코스트 증후군'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깊은 감정교류가 없이 그대로 자신들의 감정을 고갈시키면서 지내왔기 때문이다.

 

아유슈비츠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프레모 레비도 ‘홀로코스트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신은 『휴전』에서 쓴다는 체험을 강렬하고 행복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작가의 말이 씁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는 자신의 증언을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세상의 혼돈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끝난 뒤에 자유의 기쁨을 만끽해보지만, 새로운 전쟁의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그런 미세한 조짐을 레비는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진실에 차마 눈 맞추기 어려워 부러 모르는 척할 때가 있다.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폭력적 상황과 공포, 죽음, 억압의 구조에 눈을 돌리고자 할 때에 이 나약함을 직시하도록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이후 귀향의 과정에서 독일 뮌헨에 들른 레비는 자신들을 절멸의 수용소로 보낸 독일인들이 자신에게 무언가 질문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거리의 독일인들은 레비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입을 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단단히 답변할 준비를, 마구 쏟아내야 할 증언을 준비하고 있던 레비는 철저한 무관심에 경악한다. 레비는 그런 상황에 혼란과 고통을 느끼며, 문학의 힘을 빌려『휴전』을 집필했다.

 

레비는 영혼마저 표백하는 파시즘의 실험적 광기와 수용소 공간의 낯선 윤리를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서 증언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풍경을, 다는 아니어도 대충은, 볼 수 있었다. ‘생지옥, 짐승, 도살, 피눈물 등 인간의 이름을 수식하는 모든 음울한 비유들의 무덤’(『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레비는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다. 그것은 지옥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번에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에서 지낸 10개월간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라면 『휴전』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8개월 동안의 귀환의 여정을 기록했다. 레비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고통스러웠지만, 동행하는 동료들과 에피소드나 여정 속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특별한 일화까지 담았다.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답게 레비는 절제된 감정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종전의 흥분과 불안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처신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거침없는 입담과 생활력을 지닌 그리스인 나훔, 군 보급품인 생선에 물을 채워 러시아군에게 비싸게 되파는 체사레 등 인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그리스인 나훔이 말하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만의 생존법은 강렬한 블랙유머다. 우리는 전쟁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식량과 물이다. 전쟁이 나면 먹고 마시는 것에 지장을 받는다. 비상식량을 가득 준비해도 전쟁이 길어지면 하루를 연명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나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식량보다는 신발을 먼저 생각한다. 만약에 신발이 없다면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레비는 나훔의 생각에 반박한다. 전쟁이 끝났다고. 그러자 나훔은 레비의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결정적인 대답을 한다. “전쟁은 늘 있는 거야.”(78쪽)

 

전쟁에서의 승리는 환영(幻影)에 불과하다. 나훔의 말처럼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과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전쟁에 의한 환영과 전쟁 중이다. 8개월에 걸친 여정 끝에 드디어 레비는 토리노 자택에 돌아온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전쟁의 환영과의 싸움이 종전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자택에서 잠든 그는 공포로 가득 찬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저녁이면(한순간 공포가 스치고) 나의 체중 아래 부드럽게 눌리는 넓고 깨끗한 침대를 되찾았다. 간간이, 때로는 자주 때로는 드물게, 공포로 가득한 꿈이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328쪽)

 

그래서 레비는 두 번째 책의 제목을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고 지은 것이다. 전쟁에 살아남아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전쟁에 긴장과 불안에 떨면서 그 잔인한 운명을 맞아야 한다. 전쟁의 상처를 내면으로 체화한 채 다음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왜곡되고 불편한 감정이 이어진다.

 

전쟁에 승자와 패자는 구분의 무의미하다. 심리적 상처가 단지 '전쟁의 패자'에게만 유독 드러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애와 정신적 외상은 이후 전쟁에 살아남은 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잠재적 질병이다. 우리의 정신구조는 어떠한 상흔을 입었는지에 대한 되돌아봄 없이 오직 경제개발과 풍요라는 '외피'만 가꾸고 돌보면서 달려왔다. 우리가 전쟁과 폭력에 질문을 던지고 지속적인 되물음을 해야 하는 것은 전쟁이 가져오는 깊은 상실감을 정확히 직시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레비는 심리적 상처를 문학을 통해 성찰하고 전쟁의 상처에 대한 자각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펑화가 없음을 경계한다. 전쟁에 살아남은 자들이 고통의 환영과의 전쟁을 이겨내 평화를 유지하려면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레비의 성찰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면서도 아무 일 없다듯이 불감증을 느끼고 있는 우리가 되돌아보는 기회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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