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Prologue  ‘알면 사랑한다.’

 

이 말은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아낌없이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동물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동물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읽다 보면 ‘이성적인 동물’이라 일컫는 인간세계의 허위의식이 드러난다. 인간이 내세우는 어쭙잖은 명분과 잇속이 얼마만큼 공허한지 자책감마저 들게 만든다. 자식을 더욱 강하게 키우기 위해 냉혹한 백로들, 부상을 당한 동료를 혼자 등에 업고 그가 충분히 기력을 찾을 때까지 떠받쳐주는 고래들의 따뜻한 동료애, 갈매기 부부의 사랑 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을 조용히 꾸짖는 듯하다.

 


 Scene #1  잔인한, 그러나 아낌없는 사랑   

 

또한 백로들은 같은 어미가 낳은 친형제들끼리 서로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거나,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지 못하게 하여 끝내 죽게 만든다. 둥지를 떠나 살아남지 못할 자식은 일찌감치 사라지는 것이 어미에게도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냉혹한 동물세계처럼 비춰지긴 하지만 경쟁이 두려워 미리 자기가 기를 수 있을 만큼의 새끼만을 낳는 비겁한 일은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낭비가 아니라, 둥지 안의 경쟁을 통해 보다 강인한 자식들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이다. 술수를 부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살아가는 백로의 세계는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열린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간의 생존법칙을 가르쳐준다.

 

이렇듯 강한 모성애는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말벌의 경우 자식 사랑이 너무나 지나쳐 어느 면으론 잔인하기조차 하다.

 

말벌의 암컷은 송충이나 메뚜기를 잡아 땅굴 속에 묻어두고 그것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러면 말벌 애벌레들은 알에서 깨어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송충이나 메뚜기 살을 먹고 자란단다. 이때 송충이나 메뚜기가 완전히 죽은 게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몸이라는 데 주목할 만하다.
 
말벌은 자신들의 새끼에게 신선한 먹이를 제공해 주기 위해 송충이나 메뚜기의 신경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죽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곤충이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신경을 이종(異種)에게 갉아 먹히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끔찍하다. 이것으로 보아  말벌의 새끼 사랑은 인간과 별반 다른 점이 없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음식과 좋은 것들을 자식에게 마냥 해주고 싶은 마음이 곧 어머니의 마음 아니던가.

 

비록 미물일지언정 신선한 먹이를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고자 벌레들의 일부 신경만 마비시키는 말벌의 잔혹한 행위에서 진정 숭고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은 좀 잔인하지만. 그래도 사랑만큼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Scene #2  사랑은 갈매기 부부처럼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 날이 들어있는 관계로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 간의 사랑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되새길 때가 많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가정 해체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가족 해체로 가정을 등지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가정의 달’이 있겠는가? 가정이 무너진 곳에서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모두가 비탄의 눈물만 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교육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가정의 건강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재화가 아니라, 부부간의 깊은 사랑일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에 나오는 외눈박이 물고기, 즉 비목어는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암수 한 쌍이 평생을 한 몸이 되어 함께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가 없는 운명을 안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의 동물 이야기에 실제 동물의 세계에서도 부부간의 끔찍한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갈매기 부부의 사랑은 유별나다.

 

갈매기 부부는 거의 완벽하게 열두 시간씩 번갈아 둥지에 앉아 서로 알을 품고, 그리고 나머지 열두시간은 교대로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완벽한 남녀평등의 완전한 사랑을 나누는 사회인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번식기인 겨울에 잠시 떨어져 있다가, 봄이 오면 지난여름 함께 지낸 짝을 찾아서 다시 신방을 꾸민다는 점이다.

 

겨우내 먼 바다로의 긴 여행과정에서 둘 중 누구 하나라도 불행한 사고를 당하여 돌아오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며칠 씩 짝을 찾아 구슬프게 울어 댈 정도로 금슬이 좋다는 것이다.

 

하찮은 갈매기도 부부간의 정이 이렇게 돈독한 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들이 걸핏하면 이혼을 한다.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만 있다면, 물질적인 궁핍이나 가난은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다. 또 자녀교육도 얼마든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우리가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다.

 


 Scene #3  사랑은 고래를 움직이게 한다

 

고래의 모성애와 우정을 소개한 글은 언제나 읽어도 감동과 여운이 감돈다. 고래는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포유동물이다. 고래들의 동료애는 다친 고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나르 듯하는 모습이 학자들에게 관찰되었다. 그물에 걸린 새끼나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를 위해 고기잡이배를 몸으로 맞서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

 

고래는 물속에서 허파로 숨을 쉴 수 있는 젖먹이 동물이다. 그래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한 동료 고래가 있으면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게 해줘야 한다. 이때 친구를 등에 업고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혀 주는 고래의 모습은 숙연한 감동을 준다. 또한 부상으로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어 주기도 한다.

 

우리는 고래의 새끼가 그물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할 때 그물을 물어뜯으며 몸부림치는 고래의 감성으로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구하고자 하는 어미 고래의 처절한 몸부림에서 사랑을 얻는 심성을 배워야 한다.

 


 Epilogue  인간이 동물에게 배워야하는 이유

 

때론 인간과 동물의 직접 비교가 거북살스럽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지 13년이 된 지금, 옛날에 비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성(性) 보수주의자라면 동물세계에서 동성애가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발끈할 법하다. 그는 반문한다. ‘자식이 신부나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받는 충격과 동성애자라고 밝혔을 때의 충격이 왜 달라야 할까? 아이를 낳지 않겠는 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저자가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훈계하거나, 동물이 인간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위선적인 인간이 동물만도 못해 울화가 치민다.'고 서슴없이 고백한다. 후기에서 이 책을 ‘인류를 대표해 자연에게 써 올린 반성문’이라고 적은 것도 그런 뜻에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에 조금은 지쳤거나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물들의 생존방식은 때로는 위안이 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질을 따지게 되는 시대에 자신의 안위만을 묻고 조급해하기 보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서양속담이 있지만 앎을 위한 열정이라면 누가 인간을 당하겠는가. 그런 일을 해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성이다. 그러다 보면 생명도 소중한 의미로 우리 곁에 남아 우리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으로 다가온다.

 

각질처럼 딱딱해져 가는 무딘 마음에 한낱 실오라기 희망을 품어본다. 서로를 ‘알려고 노력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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