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홀 - 할인행사
우디 알렌 감독, 다이안 키튼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많은 사람들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진부함’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그런데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 결국 두 사람은 맺어진다’라는 장르의 틀에다가 우연찮은 둘 사이의 첫 만남 같은 장치들이 반복되면서 그런 인식들이 굳어져 왔다. 90년대 이후 비교적 싼 제작비로 로맨틱 코미디들이 마구 양산되면서 이런 장르의 기본 룰들이 얕은 깊이로 공식처럼 재활용되면서 그런 선입견 역시 확대됐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는 장르의 틀과 언어들을 변주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진실한 사랑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 과정에 유머가 동반된 코믹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사랑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험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이 장르의 법칙들을 진부함의 덫에서 건져내는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 명품들은 이 장르에 대해 여전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은 내러티브적인 파격과 독특한 정서로 코미디의 역사를 새롭게 쓴 명작으로 꼽힌다.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에서 보더라도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장르에 대한 자기 반영적인 시각과 함께 이 장르의 관습들에 대한 과감한 파격을 이룬 혁신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지식인의 사랑 놀음을 가장 적나라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낼 줄 아는 작가 겸 감독이 우디 앨런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을 그렇게 희화화할 줄 안다는 점에서 그는 뛰어난 예술가다. 그가 남우주연상까지 탔더라면 아카데미 사상 세 번째의 ‘빅5’(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여우주연상)수상작으로 기록됐을 걸작이다.

 

영화는 주인공 앨비(우디 앨런)가 애니(다이앤 키튼)와의 만남과 사랑, 실연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 담뿍 담긴 아이러니와 페이소스가 보는 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우디 앨런의 분신처럼 보이는 앨비는 섬세하되 소심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그는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질을 내고 과대망상에 시달리는가 하면 터무니없는 생떼 쓰기로 사랑을 망친다. 이 영화는 개봉 직전까지 ‘안도헤니아(Andohenia)’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행복 불감증을 뜻하는 정신의학용어다. 자고로 자의식 과잉인 자가 행복을 맛보는 경우란 없다. 차라리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를 줄 아는 자가 사랑에 훨씬 가까이 다가서는 법이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애니가 앨비의 청혼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바로 그 직후 앨비 최초의 희곡에 인용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연극의 내용이 현실의 그것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즉 현실에서 겪은 사랑의 좌절이 예술 속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변주된다.

 

예술은 거짓말이다? 예술가의 창작 의욕을 자극하는 것은 사랑이다? 예술은 현실을 위무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매혹적인 텍스트다.

 

영화는 이런 열린 결말이라는 파격 외에도 이전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강조하지 않았던 섹스에 대한 솔직한 태도와 구체적인 묘사, 관습적이지 않은 대사,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주인공들 못지않은 비중에 놓으면서 독창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탄생시켰다.

 

특히 신경증을 앓고 있는 남녀 주인공 우디 앨런과 다이앤 키튼을 통해 남녀의 관계와 로맨스에 대한 어려움을 상기시키고 이들이 결국은 맺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무한한 낙관과 그 결과로 결혼이라는 일부일처제의 제도로의 편입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던졌다.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나 어려운 것임을 토로하는 주인공들이 맺어졌다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세련됨으로 ‘애니 홀’은 로맨틱 코미디의 레벨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

 

해피엔딩의 반대말은 ‘비터스윗(bittersweet)’엔딩이다. 나는 ‘애니 홀’처럼 ‘쓰라리되 달콤하게’ 끝나는 사랑영화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의사 선생님. 저희 형이 미쳤어요. 자기가 닭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형을 병원으로 데려오지 그래요?”라고 말하자 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좋은데... 저는 계란이 필요하거든요” 우디 앨런은 ‘애니 홀’의 이 농담이야말로 연애의 속성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미련하게 반복하고 있는 연애라는 행위 역시 “불합리한, 광기의, 부조리한 일이지만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계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자서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는 어린 시절 우디 앨런의 비관적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린 시절 ‘인간은 모두 죽는다’ 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심술궂은 아이로 살수 밖에 없었다”는 우디 앨런은 그 이후로도 삶의 완벽한 당위나 희망으로 가장한 낙관 따위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인생은 그저 “맛이 최악인데 게다가 양까지 적은 휴양지 음식”같다고, “외로움, 비참함, 고통,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나마도 너무 일찍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투덜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관객들은 우디 앨런 영화의 비관으로 인해 유쾌함을 얻어왔다. 이토록 불완전한 삶을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보려고 애쓰는 작고 볼품없는 남자의 악전고투는 자조적 농담과 버무려지면서 대책 없는 위로의 말보다는 더 큰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차피 죽을 인생, 어차피 별 볼 일 없겠지만, 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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