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
김현미 지음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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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다문화사회의 허상


결혼이주이든 노동이주이든 국제 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도 더욱 개방되고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문화사회의 등장이다. 최근 대두된 다문화사회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다문화에 대한 요란한 구호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한국문화의 입장에서 다른 문화를 보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여튼 서로 다른 문화, 도덕, 신념, 관습,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다문화사회를 이루면서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다문화 사회를 긍정하는 사람은 다문화사회가 단일문화사회였던 한국사회에 자비로운 혜택을 줄 거라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한국사회의 자산으로 보면서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편협한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문화사회가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가령 다문화 배경을 지닌 애플의 스티브 잡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같은 인물을 한국이 낳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기도 한다.


다문화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애써 목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다문화사회가 사회통합을 위태롭게 하고 사회경제발전을 돕기는커녕 방해한다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적 차이를 사회 내부의 적(敵)으로 본다. 이주자들이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원래 속한 공동체성원이라는 감정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B국으로 이주한 A국인이 여전히 A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을 B국 시민으로 보지 않으면서 B국 사회에 고립돼 살고 있다.

 

 

 

 Scene #2  그들이 집을 떠나게 만드는 세상  


유엔은 12개월 이상 특정 국가에 체류한 사람을 '이주자'라고 분류한다. 한국은 유엔의 분류에 따라 지난 20년 동안 외국인 이주자 유입이 가장 많이 증가한 나라 중 하나로, 현재 이주자 비율은 전체 국민의 3%에 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주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다뤄진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국은 이주자 송출국에서 이주자 유입국으로 변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정책적으로 제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당시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 없거나 임금 상승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제조업체는 더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을 받아들인 것도 한국내 이주민이 증가한 큰 이유다. 가족중심인 한국은 언제부턴가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결혼시장의 성비 불균형 등으로 지속적인 가족 관계망 형성이 어려워졌다. 이처럼 인구학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한국사회가 이를 외부수혈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3년 무용수로 한국에 왔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한 러시아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주자 연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10년 동안 이주자들을 인터뷰하며 한국인의 '상식' 이나 '관습'에 익숙한 자신이 다른 상식과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해의 장을 만들어갔다고 토로한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이주자의 현실은 참담 그 자체다. 한국인 남편들은 베트남 부인 집에 송금하는 것을 결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잣대로 이용하거나 자신의 자원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아내의 배반행위로 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에 대한 비용을 긴 노동시간, 열악한 근로환경, 폭력, 인간적인 배신감 등으로 치러야 하고,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글로벌 이산민처럼 떠돈다.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누구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나 이주자 신분이 될 수 있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주민 2세들은 한국에서의 지위를 인정하며 꿈을 조정해야 하는 슬픈 현실에 직면한다. 노동력 부족,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스스로 이주자를 필요로 하게 된 한국 사회는 이주자의 당연한 권리는 부정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Scene #3  우리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 


물론 외국인을 무조건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장기체류와 정착이 가져올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강조하는 점이나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외국인을 대하는 정책과 의식에는 자성할 점이 많다. 외국인을 노동시장 교란 주범이라거나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는 시각에서 과장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그리고 범죄자 이미지가 외국인에 대한 적대 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 본질 문화와 가짜 문화라는 이중기준에 기초한 인종차별과 민족차별의 잣대와 같은 논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수직적 질서를 당연시해 왔다. 우리들에게 내재된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결혼이주자와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가족들을 배제하는 논리와 편견의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닌지 자성할 때다.


글로벌화는 필연적으로 다문화 시대를 초래한다. 다문화에는 서로 다른 언어, 기억, 가치, 관행 등의 존재와 그에 대한 저항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습, 편견, 무지가 뒤섞여 충돌과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주자를 한국 가족과 사회 내에 편입시키기 위해 빠른 동화를 통한 한국화라는 목적에 얽매이다 보니 다문화주의 논의는 ‘다문화 가족’ 정책으로 환원되었고 여전히 정체돼 있다. 이 같은 정책은 다문화 가족 전체를 취약계층과 동일시하면서 영구적인 주변부 계급으로 고착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만들어냈다.


다문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상대방에 대한 동질성 강요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강조한다. 바람직한 다문화 정책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요구된다. 이주자 고유의 정서와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존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주자가 기본 권리를 누리고 유지하는 것이 한국 국민의 권리를 뺏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출발선을 만들어 주고 같은 과정을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특혜’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 다문화가정 자녀는 소수자이고 소수자를 돕는 일은 늘 더 많은 투자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 외국인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일상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우리가 대비하고 선택하는 방법에는 인간존중과 국민으로서의 외국인주민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 독서모임 인터넷 카페 '달의 궁전'(http://cafe.naver.com/darlgung)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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