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53쪽) - 

 

 

 

이런 종류의 글을 읽고 심장이 불에 덴 듯 놀랄 때, 그때를 청춘이라고 부른다. 또 이런 종류의 글을 자신의 청춘의 면죄부 혹은 자화상이라도 되는 듯 ‘내가 읽은 글’ 따위의 글에서 요란하게 소개할 때, 그때를 속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소년은 늙기 쉽고 청춘은 한순간이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질투를 힘으로 변용시키는 자의 자기모멸과 자기 연민의 뒤섞임은 기형도로 말해지는 한 예민한 청춘의 자의식이 아니고서는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정서다.

 

질투란 어느 누구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자의 유일한 무기다. 이 때 저 질투하는 자는 자신의 질투 때문에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내비치지 못한다. 그것이 저 가련한 자의 자존의 방식이다. 그는 질투 때문에 쓰고 또 질투 때문에 자신이 쓴 것을 믿지 못한다. 마치 세상이 쓰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 끊임없이 쓰고 또 쓰지만 그가 쓴 것은 오로지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다만 ‘탄식’뿐.

 

시인의 문장에서 이 탄식의 끝에서 저 지독한 욕망, 스스로 두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그 불멸에의 열정을 엿본 것 같다.평생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나 머뭇거릴 운명, 그러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운명, 그 어리석은 운명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