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재미와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쉬고 싶거나 잠들기 위해 책을 들기도 한다. 또,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르는 것을 배워 알기 위해 책을 뒤지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손쉽게 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책의 매력이다.

 

내가 바로 떠올린 책은 잠자는 우리 정신을 일깨우는 책, 그래서 우리가 마구 불편해지는 책이었다. 그런 책을 발견하는 감동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만약 휴식이나 재미를 얻고자 한다면,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음악 감상, 야외활동, 수면, 영화 감상 등을 통해서도 목적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의 날을 세우고 성찰의 폭과 깊이를 키우는 데 책에 비할 만한 것은 없다. 철학책이 존재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을 읽는 데서 얻는 만족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내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독서는 대부분 묵독할 때, 즉 소리 내지 않고 읽을 때 가능한 것 같다.

 

소리 내어 책을 읽게 되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념은 물리칠 수 있겠지만, 깊이 있는 사색 속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그런데 묵독의 역사는 소리 내어 읽기의 역사에 비해 짧다고 한다. 고대의 도서관에서만 해도 다들 소리 내어 웅얼거리며 책을 읽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독서가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책을 소화해낼 수 있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책이 많지 않던 시절이니, 어쩌면 같은 책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반복적인 독서가 암송으로 이어지고, 암송을 할 수 있을 정도니 의미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읽을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독서법으로 묵독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책을 소리 내어 읽건 소리 없이 읽건, 책의 글자가 제공하는 사전적 의미, 즉 글쓴이가 애초에 의도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그친다면 독서의 묘미는 줄어든다. 책 읽는 이가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고 할 수 있다.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심지어 대단한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똑같은 책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만 해도 다시 읽어 보니, 그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독서가는 분명 수동적인 의미수용체만은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면서 변화해간다. 침묵한 채 정신을 긴장시키고, 찬찬히 문자를 눈으로 집중해 따라갈 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발견해 낸다면, 이미 변화의 출발점에 섰다. 우리가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일 수 없다.

 

책 읽기와 관련한 좋은 점들을 나열하자면 길다. 그럼에도 책 읽기는 솔직히 위험하기도 하다. 천식을 유발하는 책 먼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시력이 약해져서 안경을 써야 하고, 심지어 보르헤스와 같은 작가처럼 영영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두꺼운 안경이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는 나는 지금처럼 책을 계속 보다가는 언젠가 시각장애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곤 한다. 비록 곁에서 책을 읽어 줄 사람을 구하거나 점자책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찾기야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는 없을 테니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데 무엇보다도 독서의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의 삶과 단절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읽는 습관이 지나치게 되면 실제 삶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책 읽기의 중독에 빠지면 진짜 현실이 아니라 책 속의 현실에 갇혀 삶을 등한시할 것도 같다. 나는 책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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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yana 2014-03-0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경신의 <도서 대출 중>에서 본 <독서의 역사> 리뷰가 떠오르네요. 책장에 꽂아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먼지 털고 한 번 펼쳐봐야 겠네요. ^^;;

cyrus 2014-03-04 23: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Tatyana님. 저도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읽은거예요. 제가 독서를 좋아해서 그런지 이 책 지루하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어요.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