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갔다, 들어온다. 잠잔다. 일어난다.

 변보고. 이빨 닦고. 세수한다. 오늘도 또. 나가 본다.

 오늘도 나는 제 5공화국에서 가장 낯선 사람으로.

 걷는다. 나는 거리의 모든 것을.

 읽는다. 안전 제일.

 우리 자본. 우리 기술. 우리 지하철. 한신공영 제4공구간. 국제그룹사옥 신축 공사장. 부산뉴욕 제과점.

  지하 주간 다방 야간 맥주홀. 1층 삼성전자대리점. 2층 영어 일어 회화 학원. 3층 이진우 피부비뇨기과의원. 4층 대한 예수교장로회 선민중앙교회. 5층 에어로빅 댄스 및 헬스 클럽. 옥상 조미료 광고탑.

  그리고 전봇대에 붙은 임신. 치질. 성병 특효약까지.

  틈이 안 보이는데. 들어가면.

  또 틈이 있는 벽보판까지.

 

 

 

  (중략)

 

 

 

  타워 크레인이. 철근 하나를 공중 100M 높이로 끌어올리고 있다.

  아아아아아아 나는 무모성을 본다. 근면과 광기. 성실과 맹목. 나는 보고 또 보고.

  굴착기는 맹렬하게 아스팔트를 뚫고. 자갈을 뚫고. 암반을 뚫고.

  정신없이 퇴적층을 퍼올리는 포크레인이 그러나.

  의외로 곱고 새하얀 그 순결한 흙을 퍼올리는 포크레인이

  지하 20M에 있다는 것은.

  열정도 신념도 아닌. 연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하지만 세상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러나

  아아아아아아아 가엾어라. TNT 사제 폭탄을 들고

  은행엘 쳐들어간 청년은 자폭했고(중앙일보 9월 2일자).

  술집 호스티스는 정부에게 알몸으로 목졸려 죽었고(한국일보 6월 15일자).

  방범대원은 한밤에 강도로 돌변하고(경향신문 12월 7일자).

  아들은 술 취한 아버지를 망치로 내리쳐 죽이고(서울신문 4월 11일자).

  노름판을 덮친 형사가 판돈 몽땅 꼬불치고(MBC라디오 12시 뉴스 7월 26일자).

  교사가 여학생을 추행하고(조선일보 11월 30일자).

  신흥사 주지들 칼질 뭉둥이질(KBS제2라디오 8월 3일자).

  디스코홀서 청소년들 집단적으로 불타 죽고(연합통신 4월 14일자).

  前 중앙정보부차장이 억대 사기를 치고(동아일보 3월 6일자).

  아 세월은 잘 간다.

  눈 먼 세월. 잘 간다.

  나는 손 한번 못 댄 세월. 잘 간다.

  아직 오지 않은 사고와 사건과 사태와 우발과 자발과 불발의 세월. 속으로.

  잘 간다.

 

 

  - 황지우 「활로를 찾아서」중에서 -

 

 

 

꽃피는 춘삼월이라고 했다. 만물이 희망의 싹을 활짝 틔우는 계절이다. 봄꽃이 평년보다 사흘 정도 빨리 필 것이라는 예보가 나올 즈음 안타까운 사건사고 소식이 전해져 마음을 아리게 한다. 리조트 붕괴로 이제 막 피는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소식의 여운이 지나지 않았건만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의 동반 자살이 또 한 번 우리 마음을 아리게 한다.

 

무엇이 그들의 가슴을 짓눌렀기에 그리 됐을까. 이들은 서울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고달픈 삶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식당일을 하는 60대 어머니와 병마에 시달리던 30대 큰딸, 그리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둘째 딸의 기구한 삶은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말았다.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가장 노릇을 하던 어머니가 넘어져 팔을 다친 후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면서부터다. 그동안 세 모녀는 방세와 공과금이 밀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방세와 공과금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세 모녀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암담하고 견디기 힘들었으면 죽음을 선택했을까? 무엇보다도 ‘같이 죽자’하고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세 모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을까? 아마도 엄마는 딸들을 생각하고, 딸들은 노모를 생각하며, 그렇게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냈을 것이다.

 

반면 세 모녀와 반대로 더러운 마지막도 적지 않다. 선임들의 가혹행위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의 죽음을 은폐하고 동료 병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금한 조의금까지 빼돌린 파렴치한 간부들의 행태가 뒤늦게 알려졌다. 온갖 해악을 저지르고도 일신의 안위만 영위하고자 타인의 죽음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군상이 주변에 어디 하나둘인가.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 대학생 9명, 사망 70여명 부상 (한국일보 2월 18일자)

“공과금 밀려 죄송해요”, 모녀 셋 안타까운 선택 (중앙일보 2월 28일자)

가혹행위로 자살 육군병사 조의금까지 가로챈 여단장 (동아일보 2월 28일자)

 

눈 뜬 장님처럼 우리는 눈 먼 세월을 보냈다. 약자를 외면하고 따돌렸던 우리가 계속 눈을 감는다면 손 한 번 못 댄 세월은 그렇게 간다. 아직 오지 않은 사고와 사건과 사태와 우발과 자발과 불발의 세월이 이어질 것이다. 열정과 희망의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세월은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