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 -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안세홍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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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마음 아프고 슬픈 단어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슬픈 단어들이 있다. ‘위안부’, 혹은 ‘위안부 할머니’는 그 중 슬픔의 강도가 아주 센 단어 중 하나다. 누군가를 위로해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말이 어떤 이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단어로 쓰인다. 일제 점령기,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른다. 실은 일본인 입장에서의 '위안부'보다 '성노예'라는 강제성을 담은 용어가 맞다. 흔히 쓰이는 '종군 위안부' 역시 자발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어 맞지 않은 표현이다.

 

위안부 소녀상이 만들어졌을 때, 연로한 할머니들의 얼굴 주름 하나하나에 할머니들의 소녀 시절이 까마득하게 겹쳐졌던 기억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소녀상으로는 달래질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는.

 

 

 

 

어디에 있는 지도,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일본군의 총칼에 떨던 그녀들, 일본 제국주의 야욕에 꽃다운 청춘을 약탈당한 그녀들, 만주에서 윈난,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전장 최전선의 위안소로 내몰렸던 그녀들. 70여 년 전 중일전쟁 당시 가족과 조국을 뒤로 하고 중국으로 떠난 조선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이다.

 

여리고 순한 조선 소녀들을 전쟁터에 몰아넣었다. 대다수가 성인이 안 된 10대 소녀들이었고 총알이 빗발치는 험한 전쟁터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생활했다. 사람에게 속아 사람에게 유린당하는 삶은 비극적이었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실 밖에 보지 않는다” 카이사르가 『내전기』에서 언급했던 말이다. 같은 의미로,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또한 우리 보통 사람들인 것 같다. 오늘 우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그런 것이 아닐까? 불행한 역사를 만나서 한 평생 피맺힌 절규와 한스러운 세월을 지나왔고 그러고도 배상받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너무 아프고 처절해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 같다.

 

핏물어린 눈빛과 증오의 몸짓을 그대로 받아내야 했던 꽃 같던 청춘들.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중국으로 끌려간 청춘들은 전쟁이 끝났어도 나고 자란 땅으로 회귀하지 못했다. 모국어를 잊었고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잃었다. 두 나라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던 이들은 지난했던 삶의 상처들을 홀로 쓰다듬으며, 마치 애초부터 윤기가 없었던 것처럼 메말라갔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낙인은 흠뻑 젖어도 썩지 않는 한(恨)이 되어 가슴 깊이 뿌리내렸다.

 

 

 

 Scene #2  할머니들에게 아직도 해방은 없었다 

 

 

 

 

 

 

고향마저 잃은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사진작가 안세홍씨가 발품을 팔며 온몸으로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냈다. 깊게 파인 주름, 사방에 널브러진 손때 묻은 물건, 글썽이는 눈망울에서 할머니들의 분노와 회한, 슬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흑백사진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분들의 얼굴과 육체를 담은 사진은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그것을 보는 일은 숨이 멎는 경험이다. 무겁고 그늘진 무표정, 그 굵고 깊게 패인 주름, 야윈 육신이 취한 헝클어진 자세, 그럼에도 어떤 결기가 느껴지는 얼굴. 뿌리 잃은 사람들의 헛헛함을 사진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정물화마냥 서늘하게 전하고 있다.

 

사진 속 10여명 할머니들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6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낸 한 맺힌 절규를 소리 없이 쏟아낸다. 할머니들은 국적은 중국이나 북한으로 돼 있지만 남북한은 물론 중국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한 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천황이 연합군에 패배를 선언하고 태극기 물결이 전국 곳곳에 넘실거리던 그 기쁨의 순간에도 중국 내 위안부 할머니들은 소련군을 피해, 중국인의 보복을 피해 숨어 다녀야 했다.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의지할 데도 없던 이들은 ‘그저 살기 위해’ 중국인과의 결혼을 택했지만 대부분은 불행으로 끝났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쩌면 이리도 악운의 연속일 수 있을까’ 싶은데, 안세홍 씨의 사진은 이들의 고통을 현재의 단면으로 잘라 보여준다. 거울 안에 비친 한숨 섞인 얼굴, 누추한 문을 나서는 구부정한 뒷모습 등 일상의 틀 안에 잠겨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은 20대의 아픔이 70대, 80대에도 이어져 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둥닝(東寧)의 오지 마을 양로원에서 만난 이수단 할머니는 신문지에 담뱃잎을 말아 피운다. 연기 속에 시름이 한 가득이다. 평안남도 숙천의 열아홉 살 처녀는 1940년 선금 480원을 받고 만주 벌판으로 왔다. 허드렛일을 하는 줄만 알았는데 일본군 위안소였고 ‘히도리’로 불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족 남자와 결혼해 살았다. 성병 때문인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조선말 잊어버린 게 가장 가슴 아파.”

 

경남 하동군 화개면이 고향인 배삼엽 할머니는 열세 살, 월경도 하기 전에 네이멍구(內蒙古) 바오터우(包頭)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왔다. ‘5번 방의 게이코’가 됐다. 일주일 동안 거기서 피가 났다. 북한 국적을 가지고 살다 1999년 한국 방문을 위해 국적을 중국으로 옮겨 고향에 왔더니 오래전에 사망신고가 돼 있었다. 베이징에 사는 할머니는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눈물 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입에서 힘없이 흘러나오는 구슬픈 노랫말은 뿌리 뽑힌 생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한 마지막 사투이다.

 

 

 

 Scene #3  '할머니들의 기억'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많이 아는 듯하지만, 중·일전쟁 때 중국으로 끌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심지어 일본군에 의해 고향에서 머나먼 이국땅으로 강제로 끌려간 분도 있다. 그 분들은 일제에 의해 청춘을 짓밟혔고, 지금도 가난과 외로움에 타국에서 고통 받고 있다.

 

우리가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 할머니들 피해사례에도 관심을 가져야 될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피해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이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성들의 삶의 존엄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양한 여성들의 삶에 주목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은 조선뿐 아니라 대만,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거주하고 있다. 위안부 사죄는 한일 역사관계로만 치부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 멈춘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시절의 추악한 기억과 고통은 지금도 생존한 할머니들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그 무거운 어깨가 언제쯤 가벼워질까? 과연 그렇게 될 수는 있겠는가? 잿더미 속에서 떨고 있는 인간 앞에서라면 자신의 가장 치욕적인 기억조차 잠시 내려놓고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 있는 할머니들은 신고만 하면 정부차원의 생활지원금이나 기타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중국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중국과 북한 당국 모두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도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알면서도 지원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할머니들의 증언이 부정당할 때, 겨우 열어준 그들의 입을 다시 닫히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이 문제에 대한, 그리고 피해여성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저자가 중국에서 만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12명. 그 가운데 벌써 8명이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살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도 대부분 90살 전후이기 때문에 아마 몇 년 후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이 분들도 눈 감기 전에 진실한 배상, 아니 진실한 관심과 위로를 들을 수 있을까?

 

바로잡지 않은 역사는 책속에 글자 몇 줄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 그대로 사람들의 뇌리와 삶에 선명하게 남아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불치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역사가 상처와 흉터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선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위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해방의 응달 속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전 세계 곳곳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기억해야 한다. 거대한 역사의 상처가 아닌 그 분들의 한 맺힌 가슴을 이 한 권의 사진집으로나마 오랫동안 기억되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렀으면 좋겠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겹겹이 모이면 겹겹이 쌓인 할머니들의 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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