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피부색이라는 유치한 기준에 따라 붙여진, 차별받고 있는 이름이지요.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피부와 만나면 어떻게 순식간에 ‘이방인’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며칠 전에 찜질방의 여성사우나에 들어가다가 황당한 것을 보게 됐어요. 제가 가야 할 여탕 옆에 외국인 전용 목욕탕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외국인 손님만을 위해서 더 좋게 만든 것이 아니었어요. 외국인들과 같이 목욕하는 걸 한국 손님들이 싫어하니까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내부 시설은 샤워기 네 개만 달려 있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어요.

 

여러분은 차별에 분노하십니까? 성차별, 학력차별이 여전하더라도 피부색에 따른 차별에 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어떻게 감출 도리도 없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냥 빼도 박도 못하게 규정됩니다. 피부를 다 벗겨 내고 살 수 없듯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차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X년 전에 한국에 온 이후로 ‘깜둥이’, ‘더럽다’는 주변의 놀림에 시달린 적이 있어요. 향수도 뿌리고 했는데 또 놀렸어요. 이제 결혼해서 자녀를 갖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아이가 저처럼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고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요.

 

TV와 신문에서는 한국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말하더군요. 그만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 국적을 가졌으면 한국인 아닌가요? 그런데 왜 저만 보면 피하는 건가요? 외국인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무척 속상해요.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고, 모두가 저처럼 차별을 받으면서 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피부색 때문에 차별하는 시선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차별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에 발생하고, 편견에 기대어 지속합니다. 그래서 차별은 아주 사소할수록 치명적입니다. 한국에는 차이를 차별이라 부르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엄마 뱃속에서 나와 조그만 차이 하나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왜 그리 사소한 것에 억지를 부리는지요.

 

 

 

 

 

 

 

 

 

 

 

 

 

 

 

 

 

여러분, 제 이름은 ‘외국인’이 아닙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엄연한 ‘한국인’입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 인종차별에 맞서는 변호사 애티커스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죠. “누군가를 정말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야.” 애티커스는 이 땅에서 편견의 색안경을 벗게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려줬어요. 차별당하는 우리들의 입장이 되어 보세요. 여러분이 차별받는다면 그럴 땐 어찌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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