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주말에 자원봉사활동 차 자살예방 전문 상담기관인 한국 생명의 전화가 주최하는 '생명사랑 밤길 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오후 6시에 대구 스타디움을 출발하여 수성못을 거쳐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를 해 뜨는 새벽까지 걷는 것이다. 이 때 걸었던 코스의 길이는 총 34km이다. 군대 시절 때 했던 유격행군에 비하면 34km 걷는다는 게 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34km의 거리가 꽤 길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긴 거리를 완주했다는 기쁨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간 걷기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고통과 피로감 또한 감당해야 한다.

 

아마도 인간의 삶 절반은 걷기가 많이 차지할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 정처 없이 걷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처 없음은 목적지가 없다는 뜻이므로 또한 쓸쓸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왕 걷는 것이라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쓸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을 안고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저번 밤길 걷기를 했던 것도 있었지만 이성부 시인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사실은 결국 걷는다는 행위는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승리하는 경보를 제외하고 태초에 인류가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던 오랜 역사를 통틀어 걷기의 행위는 남들과의 겨룸도 아니고 자신을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빨리 가고자 하면 걷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리는 것뿐이다. 오를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걸으면 보인다. 미세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걷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걸음으로써 볼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것이 행복하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는 것, 고단한 마음을 잠시만 잊고 작은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걷는 자의 행복이다. 걷기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길게만 느껴지는 거리도 어느새 축지법 쓰듯이 완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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