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장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신경림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야, FTA가 뭐고?"

 

최근에 중간고사 끝난 뒤에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 나들이 할 겸 팔공산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팔공산까지 차로 운전해서 가는데만 1시간 이상 족히 걸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날이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이틀 전인 주말이었고 나들이하기에는 엄청나게 좋은 날씨였다. 수많은 차량 행렬들이 팔공산 쪽으로 몰려 있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한증막 같은 차 안에 있었던 친구 일행들은 여행길의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수다의 재미로는 약발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뒷좌석에 자리잡은 친구들은 벌써 잠에 빠져들었고 재수없게 운전석을 앉아야하는 이 불행한 친구는 계속 운전만 열심히 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간만에 여유롭게 창 밖의 풍경을 빤히 쳐다봤다. 차 밖 풍경은 똑같았다. 넓은 밭, 산 그리고 시골 마을이 보였을 뿐이었다.

 

팔공산으로 향하는 내내 20분 동안 침묵의 시간이 이어져오다가 갑자기 운전하던 친구 녀셕이 뜬금없이 침묵을 깨뜨리는 질문 한 마디 했다. "야, FTA가 뭐길래 농민들이 왜 반대를 하노?"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운전하고 있는 친구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질문에 몇 초 간 당황했다. 갑자기 웬 'FTA'?  

 

그래도 친구의 질문에 나름 내가 알고 있는 FTA에 관한 모든 내용들을 쉽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질문했던 친구가 시사상식에 많이 약한 녀석이라 어렵지 않은 용어로 설명하려고 했다. 무역을 통해 거래하는 국가 간의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모든 상품들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무역협정이며 이 협정 체결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업종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이 있다고 간략하게 설명해서 대답해주었다. 거기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으로 농업 및 축산업으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친구는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렇구나, 알았다'라고 간단하게 이해했다는 의미로 대답해버렸다. 20분 만에 침묵을 깨뜨린 대화는 단 3분 만에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우리 모르게 잊혀져가고 있는 농민들의 삶 그리고 울분

 

지금 다시 그 때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과연 그 친구가 'FTA'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FTA'는 그 협정 자체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해야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아주 중요한 경제협정이며 정부의 체결 추진에 대해서 반대적 여론이 많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FTA'에 대해서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FTA' 협정 자체의 내용만을 순전히 이해했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DTA' 협정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건 그 협정 'FTA'로 인해서 경제적 손실을 받아야하는 수많은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있으며  또한 그들이 내는 절망의 목소리를 들어봤냐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3월 5일, FTA가 정식적으로 발효된 이후로는 하늘을 찌를듯한 FTA 반대 여론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게다가 중요한 총선이 진행되었고 국민들이 내린 결과를 받아들인 여야는 총선이 끝난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적 파행이 이어져나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새 FTA 문제 현안은 점점 뒤로 밀려나간 듯 하다. 비단 FTA 문제뿐만이 아니다. FTA 때문에 울어야했던 농민들 역시 잊혀져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신경림처럼 고단한 민중의 삶에서 시재(詩材)를 찾으며, 농민의 피로와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인이 없을 것이다. 특히 급속도로 변해나가는 도시화 및 경제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신경림처럼 농촌 현실을 그려내는 젋은 시인이 등단하는 모습을 이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경림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특히 1971년에 발표한 그의 처녀작이면서도 대표작이 된「농무(農舞)」속 농촌의 비극적 현실과 오늘날 농촌의 현실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1960~1970년대 산업 사회에서 한국 사회는 큰 변화에 직면했다. 근대화를 주도하였던 정부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채택했고, 이에 따라 농업은 한국 사회의 주변부로 밀러나기 시작했다. 저곡가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그들의 피와 땀이 바쳐진 농작물을 싼값에 내다 팔아야 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나섰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그들은 도시의 주변부에서 빈민층을 형성하거나 싼값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농촌 현실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FTA 협정으로 인해 외국 농작물들의 수입이 늘어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땅에서 자라난 국내 농작물들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농민들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농민들은 오랫동안 해온 농사일에 대한 보람이 사라질 것이다, 농촌 현실에 대한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만이 남을 뿐이다.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pp 12~15)

 

 

「농무」에서는 농민의 한(恨)은 신명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신명은 분노를 삭이면서 형설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흥겨워야 할 춤사위는 슬프고 처절하다. 그것은 농민이 온몸으로 겪은 농촌의 현실이었다.

 

 

 겨울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명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뱃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헤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pp 8~11)

 

 

「겨울밤」은 「농무」처럼 현실에 대한 절망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그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오히려 암울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고뇌와 분노를 새하얀 '눈'으로 덮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서 분노에 차더라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은 농민 본인들 밖에 없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일수록 겨울 밤을 보내는 농민들의 고뇌는 더욱 새까맣게 타들어가 깊어져만 갈 뿐이다.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밝혀 줄 '작은 불꽃'마저 사그라진다면...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고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pp 16)

 

 

옛날에는 현실에 대해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농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마음놓고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도 없는 일처럼 꾹꾹 덮어두는 게 제대로 세상을 사는 방식임을 가르치고 또 익히던 시절. 그야말로 가난이 죄라서 문학예술마저 그 가난을 드러내기를 주저했고, 오히려 외면했던 시절이었다.

 

'농무'라는 시에서 조근조근 따지듯이 되새겨낸 세계는 현실의 사실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문학사적 ‘사건’이 될 만했다.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할 수 있었다. 얻어 쓴 조합 빚과 술집 색시의 분 냄새와 담뱃진내 나는 화투판이 소외의 장막을 활짝 걷어 젖히고 신선한 시어가 되어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은 화두를 접한 '못난 놈'들이 비로소 소줏잔을 들이키며 당당히 어깨를 흔들 수 있게 되었다. 한국현대사에서 '민중'에 대한 본격적인 인식은 이렇게 신경림의 시에서 비롯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작은 불꽃'에서 피울 수 있었다. 이 '불꽃'을 통해서 우리 대중들은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노년층 농민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농촌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도시로 향하고 있다. 더 이상 농민들의 현실은 더욱 암울해질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경림의 시가 만들어 낸 '작은 불꽃'만큼은 절대로 사그라져서는 안 된다. 이것 또한 잊혀진다면 놈민의 감정과 의식을 대변해주고 농촌의 암울한 상황을 대중들에게 환기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사라지게 되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2-05-1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 구절만으로도 기억에 콱 박히는 시입니다.처음 읽을 때 이 구절이 그렇게 재밌어서 혼자 웃었어요.

cyrus 2012-05-13 23:48   좋아요 0 | URL
시구만 본다면 재밌지만 막상 그 의미를 현실을 비추어 헤아려보면
씁쓸하죠? ^^;; 이런 시가 오랫동안 읽혀지고 알아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