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2006) 죽기 전에 꼭 1001가지 시리즈
피터 박스올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방대한 분량, 그리고 ‘죽기 전에’라는 단어에 끌리다

시중에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 사람이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들이라는 메인타이틀 혹은 부제를 내건 일종의 북 다이제스트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어떤 책은 한술 더 떠서 교양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내세워서 목록의 도서들을 꼭 읽어야 한다고 독자들 앞에서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애독가가 아닌 이상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일 년에 책 한 권도 살까말까 한다. 값비싼 명품들이 즐비한 고급 매장에서 강림하시는 지름신은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독자들을 ‘교양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자신들을 구입하라고 알랑거리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북 다이제스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북 다이제스트의 도서목록에는 정말 읽어야할 고전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북 다이제스트의 목록들을 비교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저자와 출판사를 달라도 중복되어 목록에 포함된 책이 꽤 몇 권 있기 때문이다. 간혹 일부 몇 권은 새롭게 고전으로 각광받고 있는 근래의 책들도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도서목록의 구성 및 취지, 내용 소개의 충실성 등을 따져가며 자신에게 맞는 북 다이제스트를 골라야 한다.

어떤 북 다이제스트는 꽤 적지 않은 분량을 내세워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도 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이 그 중의 한 권이다. 지금까지 접한 북 다이제스트 도서 중에서 분량이 제일 많다. 페이지만 해도 900페이지 넘는다. 방대한 분량만큼 소개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1001권이다. 읽기에는 만만치가 않지만 1001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는 무의적으로 큰 수에 연연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고 있다. 1001권의 책들이 문학 작품이라서 문학을 좋아하는 애독가들에게는 정말 유용한 책이다. 그리고 제목이 단순해보일지라도 ‘죽기 전에’라는 글자가 독자들을 이끌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죽기 전에’로 시작하는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남자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들에 도전한다. 그리고 중년의 배우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출연하는 영화 [버킷 리스트]의 부제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이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황혼기 인생의 두 노인이 죽기 전에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은 평생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죽기 전에 다 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무한하기에 ‘죽기 전에 해야 한다’라는 조건은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강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거나 삶의 의욕 같은 것이 나지 않는다면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버킷 리스트] 속의 두 노인들처럼 흰 머리가 다 된 마당에 불현듯이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가서 짐승들을 사냥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죽음의 신은 짓궂다. 언제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죽고 나서야 우물쭈물했던 세속의 삶에 후회하게 된다. 독서라는 정신적 활동도 죽으면 못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뇌 기능 이상 혹은 실명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살아있으면서도 독서라는 유쾌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우둔한 애독가, 북 버킷 리스트에 도전하다 
 

양이 많다고 해서 북 다이제스트의 내용이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집필에 참여한 저자들은 각 국의 권위 있는 100명의 문학가, 평론가, 학자들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간다. 동, 서양, 라틴 아메리카, 제3대륙 등 대륙별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 고전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SF, 판타지 등 장르도 다양하다. 그러나 소개된 작품이 많다보니 모든 책이 우리나라에 다 번역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1001권의 번역은 현재진행형이다. 『죽기 전 1001권』이 2007년에 처음 나온 이후 지금까지 생소하지만 유명한 외국 문학 작품들이 조금씩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한 작품의 소개에 활자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 속 삽화와 작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 있다. 그렇다고 1001권의 모든 작품에 그림이 딸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그림들이 그 작품에 대한 내용을 각인시켜주는데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양도 많고, 가격도 꽤 많은 터라 이 책을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가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하는 데만 해도 8번 정도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는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와 지금까지 활동 중인 외국 작가들을 이 책을 참고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살면서 읽어보지도 못했던 괴테의 『파우스트』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일게 되었다. 만약에 『죽기 전 1001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훌륭한 문학고전들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문학으로 편향되어 있었던 편식적인 독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고대부터 근대 이전의 문학고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죽기 전 1001권』에 소개된 1001권의 책을 읽으려는 개인적인 독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자칭 애독가의 심장 속에 1001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관련 작품을 읽을 때마다 리뷰로 작성한다. 일종의 북 버킷 리스트라고 해야 되나? 시작한 지 4개월 정도 되었지만 고작 읽고 리뷰로 남긴 작품이 달랑 10여 편이다. 강렬한 독서 의욕과 비교하면 활동 결과물이 부진한 것은 인정하고 있으며 필자가 백발이 성성하고 노안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독서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미래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들 부양하다가 살다보면 독서 프로젝트가 잊혀버릴 수 있다. 그러나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는, 정말 제대로 된 독서를 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 독서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필자의 커다란 소망이다. 독서는 인간의 정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정신적 운동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처럼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한다면 나름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우둔한 애독가는 믿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커버린 책 
 

그러나 좋은 책에도 나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책의 최대 단점이라면 소설 작품으로 구성된 지나친 편향성이다. 1001권 중 대부분이 소설이다. 희곡도 몇 편 소개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더구나 시가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유일하게 소개된 시가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뿐이다. 워즈워스, 심지어 노벨상을 받은 T.S. 엘리엇, 파블로 네루다와 같은 시인들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책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구성이었다. 문학이라는 배보다 소설이라는 배꼽이 큰 책이었다. 이미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제외하고 조금씩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현대 작가의 작품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고전들을 발굴하려는 집필진의 의도는 좋았지만 장르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동양 문학에 대한 소개 분량도 적었다. 대부분 중국, 일본 작가가 많았으며 한국 작가는 고작 2명(故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아직까지도 외국 땅에서 융숭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한국 문학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언 맥이완? 이언 매큐언?

그리고 옥의 티가 있다면 ‘이언 맥이완’에 대판 표기의 문제이다. 영자로는 Ian R. McEwan. 우리나에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작품에서는 ‘이언 매큐언’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국 출신이며 우리나라에 그의 작품이 꽤 번역되어 있는 작가이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 14년이 되었다. 지금도 ‘이언 매큐언’이라는 표기로 통용되고 있다. 『죽기 전 1001권』에서도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 세 편 정도 소개되고 있을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아무리 외래어 한글 표기가 완전한 통일안으로 협의되지 못했더라도 이미 우리나라에 꽤 소개된 작가의 이름을 잘못 표기되어 있으면 독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좀 더 나은 훌륭한 북 다이제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죽기 전 1001권』은 분량 면에서나 내용면은 훌륭한 문학 작품 다이제스트이다. 『죽기 전 1001권』에 버금가는 책이 다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만큼 내용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이언 매큐언의 외래어 표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3년이라는 세월동안에 변방 국가의 문학 작가와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의 독서계에 외국문학이 제대로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현세에 걸맞은 내용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2007년 첫 출간 당시, 1001권 목록에 포함된 에밀리오 살가리의『산도칸: 몸프라쳄의 호랑이들』은 우리나라에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년 뒤인 2009년에 열린책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 이외에도 뒤늦게 서야 번역 출간된 작품들이 꽤 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올해 출간된 다니엘 파울 슈레버의『한 신경병자의 회상록』(김남시 역, 자음과모음 출판) 이다. 지금『죽기 전 1001권』에서는 미출간 상태로 소개되고 있다.


애독가들을 위한 훌륭한 북 다이제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개정판이라도 재출간되어야 한다. 물론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분야에도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며 특히나 여행지 같은 경우 시대가 변할수록 여행 정보도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죽기 전에' 시리즈가 일상 생활에서 유용하고 깊이 있는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내용 개정을 통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 다 해보고 싶어하는 열혈 독자들을 위한 시리즈로 각인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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