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린 그림 -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
플로리안 하이네 지음, 최기득 옮김 / 예경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미술사적 사실, 진실 혹은 거짓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75525   
  

 #1 인간의 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는 살바도르 달리이다. 
 

 #2 팝 아트라는 장르를 최초로 시도한 화가는 앤디 워홀이다. 
 

 #3 동판화를 처음 그린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미술사에 조금이라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제시된 세 가지 미술사적 사실들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달리의 그림들은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주제를 하고 있다. 팝 아트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앤디 워홀이다. <기사와 죽음과 악마><멜랑콜리아Ⅰ><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뒤러의 3대 동판화 걸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뒤러는 판화의 대가이다. 지금까지 출판되어 온 각종 미술사 관련 도서에서 세 명의 거장들이 남긴 미술의 발자취를 많이 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들이 미술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사실들은 틀린 내용이다. 이들은 그 분야에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뿐이지 최초로 시도한 것은 아니다. 

 

뒤러가 목격한 꿈 속 세상   


플로리안 하이네라는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딱히 눈에 띌만한 내용이 없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을 뿐이지 저자는 전문적인 미술사가가 아닌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저자의 이력 때문에 책의 내용이 깊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부제에도 밝혔듯이 미술사에 관한 책이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미술사 관련 도서와 차별화 하고 있다. ‘최초’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트마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각종 미술사적 용어 위주로 미술사를 풀어내지 않아서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으며 관심 있는 챕터를 골라 읽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잘못된 세 가지 사실들과 관련된 내용은 각 챕터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내용에 대해 살짝 언급해보자면.....  

 

동판화를 처음 그린 화가는 오락용 카드를 만들었던 ‘오락 카드의 대가’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는 무명 화가가 그렸다. 팝아트 장르를 최초로 선보인 화가와 작품은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가?>이다.

그리고 최초의 꿈 그림을 그린 화가는..... 놀랍게도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이 책의 각 챕터에는 최초의 누드화, 최초의 정물화, 최초의 초상화, 최초의 풍경화 등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고 흥미로웠던 챕터는 단언 최초의 꿈 그림에 대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미술사 관련 도서를 뒤적거리지는 않았지만 뒤러가 자신이 꾼 꿈의 내용들을 그림으로 기록한 사실은 어느 미술사 도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뒤러가 꿈에서 본 세상을 그린 그림은 단순하다. 어마어마한 물기둥이 하늘 위로 솟아올라 여러 개의 거대한 물폭탄이 되어 떨어지는 장면이다. 꿈에서 이루어진 허구의 장면이지만 직접 꿈을 꿈으써 가상 현실을 체험한 것이나 다름없는 뒤러에게는 그 장면이 무섭게 느껴졌는가 보다. 그는 꿈에서 본 장면들을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장면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느낌까지 글로 남겼다.       

 

  물기둥은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들판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땅을 내리쳤던 물기둥은  

  너무나 빨랐고 바람소리와 함께 무섭게 울렸다.

  - 뒤러가 쓴 글의 일부(1525년 기록), 플로리안 하이네 『거꾸로 그린 그림』p 228 -  

  

이전 미술사의 그림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그렸다. 현실이 아닌 상상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지만 대부분 성서 속의 신비적인 종교적 내용을 그린 것이 고작이다. 수면 중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심상인 '꿈'을 그림으로 기록한 점은 미술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뒤러가 최초의 꿈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후세의 화가들로 이어진다는 것은 비약적일지도 모르나 꿈을 그림으로 남긴 새로운 미술의 시도가 초현실주의가 등장했던 20세기 초가 아닌 이보다 먼저 수백 년 전인 16세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위대한 미술사의 오리진(Origin)  


책 한 권에는 30가지의 미술사 최초의 순간들을 담아냈지만 일부 내용들은 나름 미술사 지식의 정도가 중, 고급이라고 자부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배우는 미술사가 기록된 종이에는 순차적으로 구성된 미술사조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유명 미술가들의 이름과 명화들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하게도 미술사에서는 ‘최초’라는 내용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세세한 미술사적 기록들이 후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화가’라는 시대상의 인식이 작용했다.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화가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때는 미술은 오랜 세월을 연마하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멋진 그림 한 점 남겼다 치더라도 그림을 그렸을 화가에 대한 기록과 증거를 일절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동판화가 ‘오락 카드의 대가’라는 이름 없는 화가가 처음 그렸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역사속에서 기록되지 않은 화가들은 후세에 와서도 무명으로 알려진 현실에 대해 서러울 판에 자신의 위대한 공로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하늘에서 억울해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미술사에서 가려져 있던 이름 없는 오리진(Origin)들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다른 미술사 책들과 비교하면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이전에 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었던 구성 형식과 다르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미술사를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제 막 미술사라는 흥미로운 학문에 발을 내딛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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