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만난 좀머 씨

 

열린책들 세계문학 이벤트를 계기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는 것을 필두로 하여『좀머 씨 이야기』도 같이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장 자크 상뻬의 삽화가 그려진 책표지를 보고 나니깐 무척 반가웠다. 지금의 신판보다 나은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장 자크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도 읽은 지도 10년이나 지났다. 세월의 흐름에 왠지 모를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좀머 씨나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읽었을 때만 해도 어린아이였는데 말이다. 그 때는『향수』를 쓴 작가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분량도 『향수』보다 얇다는 이점(?)이 있어서 읽게 되었다. 책 속의 어린 ‘나’가 좀머 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몇 년 전, 어린아이였던 나도 좀머 씨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으면서도 좀머 씨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살아남는 자의 슬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용은 좀머 씨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읽었을 당시에는 좀머 씨의 행동을 이해할 만한 성숙한 수준의 나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좀머 씨를 바라보는 관찰자 어린 ‘나’에 관심을 가지며 읽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만큼 어린 ‘나’와 동질감을 느꼈다고 해야 되나? 동산의 초원에서 바람의 기운을 느끼면서 날아다니는 체험도 해보고 나무타기도 하면서 노는 ‘나’가 무척 부러웠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어른이 된 눈으로 다시 읽게 되니 어렸을 때 보지 못했던 좀머 씨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좀머 씨가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니 그에 대해서 서글픔과 동정심이 느껴졌다. 과거에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 이외에는 좀머 씨에 대한 정확한 과거의 단서를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전시 기간 중에 겪었던 원인 모를 일이 그를 평생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전쟁터에서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승리라는 쟁취의 목표를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사람과 결국에는 승리를 얻는 동시에 살아남는 사람이다. 좀머 씨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이다. 하지만 그는 지옥과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죽여야 했을 것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터에서 동원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좀머 씨의 내성적인 마음에 침투하여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세상은 전쟁터라는 말이 있다. 비록 총을 겨누고 피 튀기는 그런 잔혹한 전쟁은 아니지만 지금도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상대방을 희생시켜야하는 총성 없는 전쟁과 같은 세상이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은 곧 좋은 취업으로 연결되는 화려한 인생의 연결고리 때문에 마음껏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하는 학생 시절에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 나가서도 이번에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또 다시 친구들과 경쟁해야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도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더욱 슬픈 것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승리자에게도 해피엔딩은 없다. 언젠가는 자신도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평생 경쟁 사회에 구속받는 힘든 삶을 살아간다. 경쟁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빨리 하려고 한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게 되면 쉽게 배 아파하고, 무조건 따라잡기 위해서 자기 자신 스스로 경쟁 대열에 합류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사는 것이 힘들어지고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회의적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비관적인 생각만 하게 된다. 주위에 모든 이들과 관계를 차단하며 자신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간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판 ‘좀머 씨’나 다름없는 것이다.   

 

 

 

 세상의 회의주의자들이 웃으면서 살아남는 방법 

   

이 책 속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어린 ‘나’와 자살과 좀머 씨의 자살이었다. ‘나’는 미스 풍켈 선생님의 고약한 잔소리와 주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 때문에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 다행히도 하필 나무 밑에 지나가고 있던 좀머 씨 때문에 자살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방금 자신이 했던 행위들이 웃기는 짓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린 ‘나’는 매일 돌아다니는 좀머 씨를 보고 죽음 앞에서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태연함에 감명 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좀머 씨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이 두 사람의 자살 행위를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이 전개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긍정적 혹은 부정적. ‘나’는 동심이 만들어 낸 긍정적 시선이 발동했기에 아주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피폐해질 대로 정신이 황폐화된 좀머 씨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선에 눈이 먼 나머지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택하게 되었다. 
 

 
 좀머 씨, 우리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立秋)가 온 지 이제 한 달쯤 지났고, 더위가 한 풀 꺾이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처서(處暑)가 온 지 보름째이다. 일 년 내내 살면서 알겠지만 여름은 다음 계절인 가을에게 자연의 텃세를 쉽사리 물려주지 않는다. 9월이 되어도 햇빛은 쨍쨍하게 내리 찌어 무더운 날씨는 여전하기만 하고, 태풍이 하루 우리나라 한 번 휩쓸고 갔다하면 며칠 뒤에 또 다른 태풍이 오게 마련이다. 지난주에 곤파스가 지나갔건만 이번 주에는 말로라는 태풍이 또 온단다.  

 

여름만 되면 무더위에 따라 사람의 몸이 느끼는 불쾌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불쾌지수라는 말이 뉴스에 나오게 된다. 그만큼 사람이 느끼는 불쾌함에 따라서 여름 날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날씨가 너무 더운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그 감정이 더욱 격화되질수록 상대방과의 다툼으로 커지게 된다. 외람된 예이지만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단지 태양이 너무 눈부시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아랍인을 죽인 것처럼 날씨에 따라서 평범했던 사람의 감정이 갑자기 타오르는 불처럼 변할 수 있다. 여름에는 너무 덥다는 이유만으로 짜증만 내는가?  비가 지지리 와도 짜증이 나게 된다. 장마 기간이 지속되면 집 안에 습기가 가득 차게 된다. 습한 기운 때문에 찝찝한 기분은 불쾌하기 짝이 없고, 이런 환경 조건은 곰팡이들이 아주 좋아한다. 장마보다는 더 최악인 것은 바로 태풍이다. 한반도에 거쳐 가는 태풍의 영향력과 경로에 따라서 올 해의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 알 수가 있다. 농사 관련 관계자만 태풍을 겁먹는 것이 아니다. 태풍 때문에 침수 피해가 많았던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고 있다. 그리고 태풍이 주는 경제학적 문제는 농산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특히 추석을 앞둔 지금, 제사상에 올려야할 과일 가격이 너무 비싸서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들은 ‘최소 비용, 최대 이익’(?)을 위해서 지금도 머리를 싸매고 계실 것이다.  이렇듯, 변덕스러운 날씨인 여름이 사람의 감정 변화에 영향을 주기 쉽다. 그렇다고 날씨가 무척 덥다고 불만을 갖는다거나 태풍 때문에 사는게 꼬였다고 원망은 하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인 말과 생각은 스트레스가 되어 도리어 자신만 피곤해질 뿐이다.   

 

 

여전히 좀머(Sommer, ‘여름’이라는 뜻도 있음) 씨는 9월 중에도 걷고 있다. 도저히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주에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또 더워질 것이다. 그래서 변덕스러운 좀머 씨에게 이 말 한마디 전해주고 싶다.

“좀머 씨, 우리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당신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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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고딩때 처음 읽었을때는 정말 글자 그대로 읽기만 해서 뭔소리 인가 싶더군요.

유행이 조금 지나서 대학을 다닐때 이 책을 봤는데 정말 좋더군요~

cyrus 2010-11-06 16:08   좋아요 0 | URL
매버릭꾸랑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아무것도 모른 시절에 이 책,, 베스트셀러라기에
무턱대고 읽었다가는 좌절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