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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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유시민의 약진이 반갑다. 이제 여행기까지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독서, 여행 등 다양한 글감을 주제로 자기만의 글을 뽑아내는 유시민의 역동을 환영한다. 비록 나와 정치적·사상적 입장은 다르지만 글쟁이로서 수준 있는 역량을 갖춘 그를 나는 결코 멀리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대중적이되 가볍지 않고 잡학적이되 산만하지 않다. 지식에 품격이 있고 감칠맛도 난다.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쓰는 건 그의 가장 큰 무기다.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이래 유시민은 '작가' 혹은 '지식인'으로 불려왔다. 최근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세간으로부터 정치 중단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는 정치보다 집필과 강연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 시대 지식인 중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그의 책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그의 유튜브 방송을 시청한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지식의 외연이 넓고 거대 담론을 대중적 언어로 뽑아내는 내공이 탁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리고 관심을 가진다. 정치 재개 가능성만으로 지식인 유시민의 존재감이 재단돼서는 곤란하다.

 

유시민이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 신간 『유럽 도시 기행 1』은 작가 유시민의 유럽 여행기다. 각기 다른 시기에 유럽 흥망성쇠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아네테, 로마, 이스탄불, 파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네 도시는 워낙 유명해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세계적, 역사적 아이콘들이다. 작가는 특유의 박식한 지식과 정제된 주관, 실제적 경험을 보태 흥미로운 도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로 읽히지 않는다. 관광 안내서는 더욱 아니며 단순한 인문학 기행에 머물지도 않는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객관)과 작가 스스로 체험하며 느낀 감상(주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 도시의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건축과 여행, 역사와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의 이 책이 가볍지 않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콘텍스트주의', 즉 외연과 현상에 앞서 맥락과 본질을 주목하는 작가 고유의 진지한 감상 덕분이다.

 

작가가 선택한 유럽의 네 도시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각 시대를 전면에서 대표한 곳들이다. 헬레니즘이라는 서구 문명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리스의 아테네를 가장 우선으로 꼽았다. 오래전 모든 길은 이곳으로 통한다 했지만 '이탈리아 최악의 도시'로 소개한 로마는 그 두 번째다.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의 영광이 담긴, 하지만 '다양성을 잃어버린 국제도시' 이스탄불이 그다음이다. '인류 문명의 최전선'으로 작가의 긍정이 유독 돋보이는 파리가 마지막이다. 작가는 특유의 달필로 각 도시의 역사성과 그것을 읽어내는 작가적 주관을 잘 풀어낸다.

 

이 책이 힘이 있는 건 네 도시에 대한 객관적 서술과 실제 여행 중 추출한 작가의 현장성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되었다는 점이다. 마라톤과 살라미스로 대변되는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아크로폴리스 야경을 즐기는 만찬을 소개한다.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카이사르의 삶을 얘기하면서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얹는다. 이스탄불 곳곳에 있는 궁전과 박물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서술하면서 '터키 커피'의 정수가 어떤 것인지를 놓치지 않는다. 파리에서는 나폴레옹의 영웅담을 논하는 동시에 루브르에 대해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아도 후회할 박물관'이라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이러한 객관과 주관의 황금률이 독자로 하여금 책 읽는 맛을 배가시킨다.

 

특히 파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지구촌의 문화수도를 정한다면 망설임 없이 파리를 선택하겠다"라 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도달한 문명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도시"라 상찬하며 프랑스 파리에 대한 애착을 요란스럽게 뿜어낸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작가의 견해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도시 자체가 이쁘고 고풍스러워서 품격 있는 도시가 되는 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의 수준이 도시의 급을 결정한다. 나는 파리 시민들, 엄밀히 말해 프랑스 국민의 우수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파리는 위대한 도시다. 하지만 그 위대함의 이면에 추악함과 경박성, 그리고 오욕의 디테일이 묻어 있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자국의 월드컵 우승 축하잔치에서 거리 상점에 불을 지르고 약탈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숭고한 문화재(에투알 개선문)를 훼손시키는 등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광기 어린 시민이 과연 세계 문화수도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는 토론이 필요한 주제다.

 

서평을 정리하자.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 유시민의 약진이 반갑고 즐겁다. 유시민은 정치라는 외연을 벗었을 때 더 빛나는 지식인이다. 사람마다 자기에 맞는 옷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유시민에게는 정치보다는 글과 강의가 더 잘 어울린다. 여행이라는 테마까지 외연을 넓히며 작가적 활동을 이어나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반대편의 칭찬은 더욱 힘이 있다. 유시민의 신간 『유럽 도시 기행 1』은 이러한 내 칭찬의 최신판이다. 돈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어서 출간될 2권은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을 다룬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치색을 버리고 캐주얼하게 읽는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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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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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다르다. 결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 수필가가 소설가보다 글발이 못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완전히 새로 창작해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에세이는 다르다. 에세이에서 중요한 건 창조나 전개가 아닌 일상의 포착이다. 삶 속에서 촉촉한 글감을 추출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읽을 만한 에세이가 씌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오랜만에 만났다. 김연수와 함께 한국문학을 책임질 투톱의 젊은 작가로 불렸던 그다. '작가론'을 주제로 무명의 평론가와 피곤한 토론을 하다 논쟁이 되자 모든 걸 접고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오랜 침묵이 있었고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쓴 소설의 원작이 영화로 개봉되고 모 예능에서 온갖 잡지식을 늘어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얘기였다. 개인적으로 TV를 보지 않을뿐더러 일차적으로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고 평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갑다.

 

『여행의 이유』는 김영하의 최신 에세이다. 직업 소설가로서 그가 경험하고 관조한 여행에 대한 사색을 담았다. 두껍지 않은 책 속에는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과 겪은 체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사유가 잘 녹아 있다. 소설가답게 짧은 에세이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내공이 탁월하다. 기계적이고 외연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본질 그 자체로서의 여행의 내적 성질을 깊이 탐색한다. 여행을 통해 뽑아낸 다양한 삶적, 작가적, 철학적 고뇌가 웅숭깊게 읽힌다.

 

책은 작가가 중국 여행에서 추방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후 대학 시절 때 우연찮게 간 중국 여행을 소개하며 계획대로 흘러가는 완벽한 여행보다 매끄럽지 않은 실패한 여행이 본질적으로는 더 성공한 여행이라고 얘기한다. 과연 소설가 다운 글의 시작이요 메시지의 제시다. 여행의 궁극이 결국 현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완벽한 스케줄에 의해 오차 없이 흘러가는 것보다 끊임없는 변수의 연속선상에서 오직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아름답다. 작가에게 여행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자 응시인 것이다.

 

여행에세이면서도 다른 여러 책들에 관한 인용과 해설이 많이 소개된다. 가끔은 북에세이가 아닐까 할 정도로 작가는 책 소개를 무한히 쏟아낸다. 하지만 과하지 않다. 오히려 '여행의 이유'라는 책 제목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여행을 통한 경험과 여행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과거 자신이 읽은 여러 고전들의 일면과 자연스럽게 포개어지는 것이다. 특히 책 말미에 여행을 소설과 비교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여행이 일상의 부재라면 소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현실과 다른 작동 방식의 시간성이 발휘되고,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집중력을 고양시키며, 분명한 시작과 끝이 존재하고, 타 관점에서 우주를 천착하게 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소설과 여행의 유사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사유가 흥미롭다.

 

작가는 여행의 의미를 깊고 넓게 풀이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으로 여행을 정의한다. 결국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론은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라는 여행작가 오소희의 견해와 완벽히 일치한다. 곧 여행은 나 자신을 떠나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자각 혹은 대비라는 관점에서 결국 여행은 인간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 여행 에세이가 봇물 터지듯이 출간되고 있다. 1인당 GDP 3만 불에 도달한 대한민국의 현재상은 앞만 보고 달려온 과거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소급해서 제어하려는 듯 여기저기서 힐링에 대한 갈망을 표출 중이다. 여행은 그 최전선이다. 서점에 한 섹션을 할당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여행 도서의 방대한 양이 이를 방증한다. 이 가운데 옥석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바로 여기에 김영하의 신간 『여행의 이유』의 위치가 있다. 간결하고 묵직한 방식으로 '여행의 이유'에 대해 특유의 감성적 달필로 써 내려간 이 작은 에세이를 쉼이 필요한 모든 독자에게 추천한다. 역시 김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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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 김일성이 일으킨
강규형 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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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파랑 출판사에서 시의적절한 책을 출간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위시한 총 5인의 공저자가 6·25 전쟁에 대해 강론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공저자 5인의 이력만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책 내용은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기조에서 6·25 전쟁의 성격을 생동감 있게 풀이한다. 많지 않은 분량 가운데 당시의 참혹한 사진과 여러 수치들을 인용하며 6·25 전쟁의 객관적 민낯을 서술한다.

 

   책 제목에 주목하자. 제목의 구조를 살펴보면 '김일성이 일으킨'이라는 형용구가 '6·25 전쟁'을 수식하고 있다.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마는 사실 이삼십 대 젊은이들로부터 6·25 전쟁은 점차 잊힌 역사가 되어 가고 있다. 6·25 전쟁의 귀책성, 파괴성, 내밀성 에 대해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저 애매하고 말랑하게 '민족상잔의 비극' 정도로만 수렴하고 있는 인상이다. 김대중 정부 때 발병한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사글사글한 증상이 전염병처럼 옮은 것 같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발의를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고 중국의 모택동이 지원한 국제 전쟁이다. 트루먼의 미국은 한반도의 자유를 위해 15개국의 연합군과 함께 이 땅을 지켰다. 자유를 위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희생됐고 민간인 또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6·25 전쟁은 3차 세계대전을 막은 전쟁이자 그것을 대체한 전쟁이었다. 수호해야 할 가치는 '자유'였다. 자유를 지켜낸 자와 지켜내지 못한 자의 차이가 얼마나 대극적인지 6·25 전쟁 이후의 남과 북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통해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6·25 전쟁이 갖는 내·외재적 의미를 깊이 통찰하고,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며, 감사해야 할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한편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적은 분량과 공저자 5인이 집필했다고 보기 민망한 수준의 기본적인 내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완독하는 데 3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얇은 두께다. 책 두께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큰 글씨체와 적잖이 수록된 사진들을 감안하면 본래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을 정도의 분량이다. 또한 5인의 공저자가 무색할 정도로 내용이 단조롭고 일차원적이다. 각 공저자들의 개성과 문체가 하나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책값도 문제다. 도서정가제 이후 나는 출판사가 합리적인 책값을 설정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6·25 전쟁이 전 세대에 걸쳐 깊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반추해야 할 주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짤막한 팸플릿 수준의 책으로 11,500원을 받는다는 건 부당하다.

 

   서평을 정리하자. 6·25 전쟁은 소련, 중국(당시 중국공산당), 북한의 철저한 사전 모의와 은밀한 계획에 의해 발발한 침략전쟁이다. 1995년에 공개된 옐친 문서(스탈린 문서)는 6·25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공산 3국이 얼마나 내밀하고 악랄하게 준비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 6·25 전쟁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밑줄이다. 공산권의 침공에 맞서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을 치른 선배 세대들과 연합군 참전용사들의 용기에 깊은 경외를 표한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짧은 팸플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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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정훈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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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에 친중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가령 어느 정신 나간 지식인은 "중국은 우리에게 5천 년 우방, 미국은 50년 우방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당의 역사와 병자호란, 6·25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런 영향 탓인지 미국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둥 G2 시대가 펼쳐졌다는 둥 아우성이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진실을 호도하고 가공한다. 객관적으로 입증된 어떤 수치도 중국이 미국과 동급이 됐다거나 미국의 턱밑까지 도달했다는 논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헤게모니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증거만 넘쳐날 뿐이다.

세계에서 국가 GDP와 1인당 GDP 순위가 모두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경제규모 2~5등 국가들(중국, 일본, 독일, 영국)의 1인당 GDP 순위를 보라. 전부 15위권 밖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2018년 기준 미국의 국가 GDP는 20조 달러가 넘었다. 단연 부동의 1위이다. 2위 중국과 무려 7조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 1인당 GDP는 6만 2천 달러로 7위에 링크되었다. 두 가지 순위가 동시에 높다는 것은 많은 걸 함의한다. 경제규모가 크고 인구도 많으면서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잘 산다는 의미다.

미국은 인구가 3억이 넘으면서 1인당 GDP가 6만 불이 넘는 괴물 국가다. 근래에는 셰일 혁명을 통해 에너지 패권국에까지 등극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있다. 최소 3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와 가스가 미국 땅 깊은 곳에서 넘쳐흐르고 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채굴 가능한 에너지의 양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기술력, 군사력, 문화력은 덤이다. 그 힘과 자신감으로 최근에는 무역(관세) 전쟁을 통해 중국에 꿀밤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기업 'ZTE'는 부도 직전이고 '화웨이'는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다. 미국을 어떻게 중국과 체급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세계질서를 규정한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는 서서히 종말하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경찰국가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식량과 에너지 문제에서 미국은 완전히 자급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고립주의로 점차 돌아서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이럴 때 줄을 잘못 서면 피곤해진다. 미국 손 꽉 잡고 있기도 버거울 마당에 친중이 웬 말인가. 제발 줄 좀 잘 서라. 병자호란의 치욕은 결코 옛이야기가 아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2월 말 베트남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베트남은 수십 년 전 미국과 참혹한 전쟁을 치렀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미국에 줄을 서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 중 북한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전부 미국의 우방이거나 동맹국 들이다.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미국의 지원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극렬한 반대를 강력한 힘으로 잠재운 건 미국의 권위였다. 터키는 미국에 짓까불다가 경제가 작살났고 베네수엘라는 줄 잘못 섰다가 망국이 됐다. 심지어 북한조차도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줄을 서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은 소중한 책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국제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은 더 강해지지만 세계는 더 무질서해진다. 미국의 新 패권이 지정학적 조건과 맞물려 기존의 동맹 체제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G2는 없다. 제발 정신 차리고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자. 줄 좀 잘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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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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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지식(정보)의 홍수시대다. 인류 역사에서 이토록 많은 지식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저토록 빠른 속도로 공유된 시기는 없었다. 지식인으로서 최고의 수준은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난해한 것을 쉽게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 내부의 거대한 지력을 외부로 세련되게 발산(output)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최고 레벨의 지성이다. 그다음 수준은 어려운 것을 그저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지식 안에 고착된 사람으로서 사람 간의 지식의 유동성에 무지하거나 전달할 역량이 부재한 경우다. 무엇보다 최악의 수준은 쉬운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들을 지식인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에 제법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시민과 동시대를 산다는 건 즐겁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 그는 한국 대중 지식인 중 단연 으뜸이다. 최소한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나는 과거 여러 서평과 논설을 통해 유시민의 세련된 언변과 정제된 지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선사해왔다. 현실 정치를 접고 전업작가로 데뷔한 이래 그의 지성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세계를 변혁하지 못하는 지식은 무의미하다. 자기 안에 고착된 정보는 힘이 없다. 자아를 기꺼이 벗어나 타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지식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정치적·사상적으로 보수적인 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제법 진보적인 그의 말과 글을 주목하는 이유다.

   『역사의 역사』는 유시민의 최신 비블리오그래피다. 출간된 지는 조금 됐으나 아직까지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역사의 '역사'를 다루었다.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서와 그 책을 집필한 역사가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서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라는 항목에 이 책을 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학의 역사'가 아닌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에 더 가깝다고 부언한다. 그러면서 역사학과 역사 서술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역사학은 학술 연구 활동이지만 역사 서술은 문학적 창작 행위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이 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러한 전제는 독자에게 무언가 양해를 구하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 책을 역사학 책으로 보지 말고 좀 더 유연하고 캐주얼하게 역사 르포나 문학 정도로 읽어달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저자의 전공은 역사학이 아니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그는 역사와 관련한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 한국 사회에서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뜨거운 감자인 '현대사'를 주제로 책을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신간 『역사의 역사』가 그의 전작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인류사를 빛낸 역사 관련 찬란한 고전들을 정면으로 소개하며 리뷰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전공 분야인 역사를 본격적으로 관통하려 했던 저자의 부담이 이해될 만하다. 저자의 바람대로 유연하고 넓은 마음으로 책장을 연다.

   역사서의 시조를 얘기할 때 항시 거론되는 두 명의 역사학자가 있다. 그들은 바로 헤로도토스(Herodotos)와 투키디데스(Thukydides)다. 저자도 두 역사학자를 책의 최전방에 소개했다. 키케로로부터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 헤로도토스와 랑케로부터 '역사 서술의 창시자'로 지목받은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보는 관점과 글을 서술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이야기'를 중시한 반면 후자는 '사실(실증)'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분명한 역사서이면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텍스트다. 저자는 두 역사가의 차이를 조밀하게 포착하면서 그들이 훗날의 역사가들 즉 랑케, 토인비, 다이아몬드, 하라리 등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었는지를 풀이한다.

   저자는 동·서양의 다양한 역사가들을 선택했다. 그중 규모와 실증 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업적을 남긴 사마천(司馬遷)을 건너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헤도로토스와 투키디데스 다음 순번으로 사마천을 배치했다. 저자는 사마천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책 속에는 사마천과 그의 대작 『사기(史記)』에 대한 찬사가 아낌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구 역사가들이 『사기』를 잘 모르기(몰랐기) 때문에 세계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사마천 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이전의 역사서가 저마다 별 하나를 그렸다면 사마천은 우주를 그렸고, 인류 역사에서 혼자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해낸 역사가는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이 외에도 저자가 선택한 역사학자들의 리스트는 녹록지 않다. 과학과 역사를 처음으로 조우시킨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할둔(Ibn Khaldoun),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지향한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랑케(Leopold von Ranke), 유물론과 변증법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집대성한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한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그리고 슈펭글러(Spengler, Oswald)부터 하라리(Yuval Noah Harari)까지의 현대 역사가들도 폭넓게 다루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가들도 놓치지 않는데 민족주의 역사학의 계보라 할 수 있는 박은식-신채호-백남운 등도 자상하게 소개했다. 동·서양의 배분, 이슬람권의 반영, 현대 사학계의 폭넓은 할애, 대한민국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소개 등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저자의 배분이 돋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저자의 모든 저작들을 탐독했다. 그가 쓴 책 중 읽지 않은 게 없다. 그의 전작 중 나는 『청춘의 독서』를 최고로 꼽아왔다. 큰 아픔을 겪은 후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고독과 의지가 『청춘의 독서』에서 진정성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거기에 한 권 더 보탤 수 있게 됐다. 『역사의 역사』도 그가 쓴 수십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잘 쓴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부족함이 없다. 내가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작가로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저자의 절제력과 차분함에 있다. 여러 맥락에서 다분히 진보적인 저자의 색채를 절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고민한 흔적이 인상적이다.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저자 특유의 쉽고 맛깔나는 필치로 차분하게 서술한 점도 돋보인다. 역사에 관한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유시민은 이제 완전한 작가가 된 듯하다. 최근 그의 외연에서 정치인의 색채는 거의 다 빠졌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 노무현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정계 복귀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 섞인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나도 그의 정치 복귀를 지지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정치보다 '썰전'이나 '알쓸신잡'이 더 잘 어울린다. '작가'는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글 쓰고 강연하는 게 지식인 유시민의 가장 적확한 아우라가 아닐까 한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소신과 신념만으로 정치가 가능했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금까지 읽히는 고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그는 모 인터뷰에서 다음 책은 여행 에세이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대된다. 독자로서의 나의 소박하고 순수한 기대가 정치라는 이유로 배반당하지 않기를 소원한다.

   완전한 작가로 발돋움한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인문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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