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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정훈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언제부턴가 한국에 친중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가령 어느 정신 나간 지식인은 "중국은 우리에게 5천 년 우방, 미국은 50년 우방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당의 역사와 병자호란, 6·25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런 영향 탓인지 미국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둥 G2 시대가 펼쳐졌다는 둥 아우성이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진실을 호도하고 가공한다. 객관적으로 입증된 어떤 수치도 중국이 미국과 동급이 됐다거나 미국의 턱밑까지 도달했다는 논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헤게모니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증거만 넘쳐날 뿐이다.
세계에서 국가 GDP와 1인당 GDP 순위가 모두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경제규모 2~5등 국가들(중국, 일본, 독일, 영국)의 1인당 GDP 순위를 보라. 전부 15위권 밖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2018년 기준 미국의 국가 GDP는 20조 달러가 넘었다. 단연 부동의 1위이다. 2위 중국과 무려 7조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 1인당 GDP는 6만 2천 달러로 7위에 링크되었다. 두 가지 순위가 동시에 높다는 것은 많은 걸 함의한다. 경제규모가 크고 인구도 많으면서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잘 산다는 의미다.
미국은 인구가 3억이 넘으면서 1인당 GDP가 6만 불이 넘는 괴물 국가다. 근래에는 셰일 혁명을 통해 에너지 패권국에까지 등극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있다. 최소 3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와 가스가 미국 땅 깊은 곳에서 넘쳐흐르고 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채굴 가능한 에너지의 양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기술력, 군사력, 문화력은 덤이다. 그 힘과 자신감으로 최근에는 무역(관세) 전쟁을 통해 중국에 꿀밤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기업 'ZTE'는 부도 직전이고 '화웨이'는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다. 미국을 어떻게 중국과 체급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세계질서를 규정한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는 서서히 종말하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경찰국가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식량과 에너지 문제에서 미국은 완전히 자급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고립주의로 점차 돌아서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이럴 때 줄을 잘못 서면 피곤해진다. 미국 손 꽉 잡고 있기도 버거울 마당에 친중이 웬 말인가. 제발 줄 좀 잘 서라. 병자호란의 치욕은 결코 옛이야기가 아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2월 말 베트남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베트남은 수십 년 전 미국과 참혹한 전쟁을 치렀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미국에 줄을 서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 중 북한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전부 미국의 우방이거나 동맹국 들이다.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미국의 지원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극렬한 반대를 강력한 힘으로 잠재운 건 미국의 권위였다. 터키는 미국에 짓까불다가 경제가 작살났고 베네수엘라는 줄 잘못 섰다가 망국이 됐다. 심지어 북한조차도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줄을 서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은 소중한 책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국제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은 더 강해지지만 세계는 더 무질서해진다. 미국의 新 패권이 지정학적 조건과 맞물려 기존의 동맹 체제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G2는 없다. 제발 정신 차리고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자. 줄 좀 잘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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