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전쟁 2017 살림 YA 시리즈
새시 로이드 지음, 김현수 옮김 / 살림Friends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1977년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이다. 광주시내 고지대 단독주택에는 수돗물 공급이 원활치 못했다. 채수장의 저수량 부족으로 제한 급수를 하였기 때문이다. 자취 생활을 했던 나는 주로 휴일에 빨래를 했다. 주중에는 수둣물을 받아 두거나 인근 통장댁 작두펌프 지하수를 한 바케스 씩 길러다 저녁 밥을 해먹곤 했었다. 고지대에 속한 우리집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귀가하면 물 걱정없이 씻고 빨래하고 밥해먹는 것이 불편했다. 공부에 몰입할 수 없는 생활 요소였던 것 같다.


 여름 토요일 밤에 교복이나 양발 등을 바케스에 넣고 월산동 수박등을 넘어 지금의 무등시장이 들어선 논의 둠벙(웅덩이)에서 빨래를 했다. 모기에 뜯기며 등목도 했다. 자정이 넘어 자취방으로 돌아와서야 저녁밥을 먹었다. 곧 하계U대회가 열릴 광주는 네 곳의 댐에서 채수되며 배수지를 경유하여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38여년이 지난 광주의 물 사정은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UN 비영리단체인 '국제인구행동'의 기준에에 따라 국민 1인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수자원 총량 1700m3 이상이면 물 풍요, 1,000-1,700m3이면 물부족 그리고 1000m3이하면 물기근 국가로 분류되었다. 인구 5,000만명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개인당 년 물소비량이 1,500m3라 물부족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현재 물부족을 체감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성공적으로 수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나, 가뭄이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167년만에 최악의 가뭄이 미국 켈리포니아를 덥치고 있다. 세계적으로 물관리 정책이 뛰어난 나라는 호주다. 호주의 물값 세제 정책이 주요한듯하다. 또한 절수 정책으로 성공한 나라는 싱가폴이다. 깨끗한 물 만큼 좋은 음료는 없다. 1506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음식 문화사
왕런샹 지음, 주영하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3)는 '동물학'에서 다음의 말을 남겼다.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는 행위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생식 활동이며, 다른 하나는 음식 활동이다. 모든 동물은 죽을 때까지 모든 시간을 이 두 활동에 집중한다.


 음식물은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물질이며, 신체 구조의 차이에 따라 그들은 각기 다른 음식물을 구해 먹는다.' 이 말은 그보다 약 150년이 앞서서 동양에서 활동했던 공자(기원전 551-479)가 인간에 대해 분석한 말과 일치한다. '음식남녀는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욕구이다'라고 한 공자의 말에 의하면, 인생에서 사람의 마음이 추구하는 대욕은 단지 음식과 남녀에 관한 일뿐이라고 한다. 


 '중국 음식 문화사'의 원저가 쓰인 시점이 1980년대 후반이다. 1977년 문화 대혁명이 종식되기 이전, 중국학계는 어둠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는 저자 자신의 학문적 출발이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인문학적 바탕에서 쓰인 음식 관련 책은 저자나 독자나 모두 현장감이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와 함께 '물질' 로서 음식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등장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이전의 한국 음식이 지닌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음식 문화와 그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양반의 밥상 차림에서 자주 논의되는 3첩, 5첩, 7첩, 9첩의 구조는 분명히 주나라 때 사에서 천자에 이르는 지배층에게 제공 했던 연회 음식 배열과 관련이 있다. 한국 음식을 두고 '약식동원' 이라고 강조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그 발원지가 중국이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중국의 고전에서 지혜를 배워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려 노력했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인이 왜 수저를 사용하고, 밥과 국, 그리고 반찬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여러 단상을 제공한다. '15.6.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영학보다는 소설에서 배워라 - 명작에서 훔친 위대한 통찰
안상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독거 노인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다. 퇴근 후에 자신과 함께 할 가족이 없는 직장인이나 노년의 가족 해체로 종일 혼자서 말할 상대를 찾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공회전하는 자동차와 같다. 늘상 피곤하며 긴장되어 모든 사물이 차갑게 느껴진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독거인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에서 노인은 좀 다르다. 책속의 노인은 하나 뿐인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독속에서 홀로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노인은 소박한 결심을 하게 된다. 나무 재배법을 연구하고 좋은 씨앗을 골라 땅에 심는 일이 노인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고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만의 '멋진 방법'을 찾은 노인은 계속해서 나무를 심으며 늙은 농부로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1시간씩 꾸준히 시간을 내어 오랫동안 무엇을 한다면 제법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속적인 변화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노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반복이었다. 구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그 순간 자신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신(개인)의 지겨운 일상은 극복된다. '지구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개인'이라며 환경보호를 실천한 사람이 있다. 그는 '지구를 걷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폴 콜먼'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누구에게나 노년은 오기 마련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을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다르게 쌓인다. "손에 잡힌 경제" 처럼 쉽고 짧아 생활인으로서 공감되는 책이다. 2013.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 (양장)
김열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저자는 서강대 명예교수로 한국학의 거장이였다. 1991년에 미국의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살겠다며 고향인 경남 고성군 하일에서 22년간 저술과 연구에 매진했다. 또한 '노년의 즐거움'의 저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것은 인간 원리다. 읽기는 발굴하기며 발견하기다. 쓰기는 창작이요 창조다. 학생으로서만 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문서를 쓰고 서류를 씀으로서 직무가 되고 소임이 된다.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이메일을 쓰면서 각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읽기 쓰기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채 국민 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도 읽는데 힘들었다. 


 그때의 난독증이 내안에 불안을 심어 놓았다. 지금의 영어 독해력 부족도 그렇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소심하게 했다. 어머니는 읽기 쓰기가 원활치 못하셨다. 전쟁과 가난에 의한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온 세상, 온 사물, 온 사건, 온갖 현상을 통틀어서 쓰고 읽으면서 살아간다. 어느 시대에나 통하지만 오늘날에는 더한층 심각하게, 다급하게 통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부작용도 있다. 첫 번째, 화면의 '스크롤'때문에 읽기가 급해지고 빨라진다. 난독이 되고 만다. 두 번째, 전달되고 읽히는 대상이 주로 정보라는 점이다. 정보 읽기에서는 생각이나 사고의 깊이, 무게가 들어설 틈이 없다. 급기야는 정서가 메마르고 감정이 무뚝뚝해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세 번째, 필경은 혼자라는 사실이다. 세계인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중 속의 고독 또는 군중 속의 소외를 낳는다. 쌍방향 정보 소통을 크게 능률화 할 수록 반사적으로 '쌍방향 소통의 고독'은 심화된다. '15.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에서 놀라웠던 것은, 동료들의 그 어떤 집단행동도 없었다. 그들은 깊이 침묵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도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등장한 '먹고사니즘'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을'이라도 되는 상황을 감지덕지한다. '갑'의 행패에 원칙대로 대응한 사무장은 복종을 다짐하는 세상에서의 자유인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갑'질은 경제적뿐만 아니라 애써 관계를 유지하려는 데서부터 나온다. 이는 오래전부터 자연과 배치되는 부당한 권력으로 우리 의식의 내면에 뿌리 내려왔다. 따라서 자유에 대한 사랑이 인간 본성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6세기였다. 18세 청년의 손에서 나온 이 짧은 글이 오늘까지 생생하게 살아남아, 현대사회의 모순을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영감을 주는 언설로 남아 있다. 저자는 절대군주가 행사하는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온 때는 프랑스혁명을 즈음으로 '몽테뉴'가 상속자다.

 

 '라 보에시'가 말하는 복종의 가장 큰 이유는 '습관'이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망각'이다. 대부분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왜 우리는 복종하는가? 사람들은 권력의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예를들면 명품에 대한 현대 사회의 숭배, 자본에 대한 눈물겨운 숭배 역시 물질의 노예들이 행하는 자발적 복종이다. 이런 삶은 자유 대해 절실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은 그저 살아내야 하는 고통의 과정일 뿐이다. 즉 기계를 굴리기 위해 박혀 있는 나사에 불과하다.

 

 사로 잡힌 동물들은 자유를 상실한 불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애석해하는 분노에 시달린다. 감정을 가진 모든 세상 만물이 구속을 경험하는 순간, 자유를 향해 질주한다. 인간의 본성을 변질시키고, 존재 양식에 대한 기억을 지우며, 자유를 갈망하는 본질적 존재로 돌아가려는 욕구마저 무기력하게 만드는 '자발적 복종'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앞서 읽었던 'John Stuart Mill'의 '자유론' 탄생의 배경은 18세기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농업국이었던 영국은 공업국 전환기였기 때문이다. 민중의 수중에 정권이 옮겨진 후에 민중의 이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정부의 권한은 팽창하고 각종 간섭과 강제가 새로이 출현했다. 이는 밀의 공리주의적 개인 자유에 대한 역설이다.  2015.2.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