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알라딘 서재란.

 

희망과 부끄러움의 공간. 고백. 스무살 초입에 시작하여 오랜 시간 들어가지 않아다가, 다시 무언가에 이끌리듯 뽀얀 먼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곳. 어줍잖은 글들을 토해내는 것도 나의 마음이요, 정리되지 않은 부끄러움이 남아 있는 곳도 이 곳. 나의 온라인 서재이다. 나는 이곳에서야 얕은 숨을 내뱉는다.

서평이 아닌 나의 글들은 대부분 분노, 울분, 억울함 같은 것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이 나에게 글을 쓰게 하는 힘인가. 나는 공감하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나란 사람이 그러하다. 가면을 쓰고 점잖은 척, 뭔가 있는 척하면서 살아가지를 못한다. 그러니 글도 그 주인을 닮아 수줍고 간결하다. 그리고 여기저기 오타가 난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서재에 들러 한 글자, 한 줄, 한 에피소드를 읽어준 이들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의 변주곡이 당신에게는 위안이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무언가 이슈가 되면, 마치 바이러스처럼 사회를 훑고 해당 개인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일 최근의 이슈는 논문표절이 아니었나 싶다. 미투, 논문표절, 이런 것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펼쳐지기만 한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런데 때로는 이런 것들이 이름을 붙인 모자만 쓴 채 실제로는 칼을 휘두르는 학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논문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논문작업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뼈를 깎는 일인지를. 나 같은 경우에는 한 논문을 게재하는데 적게는 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머릿속에 항상 연구를 담아둔 채 고단하고 미련하기까지 한 생활을 버텨야 겨우 나올까 말까한 게 논문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노고가 단번에 표절로 변색되고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고 생각해 보자. ....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비참해진다. 어떤 이는 이러한 노고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며 칼날을 들이댄다. 그것이 정당하고 맞다는 명목하에 인용을 하지 않았으니, 무효라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이나 논문에 대한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직 나는 따뜻한 세상이 있다고 믿고 싶다. 표절이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자리에서 사라지는 이들은 타인의 논문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하거나 혹은 자신이 무엇을 쓴지도 모른 채 논문 저자란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피땀 흘려 연구하는 이들에게 불똥이 튀지를 않기를. 그들의 미래를 앗아가지 않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평소 통화를 하지 않는 사이. 그런 관계가 전화를 오면 태세는 하나다. 받는 거다. 받기 꺼림칙한 상태에서 받는 상황도 있고, 의문을 가지고 전화를 받는 상황도 있지만, 보통 우리는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지면서도 걸려온 전화에 응하게 된다.

이번 전화는 같은 동에 사는, 대학교에서 같은 박사 랩실이지만 함께 수업을 듣지는 않았던 애매한 관계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만나면 어색하게 웃는 사이. 그런 사람이 만나면 신경과에서 일하고 싶으니, 신경과 심리실에서 자리가 나면 연락을 달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였다. 그 뒤 신경과 심리실에서 자리가 나서 연락을 했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러고 약 1년여가 지나서 연락이 왔다.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집에 위인전이 있냐고 물으며, 집에서 처치곤란의 비싼 아이 관련 물품들이 많아서 정리해서 주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고, 원하는 날을 물어보고 그날 받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쓰잘데기 없이 1시간 이상 길게 수다를 떨며 친근감을 표하는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은 당연지사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수다의 봇물이 터지는 것에 깊은 반성을 하지만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잘 참았다가 목요일쯤되면 나도 몰라 상태가 되면서 관계의 깊이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약속한 날이 됐다. 선물을 사서 찾아갈 생각으로 연락을 했는데,

아직 안 읽었어요.”라고 하더니 끊어버리는 것이다.

다음 날 문자가 와 있었는데

아이 숙제를 봐주는 중으로 화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전화가 왔더란다. 아이에게 자신이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며 미안하다는 것이다.

불과 몇 달의 나였다면 화가 많이 나도 겉으로는 괜찮다며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을 것이다.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쓰다가 지우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 다 읽고 나서 주고 싶으실 때 연락주세요.”라고 답을 했다. 그러나 나의 답장에 대한 답장은 없었다.

화도 상대를 보고 낸다. 내가 화를 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 담당 교수였다면 그렇게 화를 내며 전화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화를 조절하지 못해서 화를 낸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아이에게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화를 낸 것이다.

약속 시간이 됐는데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상대방.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집이 비싼 가격에, 그것도 집을 보지도 않고 제 때에 팔렸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던 것 뿐이다.

 

이번 주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꽤재재한 상태로 산어흥(가제)라는 음식점에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다. 오전에 땀을 내며 아이들과 놀고 씻지 못한 상태로 음식점에 갔다. 남편이 고른 그 집은 이전에 남편과 둘이 한번 갔었고,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딸아이가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갔더니 사람이 많아서 대기를 해야 했다. 9 테이블 정도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 옆 가게의 강아지를 창문 밖으로 보고 있었다. 딸아이는 배고프고 피곤한지 강아지를 사달라며 떼를 썼고, 나는 안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다가와서 나를 거들었다. 그러나 한 명은 대기 상태를 확인했어야 했다. 내가 물어볼 때만 남편이 확인했다. 내가 세 번 째 쯤 물어보니 대기가 지나갔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가게 점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가게를 여니, 점원이 나왔다. 막 우리 가족의 순서가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못 들었다고 하니, 강경한 태도, 그리고 나를 훑어보는 눈빛과 함께,

가게 앞 대기판 맨 뒤에 다시 이름을 적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여태까지 기다렸는데, 다시 맨 뒤로 가서 기다리라니.....라는 생각에 당황스러운 눈빛이 되니.

여태까지 기다리는 사람들 안보이냐며 나를 무슨 무임승차하는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내가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자, 자신이 큰 소리로 여러 번 불렀는데 못 들은 것은 나의 잘못이니 맨 뒤에 다시 적고 처음부터 기다리라는 것이다.

화도 상대를 보고 낸다.

거기에 대해 남편은 기다리자, 어디 가서 먹냐 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돈까스를 먹자고, 다시 언제 기다리냐는 말로 자리를 떴다.

 

아침부터 계속 잠을 자다가 자신만 번지르르하게 씻고 나온 남편은, 꼬질꼬질하고 어디서 구한 옷을 맞춰 입고 온 사람을 보면서 종업원이 그러한 태도를 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좀 씻고 깨끗하게 다니라는 말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밀면, 돈까스, 볶음 우동을 시켜서 먹었다. 아이들은 시장이 반찬이라고 너무나도 맛있게 밀면을 뚝딱했다.

집에 돌아와 베란다 작은 풀장에 물을 받고 아이들을 씻기며 나도 머리를 감았다. 밖에 베란다에서 벌거벗은 거 다 보인다는 남편의 말에

당신이 그럼 좀 도와주던가라는 말을 했다. 그런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래도 오늘은 화는 안내는 날인 그런 날일 뿐이다.

아무 말을 안 해서 남편이 몰라주는 것이라서 말을 해야 안다는 것은 실제 부부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다. 말을 하면 잔소리이고, 말을 안 하면 몰라서 그런다는 것은 남편의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그냥 모른 채 자신만 편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일 뿐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말이 무색한 부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화를 낸 적이 없다. 마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도중 미친 손님을 만나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대응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조금씩 태도의 변화를 해 나가려고 한다.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에 나도 기분이 나쁨을.

... 이번 산어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시는 가지 않는 방법밖에는. 그것을 염두하고 그런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좋지 않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스파게티집 가면 안되나. 거기 물을 내가 흐린 것인가. 생각할수록 감정적으로 가는 날이었다. 글도 감정을 타고 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용서를 주제로 한 연구를 2년여 동안 안고 있다가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데, 첫 시작은 간단, 명료, 미약했습니다. 정의가 분분한 이 용서라는 것에 대해서 한국적인 시각에서 정의를 내려보겠다라는 것이었죠. 그런 나의 첫 시작이 일반인들의 개념 형성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원형적 접근을 통하여 용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정신적인 치료과정에서 용서의 개념을 적용할 때 발전적 함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향후 스트레스 대처전략, 진단이나 제언, 치료 등의 영역에서 활용할 때 좋은 참고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라는 아주 큰 그림이 되어갔습니다. 다행히 게재된 시점에서 바라본 제 논문은 비교적 잘 마무리됐다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면서 연구자인 제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니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누군가가 내 앞길을 막으려 할 때, 평소엔 연락이 되다가 논문 이야기만 나오면 감감무소식이고, 주변에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한 것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올 때, 그 시간은 상상하기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시간에도 인간은 참으로 놀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데, 실력이 되지 않아 논의할 수 없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는 면이,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그렇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제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아니게 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입니다. 하루 사이에 나는 변화한 것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영원히 정의될 수 없으면서도 우리와 함께 흘러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서는 나를 괴롭혔던 대상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동안의 끈적하고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인간관계와는 사뭇 다릅니다. 저도 저 자신에 대해 놀랐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동시에 좋은 성과물을 혼자서 해 낼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성장했습니다. 용서는 그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하고 난 이후의 상황, 내면의 변화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의미를 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훌륭하게 대인관계 속에서 경험한 상처를 용서를 통하여 극복하였고, 갈등의 악순환을 발생시키는 고리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하지 않을 뿐 미움, 분노, 증오와 같은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논문이 게재되도록 막았던 그 사람의 부정적인 2년 동안 내 논문이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년 전에 썼다고 하여 그 논문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준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2년 동안 값진 것을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용서의 내면화였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이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수많은 용서의 효과를 검증하는 논문들 사이에서 굳이 제가 용서의 정의적인 측면을 바라보고자 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성장도 그 미약하고 간단하지만 명료했던 시작과 함께 예견된 일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들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요. 그 일을 통해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당신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라면 멋지게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고생했어. 넌 모든 순간 멋졌어. 사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515,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수련 스승, 대학교 스승, 현재 연락을 하지 않으면 나의 일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스승의 날이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서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 글을 쭉 읽어보다가 내 마음에 무언가를 던져준 부분은 김연수 작가에게 청춘이란 이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 시절이어서요. 제가 생각해보니까 그 스무 살 때는 뭐 죽는다는 거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다음에 이 세계가 바뀔거라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단 한 순간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는 그 세계는 영원히 계속 지속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으로 살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봤을 때는 되게 철이 없는 태도인데요. 그래서 그리운 거죠. 그 철 없었던 시절에 대해서. 왜냐하면, 시간이 뭐 계속 남아 무한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니까 웬만한 일들은 다 내일 하면 돼요. 그래서 당장 해야될 일들은 뭐 그렇게 많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책을 보는 걸 좋아했으니까 책을 읽었고요.

그다음에 책을 읽고 나서도 하루가 길어서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글을 썼어요. 다른 뭐 토플을 공부한다든가 아니면 뭐 자격증을 하나 딴다든가. 이런 걸 하면 좋았겠는데 시간이 워낙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해도 됐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하고 싶은 걸 그냥 계속 했단 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많이 남지는 않았단 생각을 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러면서부터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들이 이제 점점 없어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젊었을 때 같았으면 안 했을 일들을 지금은 막 그걸 먼저 해야되고. 젊었을 때 시간 많을 때 할 만한 일들은 점점 뒤로 미루게 되고 있어요. 그게 청춘이 끝난 자들의 삶이죠. 힘든 삶이죠. 할 일들이 이렇게 할 일 목록이 쭉 쌓여 있는 그런 삶이죠. 그래서 젊었을 때가 그립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근데 뭐 돌아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게도 미루면 돼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일단 미루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그게 청춘과 유사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런데 뭐 그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스승의 날 미루었던 연락은 어찌 보면 나의 청춘으로의 회귀는 아니었을까? 해야 할 일들 말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은 내 내면의 반항은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가 지난 생일 축하를 알리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생일축하한다. 고맙다는 산뜻한 문장들로 시작을 했다. 그러다가 행복하구~라는 말에 행복하시라는 답을 했다. 그러다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어제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실습생의 생일축하 문자에 다시 올라온 박사 논문에 대한 고민이 쓰여졌다. 그러자 하고플 때, 절실할 때 하면 되잖아요.”라는 말과 잘하고 있다’. ‘내가 너를 안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박사 논문을 쓰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이런 씁쓸한.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은 생각. 이로 인해 드는 괴로움. 이러한 늪은 내가 만든 것인데도 나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와 지인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걸 하라는, 하고 싶을 때 하라는 말은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고 싶어서 즐기면서 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면은 나를 스승의 날 연락도 하지 않는 괘씸한 녀석으로 표면화하고 있지만, 사실 내면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