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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지독히도 무덥고, 지독히도 무거운 비가 내렸던. 

빨간 마티즈의 친구가 갑자기 대천에 다녀오자고 했다. 즉흥적인 친구였기에, 그러자고 했다. (사실, 갑작스럽게, 여행을 가는 행동이 나에게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그렇게 1시간을 달려, 대천에 도착했다.(그렇다고 대천에서 그리 먼 거리에 사는 것도 아니다.)  

습한 이 느낌. 젊은 이들의 열기. 그러면서도, 도시적이지 않아서, 편안한.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과 안주를 사서, 바닷가에 돛자리를 깔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실로,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지라) 그렇게, 바다를 보자, 내 마음의 파도가 일었다. 사실, 그 시기의 나는 정말이지, 폐인이었다. 일, 연애, 나에 대한 모든 에너지들이 빠져나가 있는 상태였기에, 난 어쩌면, 무의식 속에서, 나의 에너지를 충전할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앉아서, 맥주만 마시고 가려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정말이지, 짝짓기의 향연이라도 되는냥 남자들이 몰려왔다. 이에 "괜찮습니다.", "저희는 조금있다 갈거예요.","지금 일어나려고요."등등의 말로 거절을 하기를 수도없이.(내 생에 정말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그러다가, 무대포식의 남자들에 둘러싸여 술도 마시고,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친구가 된 것 같이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난 정말이지 친구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하룻동안의 친구였다. 그저, 그 사람들은 일회성으로 깔깔깔, 하하하, 할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난 도시의 친구라도 생긴양 들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여름밤의 꿈을 꾸고, 이상하게 에너지가 생겼다. 그 젊은 사람들의 열기와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 속에서 난 다시 에너지를 찾기 시작했다. 마음도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따분해지는 겨울이 오고, 난 또 한겨울밤의 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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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년과 수련1년을 제외하고는 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시골사람. 

한동안 김장철이 돌아오면, 우리집보다 더 시골에 있는 이모집에서 김장을 하던 어머니가 어쩐일인지, 이모와 틀어진 후, 김장은 우리 가족 모두의 몫이 되었다.  

유난히 한 손 하시는 어머니는 해마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400포기씩(상상속의 한포기를 400포기로 불려보자, 어느 정도의 양인지.) 김장을 하셨고, 작년까진 어머니, 아버지, 나 그렇게 셋이서, 400포기를 감당해 내야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 덕분에, 하우스에서 따뜻하게,(배추는 아버지가 직접 키우신 걸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했으나, 4대강사업으로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어, 이번 김장은 만만치 않은 아우라가 번져왔다.  

올해 기습적인 폭우가 계속 몰아치고, 농산물의 값은 폭등했기에, 비님은 잠잠해 져도, 농산물의 값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래서 직접 밭에 찾아가 포기당 2500원으로 잡고, 100포기를 사왔다. 그리고, 아침 9시 쯤 어머니의 가게 뒷마당에서 절인배추를 씻고, 양념을 만들고, 배추에 양념을 묻히고, 통에 담기를 시작했다. 매년 400포기씩 해치웠던(말그래도 해치웠다) 우리가족의 김장에, 100포기는 껌이었다.(말그대로 껌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 해갈무렵,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가게에 들어가, 삶은 고기에 겉절이를 얹어서, 꿀같이 먹었다. 한덩이, 두덩이, 세덩이.. 그렇게 한사람당 고기 한덩이 씩을 먹은 꼴이 되고, 밥까지 먹고, 집에와서, 샤워를 한 뒤, 나도 모르게 낮잠을 잤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또다시 먹을 것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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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이 힘들어요.", " 늦게 시작하니, 그만큼 힘이 드네요." 라는 말들은 어쩌면 변명. 

나이가 들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내 끈기가 나이를 들어가면서, 점점 옅어지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을 해봐야 하는 건 아닌지. 또 나이가 들어서, 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공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한 노력이 없어왔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년에 헤커스토익으로 동영상강의를 들으면서 3번의 토익시험을 쳤고, 490-450-390이라는 실로 엄청난 점수를 받고, 영어를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올 4월, 필리핀선생님이 하는 영어수업에 일주일에 2번씩 참여하게 되었고, 선생님의 격려로 또 다시 토익시험을 보게되었다. 달라진건 일주일에 2번, 1시간씩 원어민과 이야기를 하는것, 동영상강의를 듣지 않는 것, 문법공부를 한글로 하지 않는 것, 토익시험이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를 파악하게 된 것, 각 파트별로 어떤 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지 에 대해서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8월에 첫 토익시험을 치게 되었고, 490이라는 점수가 나왔다. 여기서, 놀라운건,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작년과 같은 점수가 나왔음에도, 나의 마음은, 적잖히 흥분상태였다. 그전에는 내가 흔히 말하는 '찍기'에서 얻은 점수였다면, 이번에는 실로, 나의 실력으로 얻은 점수였다. 그런 마음가짐과 함께, 580-690으로 다달이 점수가 올랐다. 그리고 어제, 또 토익시험을 쳤다.  

이제, 어떤 점수가 나와도, 난 나를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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