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5일,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수련 스승, 대학교 스승, 현재 연락을 하지 않으면 나의 일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스승의 날이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서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 글을 쭉 읽어보다가 내 마음에 무언가를 던져준 부분은 김연수 작가에게 청춘이란 이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 시절이어서요. 제가 생각해보니까 그 스무 살 때는 뭐 죽는다는 거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다음에 이 세계가 바뀔거라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단 한 순간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는 그 세계는 영원히 계속 지속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으로 살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봤을 때는 되게 철이 없는 태도인데요. 그래서 그리운 거죠. 그 철 없었던 시절에 대해서. 왜냐하면, 시간이 뭐 계속 남아 무한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니까 웬만한 일들은 다 내일 하면 돼요. 그래서 당장 해야될 일들은 뭐 그렇게 많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책을 보는 걸 좋아했으니까 책을 읽었고요.
그다음에 책을 읽고 나서도 하루가 길어서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글을 썼어요. 다른 뭐 토플을 공부한다든가 아니면 뭐 자격증을 하나 딴다든가. 이런 걸 하면 좋았겠는데 시간이 워낙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해도 됐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하고 싶은 걸 그냥 계속 했단 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많이 남지는 않았단 생각을 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러면서부터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들이 이제 점점 없어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젊었을 때 같았으면 안 했을 일들을 지금은 막 그걸 먼저 해야되고. 젊었을 때 시간 많을 때 할 만한 일들은 점점 뒤로 미루게 되고 있어요. 그게 청춘이 끝난 자들의 삶이죠. 힘든 삶이죠. 할 일들이 이렇게 할 일 목록이 쭉 쌓여 있는 그런 삶이죠. 그래서 젊었을 때가 그립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근데 뭐 돌아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게도 미루면 돼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일단 미루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그게 청춘과 유사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런데 뭐 그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스승의 날 미루었던 연락은 어찌 보면 나의 청춘으로의 회귀는 아니었을까? 해야 할 일들 말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은 내 내면의 반항은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가 지난 생일 축하를 알리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생일축하한다. 고맙다는 산뜻한 문장들로 시작을 했다. 그러다가 행복하구~라는 말에 행복하시라는 답을 했다. 그러다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어제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실습생의 생일축하 문자에 다시 올라온 박사 논문에 대한 고민이 쓰여졌다. 그러자 “하고플 때, 절실할 때 하면 되잖아요.”라는 말과 ‘잘하고 있다’. ‘내가 너를 안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박사 논문을 쓰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이런 씁쓸한.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은 생각. 이로 인해 드는 괴로움. 이러한 늪은 내가 만든 것인데도 나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와 지인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걸 하라는, 하고 싶을 때 하라는 말은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고 싶어서 즐기면서 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면은 나를 스승의 날 연락도 하지 않는 괘씸한 녀석으로 표면화하고 있지만, 사실 내면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