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주제로 한 연구를 2년여 동안 안고 있다가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데, 첫 시작은 간단, 명료, 미약했습니다. 정의가 분분한 이 용서라는 것에 대해서 한국적인 시각에서 정의를 내려보겠다라는 것이었죠. 그런 나의 첫 시작이 일반인들의 개념 형성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원형적 접근을 통하여 용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정신적인 치료과정에서 용서의 개념을 적용할 때 발전적 함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향후 스트레스 대처전략, 진단이나 제언, 치료 등의 영역에서 활용할 때 좋은 참고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라는 아주 큰 그림이 되어갔습니다. 다행히 게재된 시점에서 바라본 제 논문은 비교적 잘 마무리됐다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면서 연구자인 제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니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누군가가 내 앞길을 막으려 할 때, 평소엔 연락이 되다가 논문 이야기만 나오면 감감무소식이고, 주변에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한 것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올 때, 그 시간은 상상하기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시간에도 인간은 참으로 놀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데, 실력이 되지 않아 논의할 수 없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는 면이,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그렇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제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아니게 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입니다. 하루 사이에 나는 변화한 것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영원히 정의될 수 없으면서도 우리와 함께 흘러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서는 나를 괴롭혔던 대상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동안의 끈적하고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인간관계와는 사뭇 다릅니다. 저도 저 자신에 대해 놀랐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동시에 좋은 성과물을 혼자서 해 낼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성장했습니다. 용서는 그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하고 난 이후의 상황, 내면의 변화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의미를 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훌륭하게 대인관계 속에서 경험한 상처를 용서를 통하여 극복하였고, 갈등의 악순환을 발생시키는 고리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하지 않을 뿐 미움, 분노, 증오와 같은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논문이 게재되도록 막았던 그 사람의 부정적인 2년 동안 내 논문이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년 전에 썼다고 하여 그 논문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준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2년 동안 값진 것을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용서의 내면화였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이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수많은 용서의 효과를 검증하는 논문들 사이에서 굳이 제가 용서의 정의적인 측면을 바라보고자 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성장도 그 미약하고 간단하지만 명료했던 시작과 함께 예견된 일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들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요. 그 일을 통해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당신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라면 멋지게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고생했어. 넌 모든 순간 멋졌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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