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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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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였다. 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감과 탈근대의 철학의 위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주는 몇안되는 철학자가 바로 스피노자이다. 어떤 다른 철학자의 사상에 기대지 않은채 오직 홀로 사색을 통해서 스스로의 철학을 세워나갔던 스피노자는 어떤 이에게는 이단,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치는 새로운 철학을 제공하는 선구자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써 부모님의 많은 유산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신을 부정한 것으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그뿐 아니라 유대교 신자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홀로 렌즈를 세공하며 스스로 철학을 했던 고독하면서도 독창적인 사상을 가진 철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 '자연이 신'이라는 범신론적인 사상인데 단지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진술이 아니라 실존적인 인간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나는 풀이하고 있다. 모든 철학책이 그렇듯이 철학적 진술은 깊고 좁은 사유를 철학적 개념으로 풀어내기에 그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즉 철학을 현대적으로 적용하고 자신의 삶의 기술로써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한 실천철학적 담론이자 적용서이다. 에티카에 적근하는 방식이 신선할 뿐 아니라 실용적이여서 철학의 현대의 삶에 기술이 될 수 있고 치유서가 될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공방 별난'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인문치료와 철학상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젊은 철학자이다. 저자는 철학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치이고 상처받는 이들의 삶의 기술과 지혜를 가르쳐주어 스스로 헤쳐나가는 해법과 외부의 구조적 공격에서 오는 상처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철학이 줄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인문치료법과 철학상담의 가능성에 대한 결과물이다.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28살의 백수 김철수 군. 서울의 대학 철학과를 나오고 나름대로 스펙을 쌓기 위해서 어학연수를 다녀와 8년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그리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근처 고시원에서 근근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삶이 절망스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으며 여자친구는 곧 떠날것 같다. 그래서 술마시고 늦게 들어와 화장실에 앉는순간 바로 앞 거울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거울이 열리고 스피노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철수의 시대와 스피노자의 시대가 시간을 넘어 연결되고 서로 1시간 동안 대화할 수 있는 창이 열린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철수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자신을 스피노자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를 통해서 삶의 고민과 어려움울 토로하기 시작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상담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삶의 기술로써 철학의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극복해 나간다는 형식이다. 소설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읽기와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김철수는 삶에서 읽어나는 상처와 어려움을 하나하나 스피노자에게 털어놓는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조울중,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이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구조가 주는 정신적 질병인 것이다. 스피노자의 처방중에서 정말로 탁월하다고 생각되었던 방식이 있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전수하여 프랑스 심리치료서 펠릭스 가타리는 제도요법이나 분열분석을 만들어 내었다.

 

일반적인 심리치유자가 상당가들은 내면의 고통과 삶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너의 마음을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도 이러한 전통적인 심리치유에 대한 방법에 무수히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도 내 마음을 바꿀수가 없어서 내 마음의 상처를 떠나보낼수 없어서 무수히 고민하고 아파하고 있는데 단지 그냥 마음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라고? 이러한 상담은 자기 안에 암덩어리를 자기가 잘라내라는 말과도 같이 들렸다. 전통적인 심리적 치유 방법적 진술인 이러한 말은 대단히 비효과적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다른 방식으로 치유에 대한 방법을 말해준다. 그는 단지 마음을 바꾸라는 말하지 않는다. 내재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므로 인간안에 있는 내재성을 바꾸라고 한다. 나는 스피노자가 말한 '내재성'이라는 개념에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인간은 단지 몇가지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꾼다고 바뀌는게 아니였다. 안간의 내면안에 인격과 생각과 경험의 씨줄과 날줄이 오래동안 짜여지고 배치되어서 한 인간의 내면의 독특한 특성이 생긴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내면안에 짜여지고 배치되어진 독특한 특성을 바로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존의 철학자들의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적으로 구별되는 개념과 인간변화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러한 변화의 방식은 당장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애인과 헤어져 아파하고 있는데 단지 생각만 바꾼다고 마음의 태도를 바꾼다고 내가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애인과의 함께 오래동안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나의 내념에 하나의 내면성으로 짜여지고 배치된 내면성은 단 한순간의 다른 생각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그 애인을 통해서 짜여진 나의 내면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므로서 나는 변화되고 치유될수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내면성'의 개념은 내가 볼때 인간에 대한 매우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인간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생각이나 태도는 바꾸는 피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내면성을 구성하는 관계망과 그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외부를 바뀌어주어 그 외부로부터 인간의 내면성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단순한 하나의 생각으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복잡한 내면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것을 또한 스피노자는 '내면적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철수가 스피노자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스피노자는 김철수에게 자신을 아프게 하는 관계망을 하나의 영역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부드럽게 횡단하여 자신의 내면을 형성하는 힘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말하면서 김철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외부의 관계망의 배치를 바꾸어 줌으로써 인간의 내재성을 변화시켜 고정된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재적 이성'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철학적 치유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환경과 외부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재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환경을 함께 바꾸어주어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이 신'이라는 개념이 조금 이해가되었다. 스피노자의 이 진술은 종교적 진술이 아니였다. 그의 진술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인간을 이해해야하는 인간이해를 위한 진술이였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오해했다. 아마도 그를 파문했던 유대교인들도 그를 오해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진술이 단지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치유를 위한 새로운 인간이해의 진술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좀더 스피노자에게 다가간 기분이다. 이제 나도 스피노자를 만나볼 시간이 된 것 같다. 물론 화장실에서가 아니라 책으로 말이다.^^

 

종교든 돈이든 간에, 모든 종류의 권력의 시선은 신체를 싸늘하게 경색시킵니다.그러나 사랑과 욕망이 신체를 부드럽게 만들지요. 일단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영역에 대해서 신체를 변용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이 요구하는 하나의 신분, 하나의 이름, 하나의 인물로 전락하고 말지요. 모든 영역을 횡단하면 신체 변용의 역량은 상승하게 됩니다. 횡단은 이 영역과 저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죠. 옆방 사람과 경쟁자 관계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친구, 형, 조언자의 관계를 넘나들어보세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는 변용 역량을 상승시켜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접촉하는 모든 영역을 횡단하여 존재라하!'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횡단은 변용을 일컫는 또 다른 말입니다." (p.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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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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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제목이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임에도 나는 이 책을 보자마자 관심이 갔다. 평소 죽음에 대해서 미미하게 사고하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문득 난 결국은 죽어야할 존재라는 인간의 최종적인 당위명제가 내 머릿속에 떠오를때면 그것이 나에게 무서움으로 다가오기 보다 뭔가 좀더 살아있는 이 현실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겠다는 무언의 어떤 각오들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거창하게 죽음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고 죽음이라는 찰라적인 순간이 길고 질긴 일생의 모든 순간과 연결되어있을 것이라는 어떤 사고의 실마리가 그것에 대해서 좀더 의미있기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최종적인 삶의 종착점이고 그것이 삶처럼 오래동안 지속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경험되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이생의 삶에 깊고 길게 드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처음 죽음을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때였던 것 같다.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선배형이 있었는데 죽기전에 나와 대화를 나누고 그 다음날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다음날을 시험기간이였는데 그 선배의 어머니가 선배를 깨우기 위해 들어갔다가 5분만 더 자고 일어나겠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5분후에 들어갔더니 죽어 있더라 했다. 내가 학교에서 그 선배의 소식을 들었을때 내 안에 묵직한 해머로 머리를 맞은듯한 깊은 충격이 왔다..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죽는다는 것이 그토록 현실의 삶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리고 몇해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말할 수 없는 내 안에 그 죽음은 긴세월 트라우마를 남겼고 한동안은 도저히 현실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정도였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은 생각보다 가깝다. 모든 인간을 반드시 죽음을 경험하고 주변에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보다 이 현실에 그리고 각자의 인생에 죽음의 당위성은 언제나 깊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떤 철학적 성찰이 나의 짧은 죽음에 대한 단상(短想)들을 좀더 풍성하게 해주리라 기대했다.

  

저자는 셀리 케이컨 예일대학 교수이며 예일대 17년 교양강의의 명강의라고 부제가 달려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죽음의 인문학적 성찰과 현재를 살아가면서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함이 무엇인지를 알기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죽음의 인문적 성찰이라기 보다는 철학적, 논리적으로 죽음에 대한 여러 의견들에 대한 견해를 논리학의 형식에 따라서 저자의 판단을 서술해논 다소 지루한 책이였다. 저자가 서문에 대해서도 밝혔듯이 죽음의 사회적 인문적 의미보다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성찰이다. 그래서 내가 배우고자 기대했던 죽음에 의미를 깊이 있게 배우지는 못했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의견을 저자가 하나하나 논리적인 판단에 따라서 참과 거짓을 가려서 자신의 견해 밝히는 다소 주관적인 책이였다.

 

일단 이 책은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는다. 죽음을 당하는 대상은 바로 인간이기에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결국 인간이 죽는 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부분이 죽는 것인지를 논하면서 길고 지루한 논의를 시작한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논할 때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 되는 두가지 인간론은 일원론과 이원론이다. 일원론은 인간은 하나로 구성되어있는데 그것은 육체만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저자는 이것을 인간은 오직 물질로만 이루어지 존재이고 죽음이란 바로 이 육체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물리주의(physicalism)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나는 저자의 기본 의도는 알겠는데 일원론 즉 인간이 육체로만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물리주의라는 용어로 대체 했을때 다소 논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라 물질주의(materialism)이라는 단어는 유물론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오직 물질만이 한 개체의 본질로 존재한다는 의미에 충실할 것 같은데 물리주의라는 단어는 만물의 작동원리로써의 의미가 강하지 일원론의로써의 의미로는 부적당한 것 같았다. 저자가 특별히 이 용어를 썼다가 보다는 번역자의 문제인것 같다. 어쨌든 인간에 대한 첫 번째 견해는 인간은 육체라는 일원론이고 두 번째는 다소 복잡한 이원론이다. 이 이원론은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견해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영원의 존재에 대해서 길게 논의하고 있다. 인간은 전통적으로 영혼의 존재이고 이 영혼은 비물질적 존재이며 그래서 불멸한다는 영원불멸의 사상이 전통적으로 오래동안 내려온 인간에 대한 이론이고 이 이론이 보편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저자는 일원론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 그리고 이원론에 대한 견해를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참, 거짓의 여부를 판단한다. 바로 이 책이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이 책의 표지에 죽음에 대한 논의를 보편적인 죽음에 대한 전통적 견해나, 종교적인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이성의 논리로만 의지해서 풀어나간다고 한다. 저자가 인간의 구성요소를 정의하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제시하고 있는 일반적인 인간구성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가지인데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견해가 갈린다. 저자는 이러한 견해 하나하나 오직 논리적은 사유로써 자신의 견해를 펼쳐나간다. 저자는 일원론에 대한 견해에서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본다. 비록 정신은 육체적인 물질적 구성되는 다르게 구분을 하긴 하지만 결국은 정신 또한 물질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육체와 정신은 하나이며, 이것을 일원론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오직 인간은 육체라는 자신의 결론을 피력한다. 그 다음에 살펴보는 가장 오래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믿고 있는 전통적인 견해는 이원론이다. 이원론은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영혼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들에 대해서 논의해 나간다. 이원론의 견해가 전통적으로 오래되었고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이기에 저자는 좀더 세분화해서 이원론에 대한 견해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인간이 육체와 영원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이원론에도 몇가지 세분화된 견해들이 있다. 이것도 크게 두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육체와 영원으로 구성된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어떠한 연결성을 가지고 연결되어있는지 아니면 육체와 영혼은 별로로 존재하는 각각의 인간 구성물인지에 대해서 논하면서 만약 죽음이 육체의 소멸이라고 한다면 영혼은 육체와의 연결성이 끊어지므로 결국 소멸할 것이고 영혼이 육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인간의 구성물이라면 육체가 소멸했을때 영혼은 비물질적 존재로서 어디에 머무르며 어떻게 증명되는지도 모르기에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론은 결국 허구라고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저자 셸리 케이건은 인간은 오직 물질이며 단순한 물질이 아닌 좀더 복잡한 기계라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까지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물음에 대한 저자의 결론이고 그 이후로는 죽음과 영원한 생명과 자살과 삶에 대한 가치론적인 물음에 대해서 답해나간다.

 

후반부에는 전반부의 지루한 논리적은 진술이 그대로 이어지지만 죽는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가치, 그리고 죽음과 상반되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 논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도 저자의 의도처럼 철저하게 철학적인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죽음의 가치에 대해서 논할때도 삼단논범으로 정의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죽은 이후에는 죽음을 감각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죽음이란 나쁘다고 할수 없다. 이러한 논리로 죽음의 무가치함을 반박하며 죽음은 인간에서 특별히 두렵나가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만약 영혼이 불멸하여 그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죽음과 같은 인생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살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나쁘다고 말하고 결국 삶을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행복을 영위할 때 좋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오직 철학적 사유에만 의지하여 죽음을 풀어낸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인간이 풀 수 없는 영원한 신비이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지나오면서도 인간은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으로 이어진 것으로 너무나 넓고 깊어서 인간의 이성이 닿지 못하는 신비의 영역에 있다. 이러한 것을 오직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만을 의지해 이러한 주장은 비논리적이라 틀리고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이라고 맞다라고 말하면서 죽음에 대한 의미보다는 죽음에 대한 참, 거짓의 주장을 살펴 이것이 참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진술 방식은 인생을 논리안에 가두는 어리석은 판별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음이 삶을 말하고, 삶이 죽음을 말하기에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진술할 때 인간과 역사와 현실과 사유와 계시가 모두 어우러져 통합적으로 논해져야지 단순한 논리적인 진술로 죽음의 의미를 논하는 것은 바닷물을 한손으로 쥐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다. 길고 지루하게 죽음의 의미를 논하는 저자의 방식은 철학적으로는 틀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의미로 보았을때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분석하여서 그 구성물을 쪼갤수 없으며 오직 신비한 타인으로써 바라볼때 그리고 존중과 존엄을 지켜주며 현실과 역사속에서 인간이라는 실존을 바라볼때 삶과 죽음의 의미가 좀더 깊이 있고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 셸리 케이건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논증은 빈약한 것으로 인간의 죽음의 의미를 밝혀주기에는 실패한 진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논증되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면 이렇다. 인간은 오직 육체로만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소멸되는 육체기계이다. 영생은 증명되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오히려 해악이다. 자살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종식시키기에 옳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인간이 이생에서 스스로 책임지며 행복을 영위하는 것이 미덕인 존재이다. 이것이 저자가 길게 논의를 끌어간 결론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서 거창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좀더 의미있게 조망해줄때 죽음은 좀더 의미있는 인간의 종착점으로 그리고 한순간 순간 삶에 드리워져 있어서 유한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종말로써 기능할 때 참으로 죽음은 인간에게 인생에게 유익한 실존적 종말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나거든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다시 사는 것이다.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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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1-1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 불꽃나무님 서평 멋지네요 ㅋ
저도 저자의 논리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물론 죽음이 주는 가치는 오히려 삶을 더 값진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
최고 ~ ^^

불꽃나무 2013-01-16 09:38   좋아요 0 | URL
헤헤~ 감사합니다람쥐~^^
 
공항 르포르타주 - 이황 기자의 공항 취재 40년
이황 지음 / 북퀘스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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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나 그렇지만 공항에 간다는 것은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설령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누구를 마중 나거나가 가끔 약속이 있어서 사람을 만나러 갈때도 공항에 가는 것은 왠지 모를 흥분과 즐거움이 있다. 공항에서 출입국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과는 다른 직종과 다른 신분의 사람들인 것 같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거기에 있으면 비행기를 타는 일부 선택된 사람들의 분류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였다. 최근에 공항에 제법 여러번 갔다. 캄보디아, 일본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출국하는 사람을 배웅했다. 이제 공항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이 가는 선택된 장소가 아니라 누구나 갈수 있는 일반적인 장소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로 공항은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타국과 한국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내가 기억하는 공항에 관한 에피소드. 오래전 지인들과 태국에 갈 때 태국 공항에서 이상하게 나의 짐만 나오지 않아서 괜히 눈치를 보았던 일들, 여권을 만들었는데 갑자기 여권이 나오지 않아서 출국하는 바로 그날 여권을 찾아 겨우 비행기를 탔던 일, 출국전에 시간이 있어서 넓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본인 여권을 주워서 찾아주었던 일들. 이런 정도의 에피소드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공항이 지금처럼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소수 특권층의 장소였고 또한 특별한 사건, 즉 국가적인 인물이나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였다. 이 책은 40년동안이나 공항이는 한 장소에서만 취재를 한 이황이라는 기자의 공항취재 이야기이다. 짧은 에세이 형태로 쓰여져 있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황 기자가 취재한 공항기사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기자라서 그런지 국가적인 사건과 연관된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이수근 위장간첩이 탈출을 시도하다 공항에서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이야기. 기자들과 정보부 요원들간의 팽팽한 긴장과 상생의 관계, 공항에서 출국할때는 살아서 나갔다가 들오올때는 죽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치인들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이야기 등. 근형대사를 통틀어서 매우 굵직한 사건들이 바로 공항이라는 장소와 연관되어 있었다.

 

지금은 공항이라는 공간이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찬 곳이지만 공항이라는 곳이 낯설고 목적지 국가들도 6개국 밖에 되지 않았던 그때는 공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곧 국가와 관련된 사건이 많은 공적인 장소였다. 기자의 신분으로 본 공항이야기이기에 주로 취재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지만 스타들이나 항공사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스튜어디스 이야기등 항공사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많았다. 이황 기자가 쓴 이 책 <공항 르포르타주>는 40년 공항 베테랑 기자가 쓴 공항의 에피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떠나고 들오는 것이 마주치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마주치며, 눈물과 기쁨이 마주치고 생과 사가 마주치며 만들어지는 인생과 역사의 이야기는 가장 흥미있으면서도 가장 가슴시리고 가장 역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항이 바로 공적이며 사적인 이야기의 날줄과 씨줄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소개해 준다. 특히 외국으로 입양되기 위해 공항에서 어두운 얼굴로 기다리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볼때마다 저자는 부끄럽고 안타깝다고 한다. 이러한 현대사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거의가 공항이라는 장소를 통과하며 만들어진다.

 

앞으로 비행기를 탈 일들이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좀더 역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내가 가게 될 공항이라는 장소에 얼마나 많은 개인과 나라와 역사의 이야기기 촘촘히 박혀있는지 좀더 주의를 기울여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인천공항은 7년 연속 세계공항 1이다. 이곳에서 볼수 있는 엄청난 시스템과 편리함과 화려함속에서 좀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역사의 이야기 발전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40년간 공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살아왔던 나는 다른 출입처가 부럽지 않았다. 그 어느 곳 하나 역동적이지 않은 출입처는 없겠지만, 공항에는 기자로서 볼 수 있는 세상만사의 풍경들이 있었고,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존재했으며, 수없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기자들조차 접근할 수 없는 긴박감과 역동성도 존재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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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서강인문정신 7
강영안 지음 / 소나무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철학이란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는 철학자의 치밀한 사유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야말로 길을 잃기 쉬운 학문이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것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는 만드시 그 안내자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어떠한 철학 안내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철학적 성향도 바뀌어 짐을 여러번 경험하였다. 내가 철학이라는 험난한 숲을 지날때 그 숲의 무성함 속에서 참된 인간을 위한 사유의 길을 안내해주고 늪에 빠져 헤매기 쉬운 길을 피해가도록 전체적인 철학 숲을 조망해 준 철학자가 있다. 그 분은 바로 서강대 강영안 교수님이다.

 

내가 그분의 글을 즐겨 읽는 까닭은 첫째 자신이 한 철학자를 해석하고 글을 쓸때 반드시 원문으로 읽지 않으면 글을 쓰시지 않는 학자적 양심이요 둘째 서양의 모든 철학을 그대로 수입하여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사유의 렌즈를 통해 해석과 글쓰기를 거치는 성실함 때문이다. 그래서 강영안 교수님이 쓴 서문만 보아도 학자적 양심과 성실함을 느낄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은 철학서적이면서 매우 감동적이요 지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건강하고 인격적인 깊은 통찰을 가지게 해 주었다.

 

1장과 2장에서는 왜 인문학이 근대에 오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고 불필요한 학문으로 취급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근대의 실증주의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루돌프 카르납으로 대변되는 실증주의는 지식이라는 것은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는 것은 모든 지식에서 제외하였다. 그리하여 종교, 윤리, 도덕이라는 것은 하나의 주관적 견해이지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하여 인문학의 과학화와 객관화를 선언하면서 현대의 인문학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철저히 인간을 위하고 인간의 풍요로움을 위한 것이라면 실증주의는 이러한 인문학의 성격을 메마르고 말라 비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3장과 4장에서 이러한 근대적 인문학의 위기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저자가 논증의 근거로 사용하는 사람이 폴라니와 레비나스이다. 폴라니는 그의 책 <인격적 지식>에서 모든 인간의 지식에서 완전한 객관성이란 불가능하고 언제나 인간의 성향, 전제, 경험, 인격등 모든 주관적 요소가 개입한다고 하였다. 저자는 폴라니를 통하여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무너져 버린 인문학의 원래 성격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철학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요 첫번째 원리가 형이상학이 아니요 윤리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던 레비나스를 통하여 인문학의 윤리적 사명 또한 복원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인문학의 원래 성격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사명을 회복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5장에서는 인문학에서 텍스트의 필수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인문학이 다른 무엇보다 텍스트를 읽고 쓰고 말하는 학문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참된 인간을 위한 인문학이 되기 위해서 텍스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서구의 분석적 텍스트 론이 아닌 동아시아 전통 가운데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주자'의 독서론 그 길을 찾고 있다. 즉 참된 인문학을 위한 공부는 서구에서 말하는 철저한 텍스트 분석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인간의 마음에 베고 몸에 베이는 '글공부, 마음공부, 몸공부'가 참된 인문학적 공부를 위한 좋은 방법론이라고 주장하였다.

 

모든 지식은 지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더욱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를 인식하며 그것에 봉사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강영안 교수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주변 세계와 관련해서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고 나아가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데 관심을 두고 것이다. 인문학은 어떤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성, 즉 인간의 기쁨과 고통, 바람과 소원, 기대와 좌절, 사랑과 증오, 선과 악 등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의 자기 인식에 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철학과 역사, 문학과 언어, 종교와 예술을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자기 이해를 풍요롭게 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이것은 외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볼 때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쓸모없는 지적 노력과 훈련 없이는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 인문학적 노력의 무용지물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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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면 - 사람을 읽다, 책을 읽다
설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의 이면> 독특한 책이다. 고전을 이야기하는데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잡아서 그 고전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듯한 소설적 허구가 이 책의 내용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지은이 이름이 설흔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름도 참 특이하다 싶다. 설흔이라..핏자국이란 말인가..앞날개에 있는 이력을 보았더니 심리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주로 셨으면 조선시대에 관련된 작품을 쓰고 있는 사람이였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다른 작품들도 나름대로 저자의 독특한 창작이 돋보이는 것 같았다.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책, 사람을 읽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하나의 고전을 그 고전을 쓴사람이나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약간의 소설적 방식을 차용하고 서술하고 있다. 딱히 고전에 대한 해설이나 주석은 아니고 책과 관련된 인물의 이면의 심리를 서술하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그런지 소설적 방식으로 쓴 고전과 관련된 인물의 내면의 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그리고 문체도 고풍스러운면서도 매우 고급적이다. 2부는 '사람, 책을 읽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부와는 반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 1부에서는 책이 일인창 '나'가 되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면 2부에서는 3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듯이 서술하고 있다.

 

이 책 <책의 이면>은 조선고전에 담긴 사연과 이야기를 관련 인물의 최후와 관련해서 쓰고 있는데 깊은 내용이라기 보다는 책의 이면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조선고전이라고 해봐야 잘 알려진 것이라기 보다 비교적 덜 알려진 책들이다. 근사록, 능엄경, 열하일기, 난설헌시집, 교유론, 북학의, 하멜 표류기, 무예도보통지, 표해록, 양환집, 추안급국안, 임원경제지, 백사선생북천일록, 매월당집, 양아록, 북정일기, 두시언해, 삼한습유, 내훈, 단원풍속도첩, 청구도, 우상잉복, 호동거실 이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광조, 심노숭, 남공철, 허경란, 홍대용, 박제가, 그리멜스하우젠, 임윤지, 한교, 최부, 유금, 이점돌, 서유구, 이항복, 김시습, 이문건, 신류, 곤차로프, 김소행, 소혜황후 한씨, 김양기, 김정호, 이언진이다.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책을 읽기보다 그 이면에 담긴 사람의 내면을 읽고 그것을 읽으므로 다시 그 책을 읽는 것이다. 여러인물들과 여러 책이 등장하여 삶의 희노애락과 인간내면의 사계절을 매우 풍성하고 고풍스럽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읽고나면 한사람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과 절망과 기쁨이 이러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낄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내용중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백사 이항복 선생과 그의 충복 정충신 공에 관한 이야기다. 백사 이항복은 인목대비 폐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린 것 때문에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되고 성충신은 그런 그를 죽을때까지 옆에서 충신으로 그를 지켰다. 그 당시 의리와 배신이 반복적으로 판을 쳤던 시대에 끝까지 충성을 지키며 한 인간으로써 의리를 지킨 그들의 이야기를 먼옛날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직한 인간의 충정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는내내 내 마음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인생의 무상함, 시대의 고단한, 그 시대속에서 흔들리며 상처받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저자의 고풍스러운 문체와 더불어 더욱 스산한 바람처럼 다가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인간으로써 존엄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쓸쓸한 대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사람을 읽는 다는 것이고, 사람을 읽는 다는 것은 곧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다. 책의 이면은 곧 사람의 이면이고 세상의 이면이리라..

 

인간의 사악함과 정의, 세상인심의 부침, 무정한 세상인심, 사라지지 않는 공명정대한 논의, 죽어서는 영광, 살아서는 수치,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 친구들이 인정해준 사실에 대한 보답 등이 모두 이 책에 구비되어 있다. 후대에 태어난 군자는 이 책을 보면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사선생북천일록>에 대한 남구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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