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봉이는 수시로 내게 소설만 읽지 말고 인문학도 좀 읽으라 말했'었'지만, 나는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설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 역시 인문학을 읽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간혹 읽지만, 그러나 나를 더 깨우는 건 소설임에 틀림없다. 왜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냐면, 이 소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절반만 읽어도(그렇다, 지금 절반까지 읽었다), 생각할 게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성찰할 수 있다면, 도대체 더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모든 필요한 것이 여기에 다 있고 그것을 또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절반만 읽어도 이게 가능하다니까? 이 책 너무 재미있어서 좋아 ㅠㅠ 재미있는데 중요한 말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오, 메리 셸리...천재님이시여....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유복한 집에서 좋은 부모와 화목한 가정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의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사랑으로 보살펴주셨고, 사랑하는 애인이자 친구인 '엘리자베트'도 있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친구 '앙리 클레르발'도 있다. 그는, '나보다 더 행복하게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p.45)' 라고 자신하기도 한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얼마나 부족함이 없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열세살에 집에서 독학으로 자연철학에 빠졌던 그는, 모국이 아닌 곳에서 대학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독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다. 거기에서 화학에 흥미를 가져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데, 엄청 재미를 느끼고 푹 빠져서 공부를 한 덕에 2년만에 대학에서 배워야할 모든 걸 배우는 경지에 이른다. 그렇게 공부하고 더 깊은 연구를 하는동안, 그는 모국에 있는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일을 미룬다. 미루고 애써 무시하며 자신이 터득한 생명의 원리에 깊이 빠진채로,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연구를 진행한다.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그가 만들어낸 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괴물(p.71)'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그 생명체는 만들어졌고 자신은 경악하며 이미 그 생명체로부터 도망쳐버렸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닫는다. 자신이 한 연구와 실험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뒤늦게 드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깊은데, 인용해보겠다.




아버지의 심기가 편치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차마 연구에 대한 생각들을 뇌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자체로 혐오스러운 관념들이 어느새 내 상상력을 불가항력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이제 본성을 철저히 삼켜버린 이 위대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미루고 싶었다.

그때는 무심함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내게 잘못을 묻는 아버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비난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보았던 아버지가 옳았다고 확신한다.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 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p.68-69)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자꾸 뒤로 미룬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잘못된 몰입이란 얘기다. 나는 여기에 나에게 일어났던 일, 내가 몰입한 일을 넣어보았다. 뭘 넣어도 맞아 떨어졌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그랬고 잘못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그랬다. 내가 잘못한 일, 아직도 여전히 후회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나는 가족 앞에 떳떳하지 못했다. 가족에게는 숨기는 일이, 내게는 잘못된 일이었고, 나도 그게 잘못된 일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일을 밝히는 걸 뒤로 미루고 끝내는 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인생의 오점으로 남고야 말았다. 그러나 내가 내 사랑하는 가족을 잊지 않고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 역시 계속 진행시켰던 일들, 그게 변함없이 유지되면서 몰입했던 것들도 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나는 누구에게도 숨김 없이 밝힐 수 있었고, 그렇게 밝히면서도 떳떳하게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공부도 마찬가지. 나는 내가 하는 공부가 어떤 것인지, 강의를 들으러 갈 때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사랑과 이 공부는 내가 나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데 그래서 도움이 되었다. 가족들도 친구들과 연인도 내가 어떤 것에 지금 신경을 쓰는지, 몰입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었기에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작은 순간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몰입이라면,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메리 셸리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입을 빌어 그것을 얘기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소중한 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을 빅토르도 사실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감각이 찾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몰입이 너무 커서, 자신에게 찾아온 '이건 아니지 않나'를 무시해버렸을 것이다. 나는 이 감각,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감각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하고, 유감스럽게도 이 감각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감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감각이 모두에게 있었다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많은 잘못된 일들, 틀린 일들은 지금보다 현저히 적게 일어났을 것이다.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강간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향한 범죄에 있어서도 그렇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 내가 타인에게 이런 말 혹은 이런 행동을 하는 거, 정확히 어떻게 설명할 순 없다 해도, 그 순간 감각적으로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가 찾아든다면, 우리는 말이나 행동에 앞서 주춤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괜히 떠오르는 게 아니란 거다. '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감각, 무척이나 소중하다. 만약 그게 떠올랐다면, 다시 생각해보고 그 말이나 행동은 삼키고 삼가는 게 옳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렇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나는 페미니즘 감수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감수성의 저 가장 기본적인 바닥, 일단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감각이었다. '왜 안되는데?'라는 물음에 논리정연하게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도, 그저 본능적으로, 나도 왜그런지 정확히 이유는 댈 수 없지만, '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찾아든다면, 우리는 거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 일에 대해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자신에게 찾아드는 감각에 귀를 기울였다면 -사실 그에겐 이 감각이 찾아드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뒤이어 일어나는 그 모든 불행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구, 그 잘못된 몰입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물을 만들었고, 그 괴물의 흉측한 모습에 그로부터 도망갔으며, 그를 세상에 그런 채로 풀어놓았고, 그것은 자신을 비롯한 여러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괴물'이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바로 여기에서 또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이, 빅토르가 그를 '괴물'이라 칭한 건, 단순히 그의 모습만 보고 그런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놓고서는, 아름답게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한 그 커다란 육체를 보고서는, 그와 말도 섞어보지 않은 채로 그를 괴물이라 칭한다. 이 세상을 처음 알게 되자마자, 태어나고 눈을 떠 빛과 자연을 인식하기도 전부터, 나를 만들어놓은 사람이 나를 괴물이라고 끔찍하게 여기며 나로부터 도망간다면, 그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괴물은 서서히, 창조주와 떨어진 곳에서 추위와, 불과, 자연과, 새와, 햇빛을 알게 된다. 그 모든 것들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사람들 속에 섞여들려 해보았지만 모두가 자신을 보면 비명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까닭에 섞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어느날 냇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고 절망한다. 그런 그는 어느 헛간으로 숨어들어 그곳의 인간들의 삶을 매일 엿보게 되는데, 그 인간들의 우아함, 사랑,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고 순수하게 감동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언어를 익히게 되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차라리 모른 채로 혼자 살았다면 나았을 것을, 그는 이제 아름다움과 사랑에 눈을 떠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그에게 가득차 버렸다. 아아, 나는 이 장면에서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의 자연스런 일상과 그 일상 속에 스며드는 예술-그것은 악기 연주이기도 하고 음악 감상이기도 할터이다-을 보고 순수하게 감동할 수 있다는 거, 이건 정말이지 얼마나 근사한가! 그러나, 그는 세상이 그를 괴물이 칭한대로, 괴물이 되었다. 그는 괴물이 되어서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가 토로한다.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아무리 애원해도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호의를 보일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당신의 선의와 연민을 갈구하는데도? 내 말을 믿어라,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사막 같은 산맥과 음침한 빙하들이 내 안식처다. 수많은 날들을 여기서 방황했다. 얼음 동굴도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러니 여기가 인간들이 불평하지 않는 내 유일한 거주지다. 이 황량한 하늘을 나는 반가이 맞는다. 저 하늘은 당신의 동포들보다 내게 훨씬 더 친절했다. 무수한 인류가 내 존재를 안다면, 당신처럼 무장을 하고 나를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그러니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오하지 않겠는가?" (p.133)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리고 그 하나의 인간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구성되어진다. 유복한 환경, 사랑하는 식구들, 다정한 연인과 신뢰를 주는 친구가 있음에도, 누군가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기어이 하고야 만다. 어떤 이는 순수하게 자연과 사랑에 감탄하게 태어났음에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저주와 공포,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이 어떤건지 잘 아는 존재가, 한 생명을 만들어놓고 그 생명을 바로 그 자리에서 버려버린다. 그리고 혐오한다. 우리는 아주 손쉽게 사랑을 받은 자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그러한가? 어떤 환경이냐가 그 사람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비단 환경만이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도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니까. 환경과 그 사람 본연의 성격. 이것들이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일테다. 그렇지만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감각을 어떻게 한 인간에게 찾아들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감각이 찾아들었을 때 거기에 귀 기울이는 것 역시,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렇게 살고자 하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걸까. 많이 읽고 듣고 말하고 쓰면서 훈련할 수 있는걸까?




절반만 읽었는데도 이 책은 이렇게나 좋다.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아마도 나는 이 책을 2017년 올해의 책으로 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 진짜 소설 너무 좋아 짱 좋아 최고되는 것이다!!! 이 책 한 권에 공포와 혐오와 윤리와 사랑이 다 들어있다. 메리 셸리는 천재되는 것이다!!! >.<




날이 너무 추운데 따뜻한 데서 따뜻한 차를 한 잔 앞에 두고 이렇게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수 있다면 세상 행복할텐데..현실은 새벽같이 일어나 또다시 출근이지.... 제기랄...... 오늘은 무지방우유가 베이스인 '스노우돌체라떼'를 그랑데 사이즈로 텀블러에 담아왔다. 처음 마시고 아 맛있어, 좋아, 헬렐레 했는데, 절반쯤 먹고 나니 못먹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메리카노가 급 그리워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건 진짜 한 달에 한 번만 마시면 될듯. 당장 뛰쳐나가서 아메리카노 사오고 싶은 마음이야. 절박하다. 아메리카노, 겁나 원하고요.....




포털에 뜨는 기사나 짤 같은 걸 보지 않는 편이다.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daum)에 들어갔다면, 나는 곧장 메일을 확인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기사도 제대로 읽지 않고 그저 보이는 사진만 살짝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본래의 의도한 바가 무엇이든,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어제는 한 남자의 전완근... 을 보게 됐다. 얼굴을 안봐서 연예인 누구인지 모르겠는데...(김생민인가?) 전완근이 딱히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막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냥 그 부위가 처음 딱 보이는데, 아 또 너무 좋았어. 나는 전완근이 왜이렇게 좋지? 전완근은 정말... 아.... 나를 넘나 미치게 하는 것 같다. 어쩔 줄을 모르겠어. 전완근과 손이 주는 그 엄청난 매력에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내게는 훌륭한 전완근이 없어서일까? 아니야 그런 것 같지 않아. 나는 손이 예쁜데도(응?) 손 예쁜 사람 보면 막 미쳐버릴 것 같아. 어제는 누가 자기 반지 샀다고 손 사진 올렸는데, 진짜 너무 예쁜 거다. 반지는 안예쁜데 손이 너무 예뻐서.... 아 너무 예쁘다....하고 한참을 봤다. 전완근과 손은 진짜 어휴.... 전완근과 손으로 유혹하면 나는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아. 그거슨 너무나 치명적인 것..... 전완근이 지금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전완근....아 넘나 좋아...... 넘나 두근거리는 것이야..... 전완근도 너무 보고싶고 아나스타샤도 보고싶고.... 인생 뭔지...... 아나스타샤..너무 예쁘지.....아나 스타샤...날 닮았어........여러가지로..................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그만두자. 어쨌든. 너무 예쁜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넘나 좋아 ♡




그건 그렇고,

잘못된 몰입, 당당한 사랑...같은 거 페이퍼 쓰면서 얘기하다 보니, 로렌 크리스티의 컬러 오브 나잇 생각난다. 




all I want is just once to see you in the light

but you hide behind the color of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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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친구의 부재
    from 마지막 키스 2017-12-06 09:18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질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거릿 누님. 성공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 환희에 동참해줄 이도 없고,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감 해줄 사람이 동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보면
 
 
비연 2017-12-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보관함에 퐁당... 요즘 책 진도 안 나가는 연말인지라.... 아 언제 읽을 지 몰라도. ㅜ

다락방 2017-12-05 11:21   좋아요 0 | URL
비연님 이 책 너무 재미있어요. 계속 읽고 싶은데 제가 회사라는 게 넘나 싫어요. 흑흑 ㅠㅠ

단발머리 2017-12-0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그렇게나 좋군요. 저는 괴물-프랑케슈타인의 단어만 떠올라서 어쩐지 기괴하고 무서운, 그러면서도 슬픈 것 같은 예감을 가졌더랬는데,
다락방님이 올해의 책으로 할까보다~~에서 감동받습니다.
저도 읽어야겠어요. 우앗! 신난다~~~^^

다락방 2017-12-05 11:30   좋아요 0 | URL
많은 이야기들이,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이 책속에 담겨있어요. 천재적인 작가인 것입니다. 제가 올해 뭘 읽었는지 일단 살펴봐야겠지만, 저는 이 책을 강하게 후보군에 놓습니다. 으하하핫. 절반 밖에 안읽어서 나머지 절반 얼른 읽고 싶은데 제가 직딩이라는 사실이 슬프네요.... 하늘에서 돈 좀 떨어졌으면........Orz

잠자냥 2017-12-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또한 문학이, 소설이 웬만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문예출판사 버전으로 사두고 읽지는 않았는데, 하루 속히 이 글을 보니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7-12-06 13:38   좋아요 1 | URL
저는 아주 오래전에 헬레나 본햄카터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거든요. 아주 오래전이라 그저 괴물의 탄생쯤인가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 괴물은 사랑과 박애를 아는, 제대로 감동할 줄 아는 존재였어요! 그를 괴물로 몰고간 건 그의 창조주와 그의 겉모습만 보고 그를 괴물로 칭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중간을 좀 넘어가면 그가 우연히 세 권의 책을 읽게 되고 거기에서 크게 지식과 감정을 알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진짜 너무 좋아요! 이 소설책 한 권에 다 들어있습니다, 잠자냥님!!
저는 소설이 가진 많은 것을 이미 알아챈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잠자냥님 처럼요!
:)

심술 2017-12-07 14:11   좋아요 0 | URL
저도 헬레나 본햄카터랑 로버트 드 니로 나온 <프랑켄슈타인> 스무 해도 전에 본 기억이 있어요.
다른 영화에선 늘 무시무시한 악당으로만 나오던 괴물을 추한 생김새 속에 담긴 고귀한 마음씨로 그려서 의아했지만 워낙 게을러 왜 감독이 괴물을 그리 그렸는지 찾아보지는 않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원작소설을 따라서 그런 걸 오늘에야 알았네요.
그러고보니 괴물을 악당으로만 그렸던 다른 영화들이 원작소설에서 벗어난 건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원작소설에도 괴물이 악당이려니 하고 살았군요. 부끄러워요.
방금 검색해 보니 그 1994년 <프랑켄슈타인> 감독이자 빅터 역을 맡은 배우이기도 한 사람이 케네쓰 브라나네요.
요새 상영하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도 감독이랑 주인공 포와로 역을 맡은 바로 그 사람.

심술 2017-12-07 14:14   좋아요 0 | URL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다락방님이 전완근과 함께 좋아하시는 아나스타샤가 누굽니까?
방금 인터넷 검색했는데 아나스타샤가 하도 많아서 어느 아나스타샤인지 모르겠어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마지막 차르의 딸인 아나스타샤, 가수 아나스타샤, 일본 애니 캐릭터 아나스타샤, 러시아 테니스 선수 아나스타샤 미스키나...

다락방 2017-12-07 14:19   좋아요 0 | URL
저는 근데 헬레나 본햄카터 나온 프랑켄슈타인 내용이 잘 기억나질 않아요. 거기서 괴물이 고귀한 마음씨를 가진 걸로 나왔던가요? 몇몇 장면만 드물게 기억나서... 하핫.
책 너무 재미있어요, 심술님. 이게 이런 내용이구나, 감탄하며 읽었어요.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그런 소설이네요. 읽어보시라고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아, 그리고 아나스타샤!!
저는 그간 여기에 꾸준하게 글을 써왔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따로 페이퍼 쓰면서 뭔가 추가할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요, 전완근과 함께 언급된 아나스타샤는, 그러니까, 심술님의 댓글에 언급된 사람들중 그 누구도 아니구요. 하하하하하. 대답하기 몹시 부끄럽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여자주인공 ‘아나스타샤‘ 입니다. 배우 이름은 ‘다코타 존슨‘ 이고요, 멜라니 그리피스의 딸이라고 하네요. 전 이 아나스타샤가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예쁘고 막 매력적이고. 으하하핫. 사실 전완근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러니까 전완근과는 뜬금없이 나란히 쓴겁니다. 아하하핫. 어쩐지 부끄러워서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7-12-08 14:38   좋아요 0 | URL
브라나 감독 헬본카,로드니 주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보기엔 흉하지만 선량한 인물이다가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버림받고 분노의 화신이 되는 걸로 그리죠.
제가 본 <프랑켄슈타인> 영화들 가운데 소설원작이랑 가장 비슷했던 걸로 기억해요.
기회 잡아 원작소설도 읽어봐야겠네요.

댓글 읽고 나니 락방님께서 <그레이 그림자> 얘기 서재 곳곳에서 쓰셨던 게 비로소 생각나네요.
맞아, 그 아나스타샤 스티일도 있었지.
다코타 존슨은 멜라니의 달이기도 하지만 히치콕 감독 <새>의 주연이었던 티피 헤드렌Tippi Hedren의 손녀기도 하죠.
멜라니가 티피 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