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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 ㅣ 결코 작지 않은 역사 1
존 서덜랜드 지음, 이강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사르트르는 소설을 ˝거짓된 의미를 세상에 분비하는 기계들˝이라 표현했다. 실존주의에 치우친 지나친 표현일까?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생각해 볼 때 '분비'나 '기계들' 같은 단어 사용은 사르트르의 개성이 담겨 있다. 사상과 시대에 따라 경향도 있게 마련이지만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이나 과잉된 소설 예찬론보다는 현실적으로 보려 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환상'과 '사실'이라는 양 극단을 가지며 '지은' 글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한, '거짓'과 '의미'는 소설을 설명하는데 늘 따라 나올 것이다.
사르트르에 비해 저자 존 서덜랜드는 좀 더 보편적인 풀이를 했다. 그는 문학을 아름다운 거짓이라고 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절정에 다다른 인간의 정신˝이며, ˝마음과 감수성을 확장해 복합적인 것을 더 잘 조절할 수˝ (p13)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 이 정의를 시작으로 저자는 신화에서부터 서사시, 비극, 초기 소설부터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SF, 어린이 문학, 팬픽 소설, 각종 문학상, 저작권 등 문학이 관련되어 있는 가능한 모든 초점들을 다루고 있다. 문학에 대한 에스프리 참고서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연대기 순으로 잘 짜여 있고 딱딱한 논조가 아니다.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문학사라 하더라도 비화와 적절한 유머를 섞어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 책이 영미 문학권 중심인 건 감안하고, 소설의 시작은 18세기 경으로 추정한다. 그 이전 `소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읽지 않았더라도 워낙 유명해 대개 알고 있다. 보카치오 《데카메론》(1351, 이탈리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1532~1564, 프랑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1605~1615, 에스파냐), 존 번연 《천로역정》(1678~1684, 잉글랜드)은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여기에 아프라 벤 《오루노코》(1688,잉글랜드)를 추가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정보다. 작가가 여성이며, 영국 식민지에서 생활할 때 본 노예들의 고통스러운 처지와 기독교인들의 위선에 대한 것을 소설로 담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소설을 30년 뒤에 나온 대니얼 디포《로빈슨 크루소》에 비견했고, 미국 소설가 겸 비평가 헨리 제임스는 이 소설을 '허구의 집'이라고 일컬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이 말할 권리를 준 아프라 벤에게 모든 여성이 꽃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저자의 재미난 유머가 나온다. 울프가 아프라 벤의 무덤에 꽃을 던지라고 호소했듯이, 무인도에서 경제적 삶을 이뤄낸 크루소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였으니 그 연대기의 저자인 디포의 무덤엔 약간의 파운드 동전과 달러 지폐를 던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피식 웃게 만드는 대목이 많다.
그 외 '《햄릿》에서 어린이가 보이는가?'(‘어린이’가 문학에서 관심을 끌게 된 건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한 장 자크 루소와 윌리엄 워스워스 공이 크다), '다윈 《종의 기원》이 토마스 하디에게 미친 영향' ,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오스카 와일드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썼을지도 모른다?(프루스트와 와일드는 친분이 깊었다)' , '1922년은 문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해였나' , '카프카- 카뮈- 베케트로 이어지는 부조리 주제는 누가 또 이어가고 있는가' , '1971년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W. H. 오든이 베트남 전쟁을 벌이던 미국의 시민이 아니었다면 상을 받지 않았을까' 등등 우리가 문학을 즐겨 읽으면서도 생각하지 못한 물음을 많이 제시한다.
※ 노벨문학상은 나라별로 돌아가며 수여하는 경향이 있다. 2016년엔 미국에 영광이 갔는데, 필립 로스가 아닌 밥 딜런에게 상이 수여된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문학의 힘인 '유동성'이 처음 구전문학에서 출발했듯이 '팬픽 소설' 같은 데에서 여전히 힘 있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2주마다 한 언어가 소멸하는 시대이고 인쇄 책이나 문학의 영역은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 하지만 빛나는 진주를 문학은 계속 보여주고 있고, 이를 후대에도 전해야 한다는 게 존 서덜랜드의 취지였다. 나도 동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