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아왔다. 계속해서. 서울, 통영, 타인, 바다, 빈 숲, 돌무더기에서부터 에서까지. 나는 더듬어야 했다. 계속해서. 주소를, 언어를, 기억을, 감각을, 환영을. 아직은 돌아오기 위해.

 

  

*

남은 것들만 남은 자리 그 옛날 거기에 하나의 잔해가 있어 검은 어둠 속에서 때때로 빛을 발했다.

**

침묵을 다시 데려오는 것, 그것이 사물들의 역할이다.

사뮈엘 베케트

 

빗속을 뚫고 내려갈 때 그것이 나타났다. 빛이 사방에서 덮쳐 3차원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베케트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에는 정신의 맛 같은 것이배어 있다고 했지만 세상의 모든 것도 그러하다. 나는 눈길을 끄는 형상에 빠르게 집중했다. 다리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주지만 전혀 구원의 인상이 아니었다. 다리를 놓은 인간도 그 정도까지 바란 게 아니듯이. , 신이여. 빛으로 인한 이 풍요, 더불어 모든 것들이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어떤 개념에도 묶이지 않은 채 그저 내게, 내내 펼쳐져 있었다. 어째서. 내 머리 위의 공허를 위험을 부질없이 떠올렸다. 아주 멀리서 궤도를 그리지만 내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져 내리지 않는 암석이 있었고, 두려움과 불안을 이미 신호로 보내고 있는 형체 없는 암석은 쉼 없이 굴러오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가까스로 혹은 힘들게 피하거나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지긋지긋해 하리라. 계속해서. 대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이는 어떤 순간이 와도 글을 쓴다. 중력의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를 때 그러하듯 돌들은 그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거기엔 여전히 쓰는 인간만 남는다. 계속해서. 구름이 바람이나 산을 만나 흩어질 때 인식하거나 슬퍼하지 않듯이 그것은 보통’, ‘일상처럼 일어난다. 계속해서. 곧 밤이 덮쳐 이 세계를 수평으로 연결해 주는 걸 또 목격할 것이다. 인간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기이해 하면서. 나는 다시 빗속의 궁륭으로 들어갔다. 무엇이든 오고 간다. 계속해서.

 

 

  

 

*

새어나가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런던을 헤매 다니거나 마음과 두 발의 고통을 겪으며 독일을 누빈다. 또다시 더블린에 되돌아온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어머니와 그녀의 독설과 지탄에 맞선다. 다시 떠난다. 하지만 또 되돌아온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아프거나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불행에 몸을 맡기고,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젊은 여인의 죽음을 반복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이제 나는 더없이 빠른 속도로 피폐해지고 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 중독으로 뭉쳐진 무감각한 더미.

아무 목적 없는 한 무더기의 내장일 따름이다.”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통영에 도착했을 때 비는 공기에게 그러하듯 자신에게도 그러하라는 듯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빗속의 통영 경찰서, 빗속의 통영 우체국, 빗속의 서호시장, 빗속의 항구, 빗속의 너, 빗속의 나, 빗속의 죽은 미키. 계속해서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했고, 각종 음식과 술과 커피와 풍경은 내가 잠시 담고 다시 내보내야 할 통과물로 왔다. 시식용 통영 꿀빵을 오가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권하는 점원이 하루에 몇 번이나 그러한지 세고 있을까. 1952년 이상한 입방체 모양의 집을 짓고 틀어박혀 집필에 몰두한 베케트처럼 또 다른 나도 그저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 그의 여행이 그러했듯 내 여행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 점을 알고 있었듯이, 이 여행이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서 도모한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했으므로. 나는 그저 따랐다. 촛불이 자신만의 언어로 타오르는 어두운 방안, 비와 대적하듯 음악이 흐르고, 많은 구멍과 무더기들 속에서 나는 무언가 나타나길 바라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것은 뚫어줄 구멍이 아니라 많고 많은 구멍 중 하나처럼 남루한 결과로 남았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으로 침묵하고 말하길 바라는 나의 기도는 아주 가볍게 뭉개졌다. 베케트는 그 자체가 기도인 (회화) 예술은 기도를 이끌어낸다.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으로부터 갇혀 있던 기도를 풀어낸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영감을 제공한 데생들이 형편없기 짝이 없다고 수첩에 기록했듯이, 내 그림도 내 수첩에 형편없기 짝이 없게 남았다. 나는 망연히 그림을 내려다보다가 창밖을 봤다. 비는 어느 한 곳 모자람 없이 근사했다. 형태도 소리도 분위기도. 내 기억 속에 더더욱 완벽하게.

 

 

  

    

비가 그치면 사람들은 바깥으로 몰려나왔다. 갈 거면서 머물고, 머물고 싶어 하면서 떠났다. 나도 같았다. 우리는 정녕 무엇을 보기 위해. 동피랑 초입 길에 적힌 문구 세상이 다 보인다"는 매우 평범한 문장이지만, 미륵산 정상에서 박경리 선생 묘소를 내려다보며 그의 글 속 문장으로 보면 인상은 사뭇 달라진다.

 

 

마음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벙판 세상은 캄캄해 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

맹세컨대 죽기 전에 반드시 J.J.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 그럴 것입니다.” 이 시기 내내 그는 자기 말들의, 자기 말이라는 질료의 불행을 찾아서, 혹은 불가능한 언어, 박탈당한 자의 언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서 더블린에서 파리로, 또 런던에서 함부르크로 떠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말 그대로 병자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드디어 자신의 불행을 발견하기에 이를 때, 그때 그는 고요한 원동력을 발휘하며 그 안에 정착하리라.

**

어떤 이들은 단테를 따라 모국어만이 언제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유일무이한 언어, 언제나 본질적인 언어라고들 말한다. 혹은 파울 첼란을 좇아 사람은 오직 자신의 모국어 안에서만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들은 모두 낯선 언어 속에서 시인은 거짓말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배신만이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방식임을 안다. 그렇다면 진실은 배반자라고 보아야 하리라. 오욕을 명예로운 자격의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들 중 하나가 그것이다. 193710월에 친구인 토머스 맥그리비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베케트 자신이다. 자기 조국에 대해, 자신의 언어에 대해, 요컨대 자기 어머니에 대해 배신자가 되는 것. 저것, 저 차갑고 푸른 눈 때문에, 그 치명적인 불투명성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면, 그 자신의 과잉에 치여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마땅히 배반자가 되어야 한다.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베케트는 제임스 조이스, 어머니, 아일랜드의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자 한 반면 단테 신곡을 아껴 읽었다. 나는 걷고 또 걸으며 그러한 암석을 계속해서 만났다.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느닷없이 돌 깨는 소리. 길 건너 황량한 평지에서 굴착기 하나가 끊임없이 돌을 옮기고 깨고 있었다. 그 행위자는 반드시 인간이었다. 하나의 연극이자 하나의 삶. 그리고 구경하는 자. 발가락 고통을 이따금씩 느끼며 한참 바라보다가 내 자리(?)를 찾아 떠났다. 박경리 선생 기념관 근처까지 갔으나 초입에 있던 근사한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가지 않았다. 내가 좇는 것은 거기 있지 않았다. 버스는 오지 않았고 왔어도 놓쳤고 나는 계속해서 내게 걷는 형벌을 내렸다. 만날 땐 수줍어하며 반가워하던 개가 내가 돌아서자마자 사납게 혹은 서럽게 짖었고, 서로 일면식도 없던 소년 소녀들을 2시간 뒤 다시 보기도 했고, 반가움도 섭섭함도 없이 늙은 여인들과 잠시 말을 나누기도 했으나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 곳곳에서 찾아온 이들과 갑자기 섞이게 되는 절경의 장소에서 배회하는 까마귀보다 나는 품위 있지도 자유롭지도 못했다. 빛도 비도 숨은 아주 흐린 날, 너는 그러했다. 너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고 풍경이 쉼 없이 속삭였다.

 

 

 

  

 

 

 

  

*

그는 어머니의 방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며 번개가 친다. 그것이 지나고 나니, 그는 안다. 사물들에 관한 일반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얻은 그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아주 비좁은 지식이다. 이제 자신이 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자꾸 곱씹는 일(조이스처럼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않는다……)이 끝난다. 대신, 죽어가는 어머니의 방에서 둥글고도 단단한, 마치 한 개의 돌멩이 같은 말이 떠오른다. 받아들이다(consentir). 자신의 취약함을, 어리석음을, 한계를 받아들이자. 찰나의 계시. 언제 왔었던가 싶게 지나가는 빛.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길디긴 어둠에의 순명(順命).

**

이제 그는 이리저리 헤매 다니는 것을 멈추고 자기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다. 파리 파보리트 가에 위치한 작은 스튜디오. 1938년 이후로 그는 그곳에서 거주해왔으며 1961년 그곳을 뜨지 않을 것이다. 8층 방에서는 몽파르나스 역으로 이르는 철도가 보인다. 모든 작가들은 저마다 하나의 방에 스스로를 유폐한다. 때때로 그 방은 카페의 형태를 띠거나 여객선, 또는 강가 오솔길의 형태를 지닌다. 그곳을 작업실이라거나 집필실이라고, 하다못해 확성기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 어쨌든 그것은 언제나 방이다. 베케트는 방에 처박힌다. 그는 다시 한 번 쥘 로맹을 읽어본다. “나는 들어서야만 하리 / 내 생각 아래의 피신처로 / 혼자 머무르는 나의 방으로.” 자기 생각 아래의 피신처에서 베케트는 1947년에 몰로이, 1948말론 죽다, 1949년에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그리고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엘레우테리아고도를 기다리며를 연달아 쓴다. 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편의 단편과 시,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Textes pour rien」도 쓴다.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기어이 돌아왔다. 내 방에. 지금 창밖에서 나는 바람 소리, 새 소리, 차 소리는 그곳과 다르지 않다. 지극히 정신의 문제일까. 우리는 계속해서 삶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듣고 보고 배운다. 그러나 체감은 다르다. 스스로의 삶을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될 때 우리는 그 방향으로 키를 맞춘다. 날씨의 변화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과 그것들에 목적성이나 상관성이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과 행위가 정말 의미가 없거나 기어코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날씨의 동굴 속에서 바깥을 보며, 나의 동굴 속에서 세계를 보며 나는. 계속해서. 그리고.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8-05-2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휴에 먼 길 다녀 오셨습니다. ㅎㅎ

AgalmA 2018-05-22 22:22   좋아요 1 | URL
이번 연휴 길어서 띵가띵가 하기 좋던데 북다님은 재미나게 즐기셨는지? 또 일에 치여 책에 치여...ㅎ?

2018-05-2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2 22:23   좋아요 1 | URL
구형 스마트폰으로 무슨 대단한 걸 찍었겠어요ㅎ 비도 오고 해서 똑딱이 카메라도 짐이 될 거 같아 안 들고 가서 휴대폰으로 찔끔찔끔 제 기록용으로 조금 찍었을 뿐^^;;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겨울호랑이 2018-05-23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께서는 통영으로 순례를 다녀오셨군요. 통영의 모습 속에서 옛 추억을 발견하게 되네요.^^:)

AgalmA 2018-05-23 21:25   좋아요 1 | URL
순례보다는 방황에 더 가까웠다는 게...이 나이에도...엉엉))
통영에서 좋은 추억 좀 만드셨는지^^? 어릴 때 저곳에서 무지개를 처음 보기도 했고 연도 처음 날려 봤고 눈사람도 처음 만들어봤고 처음이 참 많았던 곳이라 제겐 늘 애틋한 곳이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5-23 21:39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설명이 짧았네요. 통영에는 가 본적이 없지만, 예전 시골의 모습이 많이 보여서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통영은 AgalmA님께 마음의 고향이군요. 아니면 실제 고향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도시에서만 살아서, 시골에 갔을 때는 항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역설적으로 예전 사진을 보면 더 아련함을 느끼게 되네요^^:)

AgalmA 2018-05-23 21:42   좋아요 1 | URL
4시간 넘게 걸으면서 아, 혼자여서 다행이다. 동행이 있음 얼마나 꾸사리를 들었을까 안심하는 한편 혼자 고생해서 서러웠던ㅋㅋ;
연의에게도 ‘첫‘의 기억 많이 남겨 주시길...엄마 몰래 하는 ‘첫‘ 목록으로 혼나지 마시고ㅋㅋㅋ

겨울호랑이 2018-05-23 21:48   좋아요 1 | URL
이런... 그렇지 않아도 연의의 ‘첫‘ 목록으로 아내에게 눈치를 받고 있습니다..ㅜㅜ 연의가 오늘 먹은 첫 사탕, 첫 치토스, 첫 초콜렛 등등.... 주로 ‘첫‘ 군것질로 유지되는 부녀 동맹은 언제나 꾸지람을 동반한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