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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기억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출판사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이건 대학시절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긴 버릇인데, 그래서인지 집에 있는 책도 출판사별로 정리를 해 놓고 있다. 이건 사실 미학적이유이기도 하다. 출판사 별로 총서류를 내놓고 있고, 이 시리즈물들은 대개 디자인도 훌륭하고 가지런히 꽂아 놓을 때 보기도 좋기 때문이다. 이사를 한 뒤 출판사 별로 책을 정리하고 나서 훑어보니 내가 선호하는 출판사들이 한눈에 정리가 되었다.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한길사, 후마니타스, 돌베개, 새물결 등 대개가 인문사회과학 책을 내는 곳들이었다. 흰색 바탕에 빨간 띠를 두른 문학과지성사는 책을 한데 모아 꽂으면 방안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디자인이나 책 장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책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읽고 밑줄을 긋고 책장에 꽂아놓은 책들은 문지도 창비도 아닌 민음사의 책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 가장 많은 책들도 바로 이 출판사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가 창비, 문지, 민음사, 한길사 등의 출판사에 큰 빚을 졌다는 철학자 박구용의 말을 빌자면, 내 생각과 세계관은 이 출판사로부터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읽기에서 시작되었을 민음사 책에 대한 선호는 지금도 여전하다. 오늘의 작가총서, 오늘의시인총서, 세계시인선, 벤야민과 아우에르바흐가 들어가 있는 이데아총서, 김우창·유종호·고은·김춘수 전집, 수많은 단행본들, 그리고 모던클래식과 세계문학전집. 심지어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셜록 홈즈 전집을 낸 황금가지와 칼 세이건이 포함된 사이언스북스. 비룡소의 어린이 책까지 민음사와 그 방계 출판사는 오랜 세월 내 외로움과 고독의 동반자이자 지식과 안목의 밑거름이었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자서전 <>을 읽은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그에 관해서는 김현과 고은, 김병익 등의 책에서 간헐적으로 읽은 바 있으나 그의 육필로 그의 생애와 민음사의 뒷이야기를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 자서전에 싣고 있는 소설 자유풍속을 오래 전 선배의 서가에 꽂힌 50년대 서울대 문리대 문학회지에서 읽은 기억도 난다. 맥파로라는 인상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소설을 썼던 문청출신의 사장이라니 과연 이 출판사의 책들이 왜 문학과 인문학에 집중되었는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그의 품성과 인간적 교유, 가치관과 행태마저도 고스란히 이 굴지의 출판사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하룻동안 후딱 읽어냈는데, 그만큼 흥미롭기도 했고, 내가 가진 특유의 호사취미에 들어맞는 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의 이와나미 쇼뗑이나 프랑스의 갈리마르 같은 출판사들은 나름의 고집스런 자기 원칙과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도 나름의 인문사회과학의 에콜을 형성하고 있는 창비나 문지같은 출판사가 있다. 그러나, 민음사는 김우창과 유종호, 이남호가 편집위원으로 있던 <세계의 문학>이 잘 보여주듯이 민음사는 특정한 에콜과 상관없이 폭넓은 의미에서 인문주의적 시각을 표방하고 있었으며, 좌와 우(라기 보다 자유주의적?)를 아우르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느 출판사보다 기민하게, 그리고 때로는 더 선도적으로 트렌드를 읽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책을 내놓았은 곳일 터이다, 나쁘게 말해 상업주의적 감각에서는 우직한 창비나 문지보다 훨씬 윗길이었고, 책을 펴내는 감각도 탁월했다. 여기에는 김승옥, 정병규, 박상순으로 이어지는 탁월한 북디자이너들의 기여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사회의 문학(인문) 세대의 어떤 부침같은 것이 엿보이기도 한다. 박맹호 곁에는 신동문과 고은, 김현, 김우창, 유종호 등이 있었다.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6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문학의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가장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주역들이다. 고은의 감성, 김현의 문학적 감식안, 김우창의 인문주의, 유종호의 탁월한 비평이 없었더라면, 이 출판사의 오늘도 없었으리라. 김현이 쓴, “문학이 그것을 산출케 한 사회의 정신적 모습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면, 시는 그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이룬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시인총서 발간사는, 개인적으로 20세기 한국문학이 산출해낸 가장 탁월한 문장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헌책방 순례를 취미삼아 다닐 때, 눈에 잘 띄이지는 않지만 보는 족족 샀던 책들이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 정현종의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가 끼어있는 오늘의 산문정신 시리즈였다. 나온 지 오래되었어도 장정이나 편집, 필자와 글도 결코 낡지 않은 책들이었다. 헌책방에 쌓인 저 수많은 책들 가운데 90%는 다시 읽히지도, 읽을 필요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일본어 중역의 날림 번역본 소설들, 디자인이라 할 수 없는 장정, 몽롱하고 애매하며 순응주의적인 긍정의 철학을 설파하는 에세이들 가운데 민음사의 이 시리즈는 오롯하게 그 현재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책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시간의 풍화작용과 패러다임의 변혁을 겪고 나서도 남는 것, 사상과 콘텐츠로서만이 아니라 물질로서의 책도 남을 수 있어야 하는 것,

 

박맹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우리시대의 한 탁월한 출판편집자가 그런 책을 낸 사람중의 하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는 정미소를 운영하는 부자아버지를 두었으나 그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인문출판의 커다란 산실을 만들었다. 그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지만 대개 저자를 만나고 책을 만드는 것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수천그루의 나무를 희생하여 출판시장에 상품을 내놓는 일일지라도, 지금 세상에서는 가장 를 짓지 않고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거나, 남의 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강탈하거나, 현혹과 요설과 악문으로 살아가는 일이 대부분의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일진대,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 그게 가장 행복한 직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을 통해 본 박맹호의 삶은, 아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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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언은 “농성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경찰특공대원의 진술이다. 검사가 “이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동료 한명이 불에 타 죽고, 화염병 불꽃이 튀는 아비규환의 현장에 서 있던 그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화염병을 든 ‘농성자’였을 것이다. 그 너머를 보기란 그에게 아주 지난한 일이었을 터.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적대자’(이 표현은 경찰이 쓴 표현이다.) 앞에서 자신과 타자의 행위의 근거를 찾는 일은 보통의 인간들에게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인 개발 행위, 그것도 빠른 속도로 도심 재개발을 해야 한다는 자본의 욕망이 산출하는 ‘파시스트적 속도’, 도시주거의 최하부에 위치한 세입자들의 요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권력과 자본은 보이지 않는다.



1심 판결의 판사가 “공무집행중이던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많은 경찰관이 다치게 한 행위는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피고인들에게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할 때, 나는 웃고 말았다. 그에겐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양상에 대한 인식만이 있을 뿐, 그 사건의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 양상에 있어서도 경찰관의 죽음이라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만이 보일뿐, 화염병을 들고 망루위에 올라간 사람들의 행위가 갖는 의미는 보여질 않는다. “이건 재판이 아니야”라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판사에게, 진압 특공대에게 본질을 보라고 외쳐본들 이들의 인식의 피상성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말 늦은 밤, 혼자서 광화문 인디영화관에서 <두개의 문>을 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권력의 비가시성’이라는 푸코의 주제가 줄곧 맴돌았다. 돌이켜보면, 실제적인 결과를 산출해내는 ‘권력’은 보이질 않고, 권력주변의 이런저런 판단과 우연들이 합쳐지면서 어떤 내부의 컨센서스가 도출되고, 그 컨센서스는 때로는 폭력적으로, 때로는 더 잔인하게 현실의 변화를 추동해낸다. 오랜 관찰과 경험을 통해 내리게 되는 결론이다. 최초의 근원이 될,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당중앙’은 원작자를 찾기 어려운 문서거나 책임자가 불분명한 ‘의견의 집합’으로 존재한다. 영화는 용산참사가 일어나게 된 먼 원인을 이 정부 초기의 강력한 공권력 발동의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변죽을 울리고 마는데, 권력의 작동방식이 보이질 않으니 그저 변죽일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부에서 MB는 파업과 농성, 시위와 같은 ‘떼법’이 사라지고 법치가 확립되면 GDP가 올라가고 경제성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우리 사회의 보수적 엘리트들이 공유하는 이 믿음의 근거없음은 한국경제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력한 공권력 행사와 그를 통한 ‘법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떠한 실증적 자료도 근거도 없다. 노동유연성의 강화가 실제로 국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실제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권력은 오히려 이런 보이지 않는 믿음의 집합에 의해서 작동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허황한 믿음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대체로 자명하다. 언론이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온 이데올로기와 강단의 추상적 이론들에서 연역되었던 논리들, 그 암묵적 믿음을 줄곧 확대재생산해온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 이 모든 것의 결과들이다. 참으로 견고하여 도무지 깨지지 않는 이 비가시적 권력장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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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2-07-0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도 개봉못할번 하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개봉했다고 하죠 이런 다큐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근처에는 개봉하는영화관이 없어 dvd나올때까지 기다려여 겠네요 강대국에 음모론이 활개치는 이유가 결국 투명하지 않는 정치정책들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을 숨기므로 인해 권력유지의 도구로 쓰는 북한의 경우 전면적인 정보 통제로 인해 국민을 통제하잖아요
 

절판된 <사랑의 묘약>(문예출판사)과 최근 나온 <엘제아씨>(문학과 지성사) 두 책 모두에 실린 슈니츨러의 단편 <내가 만났던 중국인>은 총살 당하기 직전에도 책을 읽고 있는 중국인이 등장한다. 이 중국인은 의화단의 난에 연루된 인물로 3시간 뒤면 총살당할 처지다.  독일군 장교인 주인공은 그를 기이하게 바라본다. 도대체 죽음을 앞두고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태평스럽게 책이나 읽고 있다니, 저런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그에게 왜 책을 읽고 있냐고 묻자 세상일이란 어찌될지 모르니 그저 책이나 보는 수밖에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중국인에게 감동한 독일군 장교는 상관에게 부탁해 그가 석방되도록 한다.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법, 어디서 흘러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법 아니겠는가.

말기암 환자 김현의 병상을 오고 갔던 이인성은 ‘죽음 앞에서 낙타다리 씹기’를 회고하고 있는데, 그런 죽음 직전의 ‘몽상’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과연, 세상일이란 알 수 없으며,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느닷없이 축복과 벼락이 동시에 들이 닥치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망명지로서 책은 차라리 안전하고 오히려 쾌적하다. 거기가 환멸의 거처이며 패배의 귀착지일지언정, 마음을 고문할 주리와 형틀은 없으리니. 새된 목소리로 반경 100미터 이내에서 지저귀는 소리들은 제껴두고, 그저 책이나 보자. 세상일이란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법이니, 알려는 시도도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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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qui 2010-12-1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한 태도는 존 그레이식의 관상주의라고 불릴 수도 있을것 같군요...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에서 달린 리뷰를 보고 와봤는데 내공이 장난아니십니다 감탄하고 갑니다. 게다가 사라 워터스를 보는 남자분은 별로 못봤거든요ㅎ 혹시 언론사에 몸담그고 계시나요?

모든사이 2010-12-17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 감사드립니다. 저는 조금 무료한(?)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입니다. 최근에야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라워터스는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되어 읽었는데, 제 19세기 감성과 잘 맞아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님 아이디는 예의 그 '블랑키'이겠네요?

Blanqui 2010-12-17 15:0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예의 그 블랑키가 맞습니다ㅎ 저는 사실 사라 워터스를 영드로 먼저 접했지요. 영국 시대물 드라마가 또 참 재미있어요. 특히 빅토리아 시기의 문학작품을 드라마로 많이 제작하는데 디킨즈의 리틀 도릿이나 황폐한 집, 엘리자베스 개스캘의 '남과 북' 등 많은 작품들이 이미 영상물로 재탄생되었더라구요 이미 보셨을 것 같지만ㅎ

모든사이 2010-12-1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도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영드로 보고 나서, 나중에야 <벨벳 애무하기>를 읽었는데, 책 읽고 나서 다시 그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작가가 사라워터스라는 걸 그때에야 알게 됐지요. 사라 워터스 열성팬 한명이 추천하는 바람에 읽고 알게 됐다는... 블랑키가 맞다면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도 좋아하시겠군요.. ㅎㅎ
 

 

#1. 지난 토요일 아침 부스스한 눈으로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들어보니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해왔으니 부고기사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와 인연은 없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의 글을 읽어왔기 때문에 집안의 먼 친척 한분이 돌아가신 듯한 느낌이었다. 한겨레에 연재되던 칼럼을 꼬박꼬박 챙겨 읽었고, <사회와 사상>에 실린 논문을 밑줄 쳐가며 읽었으니 내 과거의 한 때 그는 내 일상의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2. 한길사에서 나온 <리영희 저작집>을 검색해보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이후 그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리영희, 임헌영 두 분이 함께 나눈 <대화>는 물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책은 <분단을 넘어서>였던 것 같다. 대학 학보사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 이던 이 책을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배를 깔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전환시대의 논리>야 그보다 이전에 나온 책이지만, <우상과 이성>을 읽은 뒤에야 펼쳐봤던 듯 싶다. 그 다음에 <역정>, <자유인>으로 넘어갔고, 어느 순간 리영희 선생의 글이 재미없어졌다.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그가 엮은 <중국백서>나 <베트남 전쟁>류의 책들도 읽을만한 부분만 발췌해서 봤던 것 같다.

#3. 그와 그의 책에 대해서 떠오르는 몇 가지 사념들.  

 

그러니까, 오늘 아침 그의 부고기사를 읽은 뒤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창밖 풍경을 보며 떠올렸던 기억들이다.  


#4. 버스의 라디오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북 삐라를 살포하라는 '권고'를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전쟁이 터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가 읽고 있었다는 에드워드 기번의 영어본 <로마제국쇠망사>. 지방의 어느 소도시에서 당시로서는 희귀한 재능이었을 영어 독해력으로, 두터운 기번의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청년의 모습. 전쟁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다급해졌을 법한 데, 천년 전에 망한 한 제국의 역사를 탐독하는 모습은 기이한 열정으로 비춰졌다.

#5. 버스가 수색을 지나 모래내를 지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어디선가 그는 한글본과 영어본, 불어본으로 세 번 읽었다고 고백하는데, 불어본을 본 것은 감옥에서였다. 영어와 중국어, 일어, 프랑스어까지도 능통했으니 빅토르 위고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한 에세이에서 그는 장발장의 생애를 읽어가면서 한국의 검사들이 가진 기본적 소양의 부족과 더불어 그다운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을 체포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이었는데, “체포영장”이 없어서 못했다는 것. 19세기의 프랑스에서도 영장을 통한 체포와 구속이라는 최소한의 사법적 절차가 지켜졌는데, 20세기 후반의 한국에서는 그조차도 없었다는 것.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던 탄식을 나는 영화 <타인의 삶>을 보면서 느꼈는데, 이 영화는 동독 비밀경찰조차도 ‘영장’이 없어 용의자를 체포하지 못하고, 그들이 남긴 도청과 감시의 기록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산당 지배에서조차 사법적 절차에 대한 준수와 기록물의 보존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6. 연세대에서 하차.  

 

1991년 1월 연세대 장기원 기념관. 거기서 리영희 선생은 ‘사회주의는 이기적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언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폐기선언’이라고 기사를 썼다. 굴곡진 얼굴로 발표문을 읽다가 가끔 청중을 보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르크스주의는 실패했으되,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휴머니즘은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보존되어야할 담론이라는 것. 알뛰세가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불렀던 전기와 후기의 마르크스 중 전자만이 가치있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선언이었다. 좁은 공간에는 젊은 열정들이 눈을 초롱초롱 밝히고 있었다. 지금은 연세대 교수가 된 박명림이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메를로 퐁티와 사르트르의 결별’을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당신의 선언은 메를로 퐁티의 전향과 무엇이 다르냐는 식의 질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을 둘러싼 프랑스 지식인들의 논쟁과 <휴머니즘과 폭력>을 썼을 당시의 메를로 퐁티를 거론했을 것이다. 그의 책들로 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는 이성적 합리주의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마르크스주의의 폐기라니, 언제 그가 마르크시스트였던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주 일요일에 가깝게 지내던 서울대 법대를 나온 선배 하나가 리영희 선생의 선언에 충격을 받았다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생각이 난다. 그는 <전환시대의 논리>의 세례를 받은 세대였던 것.  


#7. 환승 버스를 기다리며.  

 

1976년 당산 대지진. 미 국무부가 수집정리한 중국 관련 정보를 모은 <중국 백서>를 편역할 만큼 중국 전문가였던 리영희 선생은 당산 대지진과 그해 일어난 뉴욕의 정전사태를 비교하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인간형을 비교했었다. 당산에서는 약탈과 방화 같은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에 비해 뉴욕은 잠깐 동안의 정전 사태에 가게 유리창이 부서지고 온갖 약탈이 자행되었던 것.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중국이 개혁개방이 된 이후 당산을 다녀온 신경림 선생은 당산에서도 마찬가지로 약탈 사태가 일어났다고 쓰고 있다. 리영희 선생은 중국의 ‘공식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료와 사실에 근거한 그의 글쓰기에도 오점은 있었던 것.

#8. 버스가 독립문 고가를 지난다.  

 

저 건너 시사인이 있던 자리에 출판사 까치가 있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대학시절 정운영 선생의 책을 얻기 위해 이 출판사에 갔었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이 일본에 갔다가 발견해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책이다. 일종의 섹스와 그것을 둘러싼 풍속의 변천이라할 이 책은 소재와 달리 유물론적 사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발터 벤야민은 푹스에 대해서 에세이 하나를 쓰기도 했다. 섹스의 풍속사와 리영희 선생은 어째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지인들은 술과 욕망에 대해 솔직하리만큼 충실했던 분으로 회고한다. 엄격하고 치밀한 글쓰기 저 편에 그런 세계가 존재했다는 것은 차라리 위안이다.  


#9. 버스 왼편으로 보이는 서대문형무소.  

 

열화당에서 나온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때 세워진 서울 도심 부근의 이 형무소가 이사하던 것을 계기로 사진과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리 선생은 1964년 이 감옥에 갇혔던 경험을 이 책의 한 에세이에서 풀어 놓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나서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갔다. 지금은 메이저 언론의 사진기자가 된 친구와 함께 형무소 담벼락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어두컴컴한 옥사 복도 안으로 햇볕이 비치는 것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내가 찍은 사진은 형편없었으나 친구가 찍은 사진은 전문가답게(?) 매우 훌륭했다. 건축 관련 사진을 리포트로 제출하라는 ‘한국건축사’ 수업에 친구의 사진을 제출해 A+를 받았다.  


#10.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에서 남대문 방향을 보면 조선일보 코리아나 호텔이 정면으로 보인다. 광화문 광장의 시야는 저 흉물스러운 빌딩 하나가 망쳐 놓고 있다.  

 

조선일보 남재희-리영희 충돌사건.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외신부장 사이에 벌어진 이 싸움은 신경전을 넘어서 물리적 폭력이 동원된 사건인데, 어째 리영희 선생의 <대화>에 나오는 회고와 다른 지인들의 회고는 정반대다. 단순히 간부급 기자들의 충돌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을 지배하던 두 지적 논객의 충돌이자 서로 다른 사상적 패러다임의 충돌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기이한 것은 이들 서로 다른 두 지성이 지주의 아들이자 천하의 바람둥이 소설가였던 이병주와의 교류와 친밀함에 있어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할 정도로 긴밀했다는 점이다. 이병주는 출옥한 뒤 세상물정을 공부한답시고 당시 신문을 샅샅이 뒤져 읽었는데, 그중 조선의 외신면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고 부장인 리영희와 교유를 텄고 둘은 아주 친해졌다. 리영희는 해고 뒤 이병주가 차린 출판사 ‘아폴로’(이 社名은 촌스럽기 그지 없으나 당대의 분위기에서는 아주 지적으로 보였나 보다.)의 외판사원 노릇을 잠시 했다. 남재희 선생은 이병주의 박람강기와 술, 여자에 대한 탐닉을 즐거워했다.(<언론정치 풍속사>, 민음사) 그런데, <지리산>의 이병주는 일급의 소설가라기보다 사실 삼류에 가깝다.

11. 어느새 버스가 회사 앞에 도착했다. 삼가, 내 한 시절의 지적 스승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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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12-1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토요일은 아니고 월요일이었지 않나요.
-19일까지 통화 불갑니다. 출장이 좀 길어서요.
-예산안 날치기 보니 돌아가고싶은 맘 싹 가시네요.
그런다고 뭐 뾰족한 수 있는 건 아니고...
-남아공입니다

미국사람 2011-08-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이에자이트님의 이영희 선생 글에 붙은 댓글을 보고 여기까지 타고 왔네요.

88년에 미국에 왔지만 이영희 선생책은 대충 다 찾아 읽었는데 박명림과 그런 일이 있었더군요. 남재희와 이병주의 일도 그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유신 말기에 대학을 다닌 사람중에 이영희 선생을 자신의 거울로 삼은 사람이 꽤 될겁니다. 영어로 하면 role model 이라고 하나요.

요즘 한국소식은 참 우울한데 이 시대에는 이영희가 왜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민주화의 이익을 어떤 이상한 사람들이 전부 해먹었다하는 생각은 왜일까요.

이영희 선생 생각에 한마디 해 보았읍니다.
 

선과 악이라는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행복이거나 불행, 둘 중 하나다. 사람도 그러해서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될 뿐이다. 악한 본성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도 악할 수밖에 없으며, 선한 본성을 가진 사람은 어떤 비참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결국은 그의 본성이 드러나 사회적 배려와 축복을 받게 마련이다. 주말 동안 디킨즈의 오래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윤혜준 옮김, 창비)를 읽으며 이 놀랍도록 단순해서 차라리 행복해지는 세계에 젖었다. 불운한 결혼으로 잉태되어 구빈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착한 소년’ 올리버와 그를 둘러싼 선인과 악인들의 이야기. 세상은 부유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의 선한의지와 자선과 배려에 의해서, 그리고 심성이 ‘원래’ 착한 사람들에 의해서 구원되리라는 소박한 전언은, 복잡한 이해와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되지 않는 이 복잡하고도 난해한 현실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착하게 살아라”라는 ‘크리스마스 철학’을 설파하는 이 19세기 작가에게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리라.

이런 소박한 철학은 사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지배하는 ‘사상’일 것이다. 불운한 출발, 험난한 역경과 의지로 이뤄낸 극복, 예기치 않은 도움과 구원의 손길,  그제서야 풀리는 오해와 인연, 지옥에 떨어지는 악한, 결국 사랑과 행복에 이르는 선한 사람들, 이런 멜로드라마는 브로드웨이와 피카딜리를 지배하는 삶의 철학 아니던가.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디킨즈는 절대로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지 않고, 행복한 결합과 화해로 이끄는 뮤지컬 장르의 문법을 처음으로 세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미국 중산층과 여피의 철학을 현대적 대중예술로 이끌어 올린 미국식 뮤지컬이, 왜 우리사회에,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유행하는지를 별로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런 멜로드라마의 선명한 이분법의 세계는, 소파에 다리를 뻗고 길게 누워 ‘즘생’처럼 퍼져있고 싶은 주말에 딱 어울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ps 1. <올리버 트위스트>는 하도 많이 나와 어지러울 정도다. 검색해보니 아동용으로 각색된 다이제스트본도 있는 것 같고, 수십 년 전에 나왔던 것을 표지와 활자만 바꿔 다시 펴낸 것도 있는 것 같다. 창비판에는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추천한 ‘최고의 번역본’이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는데, 과연,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 19세기 런던 뒷골목의 지저분하고 음습한 분위기는 번역자의 뛰어난 문장 덕에 아주 실감나게 복원돼 있다.


ps 2. 디킨즈 소설을 읽다가 아주 오랜만에 아놀드 하우저를 뒤져 봤다. 기억할 만한 대목이 있어 인용해 둔다. 오늘은 12월 1일. 지금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국가의 제도적 의지와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개인의 선의지와 자선에 기대어 풀어보려는 빨간색 자선냄비가 등장할 시간인데, 하우저의 디킨즈에 대한 지적은 이 ‘크리스마스 철학’이 은폐하고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디킨즈는 처음부터 예술적으로 및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문학의 새로운 타입을 대변했다. 호감을 사지 않는 곳에서도 그는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의 사회적 주장이 전혀 마음에 안들 때에도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서 재미를 느꼈다. 그의 예술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은 서로 분리될 수 있었다. 그는 사회의 여러 죄악, 부자들의 냉혹과 거만, 법의 가혹성과 몰이해성, 어린이에 대한 잔인한 취급, 감옥과 공장과 학교의 비인간적 조건들, 한마디로 모든 제도적 조직체의 속성인 개인적 고려의 결핍에 대해서 불꽃 튀는 어휘로 분노를 터트렸다. 그의 고발은 모든 사람들의 귀를 시끄럽게 울렸고, 사회 전체에 부정의 책임이 있다는 불안한 느낌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채웠다. 하지만 고난의 외침과 실컷 울고 난 다음에 으레 따르기 마련인 만족감을 뭔가 보다 확실한 것으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작가의 사회적 메시지는 정치적으로 결실이 없었으며, 그의 박애주의 역시 예술적으로 매우 고르지 않은 결실을 맺었다. 그것은 인물들의 심리학에 대한 작가의 공감을 깊게 했으나, 동시에 그의 눈초리를 흐리기 만들기 쉬운 하나의 감상주의를 낳았다. 그의 무비판적 인정주의, cheeryblism(막연한 온정주의), 소유계급의 사사로운 선의와 선행이 사회적 결함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은 마지막까지 분석해 본다면 그의 애매한 사회의식에서, 계급들 사이에서의 그의 소시민적인 미결정적 위치에서 기원한 것이었다. .. 그는 과거 부르주아지의 건강하고 비감성적인 이기주의를, 텐느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크리스마스 철학’으로 변질시켰다. “착하고 서로 사랑해라. 가슴의 느낌이 유일한 진짜 기쁨인 것이다. 학문은 학자에게, 자존심은 점잖은 사람들에게, 사치는 부자들에게 맡겨두어라.” 디킨즈는 이 사랑의 복음의 알맹이가 정말 어떤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약속된 평화가 사회의 약자들에게 얼마나 비싼 희생을 치르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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