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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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은 백혈병으로 연인과 이별한다. 뒤마의 로맨스 소설 ‘춘희’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결핵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낭만적 사랑의 주인공들은 왜 항상 ‘불치병’으로 최후를 맞이할까. 미국의 근본주의 목회자인 제리 폴웰은 “에이즈는 신이 자신의 법도대로 살지 않는 사회에 가한 심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질병은 그저 질병일 따름인데, 인류는 때로 질병을 낭만화하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극우 선동가 장 마리 르펜이 정적들을 일컬어 ‘에이즈 같은’(sidatique)이라 외치는 걸 보면 때론 질병 그 자체보다 그를 둘러싼 소문과 은유들이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수잔 손택은 결핵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도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문필가다. 미국 펜클럽 회장으로 한국을 방문해 구속문인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던 그녀는 극작가·영화감독·소설가·문화비평가·사회운동가 등 전방위 문화활동가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그녀 자신의 체험에서 길어올린 성찰을 바탕으로 질병에 얽힌 신화와 은유들을 해부하는 독특한 에세이다. 그녀의 관심은 결핵·매독·역병·에이즈 등 인류사와 함께 변천해온 질병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질병이라는 왕국의 지형을 둘러싸고 날조되는 가혹하면서도 감상적인 환상”이다.

질병은 언제 어디서든 형태를 달리하면서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우리가 질병을 묘사하고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결핵은 빈곤과 결핍의 이미지를 지녔다. 18, 19세기의 문학에서 결핵은 창백한 외모를 지녔으나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인물과 함께 등장한다. 건강한 사람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천박한 사람이다. 가령 프랑스의 유미주의 작가 테오필 고티에는 “나는 어렸을 적에 99파운드(약 45kg)이상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서정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시인이란 모름지기 폐결핵에 걸려 있거나 우울증에 걸려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결핵이 문학을 통해 ‘낭만화’되었다면, 암은 정반대다. 암은 미화될 수 없고 파괴돼야 할 절대악이다. 그래서 암에는 항상 전쟁의 수사학이 따라다닌다. 우리 몸을 ‘침략’하고 있는 암은 ‘전쟁’을 통해 ‘발본적으로’ ‘정복’돼야 한다. 매독에는 항상 수치와 도덕적 단죄라는 의미가 붙어다닌다. 에이즈는 한술 더 뜬다. 에이즈는 ‘종말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에이즈공포증(aidsphobia)을 유포하는 사람들은 도덕적 타락의 결과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재앙이 도래했다고 분노한다.

손택은 질병에 덧씌워진 은유들을 까발리면서 그것에 내포된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정치학’을 폭로한다. 그녀가 이같은 수고를 자처한 이유는 질병의 은유가 국가와 시민사회, 나아가 전 인류가 절망적 위기에 처했다는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로 그 은유들은 독재자의 선동술로 쓰이기도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고 설파한 바 있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는 ‘암’과 동일시돼 왔다.

질병의 은유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배제의 수사학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손택이 보기에 그것은 자비와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훼손한다. 한편으로 금욕주의라는 문화적 퇴행을 부추기기도 하고, 국가기구를 동원해 개인의 신체를 ‘관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질병 자체에서 이런 의미와 은유들을 떼어내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우리에게 위안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질병에서 신화와 은유를 벗겨내려는 손택의 작업은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그녀의 독특한 비평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다. 환자의 고통은, 질병 그 자체의 고통도 있지만, 질병에 씌워진 무수한 은유적 해석들-수치심·편견·범죄 혹은 죄악시하는 태도-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질병의 은유를 벗겨내 ‘투명하게’ 질병과 대면하는 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현대는 수사학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다.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등의 저서를 통해 강조하는 ‘투명성’은 온갖 현란한 이미지들을 걷어내고, 사물 자체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잔 손택은 이미지와 수사의 층위를 걷어내고 사물의 원형을 찾아가는 ‘현대의 고고학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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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2011-07-2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해 1월 22일에 별세하신 박완서 선생은 병명이 담낭암이셨다는데, 갑작스럽게 가신 것이 마치 암의 은유가 육신을 추하게 범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 하신 것만 같습니다. 암튼 손택의 이 책은 이제 일반인과 전문인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어엿한 고전이 돼 있는 듯 하네요.. 손택은 <사진에 대하여>라는 책이나 소설까지 쓴걸 보면, 관심의 폭이 매우 넓은 해박하고 유연한 지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사이 2011-07-3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택 책 가운데 가장 처음 번역된 게 아마 <사진이야기>가 아닌가 하는데, 그 뒤로 대표작들이 대부분 번역 소개된 것 같습니다. 이 리뷰는 책이 나왔을 무렵에 쓴 리뷰인데... 아래 고고학 운운한 걸 두고 푸코를 잘못 읽었네 어쩌네 하던 사람이 기억나네요.. ㅎㅎ

트레바리 2011-08-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코의 고고학에서도 '언어'의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고, 언어라는 것이 결국 "은유의 무리들"(니체)이라면, 손택 여사의 작업도 푸코와 공유하는 면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푸코의 선행 작업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그 때문에 손택의 책이 빛바래지는 않는 것 같네요..
 
Love 러브 - 사랑하는 영혼만이 행복하다
메이브 빈치 지음, 정현종 옮김, various artists 사진 / 이레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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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실어 나르는 것은 말이 아니라 육체다. 나와 타자의 관계를 숙고했던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애무 속에서의 타인을 위한 자아”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을 역설한 것이다. 말은 공중에 흩어져 순식간에 날아갈 뿐이지만, 그의 손길은 내 몸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남자와 여자의 에로스만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와 친구 사이에서도 ‘애무’는 친밀함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육체적 행위다.

사진작가 지오프 블랙웰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1999년 뉴질랜드의 한 출판사와 손잡고 ‘M.I.L.K.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Moment of Intimacy, Laughter, and Kinship’(친밀감과 웃음, 가족애의 순간들)의 약자로 전세계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공모전의 이름이다. 전세계 1백64개국에서 1만7천여명의 사진작가들이 출품한 4만여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러브 : 사랑하는 영혼만이 행복하다’는 이 프로젝트에 공모한 사진들중 ‘사랑’에 관한 것을 모은 사진집이다. M.I.L.K. 프로젝트를 통해 펴낸 세권의 사진집중 두번째 책으로, 다른 둘은 제각기 ‘Friendship’·‘Family’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마지막 권인 ‘Family’도 1월중 출간될 예정이다.

‘러브…’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사랑의 순간들을 예민한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사춘기에도 이르지 않은 두 소년 소녀가 서로를 눈으로 ‘애무’하고 있는 사진 밑에는 “그토록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인 첫사랑을 어떻게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쓰여 있다. 과학자도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을 거두고 사랑 앞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 법. 복잡한 거리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아래)에게 풍기문란의 죄를 묻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기의 세 시선이 교차하는 사진(오른쪽 아래)은 또 어떤가. 이 3대를 잇는 사랑이라는 끈 앞에서 그들의 행복을 잠시 질투해도 좋을 것이다. 쭈글쭈글한 두 노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바다를 향해 걷는 사진(오른쪽 위) 옆에 붙은 “당신을 사랑하리. 내 사랑/당신을 사랑하리/중국과 아프리카가 만나고/강물이 산으로 오르며/연어가 거리에서 노래할 때까지”라는 영국 시인 W.H.오든의 시구는 차라리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내가 병상의 남편에게 점자책을 더듬으며 읽어주는 사진에선 보이지 않되 보이는 것은 아내의 목소리에 필시 담겨 있을 축축하고 곡진한 애정이다.

‘러브…’에 실린 1백장의 사진들은 친밀감·웃음·가족애라는 소제목을 달고 배치돼 있지만 그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오히려 ‘애무’라 할 만하다. 사진들은 바다의 동과 서, 땅의 이쪽과 저쪽에서 보내온 것들로 거기엔 백인종과 흑인종, 황인종이 뒤섞여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은 ‘육체성’임을 잔잔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부단한 애무를 통해 사랑을 키워간다는 메시지다.

이 사진집을 집어 든다면 책 뒷날개에 붙은, 역자인 시인 정현종의 말을 기억하자. “그 감정과 욕망의 순간적인 표정들은 아주 진실해서, 사진 안쪽은 참되고 사진 바깥쪽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게 모두 우리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니.” 그러므로 행복은 사진 속에만 있지 않고 ‘바깥쪽’에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독자에게도 현현할 터, 그 지복의 순간을 경험해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사진이 영혼을 빼앗아 간다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속설은 아무래도 진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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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담배 - 담배에 빠진 혹은 삐진 당신을 위한 정신분석 이야기
필립 그랭베르 지음, 김용기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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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충고에 대해 골초들이 흔히 드는 사례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다. 독한 시가를 피워대며 90세 넘어까지 살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애연가들은 1950년 이후 처칠이 물고 있는 시가에 불이 붙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기침이 너무 심해 담배를 끊었고, 늘 시가를 물고 있던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처칠은 사진기자만 나타나면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애연가들이 또 하나 들 수 있는 사례는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1865∼1945)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그 자신이 “입술 사이의 뜨거운 느낌”이라고 부른 시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냈다. 하루 20개비 이상의 시가를 피워댔고, 그 때문에 구강암 수술을 수차례 받았지만 입에서 시가가 떨어진 날은 많지 않았다. 24세때 담배를 처음 배워 억지로 빨래집게로 입을 벌리고 그 사이에 시가를 끼워 넣었던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지독한 골초였다.

‘프로이트와 담배’는 이 예민한 정신분석학자와 흡연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프로이트와 담배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는 전기 따위는 저자의 관심이 아니다. 그 자신이 흡연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 필립 그랭베르는 ‘담배’가 사실은 프로이트 이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프로이트에 대한 정신분석을 행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시가는 시가일 뿐”이라며 흡연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려 했지만 저자는 그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흡연자의 ‘무의식’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는, ‘골초들에 대한 정신분석’인 셈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유쾌한 입문서이자 새 해 첫달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금연 결심을 깨고 다시 담배를 꺼내든 이 땅의 수많은 흡연자들의 심리분석서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담배의 기원에 대한 시리아의 한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한 선지자가 독사에 물린 뒤 그 상처에 스민 독을 입으로 빨아내 땅에 뱉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풀이 자라 나중에 담배가 됐다는 얘기다.

담배는 “독처럼 쓰라리면서도 동시에 선지자의 침처럼 달콤한 것”, 쾌락과 위험이 동시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는 전언이다. 사형 직전의 사형수에게 최후의 위안물로 건네는 것도 바로 담배다. 그것은 죽음 직전의 쾌락이자 죽음을 향한 쾌락이다. 담배는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다. 흡연자들이 이것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자신의 폐를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꺼내들고 불을 붙이는 그들의 ‘무의식’에는 쾌락과 불안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을 터.

도대체 흡연자들은 왜 담배를 피우는 걸까. 프로이트 이론을 경유한 저자의 설명은 전형적인 프로이트적 해석이다. 정신발달의 초기인 구순기적 해석에 따르면 담배를 빠는 행위는 “예전에 엄마의 젖가슴을 탐하던, 내 입술로 포착했던 이 세계를 다 다시 소유할 것 같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때 담배는 어머니 젖과 등가물이다. 그러므로 흡연자들은 아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나는 ‘남근기’에도 이르지 못한 퇴행기의 유아다. 본능적 욕구가 그저 ‘싸는데’에 집중되는 항문기적 해석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는 행위로 설명된다. 이는 똥과 연결되는 흡연의 쾌락을 의미한다.

무수히 많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소설가의 신경질적인 담배 끄기를 상상해 보라. 그들의 정신적 발달은 아직 항문기에 고착돼 있다. 프로이트는 또 말한다. “자위는 인간의 본질적인 주요한 습관이자 원초적 욕구이고, 술·담배·모르핀은 그 대체물, 대용물”이라고. 그러면 담배는 남근이고, 흡연 행위는 마스터베이션? 담배를 꺼내 물고, 피우며 비벼끄는 단계는 흡연자에게 구강기에서 항문기·남근기까지를 순식간에 재경험하게 한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이 책을 금연협회쯤에서 펴내는 계몽도서로 착각하면 안된다. 저자는 소설적 묘사와 심리극 대본,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뒤쫓는 전기물의 형식을 엇갈리게 배치하면서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놓고 있다. 이 책은 술과 담배, 마약과 인터넷 등 모든 중독증 환자들에게 자기분석의 경험을 제공한다. 중독증 치유의 첫걸음은 자신이 왜 빠져 있는지를 아는데 있지 않는가. 담배는 ‘푸른 천사’이자 “욕망의, 잡힐 듯 끝내 잡히지 않는 대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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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지음 / 삼인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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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문명’은 미국 외교와 정치문화에 깃들여 있는 ‘미국 정치의 정신사’를 탐색하는 저작이다. 그동안 미국 정치와 관련된 국내 저작들은 대부분 ‘선진적인 제도’라는 이유로 앞다투어 미국 선거제도와 정치행태를 소개해 왔다. 미국 외교사를 전공한 저자 권용립 교수는 이같은 행태가 “미국 정부를 선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그는 미국의 정치적 담론과 거기 스민 세계관·역사관을 해부하는 포괄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유럽 문화로부터 문명적 자양분을 공급받은 미국은 독립 이후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이 1830년대 잭슨 민주주의 시대에 미국을 여행한 뒤 펴낸 ‘미국의 민주주의’ 이후, 미국 연구가들이 취한 관점은 미국의 ‘예외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미국적 가치’도 그래서 생겨났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이 정의 내리고 있는 ‘자유’다. 저자는 “근대 영국이나 프랑스의 ‘자유’가 시간적 타자, 즉 과거에 저항하는 것이었다면 봉건제 같은 과거 유산이 없는 미국에서의 ‘자유’는 공간적 타자, 즉 미국의 외부나 미국의 적을 부정하고 또 징벌하는 내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왜 그토록 ‘불량국가’의 단죄에 집착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자유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자의 타자’로서 존재한다.

저자가 취하고 있는 ‘정치문명’이라는 관점은 미국 정치의 이데올로기 분석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문명이란 “집단으로서의 미국을 미국이게끔 만드는 정신”으로 건국이래 현재까지도 관류하고 있는 미국의 집단정신을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정치문명의 뿌리로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는 고대 공화주의, 개인의 자유에 집착하는 근대 자유주의,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칼뱅주의, 세가지를 지적한다.

이 세 담론이 뒤섞여 미국의 독특한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 만들어졌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그리스-로마 문명과 기독교 전통 속에서 서서히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져갔다면, 미국은 반대로 정치이념과 국가를 먼저 설계해 놓고 그 이후에 여러 인종을 받아들여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광신적 애국주의같은 미국인들의 독특한 정치적 응집력과 ‘미국은 특별한 나라’라는 신화, 외교상의 절대적 선악관념과 십자군적 사명감도 거기서 비롯한다.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 임박해 있고,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독선과 좌충우돌은 역사상의 돌출이 아니라 미국사 2백년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미국과 미국 정치의 뿌리를 만져보는 경험, 그게 이 책의 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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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충고 - 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김영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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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가 자신의 역할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은 미국의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다. 리프먼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여론’이 기실 대중들의 주관적인 이미지이거나 정형화된 견해(stereo type)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진실과 뉴스는 동일하지 않다”고 믿는 그는 자신의 칼럼 ‘오늘과 내일’을 통해 사실 ‘너머’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김영희 대기자는 리프먼을 “복잡한 현상을 지성화하는 지적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한다. 얽히고설킨 사실들의 세계를 배회하며 ‘밀과 쭉정이’를 구분해내는 것, 그것이 리프먼의 에피고넨(아류)을 자처하는 김영희 대기자 스스로가 규정한 역할이다.

‘마키아벨리의 충고’는 현역 기자로 40여년의 세월을 보낸 국내 언론사의 1호 대기자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집이다. 1998년 5월부터 매주 수요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됐던 ‘투데이’ 칼럼을 모은 것이다. 한국 근대사 1백년이 늘 그랬듯이 그의 칼럼이 연재됐던 5년여 세월도 유난히 험난했다. 그 세월동안 그는 권력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권력의 도덕성 부재를 질타하고, 국제현실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해 왔다. 그의 칼럼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자극하는 좁쌀정치”에 보내는 일침이다. 그는 스스로 마키아벨리가 되어 정치인에게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맹”을 촉구한다.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은 국제정치적 시야에서 국내문제를 다룰 때 가장 빛이 난다. 그의 리얼리즘이 가장 뛰어난 예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에게 성급한 이상론과 낙관론은 회의와 경계의 대상이다. 그는 미·일·중·러의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여전히 분단의 장벽이 드높은 한반도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감각이라고 본다. 가령, 그는 햇볕정책에 대해 “남북문제는 남북끼리 푸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냉전 이후 슈퍼 파워로 홀로 남은 미국과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지적한다. 설사 민족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눈으로 한반도의 현실을 가리킨다.  

 

그의 리얼리즘은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숲을 보면서 나무를 다투라”는 그의 훈수는 국제적 현실감각을 키우라는 주문이다. 그의 시각은 국제정치를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정의된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정의한 현실주의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그것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역사는 해결가능한 문제만을 인간에게 던져준다면, 김영희 대기자의 글은 바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조건’을 꼼꼼히 따지는 일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노회한 리얼리스트의 시각이 갖는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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