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출발은 회화며

그 중심에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

 

 

만약 <내셔널 갤러리>를 극장에서 봤다면 분명히 한번쯤 잠이 들어 화들짝 놀라거나 화장실이 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시간이 넘게 상영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도 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미 이 전시관을 다녀왔거나 아니면 가지 못해 대리만족이라도 하려는 사람 또한 실망할 것이다. 작품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맥락을 짚어 설명하는 것이 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방송공사의 <다큐멘터리 72시간>을 본딴 것처럼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장면을 잡아내고 있다. 이를 테면 누드모델을 대상으로 한 그림교실이라거나 예산확보를 위해 골머리를 앓는 직원들의 고통 등을 상당한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보여준다. 굳이 그림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보고 들어야 할까?

 

그런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눈에 힘을 풀고 그러려니 하며 보다보면 어느새 앤딩이 다가온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화면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그림들의 매력때문이 아닐까, 라는 확신이 든다. 누가 뭐래도 미술의 출발은 회화며 그 중심에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 

 

덧붙이는 말

 

참고로 입장료는 무료다. 변변치 않는 작품들이 많아 돈을 받기 미안해서가 아니다. 자국, 곧 영국작가의 그림이 30퍼센트를 넘지 않는 전시는 공짜로 운영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제국을 거느렸던 나라의 아량일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전리품들을 보여주며 돈까지 받기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컸다, 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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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넌 나와 늘 함께 할거지?

 

혼자라도 괜찮아, 네겐 친구도 적도 있잖아.

 

포켓 몬스터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애니다. 소재도 무궁무진하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당연히 산업적으로도 부가가치가 크다. 카드는 물론 게임에 이르기까지.

 

지나친 상업성때문에 외면한 것은 아니다. 단지 관심이 없었다. 기회가 와서 보았을 뿐이다. 당연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럴 수가? 한시간 삼십 분 남짓의 상영시간 끝이 다가올수록 아쉬워지더니 슬며시 눈물까지 배었다.

 

내가 왜 이러지? 곰곰 생각해보니 포켓 몬스터에 나오는 아이들은 외롭다. 악당을 제외하고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홀로 모험에 나선다. 무리지어 다니지 않고 각자 다니다가 배틀을 하게 되면 서로 뭉친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또 쿨하게 헤어진다.

 

"그래, 예전처럼 또 혼자서 다니다가 배틀을 하게 되면 다시 뭉치자."

 

적도 한마디 한다.

 

"알았어, 다음에 만날 때까지 누군가에게 절대 지지 마. 내가 이겨줄 테니까."

 

사토시가 웃으며 말한다.

 

"그래, 잘가."

 

아 내가 그 장면을 보고 울음이 나왔구나. 세상은 혼자 견디기에 너무도 괴롭고 힘들지만 피카츄가 있는한 그리고 새로운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한 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 포켓 몬스터는 홀로 지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죽지 말고 씩씩하고 슬기롭게 살아가라며 응원을 한다.  

 

덧붙이는 말

 

<포켓 몬스터, 너로 정했다>는 탄생 2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영화다. 조금만 인기가 있어도 티브이 방영분을 축약편집하여 극장에서 상영하고 비슷한 버전으로 연달아 제작하는 일본의 통념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포켓 몬스터를 처음 접했거나 이미 익숙한 이들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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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곤지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장소는 목욕탕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밀의 방 402호도 물과 깊은 연관이 있다. 쉿, 여기까지.

 

그 흔한 칠판 긁는 소리 하나 없이

그저 거친 호흡만으로도 

 

공포영화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장르다. 나는 어중간하다. 시도때도없이 귀신이나 좀비가 등장하는 정신사나운 건 별로지만 사람 심리를 건드리며 불안감을 극대화시키는 경우는 대환영이다. <로즈마리의 아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내 돈을 내고 영화관까지 가서 공포물을 보지는 않는다. 곰곰 이유를 생각해보니 솔직히 말해 겁이 나서다. 겉으로는 센척 하지만 사실 무서워서다. 어렸을 적 티브이에서 본 천년호를 보고도 일주일간 잠을 설쳤을 정도니.

 

큰 만 먹고 <곤지암>을 관람했다. 정직하게 말해 대작도 없었고 딱히 눈에 뜨이는 영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7년의 밤>이 그나마 볼만한듯 싶었는데 평이 영 아니다. 아무리 변신을 했다고 해도 너무 잘생긴 배우에 대한 비호감도 한몫했다.

 

평일 오후 4시의 극장은 적당히 관객이 차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남여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영화의 입소문을 담당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왠걸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는데 다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지 조용했다. 창피하지만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른건 나였다. 분명히 만들어진 상황이고 실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만.

 

잡다한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냅다 폐병원에 들어가 종횡무진 귀신에 사로잡히는 스토리는 압권이었다. 그 흔한 칠판 긁는 소리 하나 없이 그저 거친 호흡만으로도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소리는 서너번 질렀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도리어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유가 뭘까? 아! 영응담과 교훈이 없었군.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끝까지 귀신과 싸우는 끈적끈적함도 학교교육의 폐해를 주절주절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냥 깔끔하게 순서대로 사라져버린다. 앗, 스포일러인가?

 

덧붙이는 말

 

영화의 배경이 된 곤지암 정신병원은 아쉽게도 실제로는 다른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부산의 예전 해사고등학교라고 한다. 건물이 낯익어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무한도전에 나왔던 곳이다. 유재석이 벌칙으로 방문했던 곳이다. 한낮에도 음산한 기운이 가득해서 인상에 남았는데 바로 그곳이었다.

 

내내 조용했던 학생들은 불이 켜지자마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수다의 절정은 화장실에서 이루어졌다. "야 씨x  x나 무서워." "뭐가, 난 아무렇지도 않던데" "X까, 너 내내 눈감고 있는거 내가 다 봤는데" "쪼금 지리긴 하더라." 에스컬레이터에 탄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진짜 내가 안본다고 했잖아." "니가 가자고 했잖아." "이럴 줄 몰랐지. 잠 다 잤어" "ㅋㅋ 나도 그랬어." "노란통닭이나 먹으러 가자" 

 

우연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영화 <곤지암>을 소재로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들었다. 진행자는 본인은 절대 공포영화는 보지 않는단다. 현실이 지옥같은데라고 이유를 달았는데 왠지 입에 발린 말 같았다. 대신 주변 사람들의 평을 전했는데 중장년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지만 어린 친구들은 자지러졌단다. 평론가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담고 있다고 생각한 반면 노인들은 딴 세상 스토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고프로를 들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실시간 중계할 용기따위는 없다. 늙은이는 그래서 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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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이 하고자 한 말은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됐고 경기나 하자고

 

미투운동은 결국 권력의 문제다. 만약 여성이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곧 남자와 여자간의 문제라거나 혹은 더 나아가 생물학적 속성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해결방안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마치 절대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공산주의가 멸망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자체에 결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미국은 요동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이 생중계됨으로써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전투에 대한 이미지는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이러한 붕괴는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여성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흡사했다.

 

운동경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빌리 진 킹도 그 중 한명이었다. 여성 테니스선수에 대한 상금이 남자에 비해 형편없는 것에 분개한 그녀는 협회를 탈퇴한다.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제 갈길을 가던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온다. 성대결을 하자는 것이다. 상대는 비록 은퇴한 50대 중년남성이지만 그래도 윔블던을 제패한 경력이 있다. 과연 이 둘의 대결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고 누가 이겼을까?

 

결과를 알고보면 싱거울 정도로 시시하지만 영화는 빌리 진 킹의 내면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사실 그녀는 수호전사가 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명성을 얻고 있었고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남편이 있었다. 그럼에도 총대를 맨 이유는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후배들이 계속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빌리는 뜻밖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혼란에 빠진다. 동성애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이 주도하는 운동이 펌하될 수 있음을 잘 알았기에 내적 갈등은 극도에 달한다. 더우기 경기력마저 떨어지고 마는데.

 

엠마 스톤은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친다. <라라랜드>로 물이 오른 그녀는 이제 어떤 역할을 맡아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한다. 마치 전성기 시절의 조디 포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덧붙이는 말

 

한국배구협회는 셀러리캡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곧 선수단의 연봉을 총량 규제하는 것이다. 모든 선수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남자와 여자 선수의 연봉인상폭을 차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여자에게만 1인 최고연봉액이 총샐러리캡의 25%를 넘지 못하게 제한한 것이다.

 

연맹은 잡다한 이유를 근거로 내세운다. 남자배구가 인기가 더 많다. 여자배구는 흥행이 안된다. 어쩌구 저쩌구. 어쩌면 영화 <빌리 진 킹>에서 테니스 협회 고위 인사가 하는 말과 똑같은지. 킹은 우문에 현명하게 답한다. 티켓파워만 봐라. 어떤 경기표가 더 잘 팔리는지. 참고로 올해 여자배구는 남자와 비교하여 시청율이나 관객수에 큰 차이가 없다. 남자는 저녁 7시, 여자는 오후 5시에 하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김연경 선수를 모델로 한 영화가 제작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남자와 여자간 성대결 배구대회를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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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하나일 수밖에 없는 건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식성도 마찬가지다. 그깟 이데올로기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외세에 의해 치러진 대리전쟁, 몇십년간 떨어져 산다는 건 한마디로 넌센스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는 관광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잊고 산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것을. 파주에서 차로 20분이면 바로 북한땅인데.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떨어져 사는게 정상은 아니다. 막연히 언젠가 합칠 것이라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오느냐다. 양 국가의 정상이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충분히 준비를 한 다음 하나의 국가로 합치든 아니면 한 국가 두 체제의 연방제를 합의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기에 어떤 변수가 터질지 알 수가 없다. 남과 북 어느 한쪽에서 쿠테타가 발생하여 전쟁으로 확전될지도 모른다.

 

영화 <강철비>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만들었다. 북한 최고존엄의 유고를 전제로 남과 북의 치열한 공방전을 담았다. 그 중심에는 정우성과 곽도원이 있다. 북한 장교 역을 맡은 정우성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이질감이 든 반면 청와대 수석 역의 곽도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기분 나쁜(?), 분명히 선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로 정면승부를 했다. 어떤 역을 맡아도 느물거리는 그의 캐릭터는 확실한 장점이다.

 

먼 훗날 분단이 끝나면 우리는 현실에서는 평화를 누릴지 몰라도 영화의 중요한 소재 하나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지위를 잃게 될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 따로 떨어져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같은 국수를 깽깽이와 잔치로 부르는 것은 허용하더라도.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들라면 역시 국수다. 어쩌면 그리 허겁지겁 맛깔나게 먹던지 보는 내내 침이 고였다. 알고 보니 체인이었고 다행히 집 근처에 있었다. 이번 주말엔 무조건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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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 국수집 파주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거 아니었어요?
어느 체인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는지요?ㅋ

저도 강철비 재밌게 봤어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꽤 탄탄하던데.
맞습니다. 분단은 관광상품이 아니죠.

카이지 2018-03-2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cafe.naver.com/recipe2015/122991
http://cafe.naver.com/crv/62014

본점은 망향비빔국수 5사단 인근이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8-03-20 19:26   좋아요 0 | URL
헉, 너무 머네요.
그런데 그런 국수 체인점이 있다니 놀랍네요.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