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Mission Comes FIRST

 

히트를 친 영화의 속편은 늘 부담스럽다.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관객들이나. 제작진 처지에서야 본편보다 더 낫거나 혹은 최소한 오리지널에 미치치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고 관람객은 환호나 실망의 갈림길에서 헤매게 된다.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은 결코 1편을 능가하지 못한다.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는 원칙에 버금가는 신조가 없기 때문이다. 고참의 지도 아래 신참이 정예 요원이 되어가는 과정도 빠져 있다. 대신 기억상실증에 걸린 콜린 퍼스가 다소 나약한 스파이로 나온다. 적어도 중반부까지는. 미국을 배경으로 또 거기에 스테이트맨이라는 짝퉁을 만들어낸 것도 좀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골든 서클>을 봐야 한다면 그 이유는 단순히 인정에 끌려서만은 아니다. 최근의 영국 테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브리티시 기질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누가 뭐래도 임무가 최우선이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영화가 트럼프에 대한 조소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도날드가 편애하는 극우 방송 폭스 채널에 대통령이 탄핵되는 장면이 나오다니 이처럼 아이러니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실현이 되어지만. 박근혜 전 대통형이 업어 키운 종편이 자기를 내칠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3편이다. 영화 말미에 중절모를 쓴 신사가 킹스맨 양복점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뭔가 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글쎄? 대강의 얼개는 짜놓았겠지만 정직하게 말해 다음 편을 보아야 말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겠다. 1편을 보고 나서 느낀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음은 음악으로 덮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가, 정직하게 말해 시간을 떼우려 극장에 들러 대충 아무 거나 골라 보았는데 인생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두번째 경험이었다. 첫번째 행운은 <빅>이었다.

 

 

자동차와 마약이 등장하니 당연히 논스톱 액션이다. 첫 장면부터 광속으로 질주한다. 게다가 은행털이가 주요 내용이니 박진감은 덤이다. 만약 영화 내내 이런 식으로 난장판을 쳤다면 굳이 귀한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유머에 슬픔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내내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의아한 건 이어폰을 줄곧 착용하고 있다는 거다. 줄기차게 음악을 들으며 임무를 수행한다. 이유는 곧 밝혀진다. 어렸을 적 당한 자동차 사고의 휴유증으로 지독한 이명증상을 앓고 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삐이이 하는 전자파 소리가 하루종일 귓가를 맴도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불행하게도 이 병에는 즉각적인 치료제도 없다. 그저 신경을 이완하고 쉬면서 누그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소음으로 덮어버리던지. 베이비는 두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른바 록과 팝 클래식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이쯤되면 글쓴이가 왜 이토록 베이비에 감정이입을 하는지 알 것이다. 그렇다. 나도 이명이 심했다. 이비인후과에 가도 뚜렷한 처방이 없었다. 이 병이 완화된 것은 서울을 벗어나 살면서부터다. 돈이 없어 서울에서 밀려나 인천 변두리 산골 아래 빌라에 터를 잡았다. 석달동안 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주변이 조용하니 증세는 더욱 심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던 어느날 감쪽같이 소음이 사라지는 뜻밖의 일을 겪었다. 치유가 된 것이다. 서울이 내뿜는 온갖 공해와 자동차 소리, 그리고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지칠대로 지친 귀가 마지막 오물을 토해내고 원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 다시 일을 하게 되어 서울을 들락거렸는데 갔다 온 날은 어김없이 다시 이명이 시작되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나는 대도시에서 콘크리트 상자에 갇혀 일하면 안되는 운명이구나.

 

 

베이비처럼 자동차를 몰며 범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늘 이어폰을 귀에 끼고 산다. 특히 외출을 할 때에는 라디오 기능이 되는 엠피쓰리의 클래식 에프엠에 주파수를 맞추고 작게라도 음악을 틀어놓는다. 주변의 잡다한 생활소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다. 물론 서울에 가는 건 극도로 꺼리면서. 아마도 감독 또한 비슷한 징후를 겪고 있으리라. 주인공은 디렉터의 영혼을 담게 마련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동서울극장의 추억

 

 

내 유년 기억의 시작은 극장과 함께 였다. 영화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또렷하게 각인된 장면은 가슴 졸이며 엄마 손을 꼭 쥐고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다. 일찌감치 눈을 뜬 탓인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곧장 극장 순례에 들어갔다. 천호극장, 문화극장, 그리고 동서울극장. 조그마한 동네에 무려 세개의 영화관, 비록 재개봉관이었지만, 이 있었다는 것은 씨네마 키드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동서울극장이었다. 다른 두 영화관이 대로변에 있었던 것과 달리 동서울은 시장을 지나 거의 끝에 다다라야만 마주할 수 있었다. 어린 내게는 모험이었다. 시각과 청각은 물론 후각까지 건드리는 모든 갖가지 자극을 받고 극장에 간다는 것 자체가. 벌써 몇 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벤허>의 대형입간판과 매표소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스피커로 틀어놓은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를 보고 나올 때였다. 시장이 워낙 복잡하고 밤이면 출입구를 막아놓아 다른 길로 돌아나와야만 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노란 등이 가지런히 자리잡은 그곳은 창녀촌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이상하게 끌리는 미스테리함에 사로잡혀 약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종종 걸음으로 벗어났다. 다행히 어떤 누나도 나를 부르거나 붙잡지는 않았다.

 

렇게 멋진 영화를 보고 온 날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곤 했다. 꿈속에서 채찍질을 맞으며 어서 빨리 노를 저어야겠는데 다급한 심정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숨이 너무 차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새빨간 입술을 하고 하얗게 화장을 한 여자가 나타나 구원자 예수를 도와달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동서울 극장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영화관 자리는 도서관과 공원으로 바뀌었다. 창녀촌도 철거되었다.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밖에 살지 않았으니 기껏해야 3, 4년 정도였지만 내 어린시절은 그 시간, 그 장소에 영원히 머물러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11-29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단이 2018-12-1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창녀촌쪽 극장은 아마 문화극장? 일거에요

카이지 2018-12-1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치상으론 문화극장 길건너가 맞지만 동서울극장일대가 더 넓습니다 아무튼 추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