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찌뿌둥한 몸을 책장에 기대고, 참고로 우리 집에는 소파가 없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허지웅을 만났다. 고민사연을 상담해주는 내용이었다. 딱히 무대장치도 없고 자신의 집 응접실에서 하는 것으로 보아 개인 방송인 듯싶었다. 화면 아래 날짜가 나와 보니 2020년 2월이었다. 큰 병을 치르고 난 후여서인지 과거처럼 날카롭게 일침을 날리기보다는 좋게 좋게 충고하는 형식이었다. 특이한 건 그가 말끝마다 삶의 확대경 혹은 돋보기를 치우라는 말을 했다. 곧 누구나 걱정을 안고 사는데 자신만 유별나게 고생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내 눈 안의 티는 천근만근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은 따로 논다. 나도 마찬가지다. 요 며칠 남들이 들으면 헛웃음을 칠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잠을 잘 자지 못할 정도였다. 어찌 어찌 극복하고 있지만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회피다. 곧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걸 원천 차단하는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아예 집이나 일터를 옮기는 수도 있지만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익숙함과 결별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심한 지금같은 처지에 어렵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주변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다못해 매일 오고가는 길에서 멀어져 다른 통로를 개척해보시라. 그래야만 비로소 삶을 확대경과 돋보기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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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학교폭력을 가하거나 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소한 일들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골목길에서 중학생 형에게 운동화를 뺏겼다거나(새거였다.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사다주신 아식스 흰색 런닝화였다.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직도 분이 덜 풀렸나 보다), 중학교 때 썩 친하지 않은 아이와 버스정류장에서 투덕거리거나, 고등학교 때 글러브를 끼고 권투흉내를 낸 것 정도였다. 물론 정정당당했다. 3분 3라운드라는 규칙도 정확하게 지켰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이들도 꽤 있다. 이재영 선수가 쏘아올린 학폭은 그칠 줄 모르고 퍼져나가고 있다. 한 때 미투운동이 붐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 규모나 확산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폭력은 일종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단지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면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왕따는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의 속성상 집단을 이루게 되면 당연히 이런 저런 파벌이 생기고 특히 학교처럼 폐쇄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는 따돌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해결책도 뜬구름 잡기에 그치고 만다. 


적절한 격리와 분리, 그리고 해당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 교육만이 정답이다. 비록 지루하고 먼 길일지라도.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교육도 나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이란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는 감정을 정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곰곰 떠올려보니 뭔가 잘못을 한 아이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게 한 건 꽤 좋은 방안이었다. 내용을 떠나 최소한 그 시간동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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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사람은 소수다. 자신에게 닥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바로 응징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결과가 의도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쌍방폭행을 떠올려 보라. 인터넷과 에스엔에스가 발달하면서 예전 같으면 뉴스거리도 되지도 못하는 사건들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 오줌을 싼다거나, 케이트엑스 안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햄버거를 먹는다거나, 편의점에서 껌이나 과자를 훔친 아이의 사진을 가게 앞에 붙이거나. 본인 생각에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법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명예훼손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해도 사전 동의없이 공공연하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영상이나 사진을 게재하는 건 불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고하면 된다. 굳이 동영상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공권력은 이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망신을 당해도 싸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모든 불의를 사적 보복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횡횡하는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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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tic old-fashioned 'RETURNS!'

잔나비 


나의 기쁨 나의 노래되어 거리를 나뒹구는 쉬운 마음 되어라_나의 기쁨 나의 노래


편견은 대부분 맞는 말로 판명된다. 평판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견고한 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외도 있다. 정보 비대칭 탓이다. 곧 직접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고 남의 말만 듣다가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내게는 잔나비가 그랬다. 그들이 <나 혼자 산다>에 나왔을 때의 내 반응은 도대체 누구지였다. 이후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 방송에서 보기는 어려워졌다. 그렇게 잊혀지는 줄 알았는데 문화방송에서 콘서트 녹화 분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집콕콘서트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시작한 지 약 10분 이후부터 보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다재다능한 밴드가 있었나? 가사면 가사, 멜로디면 멜로디, 퍼포먼스면 퍼포먼스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마치 비틀스의 페퍼 상사 앨범 공연을 보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한 두 곡의 히트곡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을 스토리로 만들어 펼쳤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다면 밴드도 한국에서 성공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나비의 앞날은 더욱 무궁무진하다. 발라드, 락, 펑크. 하우스 등 못하는 장르가 없다. 그럼에도 특히 좋았던 건 가사다. 어떤 감정이길래 저런 말들을 뽑아내는지 감탄했다.


사진 출처 : 190831~190901 잔나비 단독콘서트,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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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히 정보 차원이었다. 확진자 수는 공개되는데 진단 수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발견한 사이트는 감염률, 곧 진단 대비 확진비율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 습관적으로 들락거렸다. 거의 매시간. 이유는 간단했다. 한 시간별로 확진자수가 떴기 때문이다. 전날과 비교하는 그래프가 있어 제발 어제보다는 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제부터(3월 8일) 데이터 값이 바뀌었다. 일단 시간별 확진자수 확인이 어려워졌다. 누적 확진자수로 어림잡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성이 복잡해졌다. 대체 왜 이렇게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지? 사실 코로나 감염자 숫자가 확 늘고 줄었다고 해서 내게 미치는 영향이 있는가? 어차피 종식되기는 글렀으니 매일 조심할 수밖에 없는데. 달을 보라는데 그걸 가리키는 손가락만 빤히 계속 본 셈이다. 당장 사이트를 삭제했다.


주식 열풍이다. 조금 덜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식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 그들의 일상은 대게 비슷하다. 개장 시간에 맞춰 온라인 주식 시장에 들어가고 수시로 시세를 파악한다. 조금이라도 오르면 기분이 좋고 반대면 하루를 망친다. 나처럼 개인적인 이득이나 불이익이 없는 사람도 코로나 관련 사이트에 하루 열 번 이상 들락날락했는데 자기 돈이 걸려 있다면 오죽하겠는가? 진짜 누구 말처럼 묻어두고 절대 신경 쓰지 말고 십년 지나 까보는 게 더 큰 수익을 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신경 쓸 일은 줄어들 거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그런가? 계속 흘깃거리게 마련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주린이들의 슬픈 눈망울은 허공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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