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입사한지 겨우 5개월밖에 안된 노무팀 소속 신입사원이 노동조합 회의를 몰래 녹음하다가 발각되었다.
회사는 개인적 욕심에 의한 것이라고 하고, 노동조합은 회사의 지시에 의해 노조 회의 자료를 취합하려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 사무실에 그 말고도 누군가 한명이 더 있었다는 것, 노조 위원장이 선거 때부터 사장에 대하여 강한 비판을 해 왔다는 것, 지금 회사와 노조가 갈등 상황에 있다는 것, 현재 회사가 하려고 하는 제도와 관련한 회의였다는 것 등을 근거로 회사의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일이고 그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하였고(제14조), 그럴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고 하였다(제16조). 그리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사용자가 노조 활동이나 운영에 개입하거나 지배하려는 일체의 행위, 즉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제81조 제4호). 현재까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분명해졌으나 회사의 개입 여부가 불명확하고 또 정말 개인적인 행동에 불과하다면 부당노동행위라는 법적인 판단이 내려질 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진실은 밝혀져야 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자가 되는 순간 그 어떤 병원에서도 치료 불가능한 노조 기피성 알러지를 갖게 된다. 또한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증상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일을 스스로 판단했건 아니면 누군가의 지시에 의했건 별 거부 반응없이 하게 될 것이고, 그런 가정이 전혀 엉뚱하지만은 않다고 볼 때, 위와 같은 일이 kbs 한 군데에서만 벌어진 일일까 의문이 들기 때문에, 따끔한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물론 누군가가 직접 지시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즉 그 사람이 개인적인 욕심에서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단지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알아오라는 일반적인 지시를 편하게 할 생각으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그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힘겹게 입사했을 것이다. kbs에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데 취업을 위한 공부는 열심히 했을 지는 모르나 불행하게도 그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당사자들의 동의없이 녹음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할만큼 세상보기를 하지 못했나 보다. 책 속에 담긴 노동3권이 헌법상 기본권이고 그 기본권의 성격이 자유권적 권리니 사회적 권리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공부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는 못했나 보다.
그런데 그는 노무팀 소속이다. 노조와 관계된 일을 하는 부서다. 그런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입사하기 전에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던 노무팀에 들어온 이상 노동3권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알려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 미처 그럴 시간이 없었다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면 누군가에게 물었어야 하지 않을까 ? 아무튼 그런 것들을 볼 때 그는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 회사는 책임이 없을까 ? 신입사원에게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다면 이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민감한 사안일수록 독자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주의를 주었어야 했다. 이제 갓 입사한 사람에게 그런 것들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회사 역시 이번 일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정말로 그 사람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 사람, 그 사람이 속한 부서 관리자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되, 그 주된 책임은 관리자가 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어 가장 가혹한 징계인 해고를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보인다. 온전히 그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kbs 얘기는 여기서 마치고 몇 줄 더 적어본다.
최근 노조 비리가 문제가 되었다. 비난받아 마땅하고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런데 노조 비리는 그렇게 호들갑떨면서 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조용히 넘어갈까 ? 한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조 비리도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노조 비리 얘기가 나왔으니 굳이 덧붙이면 항운노조를 과연 노조라고 할 수 있는지 난 오랫동안 의문을 가졌다. 인력 공급 사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로서 그 동안 권력과 함께 영욕의 세월을 보내왔던 곳이 바로 항운노조다. 노조일까 ? 인력 공급 사업을 하는 단체일까 ? 후자가 아니었을까 ? 난 그래서 항운노조가 노조 비리로 한데 뭉뚱그려지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리고 만약 노조가 회사 이사회 같은 것은 몰래 녹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대통령부터 나서서 또 한마디씩 해대지 않았을까 ? 경영권에 대한 도전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경총이 나서지 않았을까 ? 검찰은 ? 노동부는 ? 언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