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살림지식총서 4
김형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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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004권으로 2003년 6월 나온 책입니다. 미국에 노예가 처음 들어오기 시작한 때부터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노예제를 중심으로 사회 변화 상황을 간략히 훑고, 똑같이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은 노예제 폐지론과 노예제 찬성론의 대립을 소개했습니다.

100쪽도 안 되는 책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책으로서 한 권의 생명을 타고났다면 그 한 권으로 완결되는 어떤 것이 있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노예제 폐지론과 찬성론의 요지는 명확하게 전달했지만, 전체 분량의 절반을 바친, 노예제를 중심으로 미국 초기 역사를 개관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충’ 넘어갔습니다. ‘1850년의 타협’이니 ‘유혈의 캔사스 사태’니 하는 걸로 당시 미국 정황은 숨 가쁘게 요동친 모양인데, 도대체 1850년의 타협 내용이 무엇이고 유혈의 캔사스 사태는 어찌 된 건지 설명이 없습니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면 한 가지만 이야기해라”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이것저것 건드리다 마는 책은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이 책의 주제만큼은 칭찬하고 싶습니다. 노예제와 기독교와 미국 역사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짐작대로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신약성서를 주요 근거로 삼고, 찬성론자들은 구약성서를 근거로 삼더군요.

폐지론자들은, 인류는 모두 아담의 자손으로 형제이니 형제를 노예로 삼는 것은 옳지 않으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자유민인 백인처럼 흑인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남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고 나온 데 따라서, 노예사냥을 범죄시합니다.

반면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아브라함도 노예를 거느렸으니 하느님은 노예제도를 용인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레위기에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하고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돌아오는 해인 희년에 그 종을 해방하라고 했는데, 이방인에 대해서는 “너의 종은 남녀를 무론하고 너의 사면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도 살 것이며”라고 한 데다 희년에 풀어주라는 말도 없으니, 이교도인 흑인은 대대손손 노예로 삼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노예로 데려온 덕에 이들이 기독교를 믿고 구원받게 되었으니 도리어 노예주들은 선을 베풀었다고도 합니다. 흑인이 기독교를 믿고 형제가 되었으면 이제 이교도가 아니게 되었으니 마땅히 자유롭게 해야 하는 게 아닌지?? 그리고 구약의 하느님은 유목민인 유대민족의 신이니, 이방인의 인권까지 보호하지 않은 게 당연하지요. 그러나 기독교는 유대교가 아닌 것을!

그리고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는 신약성서 베드로전서의 구절과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는 디모데전서의 구절도 근거로 삼았다 합니다. 그런데 이건, 종들에게 현실 생활에 잘 적응하라고 한 말이잖아요! 노예 신분인 이들에게 자기 할 일을 충실히 잘 하라고 한 말이지, 노예를 부리는 자들에게 노예를 부려도 좋다고 한 말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마태복음에서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한 말씀은, 뺨 맞는 사람에게 원수도 사랑하라고 한 말이지, 뺨을 때린 자에게 맘대로 상대편의 뺨을 때려도 좋다고 허락한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쪽이 무조건 선하고, 찬성한 쪽이 무조건 악하지는 않겠지요. 백인 폐지론자들은 산업 발전에 노예제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폐지를 주장한 측면도 있고, 또 맘 좋은 주인을 만날 경우 북부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보다 더 편하고 자유롭게 노예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링컨도 미국의 여러 주가 연방으로 통일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노예제를 폐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선악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일진대...

흠 하나. 68쪽에 나오는 “아프리카 리베리아”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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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1-1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와 폐지의 양 축이 선과 악의 차원이 아니라, 자기의 기반을 위해서라는 걸 들춰내는 것이 참 마음 아프군요...

숨은아이 2004-11-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퀘이커 교도와 초기 감리교회, 침례교회는 도덕심과 신앙을 바탕으로 노예제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권에 따라 교회도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chika 2004-11-1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기억은 안나지만 지금 미국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청교도주의라 들었던 것 같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 그들은 악이고 나는 선이라는 선악구분을 짓고 부시가 행하는 하느님의 선을 실천하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이지요. 성서를 문자로만 해석하는 사람들, 정말 바보아닙니까? ㅡㅡ;

숨은아이 2004-11-1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천년 동안 만들어진 성서를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자구 그대로 해석하니 참... ^^;;;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 1 - 써니의 소원
요 쇼메이 그림, 야나세 후사코 글, 송승희.선곡유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언젠가 TV에서 지뢰 때문에 다친 이들 소식을 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지뢰는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캄보디아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에 팔이나 다리를 잃은 아이들을 슬퍼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땅에는 지금, 108만여 개나 되는 대인지뢰(그러니까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서 발목, 혹은 무릎 아래를 날려버리거나 목숨까지 앗아가는)가 묻혀 있다고 합니다. 삼팔선 근방은 아마 그럴 것이라고요? 대인지뢰 3만 3000여 개는 서울, 부산, 인천, 울산 등 후방 지역에 묻혀 있답니다.

지뢰란 전쟁터에서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심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헬기 따위로 무차별 살포하는가 하면, 옛 유고 연방 지역에는 과자, 아이스크림, 장난감 헬리콥터처럼 생긴 지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러 아이들을 노린 겁니다...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의 한국 지부인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가 한국의 대인지뢰 실태를 확인하고 제거할 것을 청하자, 군에서는 2006년까지 후방의 대인지뢰를 모두 없애겠다고 약속했는데, 2003년에는 글쎄 김포의 한 부대가 지뢰도 제거하지 않은 채 흙을 통째로 퍼다가 한강 둔치에 쌓아놨다는군요.

우리나라엔 여름에 큰비가 내려, 지뢰가 떠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물놀이나 낚시를 하던 사람이 지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답니다. 요즘 지뢰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가볍고, 금속탐지기로도 찾아내기 어렵대요!

그리고 지뢰를 제거하려면 어디에 지뢰가 묻혔는지 알아야 할 텐데, 6.25 때 미군이 무차별 살포하면서 지뢰 매설 지도를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한 다음 잃어버려, 어디에 지뢰가 있는지 모르는 ‘미확인지뢰지대’가 여의도 면적의 23배나 된다고 합니다.

ICBL이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한 덕분에 지뢰 사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1996년에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1999년까지 일반형 대인지뢰를 모두 파기하고, 전지가 다하거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기능을 잃는 지뢰만을 쓰기로 하겠다고 했는데, 단서 조항이 있습니다. “단, 한반도는 예외.”

우리에게는 전쟁이 참 먼 이야기만 같은데,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한국은 위험한 지뢰 지대입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건 아니지요. 실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사실인지도.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에 가입했습니다. 이 조약은 대인지뢰와 X선 조사기로 탐지할 수 없는 지뢰, 소이탄, 레이저 실명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500미터 이상 거리에 떨어뜨리는 대인지뢰에는 자동폭발·자동무능화 장치를 달도록 합니다. 그리고 비회원국에 지뢰와 관련 기술을 넘겨주지 못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정부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해 보유지뢰와 매설지뢰를 각각 4년과 10년 내 폐기토록 한 오타와협약에는 대인지뢰 대체 수단이 개발될 때까지 가입을 보류”했답니다. 지금 있는 지뢰를 없애지 않고서 금지협약에 가입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지금까지 쓴 것은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의 뒤에, “어른들이 읽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세요” 하고 실린 해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는 평화를 말하는 그림책입니다. 여기서 감색 귀를 늘어뜨린 하얀 토끼 써니는 “국경”을 만나고(실제로 땅에 무슨 선이 그어진 것도 아닌데 새들은 오갈 수 있으나 사람은 다닐 수 없는), 지뢰 때문에 다친 사람을 만나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지뢰 대신 꽃을 심자고 손을 내밉니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지뢰밭 3평이 꽃밭으로 바뀔 수 있다는군요.

“써니의 소원”이라는 부제를 단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 1]은 [고마워요,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 2]라는 책과 함께 나왔습니다. 뒷책은 부제가 “써니의 꿈”이에요.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 1]에서는 함께하는 마음을 보여주었고, [고마워요,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 2]에서는 많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의 활동도 이야기합니다. 어렵지 않게, 고운 그림으로요. 잔잔한 그림은 사실적이지 않아서, 연민과 희망만을 찬란하게 보여줍니다. 화면 가득 수놓은, 푸른 지구의 모습으로.

이들 두 책은 1996년 일본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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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0-2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고 싶었는데... 리뷰 잘 읽었습니다.

숨은아이 2004-10-25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자체에 대한 리뷰보담은 지뢰에 관한 정보만 주로 이야기했네요. ^^

비로그인 2004-10-2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뢰 정보, 좋았어요. 저 통 몰랐거든요.

숨은아이 2004-10-2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내가 살고 있는 땅인데도 그 땅에 관해 모르는 게 많아요, 그죠?

비로그인 2004-10-2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리고 다방면에 걸친 숨은아이님의 문제의식도 새삼 놀라웠는데, 숨은아이님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은 거 같아요. ^^

숨은아이 2004-10-2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 뭐 그냥 이리 기웃 저리 기웃... (^^)a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우선, 책 너무 무겁습니다. 내용이 무겁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들고 다니기 무겁습니다. 책 크기도 B5 용지보다 커서는...(가로 길이는 조금 좁지만). 만화의 때깔을 좋게 하고, 앞면의 그림이 뒷면에 비치지 않도록 스노화이트지를 쓴 모양입니다. 하지만 스노화이트지는 종이 두께에 비해 무거워요! 모조지 종류로 했다면 훨씬 두꺼운 종이를 써야 했겠지만(얇은 종이를 쓰면 그림이 뒷면에 비치니까요. 그럼 뒷면의 그림을 보는 데 방해가 되지요), 도리어 무게는 이보다 덜 나갔을 거예요.

그리고 말이 많습니다. 무슨 만화에 이리도 글자가 많단 말입니까! 조 사커의 수다를 읽으며, 저는 그와 함께 지쳐갑니다.

... (또 흠잡을 거 없나...)

아, 이 사람 삐딱한 거 맘에 안 듭니다. 시종 냉소적인 익살로 자료 채집 중인 미국인 시사만화가라는 자신의 정체를 잃지 않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게 다 '소재'일 뿐입니다. 종반에 들어서기 전까지, 참혹한 인권 유린의 현장을 고발하는 사진기자들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신 조선인님 글(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540982)이 내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심지어 그런 자신의 태도까지 비웃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보여주는 사람들, 기형아로 태어난 자기 아이, 폐허가 된 집을 사진으로 찍어 가주길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를 향해 절규하고 싶은데 자신은 그럴 힘이 없으므로 누군가 대신 말해주기를,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24년 전 광주 사람들이 서방의 기자들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책이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뭘로 알고 있었을까? 철학이 있고 조직력도 있고, 상황을 지켜보며 자위 수단을 강구하고, 경제를 일구기 위해 창의적인 발상을 짜낼 줄 아는 그들을, 그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무력하게 떨고만 있는 존재로 여겼던가?

열악한 생존 조건 속에 그들을 던져넣어 자기 존재에 대한 존중심마저 빼앗으려는 안사르 Ⅲ 감옥에서, 그들은 보여줍니다. 250명이 쓸 화장실을 달랑 세 칸만 주었더니, 이들은 화장실 앞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드잡이하는 대신 한 줄 서기라는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한 조건(수감자 네 명당 밥그릇이 한 개였다니, 부족하다는 말이 오히려 부족하군요!)에서 이들은 나눠 마실 차의 양과 순서를 정해 모두 골고루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합니다. 이들은 각 구획끼리 고립되지 않고, 감시의 눈길을 피해 쪽지를 돌멩이에 매달아 던지는 방법으로 소통합니다. 이들은 교육위원회까지 조직해, 생태학, 철학, 아인슈타인, 소련 붕괴 등에 대해 서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80년 광주에서 구현되었다는 코뮌이 생각나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장기수 할아버지들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아, 물론, 그들도 바깥에서는 당파끼리 싸우다 서로 죽이기도 하고,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면 입을 막아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미떼 같은 군중이 아님을, 핍박에 즉자적으로 반발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님을 이 책은 알려주었습니다. 그 하나만으로 이 책은 제게, 둘도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만화의 그림체는, 미국 냄새가 강해서는 첨엔 영 정이 안 가더니, 한 권을 다 보고 나니 익숙해집디다. 어린아이보다 통통한 아저씨나 앞니 빠진 할아버지 표정이 더 귀엽더군요. 하...)

한 가지 더. 군인들이 잔인하게 구는 것은 두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인 훈련을 받은 이들은 겁에 질릴 때, 방어의 최고봉 - 인정사정없는 공격 - 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벌레 같은 놈"으로 깎아내리지요. 그래서 제대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스라엘 군인도 생기는 거겠지요. 참으로 파괴적인 짓입니다.

조 사코Joe Sacco가 1991년 말에서 1992년 초를 팔레스타인에서 보내고 나서 발표한 이들 만화 아홉 편은  2002년 이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200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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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0-06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무척 솔직하게 삐딱하게(!) 쓰신 리뷰 마음에 듭니다. 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며 광주가 생각났어요. 외신에 드러나면 뭐하나 달라지지 않는 이노무 현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만 밝혀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다른 무엇무엇도 거듭 겹쳐 보이더군요...

숨은아이 2004-10-0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 시종 거리를 두는 듯한 시각이 못마땅했답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선동보다 도리어 이것이 더 설득력 있겠지요...
이안님 : 감사! 그런데 써놓고 보니 "개미떼 같은 군중"이라는 말은 개미에 대한 모욕 같군요. (^^)a

로드무비 2004-10-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이 이 리뷰로 5만원 버셨잖아요.^^
숨은아이님 리뷰는 또 다른 관점에서 재밌게 읽히네요.
저도 추천!

숨은아이 2004-10-0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안님이 이벤트 하셨잖아요. 그 이벤트에 당첨돼서, 바로 이안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셨답니다. ^________^ 추천 감사!

숨은아이 2004-10-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긴요. 제 옆지기는 늘 왜 일케 못됐느냐는데요. --;

내가없는 이 안 2004-10-1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축하드려요. 이 주의 마이리뷰 당선작이에요! 와아~
그럴 줄 알았다니깐요. ^^

숨은아이 2004-10-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런 일이... 님들 덕분이어요. 이안님 리뷰 읽고 이 책 볼 생각 굳혔고, 게다가 이안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셨고, 따우님 말에 좀더 엄격하게 보려고 노력했어요. 추천해주신 로드무비님, 제일 먼저 댓글 달아주신 새벽별님, 모두 고맙습니다!

깍두기 2004-10-1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물만두 2004-10-1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알았어요. 축하드려요^^

숨은아이 2004-10-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쑥스럽사옵니다. ^^
 
세계의 유사신화
J.F.비얼레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199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J. F. 비얼레인Bierlein 지음, 현준만 옮김, 1996, 8500원
원서 제목은 Parallel Myths.

전 이 책을 1996년에 샀는데, 지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2000년 10월에 펴낸 새 판의 값은 1만 3000원이네요.

전부터 신화와 성서고고학 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성서를 '진실'로 믿고 읽었지요.
그런데 읽으면서도, 특히 창세기에서,
서로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사람이 없었다 신도 없었다>(안성림 조철수 지음, 서운관, 1995)란 책을 읽고,
오늘날의 창세기는 두 가지 판본이 결합되어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두 가지 서로 다른 판본을 짜깁기해 놓았으니, 앞뒤가 다를 수밖에요.
그 책에서는 성서의 많은 내용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어요.
이리하여 신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생성 발전했는지,
성서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책인지 궁금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책이 눈에 띄면 사 모았는데,
늘 그렇듯이 사서 쌓아만 놓고 읽지는 못했습니다. ^^;

그러다 처음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 <세계의 유사 신화>입니다.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좀더 깊이 있는 책에 다가가기 전에,
처음 읽는 책으로 괜찮을 성싶습니다.

세계 곳곳의 신화 가운데
창조 신화, 인간의 초기 시대를 이야기하는 신화, 홍수 신화,
사랑 이야기, 신화에 나오는 도덕 이야기, 영웅 신화,
저승 세계에 다녀온 이야기, 종말 신화를 한데 모아 보여 주는데,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아 온 그리스 로마 신화뿐 아니라
인도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노르웨이와 독일에 전해지는 북유럽의 신화,
이집트와 중국의 신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까지
실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는
쉽게 알기 어려운 이야기라
정말 반가웠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 중에, '포니'라는 부족의 창조 신화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저녁별과 새벽별의 사랑 이야기예요.
'피마' 부족의 창조 신화는 놀랍습니다.
태초에 세상에는 어둠과 물뿐이었는데, 창조주가 하릴없이
물 위를 떠돌아다니다 마법의 지팡이 끝에 맺힌 나뭇진을 떼어
공 모양으로 둥글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작은 공을
굴리고 또 굴리어 지구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남부 캘리포니아의 '플라야노스(Playanos)'라는 부족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능한 존재 노쿠마가 두 손으로 세상을 굴려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중심을 잡지
못하자 토사우트라는 검은 바위를 세상 속에 끼워 넣어
중심을 잡도록 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지질학에서 지구의 중심에 '핵'이 있다고 말하는 걸 보세요.

인도의 고대 경전인 <리그베다>에서는
"태초에는 어둠이 어둠을 감추었으니,
이 모든 것이 아무런 표징도 없는 물이었도다.
공허로 싸여 있던 생명체,
그 유일자가 열의 힘을 통해 태어났도다."고 합니다.
중국 신화에서도 태초에는 혼돈의 물뿐이었는데,
번개의 힘을 받아
첫 생명이 태어났다고 한답니다.
오늘날의 물리학에서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지요.

창세 신화들을 보다 보면,
신화에는 인류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기 전의 기억까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폴리네시아의 창조 신화는 음양 이론과 비슷합니다.
우주의 원리는 아오와 포라는 두 가지 본성을 띠는데,
아오는 밝음, 낮, 하늘, 남성적 원리를 뜻하고
포는 어둠, 밤, 땅, 여성적 원리를 뜻한다고 해요.
창조의 시작은 바로 아오와 포를 구별하는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성서에서도 하느님이 맨 처음 "빛이 있으라" 하여, 밤과 낮을 가르지요.
해가 지면 컴컴한 밤이 되고, 다시 다음날 날이 밝는 건
초기 인류에게 매우 놀라운 일이었던 모양이에요.
아니, 그게 바로 우주 질서의 기본이었겠죠.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세계를 인식하는 첫걸음이었겠죠.
그런데 폴리네시아의 아오와 포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죽음과 사후의 지하 세계를
꿈과 사랑의 장소, 어머니의 땅으로 표현한 점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게 마련 아닌가요?
우리도 죽으면 저승사자에게 끌려 염라대왕 앞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폴리네시아의 아오와 포 이야기에서는,
인간이 땅 위의 아오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건 첫 남자인 카네의 죄 때문이고,
죽은 뒤에야 어머니 땅 '히나'와 살러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포 세계는 밤이라는 창조의 세계로, 꿈과 사랑의 장소로 살아 있다고 하구요.

북유럽 신화를 읽으니,
<반지의 제왕>은 바로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더군요.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 인물들이 사는 곳을 '중간계'라고 하잖아요.
노르웨이와 독일에 전해지는 북유럽 신화에서
신 오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세계가 바로 미드가르드(Midgard=Middle Earth)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딘은 신들의 거처인 아스가르드(Asgard)도 만들었다고 해요.

잉카 신화에서는,
창조주 콘 티키가 인간을 만들고 지상을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 주었는데,
인간들이 은혜를 잊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콘 티키는 인간에게 벌을 내려 고된 노동을 하게 했답니다.
이때 새로운 신 파차차마크가 나타나서 콘을 몰아내고
콘이 만든 인간들을 모두 원숭이로 만들어 버린 다음,
흙을 가져다 새로운 인간들의 조상을 만들었대요.
혹시 새로운 인간들이 바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고,
콘이 만들었다는 인류는 그 전에 멸종한 호모 에렉투스나 뭐...
그런 것 아닐까요?
(이 글을 쓰고 나서 한참 뒤, 곧 작년에 한국 신화 강좌를 들었는데,
아시아 여러 민족의 창세 신화 중에서,
처음 세상을 만든 신이 뒷전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신이 등장해
오늘날의 세계를 주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많다더군요.
우리나라의 창세 신화도 그래요.)

아메리카 원주민 중
모하베 아파치 부족에 전해진다는 홍수 신화에서는
처녀 한 명만이 카누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는데,
이 처녀가 산으로 올라가자
태양이 처녀를 비춰, 바위에서 처녀의 몸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마법의 물이 처녀를 잉태하게 했고,
처녀는 나중에 딸을 낳았으며, 그 딸은 어머니와 똑같은 방법으로
임신해 마침내 인류가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햇빛을 쬐어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물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자, 우리의 부여 동명 신화, 고구려 주몽 신화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 책엔 일본의 창세 신화(매우 괴기스럽고 에로틱하답니다.
일본의 에로 영화와 괴기 영화가 오늘날까지 강세인 이유를 알 듯.)
는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신화는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아메리카 인디언 중 알공킨 부족에게 전해진다는,
알곤이라는 사냥꾼과 하늘처녀 이야기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이 책의 지은이는 모를 겁니다.
(역시 한국 신화 강좌를 듣고 알았는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중앙아시아부터 일본에까지 폭넓게 전해지는 백조처녀 이야기의 변형판이에요.
그 이야기가 인디언 신화 중에도 있는 거지요.)
 
어떤 이론이나 주장을 펼치는 책이 아니고,
신화에 관해 다양한 책을 읽어 온 지은이의 독서 공책을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것 같은 책이에요.

책 뒷부분에는 여러 신화학자들이 신화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비슷한 신화가 세계 여러 곳에서 전해지는 까닭을 어떻게들 해석하는지
인용해 놓았지요. 인용문만으로는 신화학자들의 주장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신화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누구누구가 유명하며,
학계의 쟁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어 유익합니다. 

잘 읽다가 마지막 장에서는 좀 깼는데,
마지막 장은 지은이가 기독교 세계의 자기네 독자들에게
'신화'는 사탄의 도구가 아니고
기독교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지요.
헉, 이 장 바로 앞까지도, 이 사람이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줄 전혀 몰랐거든요.

이 책의 단점은,
여러 나라와 민족의 신화를 골고루 맛뵈어 주다 보니,
모든 신화가 간략히 정리돼 있어,
원래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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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이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외국 여행을 꿈꿀 때, 그것도 한 달 이상 흘러다니는 생활을 하고 싶을 때, 90년대 초반에는 유럽 여행이 그 꿈의 대상이었고, 그 후반에는 인도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행처럼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럽 여행을 꿈꿀 때는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고대 문명과 함께 세계의 명화들이 가득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떠올리겠지요. 그리고 숙박 시설이 청결하고 안락하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인도를 생각하면? 고대 문명의 찬란한 유적을 기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뭔가 신비로운 정신적인 상태를 기대하고, 도시 문명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은 끝에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한 성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요.

인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서양인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는 환상, 바로 그것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우리와 같이 생동하는 사람이 사는 곳, 남루한 생존에 허덕이고, 그러나 수천년 외부 세계와 교통하면서 변화 발전해 온 곳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고,

여행이란 낯선 곳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19세기 초 그곳을 여행한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이나 20세기 말 21세기 초 그곳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나 인도의 과거만을 찾고 자기 속에서 만들어진 환상만을 찾다가 실망해서 그곳을 떠나온다고 합니다. 게다가 열대의 기후는 비교적 북방에 있는 한국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거의 더위지옥이겠지요. 비교적 북방에 있는 영국의 사람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내)가 인도(그리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인식하는 방식은 바로 서양제국주의가 인도,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다, 서양제국주의의 박제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한 오리엔탈리즘이다, 하고 이 책은 지적합니다.

박제 오리엔탈리즘과 복제 오리엔탈리즘은 모두 인도에게 두 가지 덫을 씌우는데, 하나는 "인도는 미개한 야만의 땅, 우리보다 후진적인 곳"이란 것이고(그래서 교화의 대상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나 "인도는 신비로운 정신의 땅, 따라서 선진적인 우리를 모방하고 기술적으로 개발된 인도(서양화한 인도)는 진짜 인도가 아니"라는 것(그래서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인 이들은 진짜 인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많이 찔렸고, 그러니 읽는 이에게 어떤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미주까지 합해 231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의 문장이란 게 거의 인용문의 동어 반복이라니.
비판을 위해 영국 소설과 우리 작가들의 소설, 기행문, 신문 보도를 인용한 것은 원래 이 책의 서술 방식이지만, 그 외에 지은이의 논리를 전개하는 문장도 거의 선학들의 책에서 따온 것이라고 일일이 미주를 달아놓았습니다. 남의 생각을 슬쩍 갖다 쓰면서 자기 것인 양 시치미 떼는 것보다야 이렇게 인용 출처를 일일이 밝히는 것이 훨씬 훌륭한 태도이지만, 지은이는 이렇게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고, 게다가 앞에서 한 말 뒤에서 또 하는 식으로밖에 글을 쓸 수 없단 말인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생각까지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국 땅에 가면,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든 미국에 가든 인도에 가든, 일단 낯선 땅에 간 사람은 낯선 환경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 반응은 일단, 그곳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주관적인 반응일 겝니다. 물론 책이나 신문 기사를 발표하는 데는 사회적인 책임이 따릅니다. 갑남을녀가 무책임하게 소견을 던지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공공연한 영향을, 그것도 크게 미칠 수 있는 글에다가 겉핥기 여행 끝에 얻은 자기주관만을 나열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일이지요.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성찰해야겠지요.
하지만 작가나 기자 역시 처음 경험하는 것에는 서투르고, 그 경험을 거듭하면서 변화 발전할 겁니다. 그런데 그 첫 반응을 일일이 문제 삼고, 더욱이 이 책에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문제 제기 수준인 책이니까 그 정도에서 의의를 둔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후에 지은이의 대안적인 글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3장 "상상의 '동양'을 넘어서" 부분 211쪽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물론, 서양이 날조한 '사이비 동양'이나 영국이 조작한 '사이비 인도'를 모두 '사실'로 교정할 순 없을 것이다. 주술사가 악마를 쫓아내듯이 우리 안에서 서양을 완전히 쫓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난디의 판단대로 '서양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아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마드의 표현을 돌려서 말하면, 그것은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고 철도의 이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저는, "서양이 날조한 '사이비 동양'이나 영국이 조작한 '사이비 인도'를 모두 '사실'로 교정할 순 없을 것이다"란 말이 어떻게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고 철도의 이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로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상을 벗겨내려는 노력이 어떻게 일제가 지은 철도를 타지 않겠다는 아집과 같지요? 원래 의도는, "서양적인 것 역시 우리(인도)가 지금까지 오면서 받아들이고 융화해낸, 인도의 일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문장의 전개가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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