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이칼 ㅣ 스콜라 어린이문고 3
김병규 지음, 윤희동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종이칼, 유치원 아이들의 폭력을 다루었다는 이야기에 왠지 듣기에도 섬뜩한 책 제목을 보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은 일곱편의 단편을 묶어 놓은 책으로 종이칼은 여섯번째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단편들이 참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와 감동까지 안겨준다. 그렇지만 역시 결국 읽게 되고야 마는 여섯번째의 종이칼 이야기는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첫 단편인 [아기 괴물 꿈틀]에서는 시험 점수가 엉터리로 나와 마음이 불편한 명준이는 핸드폰으로 꿈틀이의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런닝에 팬티바람으로 눈구멍만 뚫은 종이가방을 쓰고 등장하는 꿈틀이! 명준이는 자신이 왜 문제를 틀려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따지는데 꿈틀이는 명준이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편을 들어준다. 가만 보니 꿈틀이는 다름 아닌 아빠다.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엄마를 비교하며 이야기하는 부자지간의 모습이 참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정말 이런 아빠가 있기는 한걸까?
첫 단편에 이어 [어디가세요?]에는 선생님만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오히려 아이들을 몰래 따라가는 상황을 전개시키며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는 선생님의 이야기와 [봄옷 입은 여름 아이]의 선생님이 아이의 형편을 살펴 눈치 채지 못하게 정당한 대회를 통해 옷을 선물하자 그 옷을 아끼고 아껴 사진 한장으로 남기기까지 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이야기속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이야기다.
[옷욕심]에는 엄마가 글쓰기를 봐주고 그 대신으로 얻어다 새로 고쳐 입혀주는 옷이지만 맵시있게 옷을 입고 글쓰기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당차게 행동하는 아이가 등장하고 [꽃밭과 길]에서는 모두가 문제아로 알았지만 그 문제는 바로 어른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교장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는 옛모습의 문방구를 추억하게 하는 [문방구였던 그 집] 이야기는 한편의 미스터리를 보는 듯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되어야 했던 종이칼은 진짜 칼로 친구를 협박하는 아이도 문제지만 자신의 아이는 그럴리가 없다고 믿으며 아이의 역성만 드는 못난 부모가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이 처음 협박을 당했을때 바로 엄마나 선생님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했더라면 좀 사정이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또 쉬를 싸거나 그림으로 말을 하는데도 눈치조차 채지 못한 그 부모가 바로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문체가 꽤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어 작가를 살펴보니 1948년의 노장이시라 깜짝 놀랐다. 이야기는 분명 지금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고 있는듯 한데 작가님이 혹시 손주들을 통해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 보고 계셨던걸까? 아무튼 조금만 더 아이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만 더 아이들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라는 충고의 말씀을 귀 담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