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논어 1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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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눈깜짝할 사이에 변해버리는 첨단의 시대, 컴퓨터, 인터넷등 디지털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고리타분한 공자라니. 그것도 TV속에서 살아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공자를 다시 이 세상속으로 불러낸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공자는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논어>라는 책 제목과 상관없이 내용은 공자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시대 전반을 알고 있어야 하듯이 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상가의 전반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좀더 확신을 갖게된다. 그 사람의 일생과 따로 떨어진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과 결별된 생각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공자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언어로써 이해하는 논어가 아니라 공자가 직접 말하고 듣고 의심을 품고 사유하는 그 시대의 언어로 논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쾌쾌한 먼지속에서 향긋한 꽃냄새를 맡는 기분이다.

책은 전반부에 공자의 생애를 다루고 후반부에서 논어의 한 장인 학이편을 다루고 있다. 그 많은 논어중 비록 한 장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성인의 생애와 그의 말씀이 일치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는 점에서 책의 장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학이편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꽤 많지만 그것의 주된 생각은 바로 실천의 중요성이라고 여겨진다. 논어를 읽기전과 읽고 나서의 모습이 같다면 어찌 논어를 읽었다고 할 수 있겠는냐는 말에서부터 공부(學)라는 것은 실천을 행한 이후에 그 여력이 남았을 때 행해야 하는 것이라는 등. 학이편의 대부분은 바로 행함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중심생각은 자신의 일생전체를 되돌아봤을 때 어김없이 지켜져왔던 절대적 덕목이었으리라.

말이 난무하고 글이 범람하는 시대, 매체가 폭발함에 따라 늘어난 다양한 정보들은 그야말로 홍수 그 이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 글, 말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건, 그것을 찾던 사람들의 실천이 행해졌을 때만이 아닐련지. 입만 또는 손만 살아 숨쉬는 이 시대에 뜨거운 일침을 가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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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가 고친다
김홍경 / 책만드는식물추장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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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병가를 내고 회사를 쉰지 벌써 3주째. 아파봐야지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는 때이다.

사람이 몸이 아프다 보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 이렇게 지독히도 아팠던 사춘기 시절에는 자살을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살이 고통의 근원을 결코 없애줄 수 없음을 알기에 이젠 그런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했지만 여전히 육체의 고통은 나의 정신을 지독히도 갉아먹기 시작한다. 사그락사그락 나의 정신이 닳아빠져갈 때면 무엇인가에 기대고 싶은게 인지상정.

무엇무엇이 몸에 좋다하면 또는 무슨 병에 좋다하면 그저 그걸 얻어내어 결코 입안으로 가져가봐야만 하는 절절함을 지닐 수밖에 없는게 환자들의 심정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내가 고생하고 있는데 설마 이것보다 더 나빠지랴 하는 우매한 마음도 한 몫 더해서.
하지만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음을 다시한번 몸으로 체득하고 나서야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실감하는게 범인의 심사인 법.

그런 범인들의 우매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책을 접하게 됐다.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님을, 즉 신심불이(身心不二)를 강조하는 이 책은 몸이 아파 마음이 무너져가는게 아니라 실은 이미 마음에 병이있어 그것이 몸과 하나되 병이 됐음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중심은 음양관에 있으며 그 핵심은 또한 중용의 정신에 있다 하겠다. 내 몸이 음이라면 양적인 것을 취해야 되고 양이라면 음적인 것을 취해 한 쪽으로 편협되지 않아야 하며 또한 절대적 사고에 사로잡혀 분별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 약은 독이 될 수 있으며 독은 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만병통치약이라는 우매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이것을 마음에까지 확장, 몸과 마음이 별개가 아님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단지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질병이 고쳐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건강이라는 것이 단순히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개인적 해방이 아니라 사회적 건강임을 보여주기도 하는 이 책은 가히 희망의 메시지라 할만하다.

분별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마음부터 살펴보는 자세, 그리고 그 마음을 항상 극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자세로부터 건강이 시작됨을, 어찌보면 뜬구름 같은 얘기라 생각되어질 수 있는 이 말이 나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어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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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전쟁 5 - 반지는 불의 심연 속으로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번 외 옮김 / 예문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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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대반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험과 환상,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지닌 절대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우론은 전쟁을 일으키고 그 세력에 맞서 호비트족들은 반지를 없애려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호기심을 자극하며 지속된다.

소설은 계속해서 이러한 모험에서 중요한 것은 희망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모험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첩경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죽 좇아가다보면 두가지 질문이 생긴다. 먼저 제일 중요한 절대반지의 정체가 무엇일까? 하는 것과 작가가 서양적 직선사관에서 벗어난 순환적 사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소설의 핵심은 절대반지에 있다 하겠는데 이 절대반지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절대권력이며 그것은 끊임없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을 유혹한다. 즉 절대반지 자체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조직체라는 것을 만들어, 즉 소위 사회적 동물이 된 이후로 권력이라는 것은 존재해 왔고 이 권력의 달콤함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유혹해 왔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을 위해 생겨난 것이 그 근원적 목적 자체를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그것(여기서는 절대반지)만을 위해 탐욕스런 전쟁을 치루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다음으로 이 절대반지라는 것이 사라지는 곳은 바로 그것이 탄생했던 장소이어야 하며 이것을 없애려 떠났던 호비트들이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모험을 끝내는 곳은 다름아닌 자신들의 마을임은 재미있는 설정이다. 절대반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감추어져 그의 일생을 보낼 수도 있으련만 궂이 탄생지로 돌아가 그 생을 종말을 맞고 호비트들의 모험이라는 것도 반지를 없앰으로써 그 끝을 맺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매듭지음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것은 결국 근원으로의 복귀와 그것을 통한 새로움의 창조라는 순환적 사관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모험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차원에서 직선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이 직선적 사유와 순환적 사유가 절묘하게 잘 조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정이 사라지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한 새로운 시대에 인간의 사명은 자연(소설 속 엔트족)과 함께 공생하는 것임을, 그랬을 때 우린 또다시 인간이외의 종족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그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며 같이 호흡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환상을 하며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로 이야기하는 내 자신을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띄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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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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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같이 먹는 것임을 알게됐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켜켜이 쌓여진 먼지의 두께만큼이나 책도 그 값어치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맨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그 제목에 마음이 쏠려, 그리고 책의 첫장에 시작되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항에 매몰되어 모든 내용이 그것을 주제로 한 변형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토마스를 주축으로 가벼움의 대변자 사비나, 무거움의 대변자 테레사의 삶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의 삶이란 그토록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혹은 무거움이었던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책을 접하게 되니 주인공은 이들 외에도 카레닌이 더 있음을 알게됐다. 토마스와 테레사가 키우던 개, 카레닌. 그(그녀)는 행복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행복이란 반복을 갈구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맴돌지 않고 직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간은 키취적 발상을 하게됐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1회적이며 그 1회적 인생 또한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어 자신이 그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한 번 결정된 사항은 돌이켜지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게 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처음 만나는 두려움, 이것이 인간의 삶을 가볍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반복, 재생산되는 키취의 욕구를 통해 행복을 갈구한다. 반복에의 욕구는 실은 예측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그 안에서 점진적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무거운 것은 실은 낙관적이며 밝은 것이다. 반대로 한번만으로 끝나버리는 인간의 삶은 어찌됐든 일단 선택되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버리기에 가벼운 것이지만 그속에선 비관적이며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은 그토록 가벼우면서도 우울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네 삶은 무겁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금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놓여진 나는 선택의 순간을 계속 거쳐야 하며 그것이 되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그 고민의 무게가 나의 어깨를 세차게 짓누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때론 울부짖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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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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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부분 일상속에서의 탈일상들이다. 너무나 근접한 우리네 삶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세심하게 써내려가는 글 속엔 어느덧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삶의 진실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때론 그런 삶의 진실조차도 나에게는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의 간결하고 날아갈듯한 문체로도 나의 이 무게를 덜어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쥐스킨트를 읽을 땐 또하나의 다른 생각으로 책을 접하게 된다. 그냥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는 삶의 한 방식, 방법으로서의 실용서로 말이다.

이번 <깊이에의 강요>에는 전부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에세이가 들어있는데,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삶의 방편이 들어 있다. 그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그냥 흘려버려. 그게 때론 너를 위해 좋을거야'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고 사는 한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순 없다. 혼자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계속되는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피드백이 이루어졌을 때 사회는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때론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단 말이야.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그래서 갈등도 생기고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와중에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낄때가 있단 말이야. 그래,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다들 그래. 누군가의 무심한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 자신은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결말이야 뻔하지 않겠어. 그렇게 온 몸을 걸었으니 결국 사그러들 수밖에.
그래, 때론 그냥 흘려보내는 거야. 그들이 뭐라고 지껄여대든 그냥 흘려보내는 거야. 내가 왜 그들의 안개같은 말에 휩싸여 나의 길을 잃고 헤매야 되는 거냐구. 그냥 놔둬버려. 그러면 머지않아 안개는 사라질 거야. 안개가 사라진 후에 나의 길을 가자구. 잘 봐, 얼마나 잘 보이니. 그래, 그냥 흘려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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