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 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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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 참전하려는 친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사랑을 찾아주려는 히피들의 노력을 줄거리로 삼는다. 헤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머리도 길고 옷도 치렁치렁하게 입는다. 이들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런 생활습관은 반정부, 반체제보다는 취향의 문제였다. 그냥 긴 머리가 좋은 거고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는 거 보다 청바지를 입고 웨스턴 부츠를 신는 게 간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규제하려는 경찰에게 그들은 "난 이게 좋을 뿐이에요."하고 말한다. 결국 군에 입대한 친구한테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잠시 만나게 해주려다 자신이 머리를 깎고 베트남전에 참전에 친구대신 죽는 의리파다.  

문화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ㅇㅇ문화라고 부르는 건 후대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해서이다. 당시에는 유행해서 집단 심리의 표출이라고 생각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이렇게 개인적 취향과 정서 속에서 더 공감을 하게 된다. 규정과 정의는 때로는 필요하지만 때로는 규정과 정의가 어떤 문화 속에 드러난 의도를 확대 해석하고 이슈화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해석자의 의도와 심리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대중은 해석자의 명쾌한 논리에 설득당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의 말보다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생성되고 규정되기까지에 절대요소가 행동자와 해석자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 오해이다.  

이 영화는 이런 필연적 오해에서 생긴 간극을 유머러스하고 뮤지컬이 담고 있는 경쾌함으로 처리했다. 가엾은 히피, 무기력한 히피는 60년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히피로 여기는 지, 타인의 해석을 받고 있는 히피인지 현재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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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우먼 - The Unknown Wom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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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을 때 모든 영화가 다 재밌어보이고 시간이 많을 때는 재미있는 영화가 빈곤해보이는 법이다. 시간이 나서 집 근처 시너스를 기웃거리는 데, 시너스는 너무 프로그래밍이 빈곤한다. 그래도 <시네마 천국>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니..  

영화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과거에 매춘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 이레나가 참한 가정부로 변신한 내막을 밝히는 플롯이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익숙한 효과음이 스릴러 분위기지 내용은 정작 60년대 한국영화다. 이레나의 과거가 인서트 컷으로 퍼즐처럼 나열되지만 이런 영화 편집 기법에 감동받기에는, 우리나라가 너무나 IT강국이라..-.-;; 강남역 길바닥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으로 사진찍고 메일로 전송할 수 있는 잡다한 영상기술 대국에 살고 있으니. 

숨겨진 이레나의 과거를 알게되고 현재와 얽혀읽는 동기는 모성이다. 왜 하필 모성인가하면 모성은 휴머니즘을 대표하지 않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보고 나왔을 때처럼 허탈하다. 미끈한 화면에 적절한 주제. 

 '인정'에 기초한 플롯은 어쩐지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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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0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이영화 워낙 좋다는 광고를 많이 봐서 한번 보려고 했는데, 그저 낚시용 홍보였던건지... 다시 생각해봐야겠군요~

넙치 2009-08-03 09:36   좋아요 0 | URL
따뜻한 건 있어요. 근데 완성도 면에서는 그닥..
 
레인 - Let It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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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변의 불쾌한 감정을 가진 한 여자(아가테)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오늘 부는 비바람처럼 안 반갑고 찐득찐득한 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잘나가는 페미니스트 작가가 정치에 입문할 찰나에 다큐멘터를 찍기시작하면서 밥맛인 상황에 빠진다.  

촬영하는 사람들은 덜떨어졌다. 열심히 말하는 데 카메라가 오프되거나 힘들게 산을 올라갔는데 카메라 뱃터리가 없고, 또 피디 한 사람은 약속에 늦고 아주 마음에 안 든다. 와중에 남친은 자신의 위치가 뭐냐고 다그치면서 결별을 고한다.  

아가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상황은 지나가는 비와 같아서 곧 하늘이 개기를 기다린다. 페미니스트로 대중의 권익을 위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데 서툰 사람이 소수자의 마을을 헤아리는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잘하는 것과 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똑똑하고 명민해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 꼭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똑똑하지도 않고 명민하지도 않다. 꼭 필요한 일도 게으름이나 사소한 실수로 망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차가운 비를 맞은 후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아가테처럼 똑부러진 사람도 따뜻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두드러지려면 경쟁이 필수인데 경쟁에서 우승자가 되면서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영화는 다행히 아가테가 고향에서 사소한 짜증나는 일들을 겪으면서 얼어버렸던 심장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끝난다.   

현실에서는 그게 간단하지 않다. 내 이익과 명예가 먼저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먼저냐하는 선택을 해야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에 따르면 이타심이 내 생존에 필요하다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타심은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타심을 소유하기 쉽다면 이타심에 대한 계몽도 필요없을 것이며 이타심을 가진 사람을 칭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후배에게 물었다. "저렇게 덜떨어진 사람이 실제로 주변에 존재한다면 그래도 우리가 웃을 수 있을까?" 후배 왈, "아니오."  이 후배는 소심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자신의 편안함보다 우선시하는 캐릭터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가끔은 <레인>같은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현실에서는 버겁지만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동안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위안이 필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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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 이발관 - Yoshino's Barber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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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으로 친숙한 오기가미 나오코 첫 장편 영화다. 바가지 머리가 전통인 한 마을에서 바가지 머리를 사수하려는 이발사 요시노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받아들이려는 신세대인 초등학생들 간의 이야기로 귀엽고 그럴 듯하기도 하다.  

요시노로 대표되는 전통주의자는 전통에 대한 다각적 고찰이란 없다. 다만 관성에 따라 습관적으로 전통 바깥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스파게티를 본 적없는 사람이 스파게티를 먹고 싶고 싶다고 생각할 수 없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상황은 변환다. 아이들은 전학생을 통해 바가지 머리가 촌스럽다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바가지 머리 밖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하는데 전학생이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는 착하고 귀엽게 끝이 난다. 전통은 전설로 남기 마련이라고 바가지 머리는 이제 전설로 남기기로 한다. 요시노와 아이들은 사이좋게 지낸다. 별 이야기는 없지만 바가지 머리를 보다보면 배실배실 웃음이 나고, 어른이 아이 같은 감성을 잃지 않는 오기가미 나오코감독은 축복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단순한 일에 즐거워하고 화내는 거, 그리고 금방 타인에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걸 어른은 잘 못한다. 지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오코 감독은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이 뭐였나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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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nkenBike 2009-07-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이번에 베타 서비스 오픈 기념으로 영화 '차우'에 대한 VIP 시사회가 있는데
시간 되시면 한번 참석 부탁드릴께요...

http://cooljam.tistory.com/23
 
로나의 침묵 - Lorna's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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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에 만들어진 <프로메제>란 영화의 속편쯤 되겠다. <프로메제>에서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그들을 돕지만 결국 등쳐먹는 브로커 부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바람직한 아버지상이라면 어린 아들에게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프로메제>에 나오는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브로커의 메커니즘을 가르친다.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경찰의 눈을 속이는 법을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수한다. 어린 아들은 아직 아버지만큼 냉정하고 비정하진 않은 게 희망이라면 모를까, 아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을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프로메제>가 카메라를 비추는 시점은 이주노동자가 꿈을 갖고 벨기에로 날아들었을 때이다. <로나의 침묵>은 망원렌즈를 들고 한 이주노동자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들여다본다. 로나는 마약중독자 클로디와 위장결혼해서 시민증을 받았다. 로나의 다음 꿈은 식당을 여는 것이다. 시민증은 로나의 꿈을 앞당겨줄 돈줄이다. 시민증을 원하는 러시아인에게 돈을 받고 위장결혼을 하면된다. 그 전에 이혼을 해야한다. 마약중독자 클로디는 마약을 살 돈이 필요해서 로나와 결혼했지만 로나 때문에 마약을 끊기로 결심하고 실천했다. 가족에게도 사람취급 받지 못했던 클로에게게 로나만이 삶의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바라보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다.  

 
클로에의 심성은 로나를 괴롭힌다. 로나 역시 심성은 선하기 때문이다. 선하다는 게 시장경제에서 살아가는 데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말하는 거 같다. 결국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로나는 원래의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진다.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이도, 그녀에게 위장결혼을 알선해주는 브로커도 그녀를 각자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여겼을 뿐이다. 

 
협력 또는 공생이란 도움을 주고 받는 이의 위치가 서로 비슷할 때나 성립한다. 로나가 그들에게 공생하기 위한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기생하는 위치가 된다고 짐작해 본국 알바니아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시장경제에서 한 순간 자본의 흐름을 거슬렀던 로나는 사람들이 도와줄거란 희망을 품으려 잠이 든다. 그리고 영화 자막이 올라간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그녀의 희망이 내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참 진지하다. 기교도 안 부리고 감상적으로 흐르게하는 음악도 잘 안 사용한다. 이야기 전개도 화면만큼이나 투박하다. 관객이 뭘 좋아할까, 그런거에 관심없이 관찰한 바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온다.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에 희망을 거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 한쪽에는 늘 진정성이 느껴진다.

 

*<프로메제>에서 어린 아들로 나왔던 제레미 레니에가 <더 차일드>에서 당혹스런 청년을 거쳐 이번에는 마약 중독자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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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