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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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 특별전이 열리는 아이공에 가야지 했지만 내 발목을 붙잡는 게으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받아 논 파일로.-.-; 

1. 64년 작품인데 지금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는 프레임들로 가득하다. 아니 오히려 한 편의 아름다운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다. 문득문득 정지하는 화면들은 멋진 스냅사진들이다. 풍경도 내러티브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령, 프랑스와가 일하는 목공소는 아름다운 영상덕분에 오히려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나무를 자르거나 마감하는 과정에서 소음과 톱밥으로 가득 차 있어야할 작업장은 음악이 깔리면서 프랑스와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걸 알 수 있다. 화면에서 보여 준 작업장이라면 누구라도 나무를 재단하는 고된 일을 재밌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와가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나가는 장면 역시 후기 인상파의 그림처럼 빛이 넘친다. 아낌없이 베푸는 햇살을 받으며 두 어린 아기들이 낮잠을 자고 부부는 사랑을 나눈다. 친환경적 여가에 웰빙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또 우체국 직원의 집은 갇힌 공간인데 감독은 역시나 환상적으로 만든다. 집은 조그맣지만 생활 공간 보다는 마치 한 폭의 정물화처럼 표현한다. 탁자는 식사를 위해 존재하기 보다는 꽃으로 그득한 꽃병을 돋보이기 위한 도구이다.  

2. 영화 중반부터 드러나는 독특한 세계관에 미소가 퍼지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영화 전반부는 별 다른 사건 없이 프랑스와와 테레즈 부부의 행복한 삶을 묘사한다. 프랑스와는 더할나위 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우체국 직원을 만나 바람을 피우면서도 죄책감 따위는 없다. 우체국 직원 역시 도덕적 의무감이나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들이 동의하고 알고 있는 건 서로를 사랑하는 것. 프랑스와는 아내인 테레즈에게 거짓말 하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과수원 밖에 또 아름답게 핀 꽃이 있어."라고! 과수원 안에서도 행복하지만 밖에 있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는 말씀되시겠다.  

명쾌한 논리지만 받아들이기에는 낯설다. 그렇다고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일부일처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프랑스와와 그의 연인은 혁명가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아내 떼레즈는 과수원 안의 사회에 익숙했고 결국 일부일처제를 혼자라도 따르기로 한다. 그녀가 가버린 후 남은 남자와 여자는 다시 과수원 안에서 행복을 이어간다. 극심한 주관적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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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7 0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넙치 2009-05-17 23:4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현대인들님 서재명이 '행복'이더군요.^^
아이공에서 구할 수 없는 영화들을 하더군요.
군침을 꿀꺽 삼키고 있지만 홍대 앞까지는 너무 먼지라..;;
 
5시부터 7시까지의 끌레오 [태원 아트무비 할인전]
AltoDVD (알토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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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화요일 오후 5시에 타로 카드점집에서 시작한다. 카드 패를 섞고 뽑는 손이 보일뿐 화면의 주인은 카드다. 그리고는 카드 점괘를 읽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점괘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점의 정확성은 듣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에 달려있으니까. 끌레오가 점집을 나오자 타로 카드를 읽어주는 여자는 놀라서 같이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저 여자는 저주받아서 암으로 죽을 거라고. 끌레오가 왜 두 시간 동안 불안해 하는 지 알려주는 말이다.  

사람이 불안할 때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신이 있고 점쟁이들이 있다. 신과 점쟁이의 공통점은 그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그들이 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뜻을 내 상황에 끼워 맞추는 일을 기꺼이 하면서 불안을 다독이고 위안을 받는다.  

끌레오는 타로 점에 기대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는 외출을 한다. 화요일에 새 모자를 쓰면 불운하다는 엥젤의 말을 외출 전에 따랐지만 외출 할 때 그녀는 통념적 불행과 맞서기로 한다. 새 모자를 쓰고 한 시간 반 가량의 외출을 한다. 찬사대로 카메라는 종횡무진으로 움직인다. 어떤 때는 끌레오의 눈 높이고 또 어떤 때는 지나가는 행인의 눈 높이로 또 어떤 때는 신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 높이로 60년대 파리 풍물을 담아낸다.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늘 같은 것만 보았던 끌레오에게 몽수리 공원 산책은 일탈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공감의 한계가 있다. 인물의 특징을 단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무시할 수도 있다.(작곡가와 작사가가 끌레오가 좋아할 거라고 친 장난처럼) 낯선 사람에게 때로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신과 점쟁이는 우리를 잘 모르는 데도 우리는 자신의 고민을 술술 얘기하지 않는가!  

끌레오 역시 레바논에서 휴가 나온 군인에게 자신의 불안을 털어놓는다. 택시가 아니라 전차를 탄다. 불안을 치유하는 방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불안의 원인을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 진술이라는 발화 행위를 통해 수행이라는 또 다른 발화로 단계로 이행하는 게 치유과정인데 이야기 하면서 이 치유 과정을 겪을 수 있다. 7시에 끌레오는 의사를 만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화요일에 새 모자를 쓰면 불행해진다는 근거없는 불안에 맞설 준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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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Sisters 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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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과 신민아란 두 이름만으로도 영화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공효진의 촌스러운 이미지와 내지르는 듯한 발성. 신민아의 산뜻함. 신민아는 이 영화에서 배우의 깊이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극의 구성이 어떻든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영화적 완성도도 좋다.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두 자매. 자매의 취향은 참 다르다. 서글서글해서 3초만에 다른 사람들과 쉽게 술잔을 교환할 수 있는 명주. 까칠하고 냄새에 민감하고 내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명은. 명은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1박2일.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단점을 아는 게 아닐까. 단점을 알고 싫지만 껴안는 과정을 통해 끈끈한 정이 생긴다. 혈연이 바로 그렇다. 성인이 된 자매는 서먹하기만 하다. 생선장수 싱글맘인 언니와 광고일을 하는 동생은 서로 마음에 안 들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단점을 받아들인다. 가족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가족 구성원으로 서로를 선택하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어떻든 부모와 형제는 정해진 거고 결국은 화해할 수 밖에 없는 게 한국사회 정서다. 영화는 이 틀을 안에서 자매애와 가족애를 말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두 사람의 기억 조각은 각각 다르다. 1박2일간 함께 여행을 하면서 퍼즐 조각은 하나의 그림으로 서서히 맞춰진다. 기억 조각은 고통일 수 있지만 하나의 큰 그림으로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족은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 있다고. 자매의 여행은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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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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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과 프랭크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하는 모든 말에 관심이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낯선 것들은 익숙한 것으로 변했다. 불꽃처럼 뜨거웠던 사랑은 희미한 열을 지닌 재로 변했고 일상은 반복된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도 매일 하면 일상으로 전락한다. 그러니 집안 일, 매일 같은 시각 열차나 버스를 타고 출근길 대열에 끼어 사무실에 도착해 대수롭지 않은 서류작업은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울렁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사도 해보고 집이 아닌 다른 곳을 기웃거린다. 익숙한 것들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다. 그러면 살아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조금 더 강도 높은 장소를 택한다. 미국을 떠나 파리로 갈 계획이다. 계획만으로도 그들은 잃었던 관심을 다시 되찾고 일상은 다시 탄력을 받는다. 느닷없는 고액연봉 제의에 프랭크는 꼭 파리가 아니어도 된다고 말한다. 에이프릴에게 파리는 돈벌이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프랭크는 고액 연봉이라면 미국에서도 충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꿈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파리행에 동의했던 때, 두 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기자 두 사람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걸 깨닫는다. 다르게 살기를 갈망하지만 그 '다르게'가 같지 않다. 각자 다르게 살기를 갈망하는 두 사람은 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에이프릴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죽음으로 다르게 삶을 끝냈다. 에이프릴이 없는 삶은, 확실히 프랭크에게는 다른 삶이다.  그들이 이전과 다른 삶에 만족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공허감은 매복하고 있을 것이고 호시탐탐 나올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 주까지 헐레벌떡 시간을 보내면서 내내 이건 아니야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번 주 여유를 좀 갖고 살만하다고 느끼자 허전함이 옆구리를 쿡 찌르는 이런 시간의 순환이 평생 지속되겠지. 그리고 그 순환주기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내 삶의 과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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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 - Rainbow Trou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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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말의 명화에서 봤는데 검색해보니 10년 전, 99년 영화다. 요즘의 반들반들 윤이나는 영상과 달리 후줄근해서 12시 넘어서 케이블에서 하는 19금 영화 분위기가 난다. 설경구, 강수연, 이은주 등등 10년 전 그들의 모습에 이끌려 보다가 이런 영화가 묻혀졌다니 아깝다.  

어렸을 적, 세 친구가 송어양식장에서 모인다. 한때 서울에서 연극 연출을 했지만 실패하고 산골에서 송어를 기르는 창현, 대학등록금으로 갈비집을 해서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한 대학 졸업장 대신 잘 나가는 식당을 재산으로 갖고 있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병관, 샌님 같은 민수. 졸업 후 각각 다른 인생의 영역을 펼쳐나가는 이들이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피크닉을 시작한다.  

자신과 다른 삶에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이들이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은 잠깐이고 날이 밝자 세 친구는 서로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어제의 의기투합은 사라지고 우정에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금은 점점 깊어져 결국 틈이 드러나고 드러난 틈 속에 숨겨진 잔혹한 본능은 비겁하기만 하다. 도덕이나 체면의 가면 뒤에 비겁한 습성이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도리를 알아야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지만 약자에게,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안전이 위협당할 때 바닥까지 떨어지는 행동을 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재로 한정된 공간에서 극적 긴장감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인간 본성이 어디까지 야비할 수 있는지, 위기 앞에서 배려는 짓밟히고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술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건 결코 유쾌하진 않다. 우리의 속마음의 일부를 꺼내보는 것 같으니까.  

영화는 상당히 비관적 세계관을 드러내고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선한 사람의 본성에 무게추를 기울이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연 이들과 같은 위기에-물론 자신들이 자초한 것이지만-몰릴 때,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용기가 있을까. 영화 속 인물들에게 선뜻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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