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 Marie-Antoi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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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는 2% 부족하다. 전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아주 형편없진 않지만 공감하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 혼자라는 감정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불안과 초조는 충분히 설득력있었다. 그러나 이 설득력을 깔아뭉갠 게 동양을 스펙터클화했다. 일본에서 맞닥뜨린 언어장벽을, 우스꽝스럽게 카메라에 담는다. 물론 유머지만 위트는 빠져서 동양인의 관점에서는 좀 불편한 유머다. '아륀지' 운운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본인의 발음을 조롱하는 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 무슨 갑작스런 연대감인가, 도 싶지만 낯선 나라에 대한 애정이 보이질 않는다.

이 영화 역시 기획의도나 시도는 꽤 신선하다. 부르봉 왕조의 몰락 중심에 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조명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여성 감독답게 왕비 이전에 한 집안의 딸이며 한 남자의 아내라는 보편적 시선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바라본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볼모로 프랑스 왕실에 시집와서 남편의 냉대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름신의 충실한 신도로 거듭난다. 눈은 즐겁지만 미국영화의 전형이며 또 감독이 미국인, 그것도 영화 왕족 출신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씨네21 한 블로거가 '소녀적 취향'이라고 했는데 완전 동의한다.  

두 편의 영화를 봤을 때, 소피아 코폴라는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힘든 일 혹은 권태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쇼핑이나 사랑을 택하는 걸 보면 좀 더 연륜이 쌓여야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성찰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쌓이는 게 아니니(대표적 인물이 명박되시겠다) 소피아 코폴라는 감독, 혹은 예술가로서 중요한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 신은 공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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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게임 - Funny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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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하네케 영화로 97년작을 다시 영어로 리메이크했단다. 97년 판이 독일어로 촬영해서 알려지지 않아서 대중적으로 알리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일정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기도 하다. 

1. 나오미 왓츠. 메릴 스트립이 연기파 배우이긴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진 않는다. 나오미 왓츠는 메릴 스트립의 장점과 니콜 키드먼의 서양 인형같은 외적 장점을 다 지닌 배우같다. 21그램에서도 힘들어보이는 역할을 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강하고 섬세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완벽한 몸매와 아름답기까지. 

2. 미카엘 하네케의 각본과 연출은 연극적이고 함축적이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연출기법, 최소의 배우, 대체로 제한된 공간 사용, 롱테이크는 단촐하지만 극의 흐름은 스크린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팽팽하다. 이 영화에서는 예외지만 음악도 별로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저력때문에 하네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으면 기꺼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3. 하네케의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은 지나칠 정도로 냉혹하고 염세적이다. 직접적으로 비판을 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잔혹성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동정이나 공감 따위로 감정을 동요하고 달래기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서게 유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 있다. 두 사이코 패스에 인질로 잡혀있다 사이코 패스의 자발적 퇴장으로 앤(나오미 왓츠)이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 한 밤중이고 인적없는 도로 위에서 앤은 절망적이다. 반대편 어둠 속에서 차 불빛이 서서히 앤을 향해 온다. 그 차는 사이코 패스들이 탄 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4. 물질문명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시선. 한 중산층 가정이 여름휴가를 간다. 숲과 물로 둘러싸여 도시에서 지친 삶을 쉴 목적으로 그만인 고급 별장이다. 요트를 띄울 수 있는 부두까지 갖춰 가족만의 낙원처럼 보이지만  풍요가 빚어낸 결과는 인질로 잡혀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지옥이기도 하다. 풍요의 친구는 무관심과 절대 고독이다. 총소리로도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없는 곳이 현대사회다.

5. 이 영화는 하네케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사이코 패스들의 심리를 알 수 없다.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 놀이를 하는지. 좀 아쉬운 부분이다. 사이코 패스로 나오는 마이클 피트의 목소리 넘 좋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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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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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이후 허진호 감독 영화를 다시 보지 말아야지 했는데...아, 정우성이 나온다니. 정우성, 이병헌, 장동건 등은 조인성이나 소지섭 등등의 나이 어린 배우들이 갖지 못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정우성이 웃을 때 생기는 눈가의 주름, 통통해진 볼이..아무리 조각같은 미남들이어도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구나..하는 연대감이 있다. ㅋ 

정우성이 나오는 영화를 은근 다 찾아보는 거 보면, 정우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그 전과 다르게 날렵하기 보다는 상당히 통통해 보인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지만. 고원원도 아름다운데 정우성의 미에 가려서 스크린 위 시선은 정우성에게 시종일관 쏠렸다.

정우성 얘기는 그만하고..기대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볼만한 로맨틱 코미디 되시겠다. 비 내기기 좋은 시절이 오려면 먼저 가뭄이 있어야한다. 박동하나 메이나 황량한 건기를 지났다. 그들에게 물기는 간절한 것이며 흠뻑 젖을 준비를 하는 남녀는 충분히 아름답다. 더불어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쓸데없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현실에서도 만날 사람은 정말 만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보면 현실은 반대 아닐까. 만날 사람은 사실은 만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 판타지 영화도 필요하고. 갑자기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몰고왔고 감독 역시 이런 판타지를 영화를 통해 재현한 게 아닐까. 뭐..

무엇보다도 엔딩이 허진호답고 좋다. 두 사람이 만날 거라는 걸 암시만 하고 박동하가 메이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크레딧이 올라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내 숭배를 배반치 않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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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없는 산 - Treeless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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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엄마와 헤어진 두 자매의 필살기다. 만사 의욕없이 알코올 중독자 고모는, 잔소리쟁이에다 걸핏하면 밥도 안 챙겨준다. 자매는 커다란 돼지저금통이 다 차면 엄마가 온다는 말에 열심히 돼지저금통을 채우느라 고모의 무관심도 상관없다. 저금통이 다 차도 엄마는 소식이 없고 고모는 자매를 짐스러워해서 외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긴다. 지방도시에서 시골로 환경이 바뀌어도 자매는 놀라울 정도로 적응한다. 자매는 엄마의 부재를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살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감정에 기대어 눈물을 강요하는 방법 대신, 감독은 감정을 최소화해서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된 환경을 알아차리고 적응해간다. 오백원 짜리 동전과 십원 짜리 동전의 가치를 질이 아니라 양으로 판단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아이들은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할머니의 구멍난 신발 값으로 선뜻 돼지저금통을 내놓을 정도로 의리있게 커 갈거라고 희망을 준다.

영화가 스크린 밖에서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는 현실을 돌아보고 의문을 갖게 할 때다. 이 영화에서 자매 역할을 한 두 아이가 보건복지부에서 실행하는 아동자립프로젝트 기금 모금에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희망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분노가 일어난다.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비 예산을 줄여 영어몰입 교육에 쓴다는 신문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영화 속 자매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점심을 굶게 하고 세금은 왜 쓸데 없는 데 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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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 Closer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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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 감독이 만든 전작들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에서 보여준 시선에 동의를 하기 쉽지 않다. 같은 소재로 이렇게 만들었으면 깔끔했을텐데..하는 생각을 불러온다. 서사에 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테일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건 철철 넘치는 휴머니즘이다. 뻔한 줄 알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리게 하는 소질이 있다.  

<내 사랑 내 곁에>도 큰 기대 없이, 그러나 김명민이 나온다니 궁금했다. 언제 극장에 갈 수 있나 조바심치다 오늘 보고왔다. 늦은 시간이라 동네 극장은, 여전히 커플들 천지고 혼자 이런 멜러물을 보는 게 좀 청승맞게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혼자놀기 달인인 내가 이런 시선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지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끝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민망했다. 코끝은 빨갛고 눈은 충혈되고. 

 이 영화 역시 좋은 소재, 좋은 배우로 박진표식 영화로 만들었다. 감정의 절제없고 주인공들은 동화 속에 사는 거 같아 지나치게 발랄하고 눈물은 계속 뽑아주시고. 영화 초반부에 하지원과 김명민의 닭살행각은 지루하고 공감이입 절대 안됐다.-.- 박진표 감독은 닭살 행각을 참 좋아하는 거 같다. 백종우가 입원하면서 지루함이 조금 덜어졌다. 6인실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각기 다른 상황은 생기없는 영화에 활기였다. 뇌사 상태의 환자들과 그 보호자의 애타고도 힘든 상황을 어찌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가늠하는 척 할 뿐이지. 김명민의 연기야 신들린 것처럼 최고지만 덜 빛나는 역을 하는 거 같아 안타깝다. 사실, 시나리오가 별로지만. <무방비 도시>도 많은 걸 쿨하게 말하려다 실패한 시나리오여서 김명민이 파닥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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