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동문선 현대신서 104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동문선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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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의 추억...가끔 그 당시의 화면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쿵쿵 거린다.시청앞 광장은 물론이고 남한 전체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대..한..민..국. 87년 6월항쟁때 보다 더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남녀노소,정치색을 뒤로 하고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 라는 옷을 차려입었다.우리 언론들은 이 단결된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몰아서 우리 민족이 다시 뛰는 계기를 만들자고 김치국 마시는 보도를 해댔다.그때 난 방 한 구석에서 TV를 보며 두 가지 감상에 젖어들었다.한가지는 붉은 물결이 일렁이는 희열이었으며 또 한가지는 그 다수의 군중이 한목소리를 내는데오 오는 위협감이었다.만약 이들이 반성하지 못하는 하나의 힘이고 이를 누군가 교묘하게 잘 이용한다면..공허한 상상이다.하지만 불과 100년 안되는 시간 전에 히틀러와 독일 국민 다수가 그랬다.21세기엔 불가능하겠지.하지만 그 형태를 바꾸어도 그렇게 낙관할 수 있을까?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는 다수의 군중성이 가지고 있는 위협에 대한 이야기이다.좀 더 역사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파시즘에 대한 희곡이다.코뿔소는 파시즘화된 개인이고 파시즘 전체이다.이성과 합리주의의 승리를 믿어왔던 유럽은 2차대전후 본격적인 성찰에 들어간다.믿었던 유럽의 지성과 건강한 사람들이 파시즘을 양산하고 기계적으로 파시스트들이 되었갔다.이에 대한 충격과 반성.전후 실존철학이나 반이성주의철학이 힘을 얻기 시작한 계기이다.아도르노가 이야기한 '도구적 이성'이란 것도 이러한 이성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결과이다. 이오네스코 역시 파시즘의 역사를 겪으며 인간의 군중성과 맹목적 이성이 어떤 폭력적 결과를 가지고 오는 지 성찰하게 되었을 것이다.그리고 <코뿔소>를 내세워 사람들이 어떻게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파시스트가 되어가는지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파시즘의 허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대신 작가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진해서 코뿔소가 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민중들의 자발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또 한가지 지식의 역할이 중요하다.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비롯한 뛰어난 저작에서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명백하게 밝혔다.이오네스코 역시 그의 인물들을 통해 파시즘에 대한 지식의 봉사를 형상화한다.

그의 주요인물이었던 논리학자,보타르등은 지식과 논리가 어떤식으로 파괴적 폭력에 동의해가는지를 보여준다.가치관이 배제된 지식과 논리는 허울좋은 이성의 이름을 쓰고 비인간적 폭력의 동원대상이 됨을 지적하고 있다. 주인공 베랑제의 친구 장 역시 마찬가지이다.속물적 지성으로 세계의 중심인척 자처하지마 그 역시 독자에게 멋진(?) 변신쇼를 보여주며 하나의 폭력으로 변한다.

이념과 가치의 상대성이란 허울도 이오네스코의 통찰아래 후피동물로 변하고 만다.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케이스인데 등장인물중에는 뒤다르가 그 역을 맡는다.뒤다르는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상대주의적 입장으로 코뿔소를 바라본다.오히려 베랑제의 걱정을 신경증으로 파악하며 자제를 요구한다.하지만 뒤다르 역시 힘에 대한 동경,폭력적 다수에 대한 동경을 피하지 못한다.코뿔소에 대한 주인공의 혐오도 이쯤 되면 바뀌게 된다.모두가 코뿔소로 살아가며 행복한데 나 혼자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다.가장 위험한 생각이며 가장 현실적 생각이다.하지만 주인공은 단호히 인간의 길을 선택한다. 이 과정이 너무 짧게 표현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희망으로 끝내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었으리라...

다수는 개인에게 힘과 안정감을 준다.적어도 실책에 대한 면피라도 마련해준다.그게 대세였다는 식으로..그래서 가치관이고 뭐고 현실적 대세에 편승하려는 욕망이 생긴다.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에겐 대세편승론과 보신주의가 인에 박혀있다.서정주같은 시인은 자신의 친일을 변호하며 '종천순일파'-하늘의 뜻을 따라 일본을 따랐다.-라고 명했단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역시 '코뿔소'되기 보단 '인간'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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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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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문학의 재번역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몇몇 출판사에서 주도적으로 그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듯 하다.무척 반가운 일이다.새로운 감성에 가독성을 높인 번역은 새로운 독자층에게 어필하는 최선책이다.거기에 또 한가지 반가운 일은 이러한 작업에 힘입어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지만 훌륭한 작품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까사레스의 <러시아 인형>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가오싱젠의 <버스정류장> 막스 플리쉬의 <호모 파버>등등. 후안 롤포의 <뻬드로 빠라모> 역시 최근의 흐름속에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까한다.하지만 이 책은 약간의인내를 요구한다.지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특이함때문이다.

<뻬드로 빠라모>를 만나는 동안 참 난감했다. 어렵다기 보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말 '난감'한 읽기를 했다.하지만 손을 때기도 어려웠다.우선 스토리는 의외로 단순했다.

주인공이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나선다.아버지의 고향마을 근처에서 몇몇 사람을 만난다.그리고 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집세고 총명하며 세속적인 아버지-그가 뻬드로 빠라모이다-는정략결혼을 서슴지 않는 비정함을 가진 한편 또 한 여인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사람이다. 뻬드로 빠라모는 한 여인의 사랑을 결국 얻지 못하고 타살된다.

이 정도가 이 소설의 전부다.별로 난감한 이야기는 아니다.그런데 이걸 작가가 어떻게 분해하고 어떻게 배치해버리는지 혀를 찰 정도이다.남미의 환상적 리얼리즘의 황당함을 좋아하고 또 익숙해있던 나에게도 낯선 구조였다.아마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게 한 힘은 그 난해한 구조에서 나온  듯 하다.더 쉬운 말로 하면 '도대체 어떻게 일이 풀려가는거야.뜬금없이 나타난 이 사람은 도대체 뭐야? ' 하는 조금은 황당함에 대한 의구심이 날 끌고 갔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책을 읽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영화'식스센스'를 떠올릴만한 장면을 만난다.주인공이 아버지의 마을 '꼬말라'에서 처음 누군가를 만난다.(작품 후미에 그는 또 등장한다.)그리고 같이 마차를 타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그리고 헤어진다.잠시후 어머니를 안다는 여자를 만난다.그녀는 주인공이 만났던 그 마부는 오래전 죽은 사람이라고 말해준다.첫번째 황당함.그래도 여기까지만 해도 '그래 영화[식스센스]에서도 그랬는데 뭘..' 이렇게 생각했다.그런데 다음 장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여자를 만난다.그 사람은 또 이러는 것이다.'당신이 말한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아직도 혼령이 떠돌아다니는 구먼' 그렇다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이정도 이르면 누구 죽은 사람이고 누가 산 사람인지 구분이 안간다. 주인공도 결국 이렇게 묻는다.'지금 나와 이야기 나눈 사람은 진짜 사람이요 혼령이오.'

작품의 배경이된 마을 '꼬말라'는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가 혼재한 공간으로 설정된다.그리고 몇번의 황당함과 몇번의 배신을 겪으며 소설적 상황에 대해 인정하고 주인공의 가족사에 얽힌 소설적 전개를 기대할쯤..아.....또 작가에게 배신 당하고 만다. 갑자기 주인공이 이유도 없이 죽어버린다.그리고 무덤안 땅 속에서 먼저 그 자리에 묻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이정도면 두 손 두 발 다들어야 한다. 이제는 어설픈 상상은 포기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이제부터는후안 롤포와 주인공을 따라가기만 해야하는 것이다.

'꼬말라'라는 마을의 현재와 죽음의 혼재만이 낯선 것은 아니다.책을 보다 보면 도대체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분명 처음에는 1인칭이다가 어느 순간 3인칭으로 바뀌는 문장.마치 컬트영화를 보는 듯 하다.이 난감함을 뚫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정신이 얼얼하다.그러면서도 경탄을 금할 수 없다.시간의 혼재,공간의 얽힘,화자의 중첩,현실과 환상의 교환. 무채색의 이야기를 이러한 붓들과 염료를 섞어서 색채판에 없는 탈세계의 색을 만든 후안롤포의 상상력과 그의 천재성에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새로운 소설을 필요로 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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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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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룻밤의 이야기이다.그러면서 또 41년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선 나는 이 소설을 보며 올 하반기 최고의 한국영화 [올드 보이]를 떠올렸다.소설과 영화가 복수를 드라마의 기본 소재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악연의 고리를 푸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먼저 영화[올드보이]는 15년간 영문도 몰래 갖힌 남자의 복수욕망과 그를 가둔 자의 15년이 넘는 자기파괴적 복수욕망을 상치시킨다.그리고 박찬욱감독의 스타일대로 하드보일하게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반면 산도르 마라이는 훨씬 정신적이고 근원적인 방법으로 복수의 길을 찾는다.그가 찾은 복수는 삶에 대한 용서와 삶의 진실에 대한 질문이다.

가장 믿는 친구로부터의 배신을 통해 주인공은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그러나 분노는 점차 삶의 근원을 향한 내적질문으로 변해간다.주인공은 잊을 수 없는 배신의 날로부터 41년을 기다려 친구의 방문을 통보받는다.그 암울한 기억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며 주인공은 담담하게 친구를 맞는다.배신의 기억의 한 축을 만든 장군의 아내만이 부재하다.산도르 마라이는 이미 노인이 되버린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열정과 그에 따른 모순을 담담하게 설명한다.

주인공 헨릭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 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주인공은 진실을 알고 싶어했고 그리고 그는 고독을 통해 진실을 이해했다.인간의 의지와 도덕,책임같은 것 만으로 제도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을 이해한 것이다.그리고 배신의 결과 죽는날까지 다시 만나길 거부했던 부인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가장 쓸쓸했던 사람은 바로 부인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자신의 분노와 친구의 비겁함으로 인해 두번의 버림을 받는 자의 고통을 안것이다.

이 소설은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 인식의 논리를 근원에 깔고 있다. 멀리 그리스까지 갈 것도 없이 20세기 초 토마스 만의 소설<토니오 크뢰거>나 헤르만 헤세의 소설<지와 사랑>등에서 우리는 쉽게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을 찾을 수 있다.토마스 만은 예술가와 부르주아 공민세계 편입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을 그렸다.헤세는 두 수도사를 통해 디오니소스적 세계와 아폴론적 세계를 표현해냈다. 20세기 초 유럽소설의 전통이었든 플라톤을 정점으로 하는 형이상학적 전통이었던 산도르 마라이 역시 이 전통을 따르고 있다.

주인공 헨릭의 세계와 콘라드의 세계는 그들의 성장과 함께 색깔을 달리한다.헨릭의 아버지는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한다.비극의 단초는 콘라드의 세계에 속한 크리스티나가 이질적 세계로 편입되면 발생한다. 세계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이 과연 적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문학적으로 매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그리고 경험적으로 비추어 봐도 양자의 가치관이 실재에 현존한다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물론 대부분 사람은 세속적인 이해관계속에서 합리적이라고 가장된 속물적 근성에 기대어 산다.하지만 내면의 움직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세계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그리고 결국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된다.산도르 마라이도 말하듯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 만큼 행운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굳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같은 가치의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인공 헨릭은 내면의 색깔을 파악하기엔 너무 유복했고 행복했다.그러므로 젊은 날의 그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도,제도로써는 막을 수 없는 삶의 열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분법적 세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평범함 나로써는 그의 선량함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삶은 그렇게 한 줄의 문장이나 한가지 변수로 측정할 수 없는 열린 다항함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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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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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장을 펼치고서야 이 책이 번역된지 2년정도 지났음을 알았다.이제서야 비로소 읽었다.나의 편견때문이었다.나는 이 책이 애서가의 책 브리핑인지 알고 있었다.그래서 책 제목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늘 눈길 밖에 있었던 것이다.(정말 나의 불찰이고 무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이 책은 최근에 본 에세이 집 중 최고였다고 할 만하다.만약 책을 멀리하던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잊혀졌던 책에 대한 애정이 살아날 것이다.또 책을 애인삼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그 인연이 백년은 연장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서재 결혼 시키기>는 책을 사랑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책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와 숨은 애정을 표현한 책이다.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두가지쯤 공감할 이야기들이다.책의 제목이 된 에세이는 책을 둘러싼 두 애서가의 헤게모니 투쟁과 정리의 과정이 씌여있다.서로 다른 취향의 책을 어디에 배치할 것이며 같이 가지고 있는 책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책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그것도 문제거리야'라고 할 만한 주제이다.하지만 내 책은 나의 일부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나 역시 이를 미루어 걱정해본봐 있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물론 내 반쪽이 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다.하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 나의 지분을 넓힐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최근에 들어서 한가지 공유한 부분은 서로 읽는 책은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리고 책을 상대에게 빌릴때는 교환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어찌 그리 야박하냐고 탓할 수 있겠지만..나는 그런 비난에 '그 정도도 많이 양보한 것이다'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책과 교열에 대한 패디먼 가족의 일화도 무척 흥미롭다.특히 패디먼 가족의 강박증적 교열정신은 사실 날 좀 부끄럽게 한다.이유는 알라딘 서평에 쓰는 내글에 생기는 오자와 탈자때문이다.나름대로 변명하자면 회사에서 몰래 글을 쓰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 밖에.여기 저기 눈치 봐가며 쓰다보면 교정하기 전에 보내기 엔터바를 누르기 십상이다.그러다보면 당연히 오자와 탈자,문맥상 부자연스러움이 많이 생긴다.내 희망이 있다면 패디먼과 같은 사람이 주변에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패디먼 가족의 모르는 단어찾기의 즐거움도 공감한다.최근에 이응백 선생의 우리말 관련된 책을 하나 구입했는데 이유는 숨은 우리말의 매력때문이다.알라딘의 내 서재 이름(드팀전) 순우리말인데 아주 맘에 든다.이 책 저 책보다 그냥 아무데나 펴서 책을 보고 싶을 때 이응백 선생의 책을 핀다.그리고 그 안에 내가 모르고 있는-사실 봐도 금새 잊어버린다만-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 볼때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금새 감탄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보며 부러웠던 것은 패디먼 가족의 책 대물림이었다.물론 남편을 비롯해 온 가족이 글을 쓰는 직업과 관련이 되었던 사람들이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패디먼은 아이들이 책과 가장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책으로 성쌓기 라고 했다.그만큼 책이라는 것이 화장실의 거울이나 집안의 시계처럼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선대부터 물려온 책을 다음대에 가장 큰 유산으로 넘겨주는 것은 정말이지 최고의 보물이다.대물림하는 부모나 한 권이라도 더 챙기려는 자식이나 너무 멋있다.나 역시 수백억을 물려주긴 힘들겠지만 멋진 책들을 내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겠다는 소망이 생겼다.아직 모르는 그/그녀가 패디먼처럼 행동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 책은 책과 관련되 그동안 내가 소홀히 했던 부분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그리고 패디먼의 글쓰기는 유머가 항상 가득하다.이 두가지 때문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다.애정이 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고 했던가.나 역시 책에 대한 소소한 애정을 더 많이 쌓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그래서 우선 거금들여 만년필을 하나 살까한다.평생 쓸 생각하고 좋은 걸로 고를 생각이다.그리고 친구들에게 책 선물할때 꼭 그 펜으로 헌사를 써주어야겠다.언제든 나의 향기가 그곳에 함께 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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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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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고,역사라는 일람표 위에 갈겨 쓴 낙서처럼 인간집단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한여름에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그 존재는 현실인가 꿈인가,좋은가 나쁜가,귀중한가 무가치한가?'

남진우의 해설 앞에 인용된 로베르트 무질의 글이다.남진우의 평론은 대충 큰 제목만 보았다.(수잔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읽은지 오래지 않아서 그랬나....) 사실은 책을 읽은 나름대로의 감동을 남진우의 생각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무질에 대한 인용은 정말 훌륭했다.이 책의 모든 걸 단 몇줄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에는 20세기 전반부를 살다간 '한여름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들이 수두룩하다.그가 양반이든 도둑이든 악질 통역이든 모두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일포드 호가 제물포항을 떠나 항구의 뜨내기들 눈길에서 아득해져가는 순간 부터 그들의 존재는 차즘 지워져갔다.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기엔 본토의 다수가 겪은 역사의 질곡 또한 녹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포드라는 인종의 용광로,붕괴되어가던 조선계급의 열가마 속에서 잊혀진 자들은 그들만의 삶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비록 금새 탄로나 버렸지만 꿈이란 것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들,잊혀진 소수자의 이야기이며 그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긴 이야기이다.아래 어떤 글을 보니 이 책을 보다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렸다는 내용이 있다.논리적으로 무리가 없는 생각이다.유카탄 반도의 조선동포가 사회적 역사적 소수 였듯이 외국인노동자들 역시 그들의 본토의 역사에서 타자화 되고 있으며 꿈을 이루겠다는 이곳에서도 타자가 되고 있기때문이다.

우리가 상상은 물론이고 존재 자체를 딱히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공간과 시간.마치 존재 이전의 무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통신이 발달된 요즘도 마찬가지이다.예를 들어 영국의 아일랜드 위에 극지방 가까이 '아이슬란드'란 나라가 있다.그곳에 어떤 사람이 어떤 언어를 쓰며 어떻게 사는지 아는가? 난 tv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포드의 조선인 역시 본토의 사람들에게-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존재였다.그들은 결국 대부분 다수가 겪은 일제시대라는 역사의 줄기를 벗어나 멕시코 혁명의 줄기를 타게 되고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다.작가는 이 과정에서 외국 사회에서 근대화를 겪는 조선인의 혼란을 그려나간다.

물론 당시의 조선 역시 식민지적 근대화가 추진되고 있었다.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런 근대화를 더 직접적이고 생존과 관련하여 취급한다.계급의 붕괴와 주체적 여성상,외래종교와 토속종교의 갈등,농민반란과 정치적 근대의식등이 그것이다.이런 주제들은 하나 하나가 지난 한국 소설의 소재가 되었던 것들이다.작가 김영하는 유카탄 반도의 조선인이 겪는 문화적 충격과 적응,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러한 주제들과 잘 섞어서 보기 좋은 그릇을 만들고 있다.그러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근대 조선의 전형적 인물형들을 전부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몇개의 장면은 박수무당이 파하촌에서 펼치는 굿판과 파계 신부 박광수의 죽음 장면이다.둘 다 이국적인 장면이다.메마른 에네켄농장의 밤을 밝히는 어지런 불빛과 무당의 굿소리.궁정내시 출신의 악사가 부르는 피리소리 까지 더해진다면 당시 그들의 마음이 지면을 뚫고 시간과 공간을 헤치고 이곳 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박광수는 이정과 함께 과테말라 내전에 참가하여 마야의 피라미드 위에서 웃음과 함께 사라진다.총소리,웃음....사라진 한. 푸른 융단과 같은 밀림속 피라미드 정상에 영원히 신전과 함께 잠드는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인물이 다 주요인물이다.이정과 이연수의 닿지 못하는 사랑이 독자를 위한 로맨스의 한요소로 힘을 발휘하지만 그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전장을로 이정을 끌어들인 뒤 배신한 조장윤도 이연수를 끝까지 지켜주는 이발사 박정훈도,저주를 남기며 죽은 박수무당도 모두 잊혀진 역사의 주인공이다.유카탄 불볕아래 사라진 눈송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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