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 전 쯤 일이다.함께 일하는 동료 여직원이 점심 시간에 무언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무슨 책을 보나 하고 물어봤다. "뭐 읽어?.... "  " 아...이거요. <아내가 결혼했다>에요. 이 책보셨어요?"  .... "아니" . 그녀는 갑자기 신입사원 만난 보험아줌마 같은 표정을 하더니 "이거 정말 재밌거든요.정말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요.진짜 최고예요 최고.."  퉁퉁한 그녀의 얼굴이 약간 흥분되어 벌게졌다.(그런데 어쩌나 ....다 읽고난 지금 그녀가 최고라고 하던 이 책에 별3개도 겨우 주었으니...용서하시길)

그녀의 흥분된 목소리는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 들렸다. '이사람아...도대체 뭐하는거야.이런 재미있는 책도 아직 안보고.어서 보란 말이야...매일 제목은 그럴싸 해보이지만 뜻도 모를 이상한 책들 들고 다니지 말고...뭐하니 ...진짜 죽인다니까..어이구" .... (이런걸 '자격지심'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다 대고...지가 책을 보면 얼마나 본다고 ..최고니 뭐니 흥분해 가지고..난리부르스를 떨고 있어.'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녀의 짧은 흥분과 자랑은 내게 그렇게만 들렸다. 사르트르가 그랬다나.'베스트셀러는 모두가 보기때문에 볼 수 밖에 없는 책이라고'..그에 반해 나의 '자격지심'은 내게 이런 명령을 내린 셈이다. "대중의 취향에 반하라.그래야 상대적으로 네 독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정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녀의 알은 체가 이 책에 정나미를 떨어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 작은 에피소드 후에 이 책은 바다 건너 대마도 땅 모래밭에 묻혔다.그러다 몇 주가 지났다.그날은 회사 자료실에 들렀다.매일 허접한 책들만 들여오는 자료실.언제나 대여 1순위는 해리포터,김진명류 소설..... 최근에는 어떤 책들이 들어와 있나 쭈욱 살펴봤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1억 당첨금을 받았다며 당당히 서고에 꽂혀 있었다.마치 자기의 몸값이 1억인양 당당하게 말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에 대한 그녀의 흥분된 목소리가 갑자기 환청으로 들려오는 듯 했다.고개를 돌리고 무시하며 지나갔다.에이..그런데 미운 것에도 호기심은 생기는 법.결국 다시 방향을 돌려  이 책을 집었다. '도대체...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난리야'  몇 장을 넘겼다.그 몇 장의 책장 넘김이 결국 이 책을 다 보게 만든 이유다.소설의 이야기...주인공들의 캐릭터...  몇 장 넘기는 동안 그걸 어떻게 살펴볼 수 있겠는가.나의 시선을 잡은 것은  FC바로셀로나의 이야기였다.FC바르셀로나의 구단 모토...'클럽,그 이상이 되자'.....   다른 장을 마구 넘겼다.지네딘 지단의 이야기,유로 2004의 그리스 우승 이야기,90년대 맨체스터의 아이콘 칸토나 이야기...등등 

이 책을 읽게 만든 건 1억원 수장작이란 후광도 아니고 흥분된 직장동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그것은 단지 '축구'때문이었다.

축구가 도래하기까지 좀 심심했다.마이클 조던이 빠진 NBA는 앙꼬 빠진 단팥빵이었다.차세대 조던들의 승부도 물론 잠시 볼만은 했다.앨런 아이버슨,코비 브라이언트,빈스 카터,포지션은 다르지만 팀 던컨,케빈 가넷...그리고 가장 최근에 르브론 제임스까지...하지만 그 누구도 조던이 가진  아우라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NBA가 지겨워 질 즈음 눈을 돌린 것이 유럽축구였다.때마침 PS의 '위닝'시리즈가 인기가 있던 터라 게임과 축구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내가 관심이 가는 것은 결국 소설의 이야기보다 축구 이야기였다.인터넷에도 나와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지면으로 만나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거기에 소설 속 상황을 축구와 비유하며 인생을 축구의 축소판으로 만드는 작가의 재기어림이 좋았다. 아내의 도발적 실험에 대해 결국 끌려가는 주인공.이혼서류는 만들지만 결국 접수하진 못한다.그리고 이어지는 라이언 긱스의 발언 "축구는 상호비방과 모욕으로 가득한 잔인한 경기이며 나는 분명히 그 주범 중 하나일 거예요"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을 부정선수라고 비유한다.그러면서 하는말...'이게 축구였다면 진작 부정선수 개입으로 인한 몰수 게임이 선언되었을 것이다.부정선수로 인한 몰수 게임의 공식 스코어는 3대 0." ...

... 1986년 월드컵 마라도나가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는 해이다. 어느 방송 해설자의 말이 이어진다. "축구란 혼자서 하는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겁니다.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깬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말도 이어진다.'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둘의 가족이 얽히는 것이다.나는 결혼의 개념을 깬 최초의 여자와 같이 살고 있다.그리하여 사는게 참 힘들다.'...심각한 상황에서 매 장 끝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축구비유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스토리의 도발성과 축구와의 비유를 뺀다면 그다지 인상적인 것이 많지는 않다.제도권 방송의 드라마 소재가 되긴 힘들겠지만-<사랑과 전쟁>쯤은 할 수 도 있겠다-딱 60분짜리 분량의 드라마같다.재기 넘치는 문장,스피디한 사건 전개,만화적인 댓글 사용,(왜 있지 않은가? 슬램덩크를 보면 진지한 강백호가 갑자기 웃기는 강백호로 바뀌는 컷 같은 것들)...이 소설에서 빼어난 풍경의 묘사라든가 심리적 뒤트림의 표현이라든가 뭐 이런거 찾지 않는게 낫다.그러니 미니시리즈는 못되고 <사랑과 전쟁> 정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문장에 엽기적(?) 사건이 진행되어 가다보니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가독성이 뛰어나다.또한 빠르다. 눈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든다.이 부분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소설이긴하다.(하지만 아무리 재미있어도 <미션 임파서블3>가 올해 아카데미에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할게고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수는 없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혼제도와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일부일처제와 4인기준 가족이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읽는 이에 따라 이 견해가 충격적이거나 혁명적인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그런데 내게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물론 내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학문적으로 결혼이란 제도와 일부일처제의 모순등에 대해서는 수 백권의 책이 나와있다.또한 역사적으로 가족이란 것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는 유럽에 방직기 돌던 시절부터 논의되어 왔다.그러니 일부일처제의 부당함에 대한 여자주인공 인아의 항변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여기 저기 가족제도 관련 책의 어떤 부분을  인용하는 투의 인아의 논리정연함은 작위적이기만 했다.대게 일부일처제란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집에 책이 많은 사람들이다.인아와 재경이 그렇듯이.그 책의 몇 장이 인아의 입을 통해 들린다.인아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혀 입체적이지도 못하고 내면의 모습을 그려지지도 못한다.(남편의 1인칭 시점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저 축구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결혼제도에 반대하는 '자유'라는 이름을 건 마네킹같다.(대학가에 주인장이 좀 지적인 카페에 밤 늦게 가면 이런 캐릭터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만약 주인공 덕훈이 내 친구 였다면 머리통을 한대 쥐어 박았을 듯하다.도대체 축구 팬이면 축구 팬으로 머물러야지 왜 레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뛰어드냐는 말이다.플레이는 선수가 하는 것이지 팬이 하는 것은 아니다.12번째 선수는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바로 훌리건 취급당해서 끌려나오는 것이다.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게 두어야 한다.지구별 사람이 거기에 왜 개념없이 뛰어드는지....(어! 그런데 난 어느별에서 왔지?)...그러니 혼자 애가 끓는다.주인공 덕훈이 인아를 사랑하게 된 건 '축구'와 '섹스' 때문이다.축구는 결국 레알이 이기든 바르셀로나가 이기든 현실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덕훈도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된다.결국 인아를 선택하고 지키려는 가장 근원적 이유는 '섹스'때문이다.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는 것...그것만으로도 결혼은 된다.하지만 문어가 고등어랑 섹스하고 만족도가 높았다고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연애질을 하는거야 모르겠지만.여기에 시간이 지나며 제3의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그 다음부터는 '사랑'이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작가는 열심히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재경의 등장 이후 덕훈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쟁패'이다.질투심에서 비롯된 승부근성.어떻게든 원래 내 것을 찾아오겠다는  그래서 이 승부에서 이겨야겠다는.(결국 이기지도 못한다.처음부터 이길 수 도 없었고 원래 자기의 것도 아니었다.)

이 상태가 되면 미안하지만 '사랑은 이제 끝'이다.승부만 남았다.(대게 단맛 쓴맛 못 본 남자들이 '승부'와 '사랑'을 혼동한다.그러니 스토커도 나오는거고) 주인공 덕훈에겐 사랑과 결혼에 대한 아무런 철학이 없다.반면 그것이 반사회적일 지라도 인아와 재경에게는 사랑에 대한 철학이 있다. 이런 싸움은 처음부터 하는게 아니다.내가 그의 친구였다면 싸움에 발을 들여놓치 말라고 충고했을 것이다.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을 버티기며 익숙해지는게 쿨한게 아니다.돼는 것과 안돼는 것에 자기중심이 있는게 오히려 쿨한거다.접을 때 접고 펼칠때 펼치는게 병법의 기본이며 또한 축구의 기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작가는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의 문제에 대해 알리고 싶었나 보다.하지만 내게는 주인공 덕환의 비주체적 사랑만이 보인다.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사랑에 대해 자신의 결혼에 대해 아무런 철학이 없다.끌려 다니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지는 다부일처제.그것마저도 그는 빌미를 두고 선택한다.일부일처든 다부일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지들 좋으면 된다(그래도 책 속에서 나오는 인아의 주장은 가족제도관련 책을 그대로 인용하는 진부함을 면할 길이 없다) 문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주체적 선택인가 아니면 비주체적 추종인가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leinsusun 2006-05-28 19:09   좋아요 0 | URL
음....축구 얘기가 나와서 월드컵 두건을 주나 보네요. 왜 뜬금 없이 책 사은품으로 월드컵 두건을 주나 했어요.ㅎㅎㅎ

비유가 압권인데요! "신입사원 만난 보험 아줌마" 음하하하. 나두 신입사원 때 많이 당했는데...중앙일보 뉴스위크도 어리부리해서 구독하고(아...돈 아까버라), 보험도 들고...ㅎㅎㅎ

전 사실 <카스테라>도 단편 몇개를 제외하면 쩜 별로였어요.그럼에도 불구하고...<아내가 결혼했다>가 읽고 싶어 지네요.^^

드팀전 2006-05-29 08:54   좋아요 0 | URL
전 두건 없는데...이 책은 서울가는 길에 역 서점에서 샀어요.올라 갈 때 절반보고 내려올 때 절반보고...ㅎㅎ 책 값이 좀 비싼듯..서점에서 사서 그렇게 느꼈나.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이 가까와지면 즐겁다. 회사 안나와도 된다는 것 때문이다.그 다음은  신문의 책소개 섹션을 접할 수 있는 날이어서 좋다.거의 모든 신문이 주말이 되면 '책'에 지면을 할애한다..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어떤 신문은 금요일에 책 섹션을 만들고 어떤 신문은 여전히 토요일을 지킨다.회사에 들어오는 주요 신문의 '책 섹션'란은 전부 내가 가져온다. 신문의 책관련 면은 대동 소이하다.어떨 때는 1면에 소개되는 책이 전부 같은 경우도 있다.특히 조중동은 정치,경제면의 색깔이 비슷하듯  소개되는 책들도 비슷하다.한겨레는 언제부터인가 조금 다른 형식의 책 섹션을 만들어서 맘에 든다.단순히 책 소개가 아니라  책을 핑계로 인문사회학적인 주제들을 이야기한다.즐거운 신문읽기다.좀 지루할 때도 있지만.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어느 신문의 책 섹션을 읽다가 기억해 두었던 책이다.실비 제르맹이라는 소설가는 낯설었고 번역가는 친숙했다.내가 아는 어떤 분은 번역가에 대한 신뢰만으로도 책을 구입한다고 한다.이 책의 번역가 김화영 교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게다.신문 책 소개에서 만난 글은 이 책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정말 숨을 멎게 만드는 문장이다.이 책에 딸린 수많은 알라딘 페이퍼들도 이 글을 인용했다.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떠돌이가 빈집으로, 버려진 정원으로 들어서듯 책의 페이지 속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가 들어왔다, 문득. 그러나 그녀가 책의 주위를 배회한 지는 벌써 여러 해가 된다. 그녀는 책을 살짝 건드리곤 했다. 하지만 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을 들춰보았고, 심지어 어떤 날은 낱말들을 기다리고 있는 백지상태의 페이지들을 소리나지 않게 스르륵 넘겨보기까지 했다. 그녀의 발자국마다 잉크 맛이 솟아났다.

이 첫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와야만 했다.신비로우며 감각적이었다.실비 제르맹의 뛰어난 문장력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전체를 관통한다.그녀의 문장은 우선 색채적인 감각이 탁월하다.프라하 도시와 내면의 감정을 색채를 통해 묘사하는 방식이 아주 매력적이다.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듯 하며 또 드뷔기의 음악을 듣는 듯 하다.하지만 그녀의 색채와 문장의 매력에 혹해서 이 책에 뛰어들면 곧 읽기가 아주 피곤해질 수도 있다. 그녀가 가진 뛰어난 문장력과 몰입을 요하는 묘사력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작가 아멜리아 노통의 책처럼 쉽게 읽히지도 줄거리가 쉽게 정리되지도 않는다.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수 도 없다.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가 전도연이라는 페이퍼-프라하의 연인을 인용한-는 나를 즐겁게 했다.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있는 여자가 그 정도의 미모와 애교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한결 마음 편했을 것이다.작가는 프라하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가 누구인지를 양파껍질 까내듯 서서히 알려준다.책 후반부에 가서야 그녀의 존재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게된다. 책 속으로 들어간 그녀,발자국 마다 잉크 맛을 내는 그녀.커다란 키에 한쪽 다리를 저는 그녀.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조차 없는 그녀...... 그녀에 대해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작가는 책 후반부에 나같이 하나 쯤 잡은 감으로 쩔쩔매는 독자를 위해 그녀에 대한 프로필을 날려준다.

다리를 쩔뚝거리고 가슴은 울고 있는 거인여자는 프라하의 돌들에서 태어났다.시간과 도시 전체가 결혼하여 태어났다..... 그 여자는 돌과 나무,쇠붙이와 물,그리고 도시 주민들의 무수한 몸들에서 태어났다.....그 여자는 도시의 기억-어두운 쪽의 기억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기억,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고통을 잊어버린 남자 여자들의 기억이다.그녀는 일체의 영광이 배제된 기억,글로 쓰지도 않고 그림으로 그리지도 않고 노래하지도 않으며 신화와 전설의 빛나는 금빛으로 장식하지도 않은 기억이다.....그 여자는 도시와 한 몸이고 도시의 비물질적인 심장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그려지는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프라하라는 도시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며 역사이다.또한 그 인간의 역사가 갖고 있는 슬픔,고통,사랑,좌절이다.그녀가 울고 다니는 것은 그 수많은 죽음과 소외,빈곤,폭력에 대한 연민이다.그녀는 원래 무덤가를 지키는 조각상이기때문이다.김화영 교수는 번역의 말에서 번역할 수 없었던 원제에 대해 설명했다.< La Pleurante des rues de Prague>...직역하면 프라하거리의 우는 여자 라는 뜻이 맞다고 한다.그런데 La Pleurante ...가 무었이냐? 그냥 우는 여자가 아니라 흔히 무덤앞에 조각하여 세우는 '상복차림의 눈물을 흘리는 여인상' 이라는 것이다.(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필립헤르베헤가 연주한 포레의 레퀴엠CD 자켓이 바로 La Pleurante 와 유사한 것일게다.) 

그녀의 울음은 수많은 죽음을 위해서이다.이제는 잊혀지고 버려진 죽음이다. 그 공간안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죽음의 역사 앞에 그녀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는 것이다.

친절한 작가와 번역가 덕분에 그녀가 우는 이유 그리고 그녀의 존재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이다.같은 공간 속에서 오래도록 인간의 이야기를 지켜봐오며 가슴 아파한 존재이다.요즘도 가끔 시골을 지나다가 오래된 장승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큰 나무를 보면 잠시 상념에 젖는다. 장승이 또는 나무가 보아온 것들, 살아 온 시간들을 그려본다.할아버지의 할아버지..그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일 때 부터 그것들은 마을에 있었을 것이다.그가 옆집 갑순이를 떠나보내며 가슴앓이를 토해내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또 장가를 들어 그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또 상여를 타고 그 나무 앞으로 지나가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그 아들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오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그가 시름시름 앓다가 또 산에 뭍히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마을 앞의 장승이나 나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100년 정도의 인생이라는 시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시간이 그 장승과 나무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프라하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초월하는 시간이며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거대한 무릎안으로 껴앉은 여성성의 시간이다.쩔뚝이는 그녀가 노을을 배경으로 주저앉아 도시를 무릎 안으로 껴앉는 장면은 참으로 거대한 상상이다.

책 말미에 가면 그녀는 사라진다.하지만 그녀는 사라진게 아닐 수도 있다.가시계와 비가시계 사이에서 절며 걸어가는 그녀였기에 세상 어느 곳에나 깃들어 있을 수 있다.작은 꽃잎 속에도 날아가는 나비의 무늬 속에도 철근 콘크리트 기둥 속에고 그녀는 살아서 두 세계를 잇고 있다.실비 제르맹은 그녀를 범신론적인 존재로 만들면서 인간의 역사와 시간을 신의 영역과 연결하고 있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1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짧은 소설이다.실비 제르맹의 천재성은 이 짧은 소설 안에 역사와 시간,신과 인간,고통과 연민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는데 있다.얇은 책이지만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된 소설이다.만만치 않으니 많이 팔리지는 않겠다.

이 책 누구에서 선물할때는 사람봐서 해야한다.자칫 하면 "이게 뭔 소설이 이따위야.뭔 말을 하자는 건지..."이런 힘빠지는 소리 듣을 수도 있을테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6-05-07 18:35   좋아요 0 | URL

필립 헤르베헤의 포레 레퀴엠이다.

1893년 판 연주로 헤르베헤의 명성을 드높였던 음반이다.

그는 몇 해전에 다시 포레의 레퀴엠을 녹음했는데.일명1903년판

녹음이라고 한다.이 연주보다 대편성된 구성을 택했다.

그 음반은 나도 아직 안들어봤다.



 


하이드 2006-05-08 11:06   좋아요 0 | URL

사진 몇개 붙여봐도 되나요.
리뷰 읽다보니 엄청 땡겨버려서 찾아봤어요.

무덤 앞에서 울어주는 여자라니, 슬프네요.






드팀전 2006-05-10 15:53   좋아요 0 | URL
제대로군요...저 옷 주름 사이에 슬픔과 고통이 나온다 이건데....

kleinsusun 2006-05-21 03:00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정말 잘 쓴다니깐....거구의 남자가 이렇게 글을 맛깔스럽게 쓰다니...ㅎㅎㅎ
저도 이 책 신문 북섹션에서 보고 찜했어요.
책 제목이 넘 맘에 들어요.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나두 가끔 서울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데...ㅎㅎㅎ
Thanks to 하고 갈께욤^^

드팀전 2006-05-21 10:25   좋아요 0 | URL
잘쓰는건 수선님이요..전 날림으로 쓰는 특징이 있어서..빨리 쓰기에 점수를 주신다면 좀 받을만하지요.ㅎㅎ 거구는 아니라니까요...내가 왜 거구야...

2006-05-23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기때문에 며칠을 고생하고 있다.약 먹고 병원 가보고 해도 별로 차도가 없다.3류 스티커 회사에서 만든 테이프는 떼어 내도 자국이 끈적 끈적 남는다. 이번 감기가 싸구려 테이프 같다는 생각이 든다.아주 크게 아프지도 않으며 끈끈하게 떨어지지 않는.... 가끔은 삶이 이런 싸구려 감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지루하며 끈적거리는 삶...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갈등과 해결에 눈을 처박고 있는 것은 삶의 점액이 그 안에서는 한번에 해결되기 때문일 것이다.순간의 몰입은 영원한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주니까.... 시지프스는 얼마나 타임아웃을 걸고 싶었을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나의 독서행위가 일상의 번잡함으로 인해 방해 받고 있을 때 들고 있던 책이다.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적절한 시간에 나와 만난 셈이다.사람의 인연도 때가 있듯이 책과의 인연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시간도 좀 여유롭고 마음도 한가할 때 이 책을 만났다면 나는 또 다른 면을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나와 스밀라의 인연은 마치 나침반의 각침 처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꾸준히 앉아서 본 적이 그다지 많지 않다.책도 두껍긴 했지만 하루 20분 어떨때는 1시간..그러나 그 중  졸면서 비몽사몽 본 시간이 40분...다음 날은 앞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돼었는지 읽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또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 앞에 언급된 듯 하여 다시 찾아보러 가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야만 했다.그것도 귀찮을 때는 그냥 무언가 중요한 인물이겠거니 하고 넘어 가기 일수였다.특히 책의 2부에 해당하는 바다의 장은 그냥 그냥 사건만 쫓아 다녔다.우선 배라는 공간 구조가 내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아마 10%도 공간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스밀라가 음모를 밝히려고 배의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는데 내게 스밀라가 암흑의 공간을 헤메고 다니는거나 다름없었다.이렇게 되니 당연히 건성 건성 읽기는 가속도를  붙이기 마련.사건의 음모가 점점 밝혀지는 순간에 그다지 큰 마음 졸임을 느끼지 못했으니 추리소설로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의 인연이 결코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이 책을 건성건성하는 마음으로 본 것은 아니다.책 초반부는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덴마크 밤거리의 잿빛 분위기,그린란드의 하얀 설원...약간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차가운 정서 등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높여주었다.또한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던 여주인공 스밀라의 매력은 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스밀라가 가진 여성성과 자연이 준 강인함.근대 소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가 그랬고 <영혼의 집>의 여주인공들이 그랬다.가깝게는 영화 <에일리언>의 주인공 역시 모성과 강인함이라는 두가지 요소들 동시에 가진 이상적 모습으로 그려졌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주인공 스밀라의 매력은 그녀의 모성과 강인함이 그린란드인이라는 소외자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비로와 보인다.그린란드는 이 책에서 문명에 대비 되는 자연,침략에 대비되는 평화를 상징한다.스밀라의 매력은 전적으로 그린란드인인 그녀의 어머니와 동토의 땅이 그녀에게 베푼 것이다.근대 세계의 성공을 상징하는 스밀라의 아버지가 평생 스밀라의 어머니를 그리워한것,또한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한 딸 스밀라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을 끝없이 베푸는 것들은 문명 세계가 가진 비문명과 자연에 대한 강박증적인 애정이다.이런 원시와 자연에 대한 애정은 근대의 독자들 역시 공유하는 것이기에 스밀라에 대한 애정의 감정은 무한 증폭하게 된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구분상 추리소설이다.한 아이가 지붕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그 뒤에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그리고 이를 추적해가는 과정에 조직적인 방해를 받는다.뭔가 대단한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추리소설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그다지 스피디하지는 않다.대신 스밀라의 관념적인 해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그 공간을 채운다.사건 중심의 전개를 바라는 독자에게 분명히 후자가 전자를 방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사건은 스밀라를 살해하려는 범선 화재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높인다. 스밀라가는 몰래 문제의 선박에 동승하게 된다. 이 후 사건의 진행이 좀 치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모두 그녀를 감시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염탐은 비교적 순탄하게 풀려간다.중요한 서류들도 비교적 쉽게 쉽게 확보한다.몰래 잡입도 너무 쉽고 탈출도 그다지 조마조마 하지 않다.물론 마약 문제로 슬쩍 맥거핀을 쓰기도 하고 또한 스밀라에 대한 테러로 긴장감을 높이기는 한다.하지만 스밀라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뛰어다니는 장면에서 왠지 액션 주인공으로 바뀌는 듯 현실감이 희미해져 간다.

두꺼운 책 분량에 비해 얇은 인연을 맺을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름대로 맺은 인연의 깊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접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홍달 2006-03-14 16:3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식초가 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데 좋답니다..그런데 감기는?? 암튼 빨리 가뿐해지시길..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려라 아비>에는 '청승' 이 없다.생각난 김에 인터넷 검색란에 '청승'이란 단어를 검색했다

청승(명사): 궁기가 끼어 있어 애틋한 상태,또는 궁상스럽고 처량한 듯한 태도.

(속담)청승은 늘어가고 팔자는 오그라진다 :나이들어 살림이 구차하여지면 궁상을 떨게 되며 그렇게 되면 좋은 날은 다 산 셈이라는 말.

동명 단편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이 80년 생 작가는 수 많은 부재와 결핍 속에서도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태어나면서 한 번 도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놀이 공원에 나를 놔 두고 실종된 아버지,TV만 보다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아버지... 교통사고로 치마가 훌렁 뒤집혀 죽은 여고생,포스트 잇으로 의사소통하는 여자들... 작가는 '부재'와 '소통 단절'에 대해 무언가 말하지만 결코 '청승'떨지 않는다.8,90년대 작가들은 이런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남의 일' 보듯 쓰지는 못햇을 것이다.하지만 아직 10대의 얼굴이 묻어 있는 김애란은 그냥 TV 베스트 극장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 인 양 스스럼 없이 결핍과 단절에 대해 말한다.아마 이 소설 <달려라 아비>가 문단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과거 소설의 '무거움'에 대한 안티테제로 '가벼움'을 충돌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심함'을 밀어넣기 때문일 듯 하다. 단편<사랑의 인사>의 주인공은 버림받은 아이이다.그는 네시호의 미확인 괴물이 천지에도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자기에게 인사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그는 대형 수족관에 취직한다.거기서 그는  말한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수족관 유리를 주먹으로 쳤다.그것은 물고기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 중에 하나였다.나는 아이들이 (간혹 어른들도 있었다) 왜 유리벽을 두드리는지 알고 있었다.물고기가 자기를 알은척 하지 않았어였다......나는 물고기의 무심함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내가 수조 안에서 물고기와 마주쳤을 때 난감했던 것도 그들의 시건이었다." .... 단편 <사랑의 인사> 중에서

소설집<달려라 아비>의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즉 트라우마 를 경험한다.이 외상에 대한 자기방어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무심함'이다.내가 간혹 쓰는 말투로 하자면 '그래..그런데...그래서' 식 무심함이다.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어떤 친구가 가족 이야기던지 애인과 헤어진 이야기던지 개인적으로는 가슴 사무치는 비밀을 이야기한다.뭐 이런 건 어떨까..아버지가 한 너댓명 되는 사람,자신이 입양된 아이인지를 고2때 처음 안 사람....자살 횟수가 손목에 남아 있는 사람...대충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다.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사람들은 두 부류이다.하나는 '야..너무 힘들었겠구나..얼마나 가슴 아팠어.괜찮아' ..눈물까지 조금 글썽여주며 따뜻하게 어깨를 감싸주는 사람이다.또 다른 사람은 진지하게 다 듣고 나서 '그래...살 다 보면 상상 조차 못하는 일들이 생겨나지...근데 그래서' (차마 이런 말까진 안하지만...그래 니가 죽을 고생했다 치자.그런데 그 다음은..)  후자의 경우 정나미 떨어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하지만 그게 낫다.그건 '무심함'이지 '냉혈함'이 아니다.그리고 말하는 사람 역시 그 '무심함'에 힘을 얻는다고 믿는다.곧 '무심'해 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던지.감정의 설사를 더해주는오버나 쥐뿔도 모르면서 이성적입네하며 정신적 위기를 탈출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말하는 것들은 그냥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게 낫다.

김애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아비 부재의 트라우마'를 '무심함'으로 건너가려한다.하지만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물 밑에 반쯤 가라앉아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는 불안과 긴장이 내재해 있다.소설 속 주인공들이 때론 수면을 위한 숫자를 세며 때론 잠수복에 머리를 처박고 울며 불며 그 '부재의 강' 건너려 한다.하지만 내 생각에 이들은 그 강을 완전히 건널 수는 없을 것이다.그렇다고 '청승'속에 살지도 않을 것이다.그건 어린 시절 가슴에 입은 화상 자국과 비슷 하다.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프지도 않다.남들도 잘 모른다.본인  역시 일상을 살다보면 잊고 지낸다.그저 가끔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가서 옷을 벗을 때 한번씩 떠오르게 돼는 것일 뿐이다.

김애란의 소설은  개인적 경험이 깊숙히 반영된 듯 하다..신인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결국 자기 이야기다.그녀가 다루는 아버지의 이야기들 역시 그녀의 개인적 우화에 상상력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소설 속 공간이나 소설 속 가족 관계,일상의 영역등이 작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듯 하다.단편 <노크하는 집>같은 경우  다가구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소통에 대한 희망과 소통의 불편함에 대한 모순된 감정.....어차피 아무런 교류도 없다.하지만 5개의 방 중 5개가 전부 차있는 저녁 시간의 심리적 불편함,일요일 낮 서너 방이 비어 있는 시간의 자유로움과 홀가분함.화장실 소리에 따라 서로의 동선을 피하는 어색한 배려,일상의 작은 불편에 대한 상호간의 불만. 단편<나는 편의점에 간다> 역시 이러한 소통의 불편함과 소통부재의 두려움을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어도 집 앞 단골 편의점을 이용할 때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소통과 관련된 우화들이다.

책의 주제는 사무치는 것들이지만 김애란은 적당히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사무침을 희화한다.정작 가장 코믹스러운 부분은 책 뒤에 딸려온 서평이었다.어차피 텍스트에 대한 분석은 자기가 아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어떤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볼 것이고 어떤 사람은 더 세부적인 것을 볼 것이다.또 어떤 이는 직관을 통해 작가의 마음과 닿을 수도 있다.평론이란 작업은 아무래도 지적인 활동은 활동인가 보다.단편 <스카이 콩콩>의 결말 부분에 대해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김애란의 우주적 상상력에는 니체적인 영원회귀와 베르그송적인 생명의 도약이 겹쳐져 있다.' 

그가 느끼는 우주적 상상력의 내용은 이렇다.아버지의 성기로 부터 퍼져나가던 불꽃들의 이미지,수족관 안에서 유리벽을 두르리던 손바닥,한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선글라스를 씌워주며 계속해서 달리게 만드는 상상력..  이 모든 것들이 니체와 베르르송의 회귀와 생명도약이다.

나..원...이렇게도 말하겠다. "버스바퀴는 각진 세상을 떠받치는  둥근 원불교의 상징이며 선인장의 가시는 일상공간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선사의 계송이다."

평론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서있는 좌표를 정확히 짚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좋은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김애란의 소설은 세계와의 소통부재나 소통단절과는 무관하다.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애매성으로 가득한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 따름이다.... 김애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삶을 번역하며 살아간다.달리 말하면 사회적인 것이 내면화될 때 생겨나는 갈등과 주관적인 의도가 사회적으로 표현될 때의 장애를 그들은 고스란히 경험한다.

이 말을 평범하게 받아 들이면 이 책<달려가 아비>는 성장소설이다.특히 20대 청춘의 성장 소설이다.주인공들도 다 그렇고 그들이 사는 공간도 그러하며 그들이 겪는 고민들도 다 술자리에서 나옴직한 이야기들이다.

결론적으로 ...난 이 책이 쉽게 읽혔으나 ...열광할 정도는 아니었다.이미 그 시기를 지나서인가?  아니면 작가의 개인적 삶의 투영을 너무 의식해서인가?   "너 아빠 없니? 그래.. 그런데...뭐.. " 이게 내 반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괴테의 <파우스트>를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당시 집에는 아버지가 60년대 말에 사 놓은신 세계문학 문고집이 있었다. 그 책은 요즘은 보기 힘든 세로읽기 4단 구성이었다.글자는 요즘 책들이 비하면 10배정도는 작았다.그 문고집은 나의 고전읽기의 창고였다.안소니 퀸의 영화<25시>를 보고 서재로 달려가 뽑아 들었던 책,게오르규의 <25시>도 문고판에 있었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은근한 성적상상과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읽었던 <테스>도 그 동네 문고였다.방대한 고전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문고집을 아끼지는 않았다.아니 오히려 그 문고집을 배반하고 싶어 안달난 숨은 모반자였다.세로 읽기에 낯선 나는 그 4단 구성 세로읽기를 읽다가 길을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대개 읽었던 부분을 또 읽는 실수를 범했다.거기에 케케묵은 누런 종이는 아무래도 친구들 보기에 좀 창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요구는 새 책이었으나 이미 집에 있는 책을 왜 사느냐는 상식적 답변에 늘 목소리를 죽여야 했다.그 경험으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문집류의 책을 사지 않는 지도 모른다.아무리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훌륭해도 말이다.

약간의 겉멋에 읽었던 <파우스트>는 세로읽기의 번거로움과 함께 내용의 형이상학으로 인해 고등학교 2학년인 나를 괴롭혔다.운문투와 의고투의 문체는 내용 파악조차 힘들게 만들었다.하지만 이미 활을 떠난 화살은 날아가야만 했다.화살을 떨어뜨리고 싶어하는 중력의 힘을 주변의 시선과 오기가 버티게 해 준 것이다.파우스트를 어서 끝장내버리라고 메피스토펠레스를 응원하며 힘겹게 책장을 넘기고 있던 시절이다.그때 우연히 내가 <파우스트>를 읽고 있던 걸 본 한 선생님이 교단에서 나를 염두에 둔 듯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요즘 여러분들이 무슨 고전 읽고 이러면 다 이해하긴 어렵다.뭔 말인가 싶기도 하고 또 안다고 해도 그 숨은 의미도 파악하기 힘들고...마치 무슨 의무처럼 읽게 된다.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읽어라.그냥 모르면 모르는데로 넘어가며 읽어라.그리고 ...나중에 좀 더 어른이 된 후 다시 그 책을 꺼내 읽어봐라.그러면 지금 못 느꼇던 걸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지금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말이었지만 책장 넘기기를 역기 들 듯 힘겨워 하던 내게 그 격려는 달콤한 샘물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난 다음에 <파우스트>는 금새 넘어가는 책이 되었다.그리고 그 말처럼 다짐했다. '지금 대충 넘어가지만 나중에 다시 꼭 한번 만나자' ....  그리고 10여년이 훌쩍 넘겼다. 대학 다니며 학교 앞 어느 서점의 포장지에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푸르른건 인생의 황금나무'라는 <파우스트>속 구절을 볼 때 마다 그 약속을 떠올렸다.하지만 선뜻 이 화석처럼 오래된 괴테선생의 <파우스트>에 손이 가진 않았다.하지만 2005년.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드디어 오래전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별것 아니지만 왠지 오래전 부채를 떨쳐버린 느낌이어서 마음이 가볍고 올해를 마감하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파우스트>에서는 우선 서양문화의 양대 축이 이종결합한다.기독교문명과 그리스문명이다. 구성상 보면 서막과 결론 부분은 기독적인 신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서막부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리스는 절대자와 계약을 맺는다.또한 책의 대단원 부문에서 성모가 등장하고 기독교적인 구원이 이루어진다.전체적으로 인간의 절대정신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속에서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보여준다.그리고 그 끝은 기독교의 죄사함과 구원이라는 틀로 수렴된다.하지만 중간 중간 인문정신의 보고인 그리스 문화의 중추들이 포진하고 있다.특히 그레트헨과의 짧은 비극이 끝난후 시작되는 2부에 그리스적 배경들이 전면에 등장한다.영화<트로이>의 중심인물인 헬레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그리스 신들이 파우스트의 여행에 동반하는 것이다.절대자와 대립되는 악의 한 축으로 등장한 메피스토펠레스는 2부에서 그리스의 문명의 다신주의 속에 하나 외부에서 유입된 악으로 묘사된다.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을 비롯한 북구의 신이나 정령들도 이 곳 그리스적 문화 앞에서는 여러가지로 몸을 사려야 한다고 말한다.중세 유럽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괴테의 시대는 중세의 암흑대신 인간 이성과 인문의 정신이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던 계몽의 시대이다.괴테의 상상력을 통해 메피스토펠레스는 절대적 악에서 상대적 악으로 변모하며 종교적 의미성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훨씬 많이 갖게된다.사실 소설<파우스트>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주인공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라고 생각한다.파우스트가 인간정신의 절대성을 상징하며 전형적이라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위트로 무장한 상대주의적 악이다.특히 메피스토펠레스가 뱉는 대사들은 파우스트의 형식적 공허함에 비해 훨씬 독성이 강하다.그레트헨을 유혹하는 장면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작업의 정석을 보여준다.달콤함과 시적인 표현 그리고 가시를 숨긴 치명적인 언술등은 모사꾼이나 악동으로서 최고의 예가 될 듯하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우유부단하며 스스로 몸을 숨기는 파우스트에게 통렬하게 야유를 퍼붓기도한다.하지만 메피스토펠리스는 파우스트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로 행동을 한다.그의 영혼을 얻을 때까지 그는 목적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근대적 인간형의 은유자로서 움직이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관계를 근대적 인간형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문학자 김수용 관점이 아주 재미있다. 김수용은 그의 책<괴테,파우스트,휴머니즘>에서 파우스트를 근대정신의 총화로 파악한다.무한한 욕망의 무한한 추구,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 등이 파우스트가 가진 내면성이다.즉 이는 파우스트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정신 세계와도 닮아 있다는 지적이다.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러한 무한한 욕망과 영원한 불만족을 비웃는 존재로 등장한다.그가 파우스트랑 내기를 한 것은 비웃는 존재로서의 실험일 뿐이다.김수용의 관점은 메피시트적인 악을 '계몽주의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이해한다.계몽주의의 한 면이 파우스트로 나타난다면 다른 한 면은 메피스토펠레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욕망 실현을 돕는 존재이다.그에겐 파우스트의 욕망이 선인지 악인지가 중요치 않다.김수용은 이 지점을 근대인이 가진 목적지향적인 계몽정신의 한계로 보는 듯 하다.즉 이성의 타락이 메피스토적인 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김수용의 비판은 더 멀리 나가서 파우스트가 가진 주관주의와 그 이성의 발전이 가져오는 전체주의적 속성까지 이어진다.

괴테의 시대는 계몽과 이성의 발전을 맹신했던 시대였다.지금은 그 근대적 인간과 프로젝트에 대해 성찰하는 시대이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수용의 파우스트에 대한 탈근대적 접근은 여러모로 유효하다.2005년 최고의 뉴스였던 줄기세포와 황우석 박사.결국 그의 이야기도 무한 욕망을 추구한 한 인간의 좌절로 볼 수 있다.이성과 과학의 힘이 자기 통제를 잃고 무한한 욕망으로 발전한다.그 주관적 유토피아의 환상은 맹목적인 다중의 환상으로 확산된다.더 이상의 자기검열과 비판은 그 속에서 사라진다.황우석이라는 한국 최고의 과학자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었다.파우스트가 바닥없는 허무주의로 악과의 계약을 맺었다면 황우석은 국가적 맹신이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파우스트는 왕을 도와 얻어낸 땅에 간척사업을 한다.그리고 자신의 영원한 이상향을 건설한다. 그 와중에 유토피아를 거부한 노부부의 집을 불사르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일을 묵인한다.황우석 역시 환자맞춤형 복제세포라는 과학적 유토피아에 대한 자기환상에 수많은 중요한 요소들을 묵살시켰다.진보와 발전의 맹목성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계몽의 변증법>에 나오는 이 말이 너무나 유의적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스스로를 계몽하지 않는 계몽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에 이른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둘 다 매력적인 인물이다.그리고 괴테 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다시 한 번 고전의 위대함에 경의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마천 2005-12-28 18:17   좋아요 0 | URL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푸르른건 인생이 황금나무' 이 문구는 헤겔이 다시 맑스가 인용해서 너무나 유명해졌죠. 원작이 파우스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 읽어도 읽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2006-01-11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