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오래, 많은 상영관에 걸리진 못했지만 잠시나마 극장에 내걸렸던 애니메이션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신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아니 애니메이션 제작에 왠 국가가 개입? 이라는 반응, 나 역시 처음에 그게 참 의아했고, 또 나 안에 잠재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거부감 또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한 기관이 이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뒷받침이 되고,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기뻐할 것도 없지만. 난 지금도 국가는 지나치게 각각의 국민들의 생활에, 또 문화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나치게'라는 단어도 빼자. 그냥 국가는 국민 사생활이나 문화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타인을 해하지 않는 한.
<별별이야기>는 차별에 대한 유쾌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차별에 관한 문제들을 이 안에 수록된 6개의 애니메이션은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재밌게 그려내준다. 이 애니메이션은 2005년 전주 국제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 2005년 밴쿠버 영화제 용호상 부문 초청, 2005년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고 한다. 글쎄 애니메이션에 무슨 영화제가 유명한지 어떤 상이 최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애니가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는 말은 확실한 듯 하다.
이 안에 너, 나,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별별이야기>는 차별의 문제를 다룬다. 장애인 차별, 성차별, 외모지상주의, 왕따, 대학입시, 외국인 차별 등 흔히 우리가 주변에서 적어도 한번씩은 겪어나 봤을 법한 일들이다. 아직 관용의 사회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우리 사회에는 관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있고, 차별을 고쳐나가려는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존재하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겪는 일이 아니라 하여 무관심하게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차별의 나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점. <별별이야기>는 이야기한다. 여기에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들어있음을.
첫번째 애니. <낮잠>은 유진희 감독 작품, 작업방식은 2D. 뭔지 잘 몰랐지만 애니를 보고 나니 이해된다. 2D가 뭔지. TV동화 행복한 세상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방식으로, 손으로 그린 만화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방식. 간결하지만 깔끔하고 선이 이쁘다.
<낮잠>은 장애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발이 없고, 두 다리의 길이가 짝짝이인, 게다가 한손은 손이 없고, 다른 한손은 셋째, 넷째 손가락이 없다. 수영장에서의 따가운 눈초리,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서러움, 교통수단이용의 불편함 등 장애인이 겪는 일상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바로 라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꿈 속을 통해 그려낸다. "달콤한 낮잠 속에서 펼쳐지는 불편한 꿈"
* 자신의 뿔가지 잘라버린 염소와 어린 새끼양. 양과 다른 모습을 한 젖소, 닭, 오리, 돼지 등 한무더기가 농장에 온 뒤로 염소는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두번째 애니. <동물농장>은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양들이 사는 농장에 단 한마리 염소가 있다. 염소는 양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번번히 매맞아 돌아온다. 혼자 밥먹고, 혼자 놀고, 혼자 자며 염소는 외로움을 겪는다. 양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해야 하는 신세. 왕따다.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왕따를 시키는 경우,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다. 머리가 덜 떨어졌다고 해서, 너무 이쁘다고 해서, 잘난척한다고 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왕따를 당한다. 물론 왕따당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왕따는 너와 너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풍토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세번째 애니. <그 여자네 집>. 결혼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 남편은 씻고 밥먹고 설거지도 안하고 옷도 안걸어놓고 직장에 나가고 들어와서는 아기와 아내에겐 관심없고 또 밥먹고 양말 아무데나 벗어던지고 신문보다 말고 쇼파에 누워 티비보고 한다. 아주 흔한 모습이다. 아내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애보고 직장다니고 정신이 없다. 열받은 아내, 어느날 쇼파에서 남편이 자고 있는 사이 진공청소기로 집안의 모든 것을 다 싹쓸어버린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똑같이 직장에 다니지만 아내는 집안일까지 도맡아한다. <그 여자네 집>은 흔히 맞벌이 부부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차별을 보여준다.
네번째 애니. <육다골대녀> 한자로 풀이하면, 고기 육, 많은 다, 뼈 골, 큰 대, 여자 녀. 즉 살이 많이 찐 체구있는 여자를 말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노래한다. 대대로 물려받은 못생긴 모양새. 죄다 집적되어 나한테 떨어졌다. 철사같은 곱슬머리, 큰 머리통, 엄청난 덩치, 돼지같은 살덩이, 짧은 목, 짧은 키, 게다가 성질도 더럽다. 이런 여성이 이 사회에 발붙일 곳은...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개팅을 나가도, 회사 면접을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외모지상주의가 되어버린 이 시대, 여자들은 다이어트하고 요가하고 몸매가꾸며, 남자들도 운동해 너도나도 몸짱만들고 심지어 이제 성형도 한다. 못된 건 용서해도 못 생긴건 용서못한다는 풍조. 문제있다. 이 애니는 바로 그런 풍조를 꼬집는다.
다섯번째 애니. <자전거 여행> 장애인 차별을 이야기한다. 아무도 타지 않은 자전거 한대가 산길을 달리고, 골목길을 달린다. 자전거는 길을 움직을 때마다 기억을 더듬는다. 연인이 행복한 모습은 사라지고, 공장에서 혼나고 있는 메하르가 보인다. 네팔노동자. 몇달 째 임금이 체불되었고 일만 죽어라 했다. 사장은 도망갔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불법체류감시간이 들어온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가끔 가다 외국인 연인을 본다. 얼굴 하얀 유럽이나 미국의 연인이 아닌, 필리핀인지 말레이시아인지 네팔인지 어딘지 모를 외모를 한 젊은 두 연인. 그들도 우리의 다르지 않다. 동남아 출신의 노동자라고 하여 과거 미국인들이 원주민 다루듯 때리고 짓밟고 사기쳐도 되는 것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고,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사랑하고, 행복을 원한다.
* 아직 대학에 가지 못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 수많은 고딩들, 그들의 자화상이다.
여섯번째 애니. <사람이 되어라>. 유명한 만화가 박재동씨의 작품이다. 각기 다른 동물얼굴을 하고 있는 고딩들. 학교에서, 집에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심지어 급훈이 '대학가서 사람되라'다. 대학을 위해 오로지 공부하고 내달려야한다. 왜?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을 나와야 사람이 된단다. 대학 안나오면 지금 하고 있는 동물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의 얼굴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대학에 가야한단다. 대학 못가면 사람도 아니란 말씀.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입시교육풍토를 꼬집는다. 무조건 대학가라고 닥달하는 부모님과 선생님. 오로지 목표는 좋.은. 대.학. 여기에 우리의 꿈과 희망, 목표는 없다. 일단 대학이다. 모든 교육이 대학입학을 향해 있는 지금의 현실을 풍자한다.
여섯편의 애니메이션.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고, 각기 다른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0분에서 15분가량의 짧은 애니메이션 안에 각 작품의 감독들은 압축적으로 주제를 풀어냈다. 때로는 감동을 주면서, 때로는 해학과 풍자로.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가장 절실하게 차별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고, 우리가 타인에게 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가해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우리는 각각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친구를, 우리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