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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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말이 필요 없음. 이 책이 일으킨 파장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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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거예요? 우왕!!!!

마늘빵 2014-12-10 15:11   좋아요 0 | URL
정확히는 읽는 중이라...

무해한모리군 2014-12-11 11:24   좋아요 0 | URL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오홍홍

아무개 2014-12-10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읽으셨나봐요?
우와와와!!!!
 
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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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8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적어도 중립적이어야 한다.
행위자가 나쁜 결과를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안 되지만 나쁜 결과를 허용할 수는 있다. 나쁜 결과 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좋은 결과는 적어도 나쁜 결과만큼 직접적으로 행위에서 기인해야 한다. 말하자면,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로부터가 아니라 행위로부터 직접 생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위자는 좋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쁜 수단을 쓰는 격이 되는데, 이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의 용인을 정당화할 만큼 바람직해야 한다.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를 대표하여 페드로 오쇼그네시 주교가 발표한 법정 의견서(2013년 4월 19일) 중

96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당하고 싶지 않지만 맞붙어서 이길 도리가 없으니, 원한에 사로잡혀 강자에겐 ‘악’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자신에겐 `선`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요. 말하자면 선과 악은 패배자가 정의했다는 거예요. 우리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누가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니체는 우리가 다른 뺨을 돌려 대는 이유는 상대의 뺨을 올려붙일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강자에게 `악`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복수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고 여긴다고 말하죠. 니체는 ‘자연적` 가치란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가치와 병약한 가치로 나뉜다고 말해요. 강자는 힘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돼요.(미네소타 주 로체스터에서 온 마브 펠드먼, NPR 토론,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2013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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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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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어판 서문
선택 이데올로기의 역설은,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다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믿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13-14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궁리하느라 실제 살아가는 일 자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새뮤얼 존슨의 "라셀라스" 30장에서 이믈락이 라셀라스에게 하는 말)

"선과 악, 행과 불행을 결정하는 원인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불확실하며 또 서로 뒤엉켜 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 따라서 삶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어떤 확고하고 절대적인 선택 기준을 찾으려는 사람은 아무리 평생 동안 궁리하고 모색해도 결코 그것을 찾지 못한 채 죽어 버릴 겁니다. ……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순응하고 싶지 않았던 원인들에 이끌려 현재의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랍니다."(새뮤얼 존슨, "라셀라스" 중 어떻게 하면 최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왕자의 질문에 대한 이믈락의 답변)

15 서론
개인은 자기 삶의 세세한 모든 것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궁극적 주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 사회는 우리에게 상품을 선택하라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결정과 선택들의 혼합물로 보라고 말한다.

26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만의 모습을 찾아라’라는 명령이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더 불안하고 더 탐욕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28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일에 힘쓰는 동안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전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또 자기 계발에 몰두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과 능력도 상실하고, 왠지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에 늘 불안해한다.

31
선택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강력한 기제로 정치적 개입과 정치적 과정 전반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선택이 개인적 삶을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궁극의 수단으로 찬양될 때, 사회적 비판의 여지는 거의 사라지고 만다. 개인적 선택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는 선택이 결코 개인적이지 않으며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55
자기 계발서와 관련해 결정적인 점은, 분명히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갈구하는 독자들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발서는 더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자기 계발서가 이룬 실제 결과이다. 다시 말해 이런 책들은 불행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은 어디에나 만연해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자기 계발서는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결점들과 부족함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늘 자기 결함에 노심초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 계발을 추구한다.

58
코치의 지도 아래 학생은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배운다. 하지만 역설적인 점은, 학생이 코치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환경에 순응하는 법을 코치에게서 배워야만 자기 삶에 대한 지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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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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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글과 말을 팔아먹고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곁’과 ‘이야기’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자리에 가깝다.

7
지금 우리 곁에는 말을 듣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사람만 가득하다. 자기 말은 호소하고 싶은데 남의 말을 듣는 것은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은 힐링이니 상담이니 하는 사적이고 상업적인 자리라 재빠르게 몰려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며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반응은 꼭 친절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호통치고 야단칠수록 마치 그것이 애정의 표현이고 관심이며 깨달음을 주는 죽비소리인 듯 여겨진다. 말할 수 있는 곁이 사라지자 이처럼 돈 내고 야단맞으러 가는 세상이 되었다.

49
하승우는 일제 식민 권력이나 이후 독재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고 회의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곧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이고,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불편하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는데, 그동안의 권력은 그것을 불온시해왔다.

57
사람은 말하는 것을 통해서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말’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면 바로 ‘의견’이 된다.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침묵해버리는 것, 이로 인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행위는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75-76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미 정해진 길이 있다. 성취와 발달이라는 이름의 이정표다. 몇살까지는 뒤집기를 해야 하고 몇살까지는 옹알이를 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연애도 하지 말고 오로지 공부만 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 이후의 삶에서도 언제까지는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취요건별 시기가 통념화되어 있다. 이 발달의 이정표를 따르지 못하면 낙오자, 실패자가 된다.

109
개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다. ‘나’라는 개인은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닌다. 이 독특함은 다른 어떤 특성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으로 강제로 환원하려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110
우리는 기본적으로 ‘네’하며 순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아니오`라고 반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존재가 된다.

125-126
관계도 사라지고 프라이버시도 없는 이 공간에서의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오로지 아파트의 자산가치다. 단독주택이나 다른 주거는 값이 오르지 않는 데 반해 아파트만 값이 올랐다. 그러니 ‘입주자’로서의 의식보다는 ‘소유자’로서의 의식이 더 강하다. 그 결과 사생활을 대신한 것은 소유 의식이다.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생활을 누린다고 착각한다. 주거지가 아니라 자산가치로서의 아파트는 그 어떤 괴로움도 참을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살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값이 오르면 팔아치우고 이곳을 탈출하여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141
‘함’이 지나칠수록 인간에겐 생각할 틈이 줄어든다. 생각할 공간, 즉 내면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이 과잉된 인간에게 내면의 풍요, 즉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함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행복이 아니라 만족이 삶의 목적이 된 존재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삶에 질문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187~188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서 보편성을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개별적인 상담만을 추구한다.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남겨놓은 채 개별적인 해결책만을 바란다. 그렇다면 이 ‘힐링과다’ 시대에 멘토란 뭘 하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개별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이끌어내는 안내자가 아니라 어쩌면 개별적인 맞춤형 상담사에 불과한 것 아닐까.

236~237
점검하는 삶은 자신의 확신을 괄호로 묶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삶이다. 배움에 주저함이 없는 삶, 배움을 위해 타자와의 만남에 주저함이 없는 삶이 바로 이 ‘점검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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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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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85-86
헤드라인 밑에서 자신만만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중요성을 내뿜고 있긴 해도, 우리가 읽는 기사들은 천사들의 비밀회의 후 나온 초자연적인 칙령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머핀과 커피를 앞에 놓고 골치 아픈 회의를 해가며 그럴싸하게 기사 목록을 만들고자 분투하는, 보통은 다소 피곤에 절고 압박에 시달리는 편집자 집단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기사 제목은 현실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이 편견, 실수, 미혹에 시달리는 필멸의 존재인 편집자들이 무엇이 정말 중요할까라는 질문에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을 통해 정해진다. 우리 종족에게 날마다 닥칠 수억 건의 잠재적 사건들의 웅덩이 속에서 솟아오른 어림짐작 말이다.

86
개개의 뉴스들 역시 뉴스 브랜드의 비호 아래 전달됨으로써 힘을 얻는다. 탁자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제기했다면 우리가 보다 철저하게 검토하려 들었을 의견들이 특정한 언론사 이름 아래 있기만 하면 거의 신화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

197
시기심은 언제나 맹렬한 도덕주의적 비판의 표적이 되어왔지만, 이는 품위 있는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시기심은 신중해져야 한다는 신호다. 이 감정에는 우리 인격의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보내온,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뒤틀린 메시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주의깊게 응시하는 건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발걸음을 떼는 데 도움이 된다.

시기심은 처음에는 굴욕감과 열패감을 동반하며 일어나는 감정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시기하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가만히 던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 감정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208
만약 그들(유명인들)이 이런 유의 관심, 즉 저질스런 관심이라 일컬을 만한 것에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이내 근엄한 척 굴면서 그들의 분수를 깨닫게 해준다. 대중의 환심을 얻으려 하는 자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관심을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어떤 관심이든 감사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217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뒤 자기 눈을 후벼판 남자의 이야기(오이디푸스 왕), 동생의 아내가 저지른 부정에 대해 복수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자기 딸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이피게네이아),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려는 부정한 남편의 계획을 망치고자 자기 아이 둘을 살해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메데이아) 등을 보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5년경에 저술한 "시학"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고상한 사람이라면 응당 피해야 하는 기괴한 구경거리로 간주하는 대신,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 인간적 매혹을 관대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잘 쓰이고 솜씨 좋게 상연될 경우, 사회 전체의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에 결정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기 묘사된 잔혹행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사람들을 교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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