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봉되고 있는 한국 영화에는 대작 감독들의 작품이 전무하다. 죄 신인감독들, 혹은 한 두편의 그닥 성공하지 못했던 감독들의 작품이 대부분. <사생결단>의 최호 감독 역시 처음 들어본 사람이었고, 가벼운 뒷조사 결과 그는 <후아유>와 <바이준>으로 얼굴을 내민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 작품 모두 보지 않았으니 패스.

  "한국판 느와르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하여, <달콤한 인생>에 한국판 느와르의 맛을 제대로 들여버린 나로서는 이 영화 또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최고로 알았던 때에서 <달콤한 인생>으로의 놀라움을 느끼기까지에 이르며 푹 빠져버린 나는 <사생결단>까지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역시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뭐 그냥 "그럭저럭 만족" 이라고나 할까.

  범죄와 파멸이 반복되는 어두운 지하세계의 우울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 에이 인생 갈대로 가라는 자조적인 가치관과 시니컬하고 껄렁껄렁한 말투. 이런 영화들이 요즘 왜 이렇게 좋은지. 류승범과 황정민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를 앞세워 마약 판매상 대 끈질긴 형사의 구조를 삼아 전개되는 영화는 폼생폼사. 두 주인공의 옷차림이나 말투, 행동거지 하나하나  폼에 잔뜩 신경을 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영화 속 배경이나 장면 하나하나, 구도 하나하나까지도 폼 좀 잡았다.


 

 

 

 

 

 



 

 

 

 

 

  폼만 잔뜩 들어간 마약 중간판매상 이상도. 사실 그는 별거 아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니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더 있으랴. 처음엔 꼬봉으로 시작해 지금은 그래도 부산에서는 어느 정도 어깨에 힘 좀 들어간 중간상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사는게 그지꼴이지만 폼 나는 멋진 검은 선그라스에 살림살이에 맞지 않게 양복 빼입고 등장한 마약거물 장철을 잡는데 미친 무대뽀 경찰 도경장이 있다.

   이상도 VS 도경장

 장철 잡이에 실패하고 찌끄래기로 이상도를 감옥에 넣었던 도경장, "그 동안에 니 멀 해묵든... 최선을 다 해서... 뒤봐주께!" 라고 말만 그럴 듯 하게 포장해 출소한 이상도를 꼬드긴다. 믿어? 못믿어? 못믿어 못믿어 믿어 믿어 믿어, 로 바뀌어버린 이상도. 그는 순수한걸까 멍청한걸까? 다시 도경장의 그물에 말려들어 함정수사에 협조를 하고, 결국은 범인이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감지한 그는 범인을 신고하길 포기하고, 내 살 길 찾기 위해 또 한 탕 저지른다.   결국 죽음을 향한 두 사람의 질주는 한 사람의 죽음을 불러오고.

  진실은 없다. 살기 위해 몸부림칠뿐. 마약상인 이상도도 경찰인 도경장도 결국 각자의 살 길을 찾기 위해 질주했을 뿐이다. 삶의 정점을 향해 질주 했을 뿐이다. 진실은 없다. 단지 살고 싶었을 뿐. 제대로 폼 나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을 뿐. 폼 내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쓰겠나. 결국 폼 잡으려다 목숨을 담보로 내놓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되니.

  폼 좀 잡으려는 사람들은 영화 <사생결단> 속의 그들이 아니라, 여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짓밟히는 약자가 되기보다는 짓밟는 강자가 되겠다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상도와 도경장. 그 어느 누구도 삶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합법과 범법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엇이 합법이고 그 무엇이 범법이란 말인가. 한쪽은 범죄자로 한쪽은 경찰로 겉보기에 한쪽은 범법자로 한쪽은 법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이다. 두 사람은 모두 폼나는 삶을 위해 살았고, 여기 우리들도 폼 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을 산다. <사생결단>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양자택일을 한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솔직하고 선량한 사람은 따로 없다. 모두가 솔직했고 모두가 선량했다. 이상도도, 도경장도, 마약계 거물 장철도, 이상도가 돌봐준 여자 지영이도. 삶을 위해 몸부림 쳤건만 누구는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새 삶을 찾았고 누구는 자살했다. 길은 정해져있지 않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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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0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랑 같이 보는거에요? 애인 생기셨나...

마늘빵 2006-05-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 요새 혼자보러 댕겨요. ㅠ-ㅠ

라주미힌 2006-05-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헉... ^^;; 얼렁 애인 생기시길...
전 자꾸 집에서 결혼하래요. ㅡ..ㅡ;
뭐가 있어야 하지.

마늘빵 2006-05-0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라주미힌님 결혼하기엔 뭐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 이시긴 하지만 아직 인생을 좀더 재밌게 즐기면서 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전 아직 덜 놀아서. ㅋㅋㅋ 뭐 결혼한다고 삶이 쫑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를테니.
 

  개봉전부터 실제 커플을 주인공으로 삼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 <도마뱀>. 조승우를 좋아라하는 수많은 여성팬들과 강혜정을 좋아라하는 수많은 남성팬들 덕분에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홍보가 되고 입소문으로 널리널리 퍼졌던 영화. 그렇게 기대를 한껏 모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영화는 생각만큼 썩 재밌고 감동적이진 않았다. 에이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에, 가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던 환타지적 요소. 기대 이하였고, 대략 지금껏 영화 시나리오를 잘 선택해왔던 두 사람이 왜 이번엔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아마도 두 사람이 모두 주인공으로, 영화 속 연인으로 출연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또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이 영화가 이 정도라도 빛나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해보며.

  슬프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에는 항상 누군가 아파야 한다. 그리고 어릴 적 인연이 끊겼다 재회하는 장면도 있으면 좋다. 아슬아슬하게 맺어질 듯 맺어질 듯 하면서 끊어지는 인연은, 그리고 그것이 어느 한쪽에 의해 의도된 인연의 장난질이라면, 그리고 또 그 뒤에 숨어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으리라. 영화 <도마뱀>은 그런 영화다. 그런 이야기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빛 쨍쨍한 날씨에도 노란 우비를 입고 다니던 엉뚱하고 당돌한 아이 아리 

 
* 18살이란 나이에 다시 만난 우리는 그만 또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구인이 아니라 노란 우비를 입고 다녀야 하며 자신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당돌하고 엉뚱한 소녀 아리에게 그녀를 무서워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씩 다가서는, 그녀를 좋아하는 소년 조강이란 친구가 생겼다. 나를 만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작은 도마뱀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그녀는 어느 비오는 날 조강과 함께 논두렁 옆을 거닐다 도마뱀을 잃어버리고, 조강은 나무로 짝은 도마뱀을 선물한다. 그리고 10년.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다시 만난 두 사람. 공부를 핑계삼아 암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녀를 위해 마을로 내려가 잠든 아버지를 깨워 초밥을 만들게 하고 산속에서 이벤트까지 열어줬던 조강은 또 다시 그녀와 이별을 해야만 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녀는 또 사라져버렸다.

  은행원인 남편을 만나 함께 은행을 털어 우주선을 사겠다고 했던 엉뚱한 거짓말을 그대로 믿어 은행원이 되어버린 조강. 그에겐 아직도 아리뿐이다. 어느날 또 거짓말 같이 아리가 나타나고 그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조강은 이번엔 결코 놓치치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녀는 또 사라졌다.

  그녀를 좋아하는 줄 알면서, 그녀 뿐인걸 알면서 왜 자꾸 도망가는거야. 사라져버리는거야. 조강은 아리가 야속하다. 왜.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그녀는 내게 다시 나타나서는 엉뚱한 거짓말을 변명이랍시고 해대고는 그걸 그대로 믿게 만들어놓고는 또 사라져버리는걸까. 못됐다. 어쩜 그럴 수가 있니.

  그녀는 우주인도 아니었고,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가 다시 풀려난 것도 아니다. 그녀의 진실을 알아버린 조강은 그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저 눈물만 흐른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으면서 자신을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는건지. 그녀를 사랑하는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는데, 그녀를 이대로 떠나보내야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스토리는 슬프지만 아리가 조강과 만나 내뱉는 진실같은(?) 거짓말 덕분에 관객은 유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감독은 영화 속에 엉뚱한 조미료를 첨가함으로써 영화를 코믹 SF(?)로 만들어버렸다. UFO를 불러내기 위해 갈대밭(?)에 서클을 만들어놓고 기원하지를 않나, 또 그걸로 그만뒀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로 우주선이 내려와 그녀를 데려가질 않나.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인 순수한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서 그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감독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아 이걸 보고 있는 관객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고. 순수함은 엉뚱함으로 변질되어 다가왔다. 조승우와 강혜정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영화, 두 사람 때문에 봤건만 그다지 기대에 차지 않았던 또 하나의 사랑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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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6-05-0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영화의 라인을 따라가면 충분히 우주선으로 끝낼 수 있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리는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파극처럼 죽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냐, 아니면 미화시킬 것이냐라는 선택의 문제 앞에서 미화를 결정한 거죠. 결국은 아리가 '죽었다'는 것을 '우주선 타고 외계로 갔다'로 미화시킨 거죠.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를 짓기 위해 한 선택인데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되었다는 점에서 잘한 선택이라고 봤습니다. 저는.

마늘빵 2006-05-0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이쁘게 마무리 짓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유치'하게 흘러가는 듯 하여 별로였어요. 감독의 불가피한 선택임은 알겠지만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지만 순수한 로맨스 만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겐 그 기대를 저버린 영화였다는 생각입니다. ^^
 
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절판


시루떡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공들여 만든 것으로 집마다 그 맛이 다 다르다. 하지만 공장에서 다량으로 생산된 스팸 통조림 맛은 백이든 천이든 그 맛이 똑같다. 무엇보다도 시루떡은 잔칫날처럼 어쩌다가 만들어먹는 별식인데 비해서 스팸은 값싸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여 미군 부대에서 매일 같이 먹는 대표적 군용 식품이다. 그래서 시루떡을 보면 "왠 떡이냐?"하고 놀라지만 스팸을 본 병사들은 "어제도 스팸! 오늘도 스팸! 내일도 스팸! 다음주도 스팸!"이라고 투덜댄다고 한다.

...중략...

그러므로 스팸이란 말은 벽에 부딪힌 오늘의 정보사회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같은 것만 되풀이해서 먹으면 금세 식상해진다. 그리고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배가 고프면 음식 맛을 더 잘 느끼지만 반대로 배가 부르면 산해진미라도 그 맛을 알 수가 없다. 스팸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보포식'상태와 그러한 정황 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디지털의 '정보현실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36-37쪽

숟가락은 주로 국문을 떠먹는 것으로 음에 속하는 것이고, 젓가락은 양에 속하는 것으로 고체형 마른 식품을 집는데 사용된다. 건식에 편중되어 있는 서양의 식기가 접시 위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습식 문화의 한국 식기는 종기 뚝배기 사발 등 움푹 팬 것들이 많다. 그러니까 같은 동북 아시아권 가운데서도 '음양 조화'의 문화를 가장 철저하게 생활화한 것이 바로 한국 문화라고 할 수 있다. -62쪽

"정보가 샌다" "정보를 흘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물과 같은 액체로 생각한 것이다. 물꼬를 자기 논에다 대던 농경시대적 개념이다. 그러나 "정보를 캔다" "정보를 묻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무슨 석탄이나 노다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산업시대인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정보가 환하다" "정보에 어둡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빛이다. 만화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전구를 그려놓듯 에디슨 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정보를 맡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추적할 때 짐승이 지나간 채취를 통해 추적하던 원시적 감각의 산물이다. 정보는 이렇게 수렵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잠재의시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식 정보의 새로운 기술을 옛 패러다임으로 읽고 있다는 증거다.
정보기술을 새 패러다임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이다. 사용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순환하는 것 또한 공기의 속성이며 정보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가치'는 있어도 '가격'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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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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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31쪽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 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177쪽

"얘. 리지. 그런 기분에 빠져들지마. 그럼 네가 불행해져. 사람마다 상황과 성격이 다르다는걸 충분히 고려해야지. 콜린스 씨의 사회적 지위와 샬럿의 신중하고 무던한 성격을 생각해봐. 샬럿네가 대가족이라는 것, 재산으로 보자면 그만하면 훌륭한 결합이라는 것도 생각해야겠고. 그리고 샬럿이 우리 사촌한테 애정이나 존경심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고 믿어보려고 해봐. 모두를 위해서 말이야."-194-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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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랐다. 이 영화 다 끝날 때까지 실화인줄. 주인공이 죽은 뒤 장례식에서 그의 생몰연도가 나오기 전까진. 그냥 허구라고 해도 이렇게 슬픈데, 실화라니. 잔인하다. 아 슬프다. 무슨 멜로 영화도 아닌 걸 보면서 또 눈물 흘리다니, 자꾸만 눈물 흘러 손으로 한번 훔치고 두번 훔치고.

 요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책을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 <인 콜드 블러드> 도 조그만 평온한 마을의 선량한 일가족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최근 봤던 영화 <뎀> 역시 2002년 루마니아 살인 사건을, <드리머> 역시 한 소녀의 말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실화다. 실화는 확실히 감동을 배가 시켜준다. 더군다나 그것이 실화란 걸 모르고 접했던 영화나 책의 경우, 끝에 가서 실화임을 알게 되면 정말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내내 울컥 울컥하며 참아낸 슬픔이 터져나온다.

 <래더49>는 미국의 한 소방서의 이야기이다. 소방관을 소재로 한 영화는 꽤 많지만 같은 소재라고 할지라도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고, 그때마다 각각의 영화를 보면서 각기 다른 점들을 느끼게 된다. <분노의 역류> <리베라메> <볼케이노> 등등.



* 동네 슈퍼에 만난 수습대원 잭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둘은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동안 싸우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서로의  사랑 때문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며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수습으로 들어와 어리버리대던 시절부터 10여년의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동료와 그의 상사 소방서장 마이크 케네디는 그를 보내며 말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모두 불길을 뛰쳐 나올 때 어떻게 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지... 그것은 바로 용기이다. 잭이 지금까지 구한 사람들, 잭이 지금까지 지켜낸 건물들은 셀 수 없습니다. ... 잭의 인생을 축복합시다."

  영화를 통해 본 잭은 누구보다 생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상사 마이크의 말마따나 소방관이 천직인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용기있었으며, 자신의 동료가 구조대원(구조대원은 제일 먼저 화재 현장에 나가 사람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맡는다. 불을 끄는 것은 밖에서 할 수 있지만 구조대원은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으로 활약하다 죽자,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간다. 결국 그는 그의 동료의 뒤를 따라 구조대원으로 활약하다 생을 마감했다. 1971년에 태어나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 셋. 그에겐 이쁜 딸과 귀여운 아들이 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 잭을 걱정했다. 잭이 다칠까봐 항상 잭을 걱정하고 염려했다. 그가 소방관 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넘는 동안, 결혼한지 10년이 넘는 동안 그녀는 잭을 보아왔고, 주변의 죽어가는 동료를 봐왔다. 걱정은 당연하고, 어쩌면 잭의 죽음을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마음의 준비 때문일 것이다. 집앞에 도착한 차에서 잭이 내리지 않고, 그의 동료와 신부님이 내리자 그녀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대놓고 엉엉 울지는 않는다. 속으로 참고 참고 또 참고 마지못해 나오는 눈물이다. 감당하기 벅찬 슬픔이다.   잭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앞서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뉴스에 나오고, 표창을 받을 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란 것을.



* 잭은 저 잔해더미 속에서 결국 구조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2003년의 어느날. 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그의 동료들, 그의 상사 소방서장 마이크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만 그를 구출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아픔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좋은 남편이자, 두 아이의 친절하고 자상한 아빠였으며, 언제나 웃음을 선사해주는 좋은 이웃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소방대원이었던 잭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떠나갔다. 오직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남겨둔채.

  영화에서는 2003년 불타는 건물 안에 갇혀 죽은 잭을 담아냈지만, 어디 위험한 일을 하다 사라진 목숨이 한둘이랴. 강도와 맞서다 죽은 경찰관들, 잭과 같이 불더미 속에서 사람을 구조하려다 죽어간 소방대원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다 하다 죽어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평소에 그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영화가 그려낸 잭의 삶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든 소방대원을 대표한다. 그들에게 경의를.  

***
소방서장 마이크와 주인공 잭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마이크 역을 맡은 사람은 존 트라볼타.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형사로 나왔던 인물이다. 잭은 호아킨 피닉스로 영화 <앙코르>에 나왔던 쟈니 캐쉬, <글래디에이터>의 못된 왕 코모두스로 나왔던 인물이다. 그의 경우엔 영화마다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못알아봤다. 어떻게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가 <래더49>의 잭이 될 수 있는지. <앙코르>의 쟈니캐쉬도 너무나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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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2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분노의 역류 보면서 극장에서 통곡을 했답니다...

마늘빵 2006-04-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의 역류>도 슬프죠. ㅠ-ㅠ 메피스토님도 눈물이 많으신가봐요.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