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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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그를 접한 것은, 혁명가로서의 그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한 외국 록밴드의 우상으로서였다. 지금은 해체한 Rage against the machine 이라는 유명한 뉴메틀 밴드가 있었다. 이 밴드의 보컬 잭 드라 로차 와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체 게바라를 사랑했고, 공연 때면 그의 커다란 사진을 배경으로 삼곤 했다. 그들은 '기계에 대한 분노'라는 그들의 밴드명과도 같이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들에 대해 음악으로서 분노를 표출했다. 미 제국주의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그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전 세계 젊은이들은 그들의 음악을 듣고 열광했다. 심지어 미국의 젊은이들까지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국을 가장 심하게 비판하는 미국인으로 '노엄 촘스키'를 꼽곤 한다. 그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과 경멸, 분노는 정말이지 '췩오'다. 미국을 비판하는 지성인으로 촘스키가 있었다면 불과 몇년전만 해도, 미국을 비판하는 뮤지션으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있었다. 탐 모렐로,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도 일했던 그가 때려치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밴드를 조직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통해 접하게 된 '체 게바라' 라는 이름. 아니 그가 누군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숭배하고 열광을 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래서 그를 뒷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2000년 3월, <체 게바라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체에 대한 나의 의문을 충분히 해소해주었다. 이후 체 게바라 열풍이 불면서 젊은이들은 너나 나나 그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평전은 베스트셀러에 안착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열풍이 부는거지? 솔직히 이해가 안됐다. 그를 알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와 같은 과잉 숭배 현상은 당황스러웠다. 나 같은 이들이 많아진건가? 그 뒤로 그에 관한 책이 물밀듯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 왜냐면 흥행코드였으므로. 내면 왠만큼 수익은 보장된다. 그러니 일단 내고보자.

  <먼 저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카스트로의 쿠바> <체 게바라, 인간의 존엄을 묻다> <체 게바라와 쿠바혁명> <체의 마지막 일기> <체 게바라 핸드북> <체 게바라가 살아 한국에 온다면> <체 - 한 혁명가의 초상> 심지어 <소설 체 게바라>까지. 엄청나다.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마르크스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금 소개하는  <체 게바라 자서전>은 체 게바라 흥행시기에 맞춰 나온 기획상품은 아니다. 출판일이 2005년 겨울이니 적어도 시기에 맞춰 팔아먹기 위해 나온 책은 아니다. 내가 그에 관한 책을 접하는 건 2000년에 읽은 <체 게바라 평전> 과 더불어 이 책이 두번째다. 앞서 읽은 책은 평전이었고, 이 책은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평전과 자서전은 어떻게 다른가?

  '평전'이라는 것은 비평을 겸한 전기를 말한다.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를 말한다. 어떤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이야기의 화자가 다른 것이다. 평전은 남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자서전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살아생전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글과 칼럼, 시는 존재하지만 자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자서전이 출간될 수가 있는가. 말이 자서전이지 후대의 사람들이 그가 남긴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 만들어 짜깁기해 낸 책이 자서전이다.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의 경우도 자서전을 쓰지 않았지만 <간디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듯이 말이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체 게바라의 자서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928년 6월 14일에 태어나 1967년 10월 9일의 날짜로 생을 마감한 이 젊은 혁명가 체 게바라.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그의 나이는 39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한창 사회생활을 할 나이다. 돈 좀 모아 인생을 즐길 나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 그는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다. 아르헨티나 인이면서 쿠바 혁명가로 이름을 날린 체 게바라.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대를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본래 계획은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길에 보게 된 부조리한 사건들. 그는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했다 멕시코로 망명, 그곳에서 현재의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난 뒤, 그의 제안으로 쿠바의 혁명 선두주자로 나선다. 쿠바혁명은 성공했고, 그는 그곳에서 젊은 나이에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고생한 만큼 명예도 누렸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명예가 아니었다.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뒷작업일 뿐. 그는 혁명이 자리잡았다고 생각할 즈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혁명길에 오른다. 쿠바의 혁명이 목표가 아니라,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나아가 세계의 혁명을 꿈꾸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그는 가슴 속에 불가능한 세계 혁명의 꿈을 지닌 채, 리얼리스트가 되어 혁명길에 오른다. 세계혁명의 꿈은 정말 꿈에 불과했다. 볼리비아에서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사살당한다. 포로는 사살할 수 없다는 제네바 협정을 깨면서 그는 볼리비아 정부에 의해 죽었다. 그의 유해는 불과 10년도 안된 시기, 1997년에 비로소 쿠바로 오게 된다.

  <체 게바라 자서전>은 그가 남겨놓은 수많은 글들을 정리해서 묶어놓은 책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편지글과 칼럼과 인터뷰와 시들을 짜깁기해 낸 자료집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를 접할 수 있는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자서전은 애초 없었다. 그가 남긴 글 묶음이 자서전을 대신할 뿐이다. 친구에게 쓴 편지, 어머니에게 쓴 편지, 이모에게, 죽어간 동료에게 쓴 편지, 그리고 혁명을 역설한 글, 기자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생생한 그의 친필 편지 사진도 실려있다. 사진도 있다. 그는 혁명가이기 전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사진작가로 먹고 살았고,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자서전의 제 역할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의 수많은 자료를 한데 묶어놨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책이다.

  어쩌면 체 게바라는 실제에 비해 지나치게 숭배받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미국의 젊은이들 조차도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마르크스가 죽은지 오래된 지금에서도 마르크스가 주목받는 이유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맑시즘을 토대로한 舊 소련의 혁명은 실패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쿠바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세계의 혁명은 실패했다. 혁명은 모두 실패했지만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 두 사람은 현실에서 직접 행동하며 자신이 꿈꾸는 혁명을 이뤄보려 노력했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었다. 혁명의 성공여부를 떠나, 그들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열정과 이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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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2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누가했게요?

마태우스 2006-01-2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를 본받는 건 어렵겠지요. 그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될까요.......................

마늘빵 2006-01-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답 : 부리.
 
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구판절판


"나는 글쓰기가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자신의 감수성으로 인해 삶에 대해 취하는 태도라고 믿습니다." -13쪽

"내가 사진 하나를 제기하며 밤에 찍은 거라고 말하면 당신은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내 글에 찍혀 있는 풍경을 모르는 상태라면 내가 말하는 진실에 대해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124쪽

어머니가 권하시는 적당한 자기중심주의는 노골적이고 줏대없는 개인주의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20세기의 미덕을 제 안에서 없애기 위해 무척 노력해왔습니다. 제가 의미하는 것은 제가 모르는 겁쟁이 유형이라기보다는 방종한 사람입니다. 오해나 다른 이유로 자신의 힘을 자각하면서 생겨나는 자기만족으로 이웃에 무관심한 사람 말입니다.
이전에 훈련을 하던 때도 그리고 감옥에 갇힌 요즘도 저는 자신을 다른 무장한 동지들과 완전히 동일시합니다. 예전에는 어리석다거나 최소한 이상하다고 느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라는 생각이 '우리'라는 생각에 자리를 모두 내줄 정도로 투사집단 구성원들이 서로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에 관련한 것이지요. 그것은 공산주의 원칙이었습니다. 이론적인 과장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우리'를 위해 '나'를 거부하는 이 느낌은 정말 아름다웠으며,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위대한 발명이나 예술 작품들이 온순함 또는 '적당한 자기중심주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위대한 일에는 열정이 필요하며 그리고 대담성도 상당한 정도 필요합니다. 이런 자질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1956년 7월 15일, 멕시코에서의 편지 '위대한 일에는 열정이 필요하다' 中)-168쪽

"만물의 척도인 인간으로서의 나는 여기에 내가 본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갈 것이며, 또 나만의 입을 통해 이야기할 것이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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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조너선 울프 지음, 김경수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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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 한 뒤 자대배치 받기 바로 전이었다. 궁금증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책은 마음대로 볼 수 있나요? 듣기로는 고참들이 책 못보게 한다고 하던데..." 상대는 대답했다. "그럼 되고말고. 다 되니까 걱정마라." 그래서 내가 추가질문을 던졌다. "마르크스 책도 되나요?" (한참 뜸을 들이더니, "...... ...... 왜 하필 마르크스를 보려고 하지?" 군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로 보지도 않을 거면서 반공주의 교육의 선두가 되었던 군대에 일부러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재밌잖아. 반응도 궁금하고. 나 싸이코냐고? 흠. 약간 그런가봐.

  내가 군대에 간 것이 2001년 12월이었고 제대한 것이 2004년 1월이었으니 세월이 많이 흐르진 않았다.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시대의 변화를 절감할 만큼의 세월은 아니다. '마르크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되려 1980년대에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마르크스를 읽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마르크스는 이름만 들어봤다. 대학 강단에서는 마르크스를 다루지 않았다. 우리 학교만 그런건 아닌 듯 했다. 강단에선 독일철학과 그리스철학이 강세를 이루었고, 가끔 영미철학과 프랑스철학이 논의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그가 철학사에 남긴 업적에 비해 너무나 지나친 홀대를 받고 있었다. 왜? 마르크스를 억압하던 1980년대 대학강단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 하나일테고, 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것도 하나일테지. 마르크스는 언제나 한편으로 뜨거운 감자였고, 한편으로 구석에 내던져진 못생긴 돌덩이였다.

  왜 그런데 지금도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가? 마르크스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그런 분은 지금 바로 인터넷 서점으로 달려가서 검색 목록에 '마르크스'라고 쳐보시길. 엄청난 책들이 검색될 것이다. 또한 그 책들 중 다수는 판매량이 엄청날 것이다. 보통 3000부 이상 정도 찍히면 손해보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직접 책을 썼던 어떤 철학자로부터 들은 말. 마르크스라는 이름으로 낸 책들은 손해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돈벌이를 톡톡히 해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흥행코드이다. 마르크스가 죽은지 한참 지났고 소련이 붕괴한지도 한참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룬 책들,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계속해서 씌여지고, 번역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왜? 실패한 혁명을 노래한 주인공인데.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해준다. 왜 지금도 맑스를 읽어야 하는가? 라는 영문원제를 달고 있는 이 책. 새로운 한글제목보다는 영어원제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마르크스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한 책들은 널렸다. <자본론>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 등의 책들이 새로이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마르크스 평전> 과 같은 책도 나왔다. 수많은 마르크스 서적이 나와있는데 이 책은 그 많은 책들 틈을 사이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마르크스를 접하기는 쉽지만 - 책이 널려있다는 점에서 - 마르크스를 읽기는 쉽지 않다. 대학 학부시절 마르크스에 관심은 있었지만 마르크스를 읽지 않은 건 어렵기 때문이다. 칸트나 헤겔도 어렵지만 마르크스도 어렵다. 아니 뭐 쉬운 철학자가 어디있겠냐만 그래도 어렵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읽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겁먹고 안읽었고 졸업했으며 세월이 꽤  흘렀다. 사실 지금도 마르크스는 내게 어렵다. 이 책은 나 같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 마르크스를 접하고 싶지만 어려워서 떨고 있는 이들을 위한 책.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가장 간단하게 압축적으로 보여준 책이라는 생각이다.

  제 1장 서문, 2장 초기 저작들, 3장 계급 역사 그리고 자본, 4장 왜 여전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고문헌과 '깊이읽기'를 위한 안내'까지 총 5장으로 나누어져있다. 서문에서는 마르크스의 생애를 위주로, 그리고 한장씩 뒤로 넘어가며 그의 초기저작에서 후기저작으로, 또 경제, 정치, 종교, 소외 등의 그의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개념들을 짚어가며 간단하게 살펴보고 있다. 쉽게 썼다고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난 아직도 그의 이런 개념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감히 이 책을 읽고 마르크스를 조금 알았어요, 라고는 말 못하겠다. 이 얇은 책 한권을 읽더라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지, 그냥 소설책 읽듯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선 마르크스를 알 수 없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넘어오는 단계를 설정하고, 자본주의의 병폐를 지적한 마르크스. 자본주의와 공존했지만 맑시즘을 기초로 한 舊 소련사회는 미국의 자본주의에 졌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병폐는 분명 드러나고 있고, 이런 시점에서 마르크스는 주목받고 있다. 그의 지적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자본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철학자이고 마지막 철학자였다는 점에서 그는 의미가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오직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문제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묘비명이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글)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을 해왔고, 또 그것이 철학이 해야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대개는 해석으로 그쳤고, 철학은 현실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르크스 또한 새로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다. 그러나 그는 나아가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는 실천한 철학자이다. 구름 둥둥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바로 이 땅의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혹은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한 철학자이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이면서도 정치학자, 경제학자로도 불리우는 것이다. 그가 건드리지 않은 분야는 없다.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등 거대한 영역들을 하나 둘 점령해나갔다.

  왜 우리는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 마르크스가 모두 옳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저자는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며 마르크스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하며 그를 비판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그의 의견이 틀렸는가를 이야기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가장 거대한 이론들은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유 마저 폐기할 순 없다.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폐기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옳았건 그르건 간에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검토해봐야할 철학자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로지 자신들이 바로 진리를 발견했거나 발견 직전에 있다고 정열적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철학 작품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진리를 향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결과물의 가치는, 실제로  그 작품들이 이 목표를 성취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논외로 하면, 진리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때,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다른 어떤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P142-143)

  그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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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1-2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한권으로 얼개가 그려지나요??
군대 얘기 하시니 저도 생각나는것..학교 다닐때 감방에 간 넘들이 책 넣어 달라고 해서 막스베버 책을 넣으면 짤립니다. '막스'가 들어가니까 같은 편인줄 알고...

미미달 2006-01-2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쪼오기 오타 있어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어떻게 하면 이렇게 리뷰를 잘 쓸 수 있는건지...

마늘빵 2006-01-2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ㅋㅋㅋㅋ 막스 베버. 저도 첨에 멋모를땐 그 막스가 이 맑스랑 같은 줄 알았어요. 한권으로 얼개가 그려진다는건 좀 무리가 있는거 같구요. 중요 개념들을 짚고 넘어갈 순 있을거 같아요.
미달양 / 어디??? 알려줘야 고치지. 다시 읽어봐야하잖아. ㅡㅡ;;;;

마늘빵 2006-01-2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달양 / 오타 찾았어. 두개. '뜨거움 감자' -> '뜨거운 감자' , 'ㅇ 안았다' -> '않았다'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조너선 울프 지음, 김경수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1월
품절


"우리가 인생에서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면, 어떤 짐도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만인의 이익을 위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해 일할 때 사소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 대신, 모든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적은 조용하지만 영원히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유골 위에는 고결한 사람들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릴 것이다."
(<직업 선택에 관한 한 청년의 고찰>, 17살의 마르크스)-16쪽

많은 경우, 행위자들은 그들이 '타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또 만나지 않는 한,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은 다른 행위자(동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신이 아닌, 외부 사물의 관점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 관여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신은 비로소 자기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30쪽

포이어바흐는 많이 다루어졌던 주제를 부활시키면서 인간이 왜 신을 닮았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 신이 인간을 자신의 이미지대로 창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인간의 이미지대로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P32)

포이어바흐는 우리 인간은 사유 속에서 인간을 무한한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어떤 힘을 스스로 지니고 있는데, 이를 통해 모든 완벽함을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를 우리 밖에 창조했다고 보았다.(P33)

마르크스는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가 종교를 고안해냈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들의 지상에서의 삶이 너무 형편없고, 빈곤에 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악명 높은 주장,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란 말의 맥락이다.(P35)

본질적으로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포이어바흐가 퇴락에 대한 깊은 불안의 징후를 전해주고는 있지만, 불안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교를 고안해낸 것은 단순히 불행한 실수가 아니라, 지상에서의 삶이 보여주고 있는 빈곤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32-37쪽

마르크스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의식에 따라 고정 틀을 벗어나 의식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생산을 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 존재가 생산할 수 있는 물건들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런 유적 본질의 측면을 향유할 수 있다. 그곳에서 인간은 생산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기보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생산할 뿐이다. 이때 그것은 향유가 아니라 고문이다. -55쪽

시민사회와 국가를 구별한다. 국가는 시민의 영역이다. 정치적으로 해방된 국가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시민들로, 법 앞에서 평등하고, 풍부한 권리 목록의 자랑스러운 소유자들이며, 서로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국가 구성원이요, 동료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수준에서 보면 - 일상적인 경제 활동의 수준 - 사물들은 매우 다르게 보인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필요한 만큼 경쟁하고 착취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성공을 질투하면서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각자 이중생활을 한다. 즉, 평등한 공중 시민과 원자적인 사적 개인으로 말이다. -65-66쪽

"철학자들은 세계를 오직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문제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묘비명이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75쪽

"코뮤니즘 사회에서는 누구도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가지지 않으며, 사람들마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라면 어디에서도 학문과 기예를 배울 수 있고, 또 사회는 생산 일반을 조절한다. 이를 통해 나는 오늘 이 일을 하고 내일에는 다른 일을 하며, 또한 내가 사냥꾼이나 어부 혹은 목동이나 비평가가 따로 될 필요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질을 하며, 밤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뒤에는 비평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독일 이데올로기> 中)-133쪽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류는 신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다. 둘째, 그 신은 현실 세계에서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안을 얻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셋째,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일상생활에서의 소외이다. 넷째, 오직 코뮤니즘 사회만이 이런 소외를 극복하고, 종교를 초월할 수 있다. (P144)

종교의 모든 측면들을 하나의 위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당연히, 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대답들에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현대의 어떤 사회들은 물리적 재화는 풍요롭지만, 아직 계급이 나뉘어 있으며, 그 때문에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위안을 필요로 한다. 둘째, 계급 사회에서 종교의 존재는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천국에 대한 생각에 미혹되어 노동자들은 지상의 지옥에 대해서는 저항을 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 이론과 직결된다. (P145)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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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를 잘 모르지만, 영화에 관심이 있는 나는, 우리나라에 좋아하는 몇몇 감독들이 있다. 그 중 딱 두명만 뽑으면 박찬욱과 허진호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철학과를 나왔다는 것이고, 내가 이 둘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철학과를 나와서는 아니다. 두 사람을 먼저 좋아했고, 나중에 뒷조사를 하다보니 철학과 출신이더라. 좋아하는 다른 감독도 더 있다. 하지만 말이 많아지면 어수선해지기만 하니 그들은 나중에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음 이야기하기로 하자. 오늘의 주인공은 박찬욱이니.

  난 영화를 좋아하지만 하지도 않는 영화를 굳이 찾아다니며 보는 편은 아니다. 부천영화제, 부산영화제 한번도 안갔고,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들이 개봉할 땐 그 소식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홍보물이 내 시선에 들어올 때 비로소 한번 볼까, 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영화를 좋아한다 라고 말할 때는 적어도 좋아하는 감독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장르가 있고, 남들 안보는 예술영화들도 발벗고 찾아다니며 볼 수 있는 정도의 열성이 있어야 영화를 좋아하는거라고. 개봉 때마다 몇몇 영화들 골라서 보러 다니는 건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데이트하기 위해 영화를 선택한 거라고. 하지만 난 말한다. 아니 영화적 장치에 대해 논하고, 예술 영화 찾아다니고, 특정한 배우나 감독에 대해 시시콜콜 알아야 하고, 그 감독들이 논하는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영화를 좋아하는거야? 아니다. 그냥 영화보는걸 좋아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거다. 나름 나는 좋아하는 감독도 있고, 좋아하는 배우도 있으며, 좋아하는 장르도 있다. 그것이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딴지 걸지마시라.

   <공동경비구역 JSA> 이전의 박찬욱의 영화는 모른다. 많은 이들이 박찬욱을 알고 있을 땐 이미 저 영화를 통해서였을 터. 나 또한 그 '대중'을 구성하고 있는 한 명의 영화팬이다. 이 영화 때도 박찬욱을 제일 좋아하는 영화 감독 리스트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후 그가 <복수는 나의 것>을 내놓았을 때 난 그를 욕했다. 이런 잔인한 영화같으니라고. 잔인하다고 욕먹을 필요는 없지만 난 이 영화가 너무나 불쾌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난 그에게 열광했다. 이전에 아마 내가 써놨던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영화감상문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흠. 생각난김에 찾아봤더니 없다. 이런.

  그가 복수 3부작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난 또 열광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첫번째는 잔인했고 불쾌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것은 쾌감이 되었고, 두번째 또한 그 잔인함에 한표를 던졌지만 역시나 열광을, 세번째는 생각만큼 잔인하진 않았지만 또다시 열광을 보냈다. 그의 머리 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의 몽타주>라는 책이 지난해 말 나왔다. '몽타주'는 컷과 컷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장르의 핵심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이다. <박찬욱의 몽타주>에서는 그가 지금껏 써온 칼럼, 에세이, 셀프인터뷰, 제작일지, 그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모아 짜깁기했다. 사실 기대한 만큼의 책은 아니었다. 나는 짜깁기 책보다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다시 쓴 그만의 영화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나친 기대였던 것일까. 이 책은 모두 짜깁기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는 자신이 쓴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모아 만든 짜깁기 책이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그의 글을 보고 싶었으나 그런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므로.

  그는 영화감독 이전에 평론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역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이 책에도 그의 평론이 조금  실려있다. 책의 뒤쪽에 그가 말하는, 그가 좋아하는 B영화에 대한 평론들. 하지만 그건 읽어도 도통 그 영화들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어 넘어갔고. 그냥 그의 쿨한, 솔직하게 써재낀 칼럼과 에세이가 좋았다. 글발이 있는 사람은 아닌 듯 하다. 아니면 글발이 있지만 귀찮아서 막 쓴 듯이 보이는 그 글들. 처음엔 좀 불쾌했다. 그의 영화를 접할 때도 불쾌했지만 그것이 쾌감으로 변질되었듯, 그의 글을 통해서도 난 불쾌감으로 시작해 쾌감으로 끝났다. 그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호의적 감정이 만들어낸 쾌감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칼럼이나 인터뷰 글들은 뭐랄까 너무 가볍다. 진지함이 묻어있지 않다. 물론 모든 칼럼이나 에세이가 진지할 필요도 없고, 그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고까지 밝혔으므로 그는 무죄. 그걸 기대한 나는 유죄. 마치 우리가 어느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자기소개 형식으로 100문 100답을 쓰는 듯한 귀차니즘과 억지성의 압박심리가 느껴졌고, 아마도 뜨기 전의 그는 밥벌이의 수단으로, 혹은 알려지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기에 그와 같은 느낌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몽타주>를 통해 박찬욱을 알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그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동시에 나온, 하지만 조금 더 비싼, <박찬욱의 오마주> 도 곧 사보지 않을까 하는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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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2-04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꼭 장르와 감독, 영화의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 시시콜콜히 알고 있어야 매니아인가요. 영화 나올때마다 불법다운로드 받지 않고 꼭 개봉관에 가서 보시는 아프락사스님같은 분이 진짜 매니아죠.^^

마늘빵 2006-02-0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감사합니다. 어제도 영화 하나 보고 왔어요. 이따 글 올려야지. 요즘 개봉한 것 중에 보고픈게 꽤 있는데 흠 다 보긴 힘들거 같구 골라서 몇 개 더 보려구요. 전 불법다운로드는 안해봤어요. 어캐하는지도 몰라요. ㅋㅋ